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4
욕망의 나침반 (5)
“히이이익?”
“크라켄이다!”
“후, 후크톤?”
“여, 여보!”
언데드를 상대할 때보다 더한 공포가 블랙펄 해적단을 덮쳤다. 각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들을 마주했으니까.
사방에서 몰려드는 언데드 따위는 벌레 같아 보일만큼 거대한 공포가 그들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튀, 튀어!”
그 극한의 상황에서 블랙펄 해적단원들은 다분히 해적다운 판단을 내렸다.
바로 도주!
동료고 선장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튀기 시작한 것이다.
“어딜?”
퍼억!
하지만 그걸 가만 놔둘 로칸이 아니다.
애초에 그들에게 나이트메어의 스킬을 사용한 것도 그들이 도망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을 혼란시키기 위함이니까.
빈틈이 많아진 육신은 방어에 취약해졌고, 로칸의 배틀 액스가 일격마다 크리티컬을 터트리며 놈들을 유린했다.
“히익! 가져가!”
“……!”
그리고 마침내 선장의 차례가 되었을 때, 놈은 로칸을 누군가와 겹쳐 보았는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집어 던졌다.
“나침반?”
바로 욕망의 나침반. 아무래도 그가 두려워한 존재는 이 나침반의 원 주인인 듯싶었다.
“득템이긴 한데…….”
로칸의 입장에서는 ‘득템’인 셈.
그러나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을 가진 순간, 모든 해적 언데드들의 시선이 로칸을 향한 것이다.
“어쩐다.”
결정이 필요했다. 이것을 가지고 도망을 치느냐, 아니면 블랙펄 해적단이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느냐.
“역시 못 먹어도 고지.”
팽그르르.
로칸이 마음을 정하자 손에 쥐어진 나침반의 바늘이 핑 돌았다. 그리고 방위와 상관없이 동굴의 안쪽을 가리켰다.
“나이트메어, 돌아가. 유니콘 소환!”
파앗.
블랙펄 해적단이 동굴에서 완전히 멀어진 것을 확인한 로칸은 즉시 소환수를 교체했다.
신수 유니콘.
녀석은 등장과 동시에 그 존재감만으로 원한의 기운을 소멸시키고 해적 언데드들에게 본능적인 공포를 부여했다.
“크으으읏!”
“죽고 싶지 않아……!”
동시에 해적 언데드들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언데드란 본디 욕망과 본능으로 움직이는 존재. 조금 전까지는 탐욕이 그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면 지금은 삶에 대한 갈망이 그것을 대체하고 있었다.
이미 죽은 목숨이지만 그렇기에 삶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컸다. 저 빛에 닿으면 영혼까지 소멸해 버릴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기겁을 하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해적이라더니 쫄보들이잖아?”
이렇게 되자 정작 유니콘을 소환한 로칸이 더 뻘쭘해졌다.
유니콘의 신성을 이용해서 안 되면 무혼 각성으로 천신의 별빛 건틀렛이라도 깨울까 했더니 그랬다간 섬 전체가 달아날 기세다.
허무했지만, 나쁘지 않다. 이 안의 무언가를 공짜로 집어먹을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은 거 아니겠나?
가볍게 유니콘에 올라타 이동 스킬을 발동시켰다.
욕망의 나침반을 꼭 쥐고서.
키에에에에엣!
가는 곳마다 사정은 같았다. 언데드들은 로칸과 유니콘이 다가가자 그림자가 물러나듯 속도에 맞춰 물러났고 길이 저절로 열렸다.
그야말로 무혈입성.
너무 쉬워 함정 같아 보일 지경이지만 아직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은 충분했기에 거침이 없었다.
산을 뚫고 반대편까지 나아갈 기세로 계속해서 돌진했다.
“응?”
유령과 언데드가 주력이기 때문인지 별도의 함정은 없었다.
있다 해도 어지간해서는 로칸이 익혀 둔 함정 탐지에 걸려들었을 테고 아니라도 심각한 타격을 주기는 어려웠을 테지만, 덕분에 수월히 안쪽 깊숙한 곳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로칸을 막아선 무리가 있었다.
[대해적의 망령 선원][Lv 400]
바로 이곳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남겼다고 하는 대해적의 선원들. 그들의 원혼이 이곳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레벨도 무려 400이라 유니콘의 신성력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전신의 돌격, 점멸!”
퍼엉!
영혼 계열에게도 감소되지 않은 대미지를 줄 수 있는 로칸의 공격력을 버티지 못하고 금방 터져 버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무늬만 그랜드 마스터네.”
