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6
나가 사냥 (3)
“맙소사, 정말로 해냈군!”
“이봐, 이 녀석이 나가 부족을 열 개도 넘게 멸망시켰어! 그 지독한 것들을 한 줌 독물로 만들어 버렸다고!”
로칸이 천적 사냥 퀘스트를 완료하자 그야말로 하늘섬은 난리가 났다.
독을 쏘아 내는 특성이나 은신 능력, 감지 능력, 그리고 하늘에 있는 상대조차 끌어내리는 속박 주술까지.
까다롭기 짝이 없어 조인족 전사들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고 가끔 그 수가 너무 불지 않도록 정예들을 편성하여 마을도 아닌 필드를 돌아다니는 놈들을 정리하는 것이 고작이었거늘, 이 인간이 불과 며칠 만에 십수 개나 되는 마을을 쓸어버린 것이다.
그 사실을 증명할 방법은 전리품이 전부이긴 했지만 그 수가 충분했기에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이만한 숫자를 모으려면 최소 열댓 개쯤의 마을을 멸망시켜야 했고, 만약 큰 마을을 쓸어버린 것이라면 그것대로 의미가 컸다.
조인족들로서는 환호를 지르지 않을 수 없는 결과인 것이다.
덕분에 로칸의 평판과 호감도는 Max를 찍을 만큼 상승했고, 조인족의 친구 타이틀에 추가로 상점 할인율까지 붙었다.
“이 세 가지 모두 구입하겠습니다.”
하늘섬의 이면으로 사냥을 나간 동안 미용 포션을 판매하지 않아 불만인 이들도 분명히 존재했지만 로칸이 돌아오자마자 그 기간까지 합친 만큼의 수량을 풀었기에 불만은 눈 녹듯 사라졌다.
어차피 로칸도 더 많은 코인을 비축해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렇게 하늘섬의 코인을 몽땅 긁어모은 로칸은 상점에서 점찍어 둔 물품들을 구입했다.
‘이제, 천상이다.’
미용 포션 때문인지 그를 붙잡는 조인족들을 뿌리치고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조심하게. 항로가 있다 해도 인간에게는 날개가 익숙지 않을 테니.”
“감사합니다.”
로칸이 구입한 세 가지 물품 중 하나는 천상으로 향하는 항로가 그려진 지도였다.
천상 대포를 사용한 후 이곳까지는 직진으로만 이동했지만 이 이후부터는 마냥 직진으로 향해서는 위험했다.
미스랄즈오름도 위험하지만 블랙홀, 또는 워프홀이라 불리는 함정 같은 지형도 있기 때문이다.
한번 빠져들면 어디로 다시 튀어나올지 몰라 방향조차 잡기 어려우며, 자칫 방향이 거꾸로 되어 천상인 줄 알고 접근했더니 지상으로 되돌아가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물론 아주 아주 운이 좋다면 천상에 근접한 위치로 워프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건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날개 모드.”
때문에 지도를 충분히 숙지하고 난 뒤, 로칸이 날아올랐다.
하늘섬의 ‘경계’는 지상과 달리 반발이 거의 없어서 딱히 신성의 보호막을 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저쪽이야.”
게다가 친히 배웅을 나온 하늘섬의 경비병 타코민이 로칸이 가야 할 방향을 짚어 주었다.
끄덕.
로칸이 가볍게 묵례로 답하고 속도를 냈다.
블랙홀이 아니더라도 아직 위험은 남아 있었기에 전속력을 내는 대신 충분한 여유를 가진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다시 사흘을 이동했다.
‘저거로군.’
꼬마전구를 박아 놓은 듯한 작은 불빛만이 이어지는 가운데, 로칸은 그것을 별자리처럼 헤아리며 이동을 계속했다.
그리고 발견했다. 자신이 우회하지 않았다면 지나쳤을 방향에 빛마저 집어삼키는 검은 구덩이가 소용돌이치는 것을.
빨려 들어갔다간 어찌 될지 모를 것 같은 섬뜩한 느낌과 함께 약간의 흡인력이 느껴졌다.
이만한 거리에서 흡인력이 느껴질 정도라면, 가까이 갔다간 피하거나 도망칠 수도 없을 것이다.
“후우, 시작이군.”
그렇게 블랙홀 지역을 통과하자 이번에는 소행성 지역에 들어섰다.
평소에는 부유하듯 떠 있는 돌덩이 들이지만 누군가 접근하면 소나기처럼 몰아친다는 특수 지형.
이곳 역시 피해 가면 좋겠지만 그건 무리였다. 넓게 퍼져 있는 소행성들이 살아 있는 듯 몰아치는 것은 똑같으니까.
그러니 차라리 패턴을 아는 쪽을 공략하는 것이 백배 나았다.
‘좌우우좌우좌우좌좌좌좌우좌우…….’
