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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랭커 회귀하다-282화 (282/500)

# 282

지상 (1)

띠리리리리링.

좀처럼 울리지 않는 영민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지난번에 1억, 그리고 이후에도 1억 정도를 더 부모님께 드린 이후 부모님께도 간간이 안부 인사만 오곤 했지만 지금은 그럴 타이밍도 아니다.

“어…… 이 번호는?”

휴대폰을 확인하니 부모님과는 지역 번호부터가 달랐다. 하지만 어딘지 익숙한 번호.

영민은 묘한 불안감과 함께 전화를 받았다.

“권영민입니다.”

-얀마, 복학 안 하냐?

“찬업이?”

흐릿하지만 익숙한 목소리. 그건 다름 아닌 친구 찬업의 전화였다.

한데 왜 휴대전화가 아닌 일반 전화로 건 거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찬업이 말을 받았다.

-조교님이라고 불러, 인마.

“아아, 그랬지. 갑자기 무슨 복학?”

생각해 보니 대학원에 다니면서 조교 일을 하고 있다고 했던 것도 같다. 그렇다고는 해도 갑자기 복학은 왜?

-갑자기는 무슨! 너 휴학 풀로 다 땡겨 썼어. 이제 복학해야 돼. 아니면 제적이라고!

“아…….”

‘귀찮게.’라는 말을 삼키는 영민의 이마에 주름이 생겨났다.

어차피 학교에 제대로 다닐 생각은 없지만 부모님의 만류로 자퇴는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대학교 졸업장은 따야 한다나?

이미 더 로드로 막대한 돈을 벌고 있으니 학교에 다니는 것쯤은 아무 의미가 없지만 그 때문에 계속 휴학을 하고 있던 것인데, 휴학 횟수를 모두 다 써 버린 모양이었다.

“벌써 그렇게 됐군.”

‘그냥 자퇴해 버릴까.’

부모님이 아신다면 나중에 한바탕 들볶이겠지만 의미도 없는 학교에 억지로 다니느니 그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짧은 고민이 있는 사이, 찬업이 이미 읽고 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일단 복학부터 해. 그리고 적당히 취업계 쓰고 안 나오면 되잖아? 정 어려우면 내가 아는 분한테 한 장 써 달라고 할 테니까 그냥 나와. 취업계 안 통하는 교수 몇 명 거만 들으면 되지.

“흠, 알았다.”

생각해 보니 그것도 방법이다. 어차피 대학이야 돈 벌려고, 취업하려고 들어가는 곳이 된 지 오래이지 않은가?

대학들에서도 취업률 높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으니 적당히 취업했다고 거짓말을 하면 학점은 바닥에 깔겠지만 졸업은 인정해 줄 터였다.

찬업이 아는 분께 취업계를 받아 주겠다고도 했지만, 정 안 되면 대충 유령 회사 같은 거라도 하나 차리지 뭐.

사실 그조차도 굉장히 귀찮았지만 나중에 부모님께 시달릴 걸 생각하면 오히려 이쪽이 더 시간을 덜 들일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사업자 같은 거라도 하나 내면 되겠지.’

물론 그래도 문제는 있다. 모든 교수가 취업계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 교수들만 피해서 수업을 짜면, 학교에 가지 않아도 졸업장을 딸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 간다, 가.”

영민은 어쩔 수 없이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겼다. 일단 학교로, 찬업이가 있는 과 사무실로 향했다.

“왔냐?”

“오, 이제 좀 조교 쌤 티가 나는데?”

업무가 고됐는지 찬업의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한참 내려와 있었다.

조교가 교수들의 몸 수발, 논문 수발 다 든다더니 힘들긴 한 모양이다.

“그거 욕이지? 아무튼, 서류 준비해 놨으니까 이대로만 해. 처리되면 연락 줄 테니까 수강 신청도 하고. 취업계는 나중에 준비하고, 일단 취업계 먹히는 교수들 수업 추려 놨으니까 이 중에 골라. 근데 전필 수업 중에 김창희 교수 거는 안 통하는 거 알지? 그거 하나만 들으면 나머지는 큰 문제 없을 거야. 교수들끼리 공유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그 양반 교수들 중에서도 아싸잖아.”

