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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랭커 회귀하다-339화 (339/500)

# 339

계약 (3)

“……대체 우리에게 왜 이러는 겁니까?”

“몰라서 묻나?”

“역시…….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벌써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실수는 인정하지만 우리를 짓밟는다고 로칸 님도 얻으실 게 없을 텐데요. 협상을…… 할 수 없겠습니까?”

씨익.

저항을 포기한 베르단의 푸념 섞인 제안에 로칸이 씨익 미소를 피어 올렸다.

“복수라니, 가당치 않군. 복수라는 건 서로 급이 맞을 때나 하는 말이다. 그리고 얻는 것? 있지. 이건 계약이거든.”

“계약……요?”

베르단의 눈빛이 흔들렸다. 로칸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그래. 러시아 유저들이 조건을 제시하거든. 너희를 열 번씩 죽여 주면 돈과 아이템을 지급하겠다는.”

이를테면 청부업자의 일.

로칸씩이나 되는 인물이 그런 거래를 받아들였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는지 베르단은 멍한 눈빛이 되었지만 곧 회복했다.

로칸이 이런 말을 순순히 털어놓는 이유가 무엇일까. 속임수? 러시아와 미국을 갈라 놓기 위해서?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이유가 부족했다.

로칸이 뭐가 아쉬워서 둘을 이간질한단 말인가? 마음만 먹으면 자신들에게 그러했듯 러시아 유저들도 도륙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이간질을 할 것도 없이 자신의 힘으로 쓸어버리면 그만이었다.

더구나 마계에 거대한 영지를 가지고 있는 로칸이라면 마족 진영으로 소속된 러시아 유저들을 찾아 죽이는 것은 자신들을 처리하는 것보다 쉬울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그 진의를 찾기 위해 빠르게 눈알을 굴렸다.

“그렇다면, 저희와도 거래를 하실 수 있겠습니까?”

예상대로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기다렸던 대답이 등장하자 로칸은 대답해진 환하게 웃었다.

거래 내용을 발설하지 않는 것은 러시아 길드들과의 계약 내용에 포함되지 않았고, 이중 계약을 맺는 것 또한 계약 사항에 포함되지 않은 일이 아닌가?

게다가 지금 베르단을 죽이면 그들과의 계약은 일단락된다.

도의적인 부분에서는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안 되겠지만 자신이 굳이, 왜?

그 미소의 의미를 깨달은 베르단은 즉시 각 길드의 수장들에게 메시지를 돌렸다.

복수를 위해서.

당연히 복수의 대상은 로칸이 아닌 러시아 유저들이었다.

“절 죽이십시오. 그리고 저희도 의뢰하겠습니다.”

잠시 후, 베르단은 결연한 표정으로 죽음을 자처했다.

자신의 죽음 한 번으로 이 습격을 끝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감수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대신, 그들 역시 같은 꼴을 보게 만들어 주리라 다짐했다.

이미 다른 길드장들의 동의는 받아 두었고 로칸이 무슨 조건을 제시하든 받아들일 작정이었다.

“나쁘지 않지.”

그것은 로칸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같은 조건으로 해 줄 수는 없다. 현금은 동일하게 받았지만 아이템의 경우 1백 개에서 2백 개로 늘렸다.

그래야 별의별것들이 다 나올 테니까.

하지만 로칸이 노리는 것은 단 하나뿐이다.

바로 봉인된 광풍의 무구.

그들이 소유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정말로 각 국가의 대륙에 하나씩 있는 거라면?

충분히 확인해 볼 가치가 있는 일이었기에 베르단을 죽이고 계약을 완료한 뒤, 미국의 유저들과 다시 계약을 맺었다.

“사흘 후에 뵙겠습니다.”

다시 살아난 베르단은 로칸과의 계약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잔뜩 이를 갈았다.

지금 당장은 떨어진 레벨을 복구하는 데 집중해야겠지만 언젠가 이 일의 발단인 러시아 유저들에게 직접 복수를 하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로칸에 대한 복수는? 글쎄, 그건 차마 떠올리기 힘들었다. 이번 일을 통해 힘의 격차를 절감했으니까.

