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5
나가 사냥 (2)
투두두두두두두두.
진동은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민감한 나가들의 감각을 속이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해도 노출될 확률은 높았지만, 그것을 대비하여 로칸은 작은 수를 내었다.
뀨웃!
카이.
어느 정도 지점까지 디그독으로 파고든 다음, 다시 카이를 소환해 길을 되돌려 보낸 것이다.
역할은 분명하다. 나가들의 시선을 끄는 것.
땅 밑에서 전해지는 진동에 잠시 신경을 곤두세운 나가들이었지만 먼 하늘에서 기웃거리고, 위협적으로 내려왔다 다시 오르기를 반복하는 카이 때문에 금세 잊어버렸다.
조인족은 아닌 듯싶었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에 놀란다고 조인족을 연상케 하는 움직임과 위협에 하늘을 향해 신경을 곤두세운 것이다.
“끄응차.”
까앙! 까앙! 후두둑
그사이, 로칸은 남은 땅굴을 팠다.
거의 바위 위에 있다시피 한 나가들의 마을이기에 디그독의 도움이 절실했지만, 소환사나 테이머가 아닌 이상 동시에 둘 이상의 탈것을 소환할 수 없다는 제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은 땅굴은 직접 파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거의 지상에 닿을 만큼 파 놓은 까닭에 몇 번이고 곡괭이에 힘을 더하자 돌과 흙이 부서져 내리고 은근한 빛이 들어왔다.
나가 마을로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속전속결.’
은신이 가능한 로칸이지만 이번에는 쓸모없었다. 나가들이 시선을 돌리는 순간, 열 감지 기능에 의해 바로 들통이 나게 될 테니까.
때문에 로칸은 땅굴을 빠져나오는 즉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목표는 당연히 나가족장이다. 놈만 해치운다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해결이 가능하니까.
“폭주 전차.”
콰앙!
로칸의 몸이 거칠게 놈의 처소로 들이닥쳤다.
“크윽!”
그러나 생각 같은 이득은 보지 못했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놈이 뱀의 꼬리를 휘둘러 로칸을 쳐 내 버린 것이다.
물론 놈도 피해가 없지 않은지 꼬리가 빨갛게 부어올랐지만, 그만큼 분노가 더해졌다.
“광풍 현신, 전신 무쌍!”
로칸도 당황하지 않고 즉시 대응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끌어 올리는 한편, 레벨이 오르면서 더욱 깊어진 교감을 통해 원거리에서 카이에게 지시를 내려 힘을 부여했다.
“전설을 타는 자.”
끼유유웃!
대붕으로 변신한 카이가 나가들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카이는 나가들의 적수인 조인족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 이상이었다.
광풍을 일으키며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을 쏘아 보냈고, 놈들이 분사하는 독액은 한층 강화된 엘리멘탈 바리어로 무력화시켰다.
그러면서도 하강과 상승을 반복하며 크고 예리한 부리로 놈들의 허리를 물어 절단 시켰다.
입안에 넣고 껌을 씹듯 질겅질겅 씹어 내뱉기도 했다.
“우리도 붙어 보자고!”
그사이 로칸은 나가 족장에게 집중했다.
언제 은신한 채 다가오는 나가 도적들이 공격을 감행할지 알 수 없기에 최대한 빠르게 승부를 보는 것이 중요했다.
덩치가 커졌다는 것은 그만큼 공격할 곳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했으니까.
“나가신의 저주!”
[나가신의 저주에 노출되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30% 저하 됩니다.]
[지속 시간 동안 나가 종족의 눈을 마주할 경우, 공포에 움츠러들게 됩니다.]
[광풍 현신의 효과로 공포 효과가 무시됩니다.]
“역시 상성이 좋다니까!”
놈은 즉시 마스터 스킬을 발현했다.
모든 능력치를 감소시키고 나가 종족에게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고약한 스킬. 그러나 공포 면역인 광풍 현신이 있는 로칸에게는 그 효과가 반감되었다.
능력치 감소가 뼈아프긴 해도 워낙에 강력한 로칸이기에, 여전히 육체 스펙에서는 놈을 압도했으니까.
“울티메이트 어썰트!”
리프 어택의 강화형 스킬. 로칸이 도약함과 동시에 그의 배틀 액스로 가공할 기운이 모여들었다.
일반 나가보다 1.5배는 거대한 놈의 몸 따위는 단숨에 잘라 버릴 위력에 나가족장이 몸을 흔들었다. 뱀처럼 좌우로 몸을 흔들며 혼란을 주었다.