로칸의 말처럼 그들은 레벨 대비 약했다.
전생의 전투법은 기억하는 모양이지만 원한만 남은 듯, 창조 스킬을 사용하는 등 제대로 된 그랜드 마스터의 힘까지는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방심하기에는 일렀다. 이들은 고작 ‘선원’일 뿐이니까.
오히려 선원 따위가 400레벨이라는 점에서 긴장할 필요가 있었다.
“아껴 두길 잘했군.”
때문에 로칸은 광풍 현신을 아껴 두었다.
후유증 시간과 재사용 대기 시간이 줄어들었다지만 더 안쪽에 있는 놈들까지 창조 스킬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장담은 할 수 없으니까.
간부쯤 된다면 어느 정도 이지를 보유하고, 마스터 스킬이며 창조 스킬로 자신을 위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에게 사용할 스킬을 골라 두며 로칸이 입구를 뚫었다.
[대해적의 망령 갑판장][Lv 410]
그리고 마침내 나타난 간부급.
살짝 간을 볼까도 생각했지만 로칸은 즉시 힘을 일으켰다.
여차하면 시간 역행을 쓰기 위해 일부러 입구 쪽에서 시간을 쓰기도 했고, 자칫 선공을 당하면 곤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악령 지배.”
일단은 악령 지배부터.
마신의 힘이 퍼져 나가자 달려들던 망령 선원들이 머뭇거린다. 그중 일부가 눈을 까뒤집고 동료들에게 무기를 휘둘렀다.
400레벨이라 즉시 지배까지는 어려운지 아직 혼란스러워하는 모양새지만 일반 선원들은 서서히 그 힘에 물들기 시작했다.
아군에게 공격받아 영혼이 훼손되기라도 한다면 더욱 간단하다.
“으윽! 여긴……. 나는…….”
악령 지배의 효과는 계속해서 퍼져 나갔다. 심지어 간부들에게까지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정도.
아무리 동급의 격이라고는 해도 로칸의 능력치가 한참이나 우위인데다가 마신의 힘이 깃든 능력이니까.
잠시 망령 선원들을 쳐 죽이고 있자 곧 간부들의 눈이 몽롱해지고, 가드가 내려갔다.
“광살!”
퍼버버버버벅!
영혼체이기 때문에 아쉽게도 크리티컬은 터지지 않았다. 목을 베이든, 팔이나 다리를 베이든 영혼이 손상될 뿐이니까.
하지만 압도적인 공격력은 놈들의 영혼을 촛불처럼 흔들어 놓았다.
“모두 정신 차려라-!”
그때, 동굴을 진동시키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대해적의 원혼][Lv 449]
바로 이 땅의 주인이자 대해적이라 불리던 자의 영혼이 나타난 것이다.
그 호통에 이성을 잃은 망령 선원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마신의 힘에 노출되었다지만 선원들에게 선장의 명은 신처럼 지엄한 것.
생전 카리스마를 알 수 있을 만큼 강렬한 기세가 모두를 일깨웠다.
“히익!”
하지만 마신의 힘을 완전히 해소해 낸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잠시 정신을 차렸을 뿐.
그렇기에 놈들은 두리번거리며 상황을 파악하다가, 연기처럼 흩어져 선장의 뒤로 사라져 버렸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선장 또한 놈들의 도주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스스로 나서며 로칸을 맞이했다.
“인간이여, 나의 보물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자격을 증명해라!”
선장은 곧장 힘을 일으켰다. 영혼을 증식시켜 양손에 무기를 하나씩 쥔 채로 간부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
‘총?’
한데 그 무기의 생김이 놀라웠다. 한 손에는 시미터, 다른 한 손에는 권총이 들린 것이다.
물론 기계공학을 이용해 총과 같은 무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 위력은 형편없지 않았나? 그런데 449레벨이나 되는 존재가 총을 사용한다고?
아니, 표기되는 레벨은 449이지만 로칸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놈이 생전에는 450레벨을 달성했던 존재라는 것을.
그렇지 않다면 그만큼 바다를 지배하고, 해적들의 전설로 남을 수 없었겠지.
그런 생각 때문에 로칸의 움직임이 위축되었다. 저것이 평범한 위력을 발휘할 리 없으므로.
일격에 머리가 꿰뚫리거나 심장이 터져 나가지 않도록 보호하며 놈을 향해 몸을 던졌다.
“광풍 현신, 전신 무쌍, 피의 각성, 무혼…… 각성!”
최대의 힘을 이끌어 내며 대해적과 그의 수하들과 맞섰다.