그렇다. 로칸이 믿는 것은 패턴이었다.
하늘섬의 조인족들이 피하기 쉽다며 알려 준 패턴은 외우는 것만으로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지만 생존을 위해, 천상에 닿기 위해 로칸은 필사적으로 외웠다.
조인족들이야 꼭 이 패턴을 따르지 않더라도 출중한 비행 실력으로 모조리 피해 낼 수 있다고 하지만 로칸은 아니니까.
방향뿐 아니라 떨어지는 초 단위까지 계산하여 움직이자 우박처럼 떨어지는 소행성들이 아슬아슬하게 비껴 나갔다.
“후우, 뒈지겠군.”
그러나 점점 타이밍이 빨라지는 탓에 집중력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외운 것을 떠올리는 시간보다 소행성이 들이닥치는 시간이 더 빠르니 이제는 거의 본능적으로 회피하고 있었다.
“크윽!”
콰앙!
그때, 사람 크기만 한 소행성의 파편 하나가 날아와 부딪혔다. 완벽 회피가 무한히 이어질 수는 없었다.
일단 한번 부딪히며 튕겨나가자 회피는 거의 불가능해졌다.
“광풍 현신!”
소행성 지대의 끝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 상황. 로칸은 이를 악물며 광풍 현신을 발동시켰다.
어차피 이후의 전투는 없으니 어떻게든 몸으로 견뎌 내려는 것이다.
“분신 소환!”
아예 분신까지 소환을 했다. 다른 소환 계열 스킬은 먹히지 않지만 분신만큼은 사용 가능했으니까.
여럿이서 통과하려고 할 경우 패턴이 더욱 복잡해지고 난해해진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지금 그럴 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일단 몸으로 견디고 피해 내야 할 소행성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 우선이었다.
“폭격! 폭주 전차! 투신의 발걸음! 급가속! 광기의 시간!”
로칸은 그야말로 필사적이었다.
작은 소행성 하나와 부딪치면서 깎여 나간 생명력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작은 것도 이럴진데 거대한 소행성을 정면으로 받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리타이어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수 있었다.
폭격으로 최대한 소행성들을 비껴 내고, 돌진기로 거리를 좁혔으며, 이동기를 이용해 긴급 회피를 했다.
그렇게 도착한 소행성의 끝. 거기에는 최종 보스 같은 모습으로 일렬로 멈춰서 기다리는 소행성들이 있었다.
“미친…….”
쿠와아아아아.
그것들이 빠르게 돌진했다. 저 중 하나만 맞아도 소행성 지대 중반까지는 날아가 버릴 듯싶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크기 차이가 있어서인지 시간차를 두고 날아온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쉽게 피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회피 기동!”
최대한 빠르게 몸을 날리던 로칸은 아찔함을 느꼈다.
이건 못 피한다. 피할 수 없다.
그것을 떠올리는 순간, 타이틀에 내장된 스킬을 발동시켰다.
회피 기동.
조인족의 친구로 인정받으며 부여받은 특수 스킬이 발동하자 로칸의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회피 기동이 발동합니다.]
[10초에 한해 투사체 계열로부터 100% 회피합니다.]
“……!”
성공이었다.
10초면 줄을 지어 날아오는 소행성들을 피해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소행성 지대를 벗어날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로칸이 소행성 지대의 끝에 시선과 의지를 두자 몸이 절로 움직여 그것들을 피해 냈다. 목적지에 도달했다.
“와, 이게 되네.”
이게 되나 싶을 정도의,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비행술이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로칸의 시야를 넓혔다.
다시 해 보라면 할 수 없을 테지만, 앞으로 비행 실력이 더 늘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젠장.”
그러나 기쁨도 잠시다. 소행성 지대를 통과하자마자 붉은 눈동자가 로칸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미스랄즈오름.
놈은 하나가 아니었다. 소행성 지대를 지나며 일으킨 소음 때문에 떠돌고 있던 미스랄즈오름들이 이쪽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거의 다 왔어.’
하지만 소행성 지대를 넘으면 천상까지는 금방이다.
미스랄즈오름 떼를 제외하면 딱히 그를 막아설 만한 존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전속 질주.
로칸은 돌격, 이동 스킬의 쿨 타임이 도는 대로 속도를 높이며 전속력으로 천상을 향해 돌진했다.
‘제발, 제발…….’
그나마 다행인 것은 놈들이 로칸을 발견하고도 즉시 공격을 해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간을 보는 것인지, 간만에 나타난 먹잇감을 가지고 놀려는 것인지 주위를 맴돌며 틈을 노렸다.
로칸도 삼라만상을 꿰뚫는 눈을 통해 놈들을 바라보았고, 초조한 심정으로 타이밍을 노렸다.
‘지금!’
그리고 어느 지점에 이르러 인벤토리에서 슬쩍 꺼내 놓은 아이템을 사용했다.