그랜드 마스터가 열 명쯤 된다면 그때는 노려 볼 수 있을까?

아직도 먼 미래의 일인데다 그때는 로칸도 또다시 파워 업을 했을 것 같은 생각에 감히 대적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확인했나?”

“예. 확인했습니다. 잔금은 금일 내로 지급될 겁니다.”

그렇게 미국 유저들과의 계약을 마치고 돌아온 로칸은 체리셰프를 먼저 찾았다.

계약서를 통해 계약 내용의 이행이 완료되었음을 확인했을 테니 남은 금액을 지불하라는 것이다.

계약 내용이 아니더라도 정보통을 통해 이미 소식을 들은 상태였는지 체리셰프의 표정은 밝았고, 힘찬 답변이 이어졌다.

레벨 다운과 아이템 드롭을 겪은 미국 유저들과 달리 자신들은 로칸의 영지 인근에 위치한 사냥터에서 빠르게 레벨을 올리고 있으니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앞으로 자신들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좋군. 그럼 다음에 보지.”

굳이 그 사실을 미리 말해 줄 필요는 없었기에 로칸은 음흉하게 웃으며 그를 물렸고, 새로운 세계를 마주할 준비를 했다.

공허의 문 소환 의식.

어차피 미국의 준비가 끝나려면 사흘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으니 그 전에 확장된 맵을 탐험할 생각이었다.

실패한다면 모를까, 공허의 문을 뚫고 나가는 데 성공한다면 1시간 이내에도 다른 지역으로 넘어갈 수 있을 테고 그다음에는 천상의 룬을 이용해 자유로이 왕복이 가능하니 시간은 충분했다.

“여기랬지?”

공허의 문을 여는 장소는 평범했다. 가오칸이 알려 주지 않았다면 찾기 어려울 정도.

특별히 뭔가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곳이 가장 차원 장벽이 약한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로칸은 어쩌면 차원 괴조의 둥지와 멀지 않은 곳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 일단 혼돈의 비약을 바르고…….”

잠시 긴장된 표정으로 숨을 고른 로칸은 자신의 몸에 혼돈의 비약을 얇게 펴 발랐다. 공허의 문이 열리는 것은 순간이니 들어가서 바르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그다음 힘의 정수 하나를 꺼내 두고 차원 괴조의 발톱을 양손에 쥐었다. 그리고 허공을 마구잡이로 베기 시작했다.

차원 괴조가 직접 사용하는 것에는 턱도 없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차원 장벽을 얇게 만들고, 나아가 작은 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쉬이이이이익.

“왔나.”

허공에 난도질을 반복하자 실금 같은 틈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안에서 뱀처럼 소리를 내는 어떤 촉수가 밀려 나왔다.

힘의 정수를 탐내는 공허의 존재가 차원 장벽의 틈을 벌리며 탐했다.

‘지금!’

차원의 장벽을 뚫는 것은 놈에게도 버거운지 촉수는 바로 힘의 정수를 낚아채지 못했다.

실금 같은 틈을 로칸이 통과할 수 있을 만큼 크게 벌리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고, 마침내 그것이 가능하게 되었을 때 로칸은 힘의 정수를 손에 쥐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정확히는 놈이 벌려놓은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전신의 돌격!”

쿠오오.

심연의 촉수와 부딪쳤지만 둔탁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마치 물속에 들어가거나 영혼체와 부딪힌 것처럼 기묘한 느낌과 함께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아마도 혼돈의 비약 덕분일 것이다.

놈은 재빨리 방향을 돌려 로칸이 손에 쥔 힘의 정수를 탐했지만 그 덕에 로칸은 빨려 들어가듯 공허의 문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공허에 진입하셨습니다.]

[주의하십시오. 공허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육신과 영혼, 신성이 침식당할 수 있습니다.]

공허. 그 안은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보기만 해도 홀릴 것 같은 요사스러운 보랏빛 세계. 기상도 없고 대지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확실히 딛고 설 땅은 존재했다.

때문에 로칸은 허허벌판, 혹은 망망대해에 떨어진 느낌을 받았지만 절망하거나 공황 상태에 빠지지 않았다.

