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1
순수 혈통 (2)
“오?”
미타엘을 처치한 로칸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놈이 내놓은 경험치도 제법 넉넉했지만 그보다 놈이 드롭한 아이템이 꽤 그럴싸한 덕분이다.
[천신 사제의 거울][유니크]
천신을 모시는 사제들이 가지고 있는 거울.
삿된 것을 비추어 그 힘의 일부를 거울 속에 가둘 수 있다.
아무래도 미타엘이란 놈이 생긴 것답지 않게 사제의 지위를 가지고 있던 모양이었다.
“잘 처리한 게 다행인 건가?”
그제야 로칸은 생각보다 상황이 좋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천신을 모시는 사제를 죽였으니 다른 천족들이 안다면 발작을 하고 나설 게 아닌가?
어쩌면 놈처럼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성질을 내며 달려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끝난 일이니 문제없다.
애초의 계획대로 디그독을 소환해 놈의 시체를 완전 소멸하기 전까지 묻어 두고 다시 방향을 잡았다.
“당장은 못 돌아가겠군.”
하지만 다시 천계의 입구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난리를 피우고 도시를 나섰는데 혼자 금방 돌아와 버린다면 누구라도 의심을 하겠지.
어쩌면 곧 수색대나 다른 천족이 이쪽으로 올지도 모른다.
때문에 로칸은 다른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이곳에 오기 전, 다음 행선지를 정하기 위해 드록쉬에게 미리 지리 정보를 얻어 둔 덕이다.
“부려 먹기 좋았는데, 아쉽군.”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드록쉬와 헤어질 필요가 있었다. 미타엘을 도발해 끌고 나오느라 드록쉬까지 챙기지는 못했으니까.
일단 ‘이곳에서 기다려’라는 지시는 내려놓았지만 만약 계약 기간이 지날 경우 드록쉬는 다른 곳으로 가 버릴 확률이 높았으니 그 안에 다른 도시에 들러 알리바이를 충분히 만들지 못한다면 드록쉬와는 이대로 작별이었다.
대충 필요한 정보는 얻었으니 그와의 작별이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었지만.
“서쪽이랬지?”
로칸이 유니콘에 올라탄 채로 서쪽을 바라보았다.
저곳에 또 다른 신수가 있다.
중간에 몬스터들도 제법 있다지만 광풍 현신의 쿨 타임 관리만 잘한다면 그건 별로 문제되지 않을 터였다.
“가자.”
타각 타각 타각 타각.
로칸의 지시에 따라 유니콘이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천골마의 속도는 우습고, 적토마마저 따르기 어려울 정도.
주변 풍경이 휙휙 지나가고 세찬 바람이 뺨을 때리는 것을 느끼며 로칸이 다음 사냥감을 향해 나아갔다.
* * *
천계를 가로지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아니, 시간이 들 뿐 무척이나 간단했다.
천계에 자리 잡은 몬스터들 중 상당수가 신성 계열의 속성을 가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신수인 유니콘의 등장에 꼬리를 말거나 호의적으로 행동했다. 천족은 아니지만 이적한 천족 이상의 호감도가 몬스터들에게 적용된 것이다.
덕분에 무시할 놈들은 무시하고, 잡기 편한 놈들은 골라서 잡으며 이동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게 달리기는 닷새 남짓.
로칸은 드디어 다음 신수가 있는 장소에 도달할 수 있었다.
“홀리울프라고 했지?”
다음 사냥감은 늑대 종이었다.
다만 신성 계열의 힘을 품고 있는 신성한 늑대.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늑대인 데다 신성 계열의 힘이 작용하여 버프까지 주는 것이 조금 걸렸지만 다른 종에 비해서는 비교적 사냥하기 쉬운 놈이었다.
그중 신수는 우두머리 한 놈뿐이니까.
“도망치지 않는다는 것도 꿀이고.”
더구나 놈들은 도망이라는 것을 모른다.