“그래. 고맙다. 나중에 술 한잔 살게.”

시간도 별로 없었는데 찬업은 친절하게도 영민에게 필요한 서류며 내용들을 모두 정리해 두었다.

덕분에 일이 편해졌다. 전공 수업이야 자리 하나 빼 주는 건 어렵지 않아서 몇몇 수업은 찬업이 직접 교수에게 말해 오버 부킹 될 수 있도록 해 준다고 했으니까.

“나중에는 또 언제, 인마. 그냥 그러지 말고 내일 개강 모임이라니까 나와.”

“개강 모임? 그건 좀…….”

이미 개강 모임에 안 좋은 기억이 있는 영민이었다.

이 나이를 먹고 새내기들이 주를 이룰 개강 모임에 참석해서 꼰대짓하는 것도 싫고.

“나도 시간 없어서 그래. 너 또 게임 한다고 한참 잠수 탈 거잖아. 어차피 교수님들 따라서 나도 참석해야 하니까 그러지 말고 잠깐만 자리 뭉개고 있어. 1차 때 방문해서 밥만 먹고 우리끼리 따로 한잔하자. 아니면 잠깐 기다렸다가 나랑 같이 들어가고.”

“쩝, 알겠다.”

받은 게 있으니 영민도 마냥 거절할 수 없었다. 내키지는 않지만 이제 자기를 아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마냥 나쁜 일도 아니었다.

‘그때 일을 기억하는 애들도 없겠지.’

이전에 블러드 체이서를 박살 냈을 때 소문이 조금 퍼지기는 했었지만 찬업의 말을 들어 보니 그조차도 적당히 무마가 되었다고 했다.

수희의 남친이라던 놈은 경찰청장의 아들을 폭행한 뒤 빨간 줄이 그어져 학교까지 자퇴한 상황이라던가?

설령 학교에 다니거나 멀쩡하다 해도 찬업이 미리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영민이 다시 학교에 다닌다거나 개강 모임에 참석한다는 사실은 알지 못할 테니 상관없었고.

‘와도 별것 없지만.’

만약 어떻게 알고 온다 해도 문제는 없다.

대한민국의 치안은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인데다, 주먹다짐을 한다 해도 놈이 영민을 이길 수 있을까?

로칸만큼의 힘과 스피드는 없지만 게임에서 갈고닦은 감각이라면 현실에서도 주먹질 좀 하는 건 일도 아니다.

성인이니 자제하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귀찮은 건 피해야지.’

조사를 받거나 하면 그만큼 게임을 할 시간이 부족해진다는 것이 귀찮을 따름이었다.

그렇게 서류 절차를 마치고 돌아가자 곧 찬업에게 연락이 왔다. 복학 처리가 되었으니 수강 신청부터 하라고.

찬업이 적어준 교수들을 검색해 대충 수강 신청을 마친 로칸은 다시 더 로드에 접속했다. 밀린 정보 확인과 검은용군단의 전쟁 준비에 대한 정보 수집을 지시, 군사력 증강에 투자하다보니 하루가 훌쩍 지났다.

“아, 귀찮아.”

111호 강의실.

그곳에 모여 새로운 학생회의 인사를 듣고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이 이루어지는 동안 영민은 가장 뒤 열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아는 얼굴은 없었다.

“아, 술 마시면 오늘은 겜 못 하겠네.”

“아니면 술 깨고 새벽에 고?”

“근데 나 퀘스트 중인데. 좀 도와줄래?”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니 역시 주된 잡담의 화두는 더 로드였다.

몇몇 다른 게임 이야기도 나왔지만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대부분은 더 로드에서 무슨 퀘스트를 한다느니, 레벨이 몇이라느니, 어떤 아이템이나 옵션 성능이 더 좋다느니 하고 있었다.

학생회와 교수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맨 앞쪽에 뭣 모르고 앉은 신입생들이 전부.

그러던 중, 로칸도 관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가 나왔다.

“근데 그거 알아? 이번 신입생 중에 마스터 레벨 찍은 애도 있다던데?”

“와, 진짜? 대박.”

