# 362
광풍과의 만남 (4)
패배. 그리고 사망.
결과적으로 로칸은 광풍에게 패배했다. 초극을 사용하고도.
하지만 광풍은 내심 놀란 상태였다. 그가 이길 수 있었던 건 아주 미세한 차이였으니까.
만약 로칸의 초극이 완성된 스킬이었다면 아마 아바타가 소멸되었을지도 몰랐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다음 대결도, 또 그다음 대결도 모두 승리는 광풍이 가져갔다.
이후에도 로칸이 몇 번이나 초극을 사용했지만 이제는 광풍도 요령이 생겼다. 불완전한 초극의 힘을 끊어 내는 요령이.
초극의 힘 자체를 베어 내는 것이 아니라 힘의 연결부를 끊어 자멸하도록 만든 것이다.
까딱하면 역으로 잡아먹힐 만큼 그 자체로 대단히 위험한 작업이지만 광풍은 그것을 깔끔이 해냈다.
그렇게 되자 로칸은 더 이상 초극을 사용하길 포기했다. 설령 초극을 사용해 승리를 거머쥔다 한들 자신에게 득 될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럴 힘을 아껴 한 번이라도 더 배틀 액스를 휘둘렀다.
광풍과 겨루고, 몸으로 체득하는 것을 택했다.
[사망하셨습니다.]
[신성 공간 : 콜로세움이 해제됩니다.]
모자랐다. 닿지 못했다.
풀 도핑을 하고, 온갖 버프 스킬로 떡칠을 해 보기도 했지만 결국 광풍을 상대로 최종적인 승리를 따내지는 못했다.
13승 100패.
아무리 신성을 사용하지 않았다고는 하나 신위를 획득한 존재에게 두 자리 수의 승리를 따낸 것은 엄청난 일이긴 했지만 결과만 놓고 보았을 때는 패배였다.
로칸은 스스로를 드높이는 대신 그 결과를 아프게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이제 다시 돌아가려는 광풍에게 감사와 작별의 인사를 남겼다.
“징글징글한 놈. 결국 깨달았구나.”
연전연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초중반의 일일 뿐이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거의 비등한 수준까지 올라선 로칸이 질린다는 듯 고개를 내저은 광풍은 손을 휘휘 저으며 인사했다.
“웬만해서는 다시 보기 싫지만……. 결국 네놈은 올라오겠지? 그때 다시 한번 붙자. 그때는 신성을 듬뿍 사용해서 상대해 주지.”
하지만 겁을 내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천생이 투사인 광풍은 기대감과 함께 사라졌고, 다시 야만 전사 마을에 나타난 로칸에게 야만 전사들이 환호했다.
“우오오오!”
“광풍의 사도!”
“호우! 호우!”
움찔.
로칸이 그들을 바라보자 함성이 멎었다. 그 눈빛에 살기와 광기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왜……?”
풀썩.
그리고 잠시 후, 야만 전사들이 짚단처럼 쓰러졌다. 로칸의 공격을 받고서.
“좋은 걸 굳이 나눌 필요는 없잖아?”
콰앙!
로칸은 그대로 야만 전사 마을을 파괴했다.
달아나는 놈들까지 모조리 도륙한 뒤 광풍의 제단마저 파괴시켰다.
그로 인해 그의 신성이 일부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상관없다. 고작 그 정도에 영향을 받을 리도 없을뿐더러 그가 화를 낸다 해도 다시 만나는 건 한참 뒤의 일이다.
그때까지, 다른 이들이 광풍을 만나 배움을 얻지 못하도록 광풍의 제단을 혼자만의 기억으로 남겨 두었다.
“……이거 진짜 미친놈이네.”
그렇게 제단을 완전히 파괴했을 때, 로칸은 그 밑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봉인된 광풍의 건틀릿][유니크]
광풍의 무구 중 마지막 파츠. 바로 광풍의 건틀릿이었다.
자신의 제단 아래에 무구를 숨겨두고 파괴해야만 얻을 수 있게 만들다니 악취미다.
자신의 힘을 얻으려면 그 정도 미친놈은 되어야 한다는 뜻이었을까? 어쨌든 로칸은 고맙게 받았다. 무구의 봉인을 해제시켰다.