‘이 선택이 맞아야 할 텐데.’
다만 잠시 고민을 했다. 아직 천신의 무구와 마신의 무구를 동시에 일깨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
유령의 형태를 하고 있는 놈들에게 상극은 천신의 힘이겠지만 악령 지배를 통해 마신의 힘 또한 통한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았나?
고민했지만 로칸은 확실한 쪽을 선택했다. 바로 천신의 힘.
선장이 악령 지배를 풀어냈듯 마신의 힘에도 견뎌 낼 수 있었기에, 도박을 하기보다 믿은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고오오오오오.
그 순간 로칸에게 막대한 힘이 몰려들었다.
이미 피의 각성을 통해 마신의 힘 또한 어느 정도 끌어 올린 상태인데다 천신의 힘이 극도로 증폭되었다.
이 정도면 449레벨이 아니라 450레벨과도 비벼 볼 수 있지 않을까? 사자왕조차 알려 주지 않아 그들이 어떤 권능을 지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붙어 보자!”
진정한 폭력의 왕이 된 로칸이 대해적, 아니 해적의 왕에게 대항했다.
“전신의 돌격!”
“포탄 방어!”
하지만 놈은 혼자가 아니다. 간부들 중 하나가 로칸의 앞을 가로막으며 창조 스킬을 펼쳐 냈다.
콰앙!
포탄을 비롯한 모든 외부 공격으로부터 함선을 보호하는 방어형의 창조 스킬.
힘의 격차로 크게 흔들리고, 막아선 몸이 튕겨 나가기는 했지만 돌진을 저지하는 것에는 성공했다.
“타이달 웨이브!”
연이어 펼쳐지는 창조 스킬의 향연.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차이가 더 벌어졌다.
바로 이곳이 바다가 아니라는 것.
해적들답게 창조 스킬이 대부분 해상전에 특화된 것이다.
예를 들어 타이달 웨이브.
대해일을 일으켜 상대를 함선 채 쓸어버리는 그 힘이 로칸을 덮쳤지만 로칸은 여전히 바다 왕자의 망토를 착용한 상태였다.
해일이 가진 물리력은 배틀 액스로 갈라 버리고, 물 속성의 기운은 아이템빨로 흩어 버렸다. 2차로 덮친 물줄기를 몸으로 뚫어 내며 재돌진을 성공시켰다.
타앙!
그때, 거대한 총성이 울렸다.
선장이 들고 있던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큭!”
로칸은 황급히 배틀 액스를 몸에 붙이며 방어했지만 그 위로 가해지는 충격이 장난 아니었다.
돌진이 막히고 몸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 최소 레전드 등급의 무기이거나, 그몰탄 때와 같이 창조 스킬로 만들어진 무기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
그 틈을 노리고 간부들이 저마다 무기를 쥔 채 달려들었지만 그 또한 바라던 바였다.
“진광풍참!”
범위 공격으로는 광살에 버금가는, 어쩌면 그보다 더한 위력을 지닌 스킬이 주변을 휩쓸었다.
황급히 몸을 빼내려 들었지만 소용돌이 같은 그 힘에서 벗어나는 것은 무리였다. 말려든 세 놈의 영혼이 조각나고 신성에 의해 정화되었다.
“크아아악!”
“함대 소환!”
그러나 그로 인해 로칸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선장이 스킬을 발동했다.
우우우웅!
“……!”
물러났던 망령 선원들의 몸이 흩어졌다. 입자처럼 흩어지더니 하나로 뭉쳐 작은 해적선의 형상을 이루었다.
선원들이 그 자체로 몇 척의 함선이 된 것.
놈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스킬을 연달아 발동시켰다.
“함포 사격! 전탄 발사!”
투아아앙!
각 함선에서 쏟아지는 포탄 세례.
망령 따위가 로칸에게 제대로 된 피해를 주기는 어려웠지만 그들은 지금 선장의 스킬과 일체화된 상태였다.
그랜드 마스터의 격이 함선, 포탄에 덧입혀진 채 로칸을 몰아붙였다.
[타이틀 불굴의 의지 효과로 모든 능력치가 100% 상승합니다.]
미처 피하지 못한 로칸의 몸에 대미지가 쌓였다.
순식간에 생명력이 바닥을 쳤고, 피하고 싶어도 피할 공간이 없었다.
만약 로칸이 아니었다면, 불사 효과가 아니었다면 이 공격 한 번에 죽음을 맞이했을 터.
그러나 로칸은 굳건히 버텨 냈다. 모든 대미지를 몸으로 받으며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