신성한 기운을 품은 존재에게는 호전적이지 않다는 특성 또한 난이도를 크게 하락시키는 요인 중 하나였다.
선공을 하지 않으니 스윽 다가가서 대가리를 뽀개 놓으면 그만이지 않은가?
드록쉬의 설명을 떠올린 로칸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놈들이 서식하는 홀리 마운틴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호?”
홀리울프 이외에도 400레벨 이상의 몬스터가 꽤나 된다는 홀리 마운틴이지만 생각보다 몬스터의 습격은 많지 않았다.
아무리 유니콘이 함께라고는 하지만 드물지 않게 선공형 몬스터들이 보이는 것을 볼 때 습격의 빈도는 극히 드물었다.
‘쫄았나?’
아니, 그럴 리가. 아무리 로칸이 은근한 광기를 뿜어내고 있다지만 처음 보는 존재가 그러면 오히려 덤벼드는 것이 정상이다.
그럼에도 습격이 거의 없다는 것은, 누군가 이 산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혹시 그게 홀리울프인가?’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보통 신수들은 강한 영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또 묘한 소유욕이 발동했다.
‘한 번 더 갈아타 버려? 늑대 쪽이 아무래도 전투력에서는 우위일 것 같은데.’
오크들도 늑대를 탈것으로 쓰지 않던가.
더구나 늑대를 진화시켜 펜닐로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로칸으로서는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둘 중 아무 것이나 잡아도 신수 사냥의 스코어는 채우지 않겠나.
더구나 늑대라면 특유의 과감하고 변칙적인 움직임을 지녔을 터였다.
히잉.
그런 로칸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유니콘이 살짝 기분 나쁜 듯 투레질을 했다.
‘일단은 보고 결정하자. 테이밍이 안 될 수도 있고.’
잠시 고민하던 로칸은 잠시 생각을 접었다.
어차피 테이밍을 하려면 유니콘 때와 달리 놈을 반쯤 죽여 놔야 할 테니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아우우우~!”
그렇게 홀리 마운틴을 계속해서 오르자 멀리서 하울링 소리가 들려왔다.
동료들을 부르는 건지, 경고를 하는 건지 알 도리는 없지만 그저 놈들과 가까워졌다는 사실에 일단 로칸은 의미를 두었다.
좀 더 속도를 높여 놈들이 있는 방향으로 접근했다.
“크릉, 멈춰라, 인간.”
“오?”
그리고 한참을 더 들어가자, 아예 놈들이 로칸을 마중 나왔다.
“신성한 산에는 어쩐 일로 들어왔나.”
[홀리울프 우두머리 세린트][Lv 405]
로칸과 유니콘을 포위하듯 둘러싼 홀리울프 무리들. 그 너머 바위 위에 올라 그들을 내려다보는 존재는 로칸이 찾던 신수였다.
‘흠, 나 때문인가?’
드록쉬가 이야기했던 것과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생각해 보면 이유는 확실했다. 바로 자신.
천족도 아닌 이가 신수 유니콘을 타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나.
유니콘의 존재 때문에 섣불리 선공을 가하지는 않지만 경계하는 그 모습에 로칸도 전략을 바꾸었다.
“신성한 산? 이곳에 뭐가 있나?”
“이곳은 천신의 힘이 깃든 곳. 자세한 것은 그대가 알 필요 없다.”
정보를 좀 캐 볼까 했는데 그건 무리인 모양이다.
로칸은 아쉬운 표정을 감추고 다시 수작을 부렸다.
“그래, 그렇겠지. 뭐, 상관은 없어. 난 너를 만나러 왔으니까.”
“나를?”
“그래. 홀리울프들의 수장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어서 말이지.”
“뭔가?”
“흠, 그게…… 듣는 귀가 적었으며 좋겠는데……?”
“우리는 한 가족이다. 함께 있는 자리에서 하지 못할 말이라면 나도 들을 필요가 없지.”
‘쳇.’
귓속말이라도 하는 척 접근하려고 했는데 무리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대화는 종료.