“칫.”
콰앙!
스킬까지 더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놈의 요란한 회피 동작에 로칸이 속았다. 빈 땅을 때리고 땅거죽을 뒤집어 놓았다.
휘익. 퍽!
그리고 그 순간, 다시 날아든 육중한 나가족장의 꼬리가 로칸을 밀어 내었다.
본래의 힘이라면 버텼겠지만 30%나 능력치가 하락한 까닭에 속절없이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키오오오!”
“윽!”
그 순간, 놈의 입에서 요사스러운 힘이 뿜어졌다.
브레스!
검은용에게서 보았던 그것과 비슷한 독의 힘이 나가족장의 입에서 뿜어졌다.
[독액 브레스에 노출되셨습니다.]
[타이틀 만독불침의 효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치이이익!
그러나 검은용의 브레스도 견뎌 냈던 그다. 나가족장이 뿜어낸 독액은 그의 장비 내구도를 일부 하락시켰지만 그뿐이었다.
로칸에게는 에너지탄 정도밖에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고, 로칸은 오히려 브레스를 향해 몸을 던졌다.
“투지의 발걸음! 급가속! 광기의 시간!”
자신에게 남은 가속 스킬들을 모조리 발현하며 다시 한 번 놈에게 짓쳐 가 배틀 액스를 휘둘렀다.
“살육의 일격!”
푸확!
여기서 밀고 들어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나가족장의 가슴이 쩍하고 벌어졌다.
여느 나가보다도 더욱 크고 빛나고 단단한 비늘이 허무하게 뭉개지며 맹독의 힘을 지닌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파멸의 일격!”
이어진 연타는 파멸의 일격!
뱀처럼 유연한 나가족의 몸은 ‘충격’ 계열의 대미지를 흡수하는 성질을 지녔지만 방어력 관통 효과를 지닌 일격이라면 어떨까? 로칸의 왼손을 휘감은 사슬이 충격을 흘리거나 흡수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정통의 일격이 그대로 놈의 내부를 뒤흔들었다.
“커헉!”
크게 벌어진 가슴뿐 아니라 입으로도 독혈을 내뿜었지만 알게 무언가? 놈의 독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미 자명해졌거늘.
로칸은 멈추지 않고 배틀 액스를 휘둘렀다.
춤을 추는 듯한 난무가 고스란히 놈의 몸에 꽂히고, 놈의 뱀 거죽이 벗겨졌다.
“크허허허허헝!”
부르르르.
그렇게 나가족장이 끝장난 순간, 로칸이 승리의 포효를 내질렀다.
이제는 시선을 끌어도 무방하다. 아니, 오히려 광풍 현신과 전신 무쌍의 지속 시간이 끝나기 전, 한 놈이라도 더 몰아 죽여야 했다.
은밀히 접근하던 나가 도적의 몸이 훤히 드러났고, 아직도 하늘만 쳐다보던 놈들이 고개를 제대로 돌리지도 못한 상태로 뻣뻣하게 굳었다.
그런 놈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이 선사되었다.
“폭격!”
타격계는 물론 날붙이 또한 어느 정도 흘려 낼 수 있는 몸이건만 로칸의 공격을 받을 때마다 나가들의 몸이 뎅겅뎅겅 썰려 나갔다.
그나마 스킬을 발휘해 절단을 피한다 해도 몸이 기역 자로 꺾일 만큼 강렬한 충격에 몸과 정신이 흔들렸고, 그렇게 쓰러진 놈에게 남은 것은 처참한 죽음뿐이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엘리멘탈 빅버드, 카이가 레벨 업을 했습니다.]
[엘리멘탈 빅버드, 카이가 레벨 업을 했습니다.]
나가들의 입장에서 최악의 상성을 가진 로칸은 그야말로 절망, 전율이었다.
거기다 나가들을 먹이처럼 씹어 삼키는 카이의 활약까지 더해지니 상황은 더욱 암담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가들의 입장일 뿐, 학살을 벌이는 로칸과 카이는 싱글벙글일 수밖에 없었다.
무려 하이 마스터의 몬스터.
거기다 선구자 효과로 획득 경험치가 40%나 증가한 상태이니 거짓말처럼 레벨 업이 쉬웠다.
심지어 아직 310레벨대에 불과했던 카이는 쉴 새 없이 레벨이 올랐다.
체감하기로는 로칸의 4~5배쯤 되는 것 같았다.
