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랭커 회귀하다-305화 (305/500)

# 305

고인물의 게릴라전 (5)

세 번째 영지의 함락.

그몰탄의 속을 박박 긁어 놓을 그 일을 거뜬히 해낸 로칸은 이번에도 약탈 후 즉시 후퇴를 명령했다.

주변 병력이 돌아오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분노한 그몰탄이 단신으로 이곳에 쳐들어오기라도 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걸로 됐어.’

하지만 3차 공격은 없었다.

그야말로 전군 후퇴.

자신이 가진 마계 영지 투루비까지 모든 병력을 철수시킨 로칸은 영지 관리 창을 열어 대대적인 투자에 들어갔다.

“역시 돈이 최고야! 흐흐흐!”

투자라고는 해도 시설 투자 비용은 크지 않았다. 느긋하게 영지를 발전시킬 여유도 없었고, 성벽이나 공성 병기 따위에 투자하기에도 코인이 아까웠으니까.

어차피 전장은 이곳이 아니었다.

투루비의 인근에 있는 대평원. 로칸은 그곳에서 그몰탄을 맞이할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로칸의 투자는 모조리 병력에 집중되었다.

“이만큼 당하고도 가만히 있으면 천족, 아니 천사지.”

분노한 그몰탄이 대군을 이끌고 이곳으로 올 테니까.

이미 로칸에게 악감정을 품은 데다 영지를 세 곳이나 털렸으니 잔뜩 약이 올랐을 터였다.

더구나 놈이 또다시 공격당할 것을 염려해 모든 영지를 이 잡듯 뒤지고 있는 것을 조롱하듯, 로칸은 떡하니 자신의 영지로 돌아와 있다는 소문까지 퍼트리지 않았나?

상급 마족의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을 제쳐 두고 병력을 일으킬 게 분명했다.

천계라면 모를까, 이곳 마계에서 서로 전쟁을 한다고 눈치주거나 말리는 놈들이 있을 리 없으니까.

더구나 알아보니 그몰탄은 꽤 유명하고 유력한 마족이었다. 그 개인에게 할당된 영지와 수하들뿐 아니라 동맹 또는 휘하 마족들까지 몽땅 대동할 가능성도 있었다.

로칸을 아주 철저히 짓밟기 위해서.

“그래 주면 나야 땡큐지.”

절체절명, 아니 절망적인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로칸은 이 상황을 기꺼워했다.

적의 숫자가 많아지고 강력한 존재들이 그를 노릴수록 그가 사냥할 사냥감 또한 많아지지 않겠나?

벌써 경험치 바의 5분의 1가량이 차올랐으니 잘만 비벼 본다면 죽더라도 레벨 업을 먼저 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399레벨을 달성한다면? 죽어서 아이템을 드롭할지언정 레벨은 떨어지지 않는다.

로칸이 노리는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유저의 특권, 그리고 승급 퀘스트를 이용한 농락.

그렇게 어떻게든 400레벨만 달성할 수 있다면, 제아무리 그몰탄의 영향력이 크다 해도 마음껏 성장하고 놈을 깨부술 자신이 있었다.

‘이쪽은 비장의 한 수도 있고 말이지.’

그렇게 로칸은 아낌없이 코인을 투자하며 병력을 증강시켰다. NPC 병사들이 벌어들이는 경험치의 일부도 그에게 돌아올 테니까.

“움직였나.”

그리고 몇 시간 뒤, 로칸은 정보 상인에게 의뢰한 정보 제공 계약에 따라 그몰탄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휘유, 살벌한데?”

그몰탄이 움직인 군대는 엄청난 대군이었다. 마스터급, 또는 하이 마스터급으로 이루어진 군대가 물경 10만쯤 되었다.

이 정도면 중급 마족 영지를 공략하는 수준이 아니라 천계와 전쟁을 벌이려 한다 오해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

게다가 그몰탄이 직접 키운 애완동물만 무려 1백 마리에 가깝다고 하니 로칸이 자리 잡은 투루비는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아 보일 지경이었다.

그의 영지에 딸린 군소 거점들의 병력을 모두 규합한다 해도 말이다.

“일단 중간 거점들을 모두 파괴하려 들 테고…….”