이제 몸으로 이야기할 차례다.
“엇, 저기!”
휘익
로칸의 발 연기에 홀리울프들의 고개가 바로 돌아갔다.
그들이 언제 이런 꼼수에 당해 봤을까.
놈들이 방심한 사이, 로칸은 유니콘을 전속 돌진시켰다.
“광풍 현신, 전신 무쌍, 전설을 타는 자, 폭주 전차, 투지의 발걸음, 급가속, 광기의 시간!”
말하기도 숨찰 정도의 스킬이 일시에 쏟아졌다.
유니콘과 로칸의 몸이 부풀어 오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달려가 세린트가 있던 바위와 부딪쳤다.
콰앙!
폭이 족히 2미터는 됨 직한 바위가 일격에 박살이 났다. 파편들이 비산하며 시야를 가리고 그 틈을 헤치고 로칸의 몸이 날아올랐다.
“살육의 일격!”
후웅!
거대한 배틀 액스가 공간을 찢었다.
그러나 세린트는 이미 그 범위 안에 없었다.
“쳇, 말살의 사슬!”
그 뒤를 사슬 난무가 뒤쫓았다. 추적 기능이라도 달린 듯, 뱀처럼 움직이는 사슬에는 질풍 같은 힘과 속도가 깃들었지만 세린트는 한 수 위였다.
“비열한 놈이군! 점멸!”
번쩍!
한순간 시야를 뺏는 빛 무리와 함께 놈의 몸이 사라졌다. 그리고 사슬을 내뻗는 로칸의 앞에서 다시 나타났다.
“캬앙!”
무엇이든 씹어 삼킬 것 같은 거대한 입이 콱 로칸의 팔뚝을 깨물었다.
“이 새끼가!”
그러나 로칸도 순순히 물려 주지는 않았다.
뻗어 낸 사슬을 급히 회수하는 대신, 배틀 액스를 세로로 세워 놈의 입에 물려 주었다.
부르르르.
놈의 강력한 턱힘에 배틀 액스가 몸을 떨었지만 부러지지는 않았다. 그 역시 상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무기였으니까.
촤라라락.
그리고 그사이, 사슬이 회수되어 로칸의 왼손에 감겼다.
“파멸의 일격!”
퍼억!
“깨갱!”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세린트의 몸이 바닥에 처박혔다.
단단한 뼈와 두꺼운 가죽이 놈을 보호했지만, 로칸이 뻗은 주먹은 방어력을 관통하는 힘이 있었다.
로칸은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배틀 액스를 주워 드는 대신 놈에게 달려들었다.
일단 가볍게 마사지부터 해 주었다.
“폭격!”
콰과과광!
열 개의 손도끼가 같은 자리에 꽂히며 폭발했다. 그것도 로칸이 주먹질을 한 턱에 연달아 꽂혔다.
고통스러운지 녀석이 몸을 비틀었지만 로칸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이거나 먹어라!”
냅다 달려가 연약해진 놈의 턱을 발로 걷어차 버렸다.
일명 ‘사커킥’!
골이 흔들리는 고통에 놈이 캐액 비명을 뱉어 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튕겨나간 몸 위로 내려앉았다.
촤라락.
그와 거의 동시에 회수되는 사슬.
그 끝에는 튕겨 나갔던 배틀 액스가 딸려 왔다.
“살육의 일격!”
번쩍.
그러나 마냥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놈은 다시 한 번 점멸을 사용하며 몸을 피했다.
“제길, 탈출기를 막는 스킬이라도 만들든지 해야지…….”
허탕을 친 로칸이 인상을 찡그리며 돌아서자 그의 눈앞에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세린트와 싸우는 동안 다른 홀리울프들이 그를 공격하지 못한 이유가 그곳에 있었다.
푸힝!
신수 유니콘.
무려 400레벨이나 되는 존재인데다 전설을 타는 자의 효과까지 받은 녀석이 홀리울프들 사이를 휘젓고 있는 것이다.