[믿을 수 없는 업적! 당신은 단신으로 나가족 마을을 파괴했습니다.]
[타이틀 ‘뱀 사냥꾼’을 획득하셨습니다.]
[최초][뱀 사냥꾼][유니크]
단신으로 나가족 마을을 파괴한 당신은 뱀의 천적입니다.
당신은 이 타이틀의 최초 획득자입니다.
[보유 효과]
-뱀 계열의 몬스터에게 공격력 20% 증가
-뱀 계열의 몬스터에게 받는 피해량 10% 감소
그렇게 마을 하나를 몰살시키자 얻은 타이틀. 이게 더 대박이었다.
뱀 계열의 몬스터가 얼마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적어도 이곳, 하늘섬 이면에서는 최고의 타이틀이 아닌가?
게다가 이미 나가들과는 척을 진 상태이니 하늘섬을 넘어 천상에 닿은 이후에도 충분히 써먹을 수 있는 타이틀 효과였다.
“흐흐흐, 광렙의 시간이다.”
그 효과를 알아차린 로칸은 챙길 수 있는 것을 몽땅 챙기고 잠시 몸을 피했다.
시간 역행을 사용하면 획득한 경험치마저 사라져 버리니 광풍 현신의 쿨 타임을 모두 보내고 나서 다시 사냥에 나설 생각이었다.
그렇게, 로칸은 하늘섬의 이면을 사냥터 삼아 빠르게 레벨을 올리기 시작했다.
* * *
사냥을 거듭할수록 나가들을 상대하는 것은 더 쉬워졌다.
자신과 카이의 레벨이 오른 것도 이유였고, 타이틀 효과가 발동한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에 대한 ‘정보’가 생겼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들의 패턴, 전투 스타일, 주요 스킬들을 파악하자 더욱 효율적인 사냥이 가능해진 것이다.
나가는 하나의 종족이었지만 적어도 하늘섬의 이면에 존재하는 나가들은 어째서인지 비슷한 스킬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니 어찌 적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최초 진입 보너스가 적용되는 사흘을 꼬박 사냥하자 로칸은 무려 8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나가의 원혼들이 당신을 저주합니다.]
[당신에게 표식 ‘나가의 원한’이 적용됩니다.]
[조심하십시오. 이제 당신들은 나가들의 추격과 공격을 받게 됩니다.]
“응?”
그리고 마지막으로 점찍어 둔 나가 마을마저 초토화시키고 나자, 그동안 일어나지 않던 일이 일어났다.
나가 원혼들의 저주. 그리고 표식.
비슷한 일을 전생에, 지상에서도 겪어 본 적 있는 로칸이기에 이마를 살짝 찡그렸다.
보통 이런 건 같은 종족 몬스터를 1만 마리쯤 잡으면 발동하는 것인데 나름 천상의 종족 중 하나라서인지 일찌감치 표식이 발동한 것이다.
“새끼들, 성격도 급하기는.”
자칫 꽤나 골치가 아파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로칸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조인족들의 편을 들면서 그들과 적대 관계가 될 것을 각오했으니까.
게다가 하이 마스터 구간에서 8레벨이나 올렸으니 그들과 전쟁을 벌인다 해도 남는 장사라고 여겨졌다.
“나야 좋지.”
오히려 반가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나가들의 특성에 천적이라는 것은 이미 확인한 바가 있지 않은가? 그런 경험치 덩어리들이 덤벼 준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쯤이면 되겠지?”
마지막 전리품까지 수거한 로칸은 손을 툭툭 털고 카이에 올라탔다.
대붕의 날갯짓을 이용해 단숨에 세상의 끝으로 넘어간 뒤, 한 발자국을 더 넘어 하늘섬으로 돌아왔다.
개선장군처럼 기세등등하게 조인족의 영역으로 되돌아왔다.
충분할 만큼의 나가를 사냥했으니 보상도 빵빵하겠지.
나가들을 잡고 얻은 나가의 이빨이며 비늘, 고기, 그들의 장비들을 팔아 치우면 다시 상당한 코인이 모일 테고 마지막으로 미용 포션을 한정 수량 판매하거나 경매에 붙이면 아주 대량의 코인이 모일 터였다.
그것이라면, 천상으로 넘어가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아이템들을 구입할 수 있었다.
“독점이라고 폭리를 취하는 건 나만이 아니라니까.”
이곳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만큼 대량의 코인을 요구하는 보조 물품들. 그것들을 떠올린 로칸이 혀를 찼다.
이제, 천상으로 향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