“그 정도면 대체 게임을 얼마나 한 거지? 난 아직도 익스퍼트 초입을 못 벗어나고 있는데.”

“그러고 보니 선배 중에도 고수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 선배도 마스터라고 했던 거 같은데.”

“아, 그랬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신입생 중 무려 마스터 레벨을 달성한 애가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고3이었을 텐데 그 정도면 아예 수험 생활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긴, 우리 학과 커트라인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

그 노력으로 공부를 했으면 훨씬 더 좋은 학과를 갔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곧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이 우스워졌다. 당장 학교생활 의미 없다고 자퇴까지 하려 했던 그가 아닌가?

대신 그게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게임 잘하게 생긴 놈은 없는데……. 여기 안 왔나?’

하긴, 자기라도 의미 없는 개강 모임에 오느니 몬스터 한 마리를 더 잡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진행에 따랐다.

잠시 이야기와 소개를 한 뒤에는 바로 자리 이동. 참여자들에게 만 원씩을 걷은 뒤, 학교 앞 저렴한 고깃집으로 이동했다.

‘재미없군.’

당연히 재학생, 복학생들의 자리는 따로 마련되었다.

복학생들로 인해 분위기가 다운되거나 할 것을 염려해 따로 테이블을 잡은 것도 있지만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복학생들은 알아서 구석으로 이동했다.

그나마 막 제대해서 복학한 남자 애들이 대부분이라 빠릿빠릿하게 세팅하고 고기를 구워 대는 덕분에 편하기는 했지만, 힐끔힐끔 새내기 여자애들을 훔쳐보는 눈빛에 영민이 다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찬업이 이놈은 언제 오는 거야?’

바로 올 거라기에 처음부터 참석했더니 생각보다 교수들 수발드는 게 길어지는 모양이었다.

10분, 20분이 지나도 녀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그사이 친해진 새내기와 재학생들은 서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흥이 오르고 있었다.

“와, 진짜? 진짜 마스터 레벨이야? 난 아직 익스퍼트 퀘스트도 못 깨고 있는데! 나 좀 도와주면 안 돼?”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역시 게임 잘하는 놈이다.

예전에는 남자들 중에서나 인기 있는 타입이겠지만 더 로드가 남녀노소 불문하고 인기를 끈 탓에 모든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뭐야, 저거?’

갑작스러운 소란에 영민이 힐끗 쳐다보자 으스대는 신입생 뺀질이의 꼴이 가관이었다.

아까는 뒤에 앉아 있느라 잘 몰랐는데 소가 핥은 것 같은 포마드에 로고를 감추지 않는 명품들로 왕창 휘감고 있는 놈이 신입생, 재학생들 사이에서 거들먹거리고 있는 것이다.

“익스퍼트 퀘스트 정도면 여성 유저들이 어려울 수 있지. 진영이 다르면 도와주기는 어렵겠지만 뭐, 팁 정도는 줄 수 있어.”

그 모습이 퍽이나 우스웠다.

‘마스터라고?’

분명 유저들 중에서는 충분히 상위권이고,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긴 했다.

벌어들이는 골드를 현금화시킨다면 제법 많은 돈을 만질 수 있기도 할 테고.

하지만 자신이 게임의 신이라도 되는 양 거들먹거리는 게 꼴 보기 싫었다.

“아, 선배. 그것도 못 잡는다고요? 그거 공략만 알면 되게 쉬운데. 피지컬이 너무 딸리는 거 아니에요?”

“응? 비싸다고? 하하! 그 정도야 껌값이지.”

“정은아, 그냥 종족 옮기라니까? 내가 도와주면 그 레벨까지는 금방이야.”

“거참 시끄럽네. 누가 들으면 더 로드에 마스터가 너 하나뿐인 줄 알겠다. 네가 뭐 로칸이라도 되냐?”

결국, 참지 못하고 재학생 중 하나가 나섰다.

다들 슬그머니 눈치를 보는 것이, 무서운 선배 역할을 하는 녀석인가 보다.

그래봐야 영민보다는 어렸지만.

“오, 마스터끼리 붙는 건가?”

“이따 캡슐방 가서 한판 붙는 거 아니야? 따라가서 관전 해야지.”