유니콘에게 단독 사냥을 시킨 건 처음인데 그 전투력이 생각보다 강력했다.
‘이럼 얘기가 좀 달라지는데……. 뭐, 나중에 생각하자.’
짧은 생각을 마친 로칸은 다시 세린트에게 집중했다.
턱을 연거푸 얻어맞은 덕분에 입이 벌어지고 침을 질질 흘리는 놈을 보며 마지막 힘을 개방했다.
“무혼 각성.”
무혼 각성의 지속 시간은 광풍 현신보다 조금 짧았다. 그렇기에 아껴 두기도 했지만 이것 없이 자신의 힘이 그랜드 마스터급에게 얼마나 통하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이미 충분히 통하는 것을 확인했고, 기습이긴 했지만 놈의 강력한 무기 중 하나인 입을 반쯤 봉인하긴 했지만 확실하게 끝장을 내기 위해서는 이 힘이 필요했다.
놈에게는 아직 발톱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남아 있으니까.
“아우우우!”
“아우~!”
세린트가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자 광휘가 퍼져 나갔다.
부하 격인 다른 홀리울프들에게 그 힘이 깃드는가 싶더니 놈들도 따라 하울링을 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놈들의 덩치가 더욱 부풀어 올랐다.
“쳇.”
홀리울프의 자랑인 집단 강화 효과.
서로 시너지를 내며 서로의 스킬을 중첩한 놈들은 이전보다 더 빠르고 강력한 몸놀림으로 로칸과 유니콘에게 덤벼들었다.
“늑대? 이쪽은 사자다, 이 새끼야!”
하지만 로칸도 밀리지 않았다.
그가 일깨운 것은 다름 아닌 황금사자의 힘이 아니던가?
금빛 광휘와 홍염, 그리고 붉은 광기가 뒤섞인 그 힘이 세차게 휘두르는 세린트의 앞발과 강하게 부딪혔다.
“사자난무, 광살!”
버프가 중첩된 자신의 힘을 과신한 것일까? 세린트의 앞발이 튕겨 나가며 몸이 훤히 열렸다.
예상대로의 전개를 로칸이 놓칠 리 없다.
사자왕의 비기와 자신의 조합 스킬을 섞어 필살의 난무를 펼쳤다.
“끼앙!”
허공에서 십여 번의 도끼질을 얻어맞은 세린트의 가슴이 말랑말랑해졌다. 가슴뼈가 작살이 난 것이다.
그런 놈의 품으로 로칸이 멈추지 않고 달려들었다.
“투지의 발걸음, 숄더 차지!”
퍼억!
으스러진 가슴에 로칸의 거체가 틀어박혔다.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세린트.
그 모습을 본 홀리울프들이 유니콘을 넘어서려 했지만 녀석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힝!
무리해서 유니콘을 지나려던 놈들에게 유니콘의 우람한 뿔이 펜싱 칼처럼 그어졌다.
단번에 가죽이 베어지고 내장이 쏟아졌다.
그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뛰어드는 놈들이 있었지만 유니콘은 더욱 빠른 속도로 놈들을 막아서며 베고, 꿰뚫었다.
애초에 400레벨인 녀석이 아닌가? 수준의 차이가 분명했다.
“쿨럭, 쿨럭.”
사람처럼 피를 울컥거리며 토해 내는 세린트.
그런 놈을 보며 굴종의 구슬을 만지작거리던 로칸은 이내 놈을 테이밍하려던 것을 포기했다.
어차피 전투력이야 자신만으로도 충분하다.
유니콘이 저 정도 무위를 보인다면 이동속도나 신성의 가치를 생각할 때 유니콘 쪽을 유지하는 것이 나아 보인 것이다.
퍼억!
결정을 내린 로칸의 배틀 액스가 놈의 가슴을 갈랐다.
심장을 부수고 길게 내려가 내장을 잘게 끊어 놓았다.
두 번째 신수 사냥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