이렇게 병력을 집중시킨 녀석의 의도는 뻔해 보였다. 힘의 차이를 느끼도록 하며 로칸이 그랬듯 본성 이외의 영지들을 모조리 파괴하고 짓밟으려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런 짓은 로칸도 이골이 나도록 해 보았다.

뻔한 의도에 놀아나 줄 생각이 없었다.

“병력 집결.”

때문에 모든 병력과 인구를 투루비로 집중시켰다.

그래봤자 얼마 되지 않는 숫자에 불과했지만 가만히 있다가 각개격파를 당하느니 이편이 훨씬 유리하다.

[마계 영지 티토린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마계 영지 스모론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그때, 영주만 들을 수 있는 알림이 로칸의 앞에 나타났다.

각 거점에서 뽑아낸 병력들을 모두 투루비 쪽으로 이동시킨 지 얼마 되지 않아 거점이 공격받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그몰탄의 본대가 저 먼 곳에 위치해 있음을 생각할 때 의도는 명백했다.

“똑같이 되갚아 주겠다는 건가?”

로칸이 했던 방식 그대로 갚아 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충분히 예상 범주 안에 있던 일이기에 로칸은 태연하기만 했다. 오히려 한껏 여유를 부렸다.

‘어차피 본 성은 공격하지 않을 테지.’

게릴라 부대가 쳐들어왔다지만 그 병력으로 로칸이 있는 본성, 투루비를 공격해 오지는 않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직접 쳐부수고 싶을 테니까.

로칸을 죽이고 자신의 영지를 범한 존재들을 모조리 찢어 죽이고 싶을 테니까.

“흐흐흐, 마냥 당해 주기만 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지.”

좁혀 오는 포위망을 알면서도 로칸은 과감히 투루비를 벗어났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으니 굳이 이곳에 묶여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영지의 기본 수비는 샤라크와 키리토에게 맡겨 두고 단신으로 천상의 룬 북을 사용했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 * *

“헉? 도, 도망쳐!”

후다다다다닥.

물경 10만 명에 이르는 대군. 그것도 하나같이 마스터 레벨 이상의 강자들인데다 반수 이상이 하이 마스터급인 탓에 그들이 가는 길목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이 된서리를 맞았다.

생태계 파괴. 그렇게 불러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지나가는 길목에 선 모든 것들을 파괴하고 학살했다.

“커헝?”

어디 그뿐인가. 그중 마수에 속하는 놈들은 그몰탄의 군세가 근접하자마자 세뇌가 되었다. 마수 조련사 특유의 정신 지배가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랜드 마스터급이거나 정신 계열 방어 능력을 가진 녀석이 아니라면 그몰탄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병력을 불려가며 진군하는 그몰탄의 소문이 돌자 막아서는 마족은 사라졌고 도시를 거치지 않음에도 인근 도시에 마족들이 사라졌다. 괜히 불똥이 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쯧쯧, 아까운 줄을 모르는군.”

그러나 그 어마어마한 군세를 뒤따르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바로 로칸.

얼마나 성질이 났는지, 아니면 푼돈이라 여긴 것인지 고레벨 사냥터를 초토화시키고도 아이템을 수거하지 않는 그몰탄의 군세를 뒤따르며 인벤토리에 차곡차곡 아이템을 쌓는 것이다.

이것만 다 팔아도 어마어마한 코인을 벌 수 있을 터였다.

“징집.”

그리고 실제로 로칸은 그 아이템들을 다른 지역의 상점에 몽땅 팔아치우고 그 돈으로 투루비에서 병력을 충원시켰다. 350~380레벨 사이의 마족 병사들을 말이다.

“슬슬 시작해 볼까?”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할 로칸이 아니다.

놈들의 뒤를 쫓은 것은 어디까지나 속도와 방향, 구성, 위치 등을 파악하기 위한 것일 뿐. 아이템 앵벌이도 나름 즐겁지만 이곳에 온 진짜 이유는 놈들을 직접 타격하기 위함이었다.

“카이!”

인벤토리를 적당히 비운 로칸은 놈들의 위치를 가늠하며 카이를 소환했다.

“전설을 타는 자!”

끼윳!

대붕으로 변한 카이의 날개짓 한 번에 공간이 접히고 세상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광풍 현신, 전신 무쌍, 무혼 각성!”

불과 1분도 되지 않아 그몰탄의 군세의 뒤를 잡은 로칸은 즉시 모든 힘을 개방했다.

속전속결.