항로가 표시된 지도와 패턴 표 이외에 하늘섬에서 구입한 마지막 아이템. 그것은 바로 ‘하늘 폭죽’이었다.
쉬이이익. 퍼엉! 펑! 펑! 펑! 퍼어엉!
무음에 가깝게 쏘아진 하늘 폭죽은 로칸으로부터 꽤 떨어진 지점에 이르러 폭발해, 우주의 어둠을 집어삼킬 만큼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굉음을 동반했다.
키아아아아악!
그 변화에 미스랄즈오름들이 적응하지 못했다.
소리도 소리지만 퇴화된 눈에 비춰진 강렬한 빛에 몸부림을 치며 괴로워했다.
몸을 피하거나, 본능적으로 하늘 폭죽이 터진 위치로 몸을 날렸다.
기회였다. 놈들을 따돌릴 기회.
일반 폭죽은 쏘아 올릴 때부터 큰 소리가 나지만 하늘 폭죽은 폭발 지점에 이르러서야 굉음을 내기에 뒤편으로 쏘아 내면 놈들을 물리치고, 유인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사용할 수 있는 기회는 단 세 번뿐이다.
로칸은 다시 놈들의 위치를 확인하며 전속력으로 천상을 향해 질주했다.
‘천상이다!’
잠시 후, 천상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어디서 봤더라?’
흔히 데자뷔라 말하는 그것. 로칸은 분명 천상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튜토리얼!’
너무 작은 존재가 되어 몰랐지만 천상의 모습은 분명 튜토리얼을 시작하기 전, 우주로 나갔을 때 봤던 그 모습이었다.
거대한 나무. 그 하부에 위치한 것이 지상이었다면 천상은 중위 혹은 상부에 위치한 공간임에 틀림없었다.
더 로드의 세상이 정말 한 그루의 나무 위에 있는 것이라니.
왠지 묘한 느낌이 들었지만 마냥 감상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하늘 폭죽, 사용.”
정신을 차린 미스랄즈오름들이 화가 잔뜩 난 채 날아오고 있었다.
그 속도는 결코 그의 아래가 아니다.
재빨리 전방을 향해 하늘 폭죽을 쏘아 낸 로칸은 발사와 함께 눈을 감았다. 잡아 놓은 방향 그대로 속력을 내며 폭죽의 폭발 속을 가로질렀다.
캬아아악!
‘미치겠군.’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거리가 점점 좁혀지는 기분이 들었다.
타이틀 효과로 식스센스까지 지니고 있는 로칸의 감각이니 아마 확실할 터였다.
마지막 한 방의 하늘 폭죽을 쏘아 내며 마지막으로 모든 돌격, 이동 스킬들을 쏟아붓고 미스랄즈오름들로부터 탈출을 시도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곧 나타났다.
[천상에 도달하셨습니다.]
[안심하지 마십시오. 아직 당신의 영혼은 천상에 등록되지 않았습니다.]
[저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할 시 지상에서 부활하게 됩니다.]
천상으로의 도달!
필사의 탈출이 성공했다.
“하……하하…….”
창세의 왕, 오딘조차 밟아 보지 못한 땅이다.
벅찬 기분에 휩싸인 로칸은 천천히 천상의 땅을 내려다보았다.
안개처럼 뿌옇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몸인데도 가시거리가 얼마 되지 않았다. 일부러 첫눈에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없게끔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보이는 건 하나뿐이군.”
대신 한 가지는 확실히 보였다.
마을.
천상에서 방문할 수 있는 첫 마을의 위치만 눈에 들어왔다.
“일단 가 보는 수밖에 없나.”
영혼을 저장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조심스럽게 이동하려 하자 그를 가로막는 벽이 느껴졌다.
[이곳은 안전 지역입니다. 이곳을 벗어나면 공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응?”
그리고 방벽 너머로 어떤 존재들이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것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와일드 와이번][Lv 387]
“미친…….”
얼핏 보기에도 수십 마리는 족히 되는 숫자다. 저런 놈들을 뚫고 마을까지 가라고? 죽으라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어쩔 수 없군.”
입술을 질끈 깨문 로칸은 비행 이동을 포기했다.
대붕으로 변한 카이를 이용해 단숨에 따돌려 보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너무 무모하다.
오히려 마을 쪽에서 대공 사격을 가할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어쩔 수 없이 지상으로 먼저 내려온 로칸은 주위에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하고 광풍 현신의 후유증과 쿨 타임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안전지대를 벗어났다.
“어……?”
그리고 잠시 후, 자신의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검은 그림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이언트 케토피][Lv 399]
-장담컨대 천상에 도착하자마자 기어 다니는 벌레에 죽임을 당할 거다!
처음 하늘섬에 도착했을 때, 조인족이 저주처럼 내뱉었던 말의 뜻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