[광풍의 건틀릿][세트]
광풍이라 불리던 학살의 신이 사용하던 건틀릿.
-방어력 : 15,000
-내구도 : 1,000,000 / 1,000,000
-힘 30% 증가
-체력 30% 증가
-[고대의 힘] 효과로 공격력 20% 증가
힘과 체력 수치는 물론 공격력을 퍼센티지로 증가시키는 무지막지한 옵션도 만족스러웠지만 세트 효과 또한 발군이었다.
[광풍의 무구를 5세트 모으셨습니다.]
[세트 효과가 발동합니다.]
[3세트 효과 : 모든 공격력 20% 증가]
[4세트 효과 : 모든 받는 대미지 30% 감소]
[5세트 효과 : 버서크의 능력 증폭 및 지속 시간 2배 증가]
버서크의 효율과 지속 시간 증가!
은근히 시간제한에 대한 압박을 가지고 있던 로칸의 고민을 말끔히 해결해 주는 세트 효과였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광풍을 만남으로써 오랫동안 끌어오던 퀘스트가 완료되었다.
[광풍의 발자취][퀘스트]
광풍의 흔적을 모두 찾아낸 당신은 그의 뒤를 이을 자격을 갖추었다.
광풍의 발자취를 찾아 그를 찾아내자.
그는 자신의 업적을 넘어선 당신을 기꺼이 반길 것이다.
-날개 획득 (완료)
-천상 대포 제작 (완료)
-천상으로의 진입 (완료)
-광풍과의 대화 (완료)
게임 시작부터 지금까지 지겹도록 끌어온 퀘스트의 완료였다.
따로 보상이 나와 있지 않아 늘 궁금했는데 이제야 그 해답을 얻게 되었다.
[불가능한 업적! 광풍의 발자취를 쫓아 마침내 그의 뒤를 쫓게 된 당신의 업적과 끈질김에 경의를 표합니다.]
[타이틀 ‘광풍의 후계자’를 획득하셨습니다.]
[당신은 이 타이틀의 최초 획득자입니다.]
[최초][광풍의 후계자][레전드]
광풍의 뒤를 이어 지상과 천상을 진동시킨 당신의 행보에 모든 신들이 주목합니다.
어떤 신은 관심을, 어떤 신은 두려움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보유 효과]
-모든 능력치 20% 증가
-신들의 관심과 두려움
“응?”
퀘스트 완료와 함께 나타난 타이틀 획득 메시지. 모든 능력치가 퍼센티지로 증가하는 어마어마한 옵션에 놀라기도 했지만 두 번째 옵션이 수상했다.
모든 신들의 관심과 두려움이라니?
‘이 인간, 아니 이 신 놈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타이틀명부터가 광풍의 후계자이니 그들의 관심과 두려움은 자신이 아닌 광풍에게서 비롯된 것일 확률이 높았다.
또다시 광풍 같은 자가 나타날까 싶은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하지만 그게 뭐? 관심과 두려움을 보여서 어쩌겠다는 거지?
살짝 혼란이 찾아왔다.
그동안 천신과 마신 그리고 광풍이 자신에게 간접적인 메시지를 보내온 적은 있지만 그로 인해 무언가 바뀐 적은 없지 않은가?
관심이든 두려움이든 보인다 한들 뭐 어쩌라고?
로칸의 표정이 심드렁해질 때, 그 해답이 들려왔다.
[천신이 당신을 사도로 임명하고 싶어 합니다.]
[천신의 사도의 자리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엥?”
천신이란 놈이 가장 먼저 선수를 쳤다.
로칸을 천신의 사도로 임명하겠다 나선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수작이지? 채 거절을 하기도 전에 다른 메시지들이 쏟아졌다.
[마신이 당신을 사도로 임명하고 싶어 합니다.]
[별자리의 신이 당신을 사도로 임명하고 싶어 합니다.]
[모략의 신이 당신을 사도로…….]
마신은 물론 들어 본 적도 없는 온갖 신들이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용은 거의 비슷했다. 로칸을 자신의 사도로 삼고 싶다는 것이다.
개중에는 아예 노골적으로 아이템 따위를 걸고 유혹하는 놈들도 있었다.