가만 들어 보니 재학생 중 마스터가 있다는 게 그 녀석인 듯싶었다.

미묘한 신경전.

잠시 침묵이 흐르고, 다시 입을 연 것은 뜻밖에도 신입생 쪽이었다.

“아, 선배도 마스터라고 했죠? 그 로칸 빠라는? 인간 광전사라고 했던가?”

꿈틀.

살짝 비아냥거리는 놈의 말에 재학생의 인상이 구겨졌다. 선배에게 할 만한 말투도 아니었으니까.

“아, 왜. 뭐 못 할 말 했냐. 칭찬이야, 칭찬. 버서크빨이긴 해도 인간 종족으로 마스터 레벨 찍었으면 대단한 거지. 안 그래요, 선배?”

히죽거리는 낯짝이 재수 없었다.

여차하면 주먹이라도 날아갈 분위기였지만 놈은 별것 아니라는 듯, 만류하는 동기들을 뿌리쳤다.

돈도 제법 만지고 있는 데다, 어차피 이 과가 전공을 살리는 곳은 아니니 선배라고 무조건 숙이고 들어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예전에는 선배들이 ‘내가 널 이끌어 주지는 못해도 네 앞길 막을 수는 있다’며 농담을 던지곤 했지만 이제는 그것도 힘들었으니까.

그것을 아는지 놈의 언행은 더욱 방자해지기만 했다.

“넌 종족이 뭔데?”

“트롤이죠. 이렇게 쉬운 길을 두고 다들 왜 그 가시밭길을 가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마조히스트라도 되나?”

“그래. 그리고 로칸에게 쥐어 터졌지.”

하지만 재학생 쪽도 지지 않고 받았다.

결국 2차 종족 대전의 최종 승자는 인간, 아니 로칸이지 않았나?

종족빨이니 하는 이야기가 아직까지 돌고 있어도 마냥 인간을 무시할 수 없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입생은 생각보다 당돌했다.

“하! 언제 적 로칸입니까? 요즘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만. 그리고 로칸도 캬루스한테 탈탈 털렸던 거 몰라요? 운 좋게 득템해서 뭔가를 한 모양인데, 황금사자 진영이 그 덕에 우쭐거리는 것도 얼마 안 남았습니다. 캬루스가 ‘그걸’ 얻었으니 로칸이고 나발이고 이제……. 크흠, 아무튼 선배님도 조심하세요. 전쟁 지역은 근처에도 가지 마시고요. 팬티 한 장만 남기도 아이템 다 떨구게 될 테니까. 네?”

“이 새끼가……!”

“왜요. 뭐 틀린 말 했습니까? 자신 있으면 한판 붙어 보시든가요. 저 신궁 길드 소속인데 감당되시겠어요? 아이디가 뭐라고 하셨죠?”

“야, 말려!”

둘의 말다툼은 정말 끝까지 갔다.

신입생은 어차피 과에 관심도 없다면서 뻐기고 나왔고, 당장이라도 한 대 후려치려는 재학생을 말리느라 술자리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캬루스란 말이지?’

그 난장판이 된 술자리에서 로칸은 처음으로 흥미로운 눈빛을 띄었다. 싸움 구경이 재미있어서? 아니다. 신궁 길드 소속이라는 신입생의 말 중에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캬루스에 대한 것.

‘그것’이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다른 이들은 몰라도 로칸은 그 의미를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트롤의 신기.

캬루스를 그랜드 마스터의 수준까지 끌어올려 줄 수 있는 신물, 그것이 아니겠나?

덕분에 요즘 들어 수상하다는 검은용군단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생긴 거겠지.

로칸이든 누구든 해치우고 다시 지상의 지배권을 가져올 수 있다는 자신이.

“뭐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회장아, 무슨 일이냐?”

그때, 교수와 찬업이 고깃집으로 들어왔다.

교수 앞에서까지 난동을 부릴 수는 없었는지 모른 체하는 신입생과 재학생을 진정시키고 다시 술자리를 이어 갔다.

하지만 영민의 마음은 이미 딴 곳에 가 있었다.

잠시 자금만 회수해 가려고 했던 지상에서 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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