꼼꼼히 바른 혼돈의 비약이 공허의 침식을 막아 주었고, 욕망의 나침반이 갈 길을 알려 주었으니까.

‘확장된 맵으로 가고 싶다.’

핑그르르.

의지를 강하게 세우자 나침반의 침이 저절로 움직였다.

“전신의 돌격, 전력 질주, 투지의 발걸음…….”

이제부터는 시간이 생명이다. 방향이 정해지자 로칸은 지체 없이 몸을 날렸다.

유니콘이든 나이트메어든 여기서 소환했다가는 공허에 잡아먹힐 테니 탈것을 소환할 수는 없었지만 거의 모든 직업들의 이동 스킬을 번갈아 사용하자 쉬지 않고 가속하는 것이 가능했다.

‘마나 소모가 크군.’

문제는 스킬을 난사하듯 사용하는 만큼 마나의 소모가 크다는 것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 혼돈의 비약이 아닌 이상 마나 포션조차 쓸 수 없다는 것이 위험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간 단축이니까.

그렇게 스킬 사이클을 몇 바퀴 돌리자 대략 효율적인 스킬들의 목록을 뽑을 수 있었고, 그것들의 순서를 적당히 조합하며 쭉쭉 앞으로 나아갔다.

한참을 이동하자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새로운 지형, 새로운 몬스터들이.

[공허의 이무기][Lv 457]

[공허의 드레이크][Lv 454]

[공허충][Lv 450]

달려 나가는 로칸의 시야에 잡히는 놈들의 수준이 대단했다. 하나같이 450레벨 이상인 놈들이 즐비하게 깔려 있는 것이다.

이쯤 되니 가오칸이 공허를 꺼려 하던 것도 이해가 되었다.

만약 공허의 침식이 아니더라도 이들이 일시에 공격을 한다면 과연 버텨 낼 수 있을까? 마른침이 꼴깍 삼켜질 만큼 긴장됐다.

혼돈의 비약이 가지는 지속 시간이 불시에 끝나 버리기라도 한다면 이들이 자신을 인식할 테니까.

‘무시무시하군.’

그렇기에 속도를 더욱 늦출 수 없었다. 혼돈의 비약이 아직 몇 병 남아 있긴 하지만 안심하기는 일렀으니까.

‘젠장.’

예를 들어 이런 변수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산 같은 덩치로 로칸의 앞을 가로막은 거대 괴수. 잠이라도 들었는지 몸이 살짝 들썩이긴 했지만 돌아서 이동하기도 어려웠다. 놈이 위치한 곳이 협곡의 길목이기 때문이다.

돌아서 이동을 하려면 아예 협곡을 돌아 올라가거나 절벽을 기어올라야 하는 상황.

욕망의 나침반이 가르쳐 주는 것은 방향일 뿐, 그 앞에 어떤 장애물이나 지형, 몬스터가 있는지는 알 수 없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흐읍.”

어쩔 수 없이 로칸은 절벽을 기어올랐다. 놈을 타고 넘다가는 잠을 깨울 것 같았으니까.

스킬을 사용하면 혼돈의 비약의 지속 시간이 짧아질 수 있다는 경고를 들었기에 순수한 힘으로 암벽 등반을 시작했다.

“아…….”

그렇게 힘겹게 절벽을 타고 오르자 먼 곳까지 시야에 들어왔다.

끝없이 펼쳐진 공허의 땅. 그중 어느 지점에 도달해야 목적지로 이동할 수 있는지는 가늠조차 불가능했다.

로칸은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끼며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스윽스윽.

자신의 기척을 미약하게 감지했는지 고개를 돌려 갸웃거리는 공허의 존재들을 보며 혼돈의 비약 한 병을 더 펴 바른 뒤 목적지를 향해 뛰고 또 뛰었다.

“이런 미친…….”

그리고 잠시 후, 끔찍한 상황과 마주했다.

키야아악! 푸힝! 쿠과과과과광!

그가 가고자 하는 길목에서 하필 두 공허의 존재들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무려 450레벨들 간의 전투.

그 여파만으로 지형이 뒤바뀌고, 먼 곳까지 땅과 대기가 울렸다.

그곳을 돌파해야 하는 로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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