“다 꺼져.”
그들의 러브콜에 로칸은 한마디로 답했다.
메시지 창을 몽땅 꺼 버렸다.
천신과 마신이야 그렇다 치자, 한데 그동안 듣도 보도 못한 놈들이 갑자기 무슨 후원이며 사도 임명이란 말인가? 속내가 훤히 보이는 짓거리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나중에 자기편으로 포섭하려는 것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벌써부터 발목 잡힐 필요는 없지.’
어차피 신들의 도움 따위 없어도 금방 신성을 획득하고, 신위에 오르게 될 로칸이 아니던가?
더구나 광풍은 메시지조차 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관심이 있고 죽이 잘 맞는 이가 그일 텐데 말이다.
솔직히 그가 메시지를 보냈다면 한번 생각은 해 봤을 터였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로칸은 그것을 자신이 이따위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꼭 골라야만 하는 일이라면 모를까, 고작 스킬 몇 개 얻자고 그런 멍청한 짓거리를 할 리 없었다.
‘꼭 천족이랑 마족 놈들이 하는 짓 같군.’
게다가 꼭 겪어 보지 않아도 비슷한 짓거리를 이미 하고 있는 놈들이 있지 않던가?
지상에 파견을 보낸 천족과 마족.
그리고 그런 사탕발림에 넘어가서 미리 진영을 정해 봤자 제한만 심할 뿐, 딱히 이득이 있지도 않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다.
“사도인지 나발인지 안 할 거니까 메시지 보내지 마라.”
로칸은 하늘을 보며 경고했다.
그러자 그의 행동을 비난하는 메시지가 몇 개나 떠올랐지만 그도 곧 잠잠해졌다.
“모략의 신, 너 이 새끼. 나중에 두고 보자.”
로칸이 아예 콕 집어 경고를 날린 것이다.
이미 한참이나 격의 차이가 나는 이들이기에 마음먹고 해코지를 하려 든다면 로칸이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천신이든 마신이든 지상과 천상에 현신하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신이 되면 더 이상 지상이나 천상에 나타나거나 직접 간섭 할 수 없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 예상이 적중했는지 비난의 메시지는 슬그머니 사라졌고 시시껄렁한 메시지들만 나타났다 사라졌다.
관심을 보였으나 정작 당사자가 관심이 없어 보이는 흥미가 식은 듯 보였다.
“이런 것도 가능했나 보군.”
하지만 로칸은 이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사도라는 것.
자신이 제의를 받았다면 다른 이들도 받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사도의 이점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단기적으로는 상당한 힘을 부여받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기에 마음을 놓지 않았다.
당장 벌여 놓은 일들이 있으니 각 신의 사도들이 우르르 몰려와 자신을 치려고 들 수도 있지 않겠나.
두렵지는 않아도 대비는 필요할 듯싶었다.
더구나 자신을 두려워하거나 비난하던 신들이라면 충분히 사도들을 조종해 모략을 꾸밀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공식적인 전체 공지를 통해 사도 시스템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벌써 다른 유저들과 접촉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염두에 두었다.
“일단은 돌아가야겠지.”
야만 전사든 검은 산이든 신맵은 역시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았다.
애초에 천상에도 진입하지 못한 유저들을 위한 콘텐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하지만 로칸은 아직 천상에서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많았다. 고작해야 정령계와 환마계를 돌아보았을 뿐, 천족과 마족의 본거지는 구경도 못 했으니까.
그렇기에 신맵을 뒤져 새롭고 흥미로운 것들을 찾아내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더 앞서가야 할 때였다.
450레벨, 마제스티 마스터의 경지를 달성하기 위해서.
‘일단 450레벨만 찍으면…….’
이후의 플랜은 이미 세워 두었다. 아주 특별한, 생각대로만 된다면 지금까지 해 온 것 이상의 광렙을 할 수 있는 플랜을.
“그럼 가 볼까?”
다시 천상으로 복귀했다.
일단은 마계에 있는 자신의 영지부터.
한데, 오랜만에 찾아온 마계 영지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뭐야, 이것들은?”
세금을 수거하고 러시아 길드들이 상납한 전리품을 확인하던 로칸의 눈에 이상한 것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