기습의 묘를 살리기 위해서는 신속함이 생명이니까.

“붉은 유성!”

거대한 유성이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콰과과과과과광!

“오라 폭격, 전격 발출! 전신의 돌격!”

이어 벼락같은 폭격과 전차 같은 돌진이 이어졌다. 분노한 그몰탄이 아예 선두에 선 탓에 후방의 반응은 늦을 수밖에 없었다.

“으허엉!”

더구나 후방에 자리잡은 마수들은 모두 동작이 굼뜨고 생명력이 높은 타입. 로칸의 기습에 재빨리 대응할 수 있는 종은 얼마 되지 않았다.

높은 생명력으로 버텨 낸다? 다른 이들이라면 모를까 로칸의 앞에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아무리 두꺼운 가죽도 일격에 베어 냈고, 덩치가 왜소한 놈들은 단박에 허리가 동강 났다. 머리가 터져 나간 놈들은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

“사자열파참! 사자 난무!”

거기에 황금 사자의 불꽃이 사방을 휩쓸어 대니 베는 것이 아니라 불판 위의 아이스크림처럼 순식간에 녹아내릴 지경이었다.

“이노옴!”

그러기를 한참. 후방 지위를 위해 남아 있던 400레벨 마수가 뛰쳐나오고 선두에 있던 그몰탄이 불도저처럼 마수들을 짓밟으며 나타났다.

어찌나 서둘러 왔는지 애완동물과 장군들조차 그를 따르지 못할 정도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움찔거릴 만큼 강렬한 기세를 내뿜는 놈을 보며 로칸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뭐 벌써 열 내고 그래? 천천히 만나자고. 시간 역행.”

파앗.

로칸의 몸이 30분 전의 그곳으로 돌아갔다.

마수들을 무참히 도륙하며 획득한 경험치가 아깝기는 했지만 사냥터를 정해 죽치고 있으면 그 정도는 언제든 잡을 수 있다.

지금은 놈들의 발목을 잡고 원하는 대로 진형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어디 놀이를 시작해 보자고.”

다시 마을로 돌아온 로칸이 음흉한 미소를 흘리기 시작했다.

‘예상대로군.’

그리고 곧장 다시 찾아간 그몰탄의 군세.

좀 전의 습격 때문인지 그들의 진형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빙결의 넝굴 인간 프로만][Lv 400]

그동안은 감히 자신들의 뒤를 치는 존재가 있을 것이라 생각지 못해 일반 마수들로만 채워두었지만 이제는 400레벨의 강자를 배치한 것이다.

그것도 더러운 놈으로.

넝굴 인간은 종족 특성상 전투보다 상대를 붙잡아 두는 것에 더 특화되었고 더구나 속성까지 빙결이다. 상대를 얼리고 둔화시켜 시간을 끌기에 적합하다는 뜻이다.

놈이 로칸을 상대로 시간을 끌 수만 있다면 그몰탄이 단숨에 달려와 처치할 수 있다는 생각이겠지.

‘하지만 분신이 출동하면 어떨까?’

씨익.

그 얄팍한 계산을 꿰뚫어 본 로칸이 진득한 미소를 피워 올렸다.

“분신 소환.”

자신의 분신을 소환한 뒤, 후방이 아닌 우측 멀찍한 곳에 분신을 떨궈 놓았다.

“놈이다!”

“놈이 나타났다!”

“그몰탄 님께 알려라!”

덕분에 우측은 난리가 났다. 광풍 현신의 힘까지 이어받은 분신이 떨어진 위치가 적의 한가운데가 아니라 놈들의 시선이 닿는 멀찍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분신의 역할은 살육이 아니라 시선을 끄는 것뿐이니까.

그렇다 해도 로칸에게 이어받은 능력에 부족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400레벨의 강자들이 떼로 몰려오거나 그몰탄이 나타나면 단숨에 먼지로 변해 버릴 것이 자명한 것이다.

“카이, 우리도 가자!”

그사이 로칸은 유유히 하늘을 날아 다시 후방을 노렸다.

고작 넝굴 인간으로 시간을 끌겠다고? 단시간에 치고 빠지는 것은 이쪽 역시 지지 않았다.

“붉은 유성!”

콰아아앙!

카이와 한 몸이 된 로칸이 황금사자의 힘이 담긴 불꽃의 유성이 되어 넝굴 인간을 불태우며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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