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3
하늘섬 (3)
첫 날과 판매가는 달랐지만 미용 포션의 판매는 계속되었다. 거의 2배에 가까운 금액임에도 여전히 불티나게 팔려 나갔고, 로칸은 판매량을 늘리지 않았다.
줄 세우기와 한정 수량은 그 자체로 상당한 프리미엄을 갖기 때문이다.
덕분에 암암리에 더 큰 프리미엄이 붙어 암거래가 되기도 한다는 소문까지 들렸지만 실제로 유통되는 미용 포션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다 자신이 복용하기 바빴으니까.
설령 1백 개 전부가 암거래된다 해도 자신이 딱히 손해 볼 것은 없으니 막을 생각도 없었지만.
‘슬슬 움직일 때로군.’
하루 1백 개의 물량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판매가 끝난다. 그럼 남는 시간에는 뭘 해야 할까?
이전에는 어려웠지만 평판이 우호까지 올라간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게 많았다.
[식재료 비축][퀘스트]
붉은 부리 주점에서 안주로 쓰일 고기를 최대한 많이 구해다 달라고 요청했다.
하늘 쥐의 고기를 구해 그에게 가져다주자.
-완료 보상 : 하늘 쥐 고기당 500코인, 보통의 경험치
바로 퀘스트.
이미 상점을 이용할 수 있고 상점에서 사용할 코인 또한 충분했지만, 로칸은 바로 천상에 오르는 대신 퀘스트를 받았다.
어떤 몬스터가 있을지 모르는 천상에 바로 오르는 대신, 하늘섬에서 적당히 퀘스트를 하며 레벨을 올린 뒤 다시 천상으로 가려는 것이다.
지상으로 따지자면 심부름 퀘스트와 비슷한 아주 하급의 퀘스트였지만 지금의 로칸에게는 꽤 적당한 종류였다.
[하늘 쥐][Lv 351]
고작 쥐 새끼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하늘섬에 존재하는 몬스터들은 모두 350레벨, 하이 마스터급의 존재였으니까.
하이 마스터에 오르고 제대로 전투를 치러보지 못한 로칸으로서는 아주 흡족한 상대가 아닐 수 없었다.
‘경험치도 어마어마하다고 했지.’
더구나 훌륭한 것은, 이런 잡몹이라 할지라도 지상과 달리 엄청난 경험치를 준다는 것이다.
350레벨, 하이 마스터에게 적합한 수준의 경험치였으니 고작해야 마스터급 사냥터뿐인 곳에서 학살하며 주워 먹는 것과는 경험치 면에서 차원이 달랐다.
거기에 전리품 또한 얻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쥐 떼라면 좀 위험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조인족들로부터 퀘스트를 받아 낸 로칸은 즉시 사냥터로 이동했다.
사냥터라고는 하지만 지저분한 쥐 떼가 우글거리는 버려진 땅에 불과했지만 어느 때보다 긴장했다.
아무리 하이 마스터에 올랐다 해도, 그리하여 사자왕의 무구가 가진 본래의 힘을 이끌어 낼 수 있다 해도 수십, 어쩌면 수백에 달하는 하이 마스터급 몬스터가 동시에 달려들 수 있는 쥐 소굴은 위험한 것이다.
찌직?
그렇게 쥐 소굴에 들어서는 순간, 붉은 광기의 눈동자 수백이 로칸을 직시했다.
고작 쥐 따위가 아니라 포식자의 눈을 한 그것들이 로칸을, 먹잇감을 바라보았다.
“폭주 전차!”
그러나 거기에 쫄면 로칸이 아니다. 로칸은 즉시 돌진기를 발동시켜 놈들의 한가운데로 파고들었다.
어린아이만큼이나 커다란 하늘쥐들은 로칸과 부딪힐 때마다 피를 토하고 내장이 터져 나갔다.
봉인된 상태에서도 50%씩이나 돌진력과 공격력을 올려 주던 사자왕의 무구가 이제는 100% 효과 상승을 보이고 있었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거기에 세트 효과로 모든 공격에 추가 타격이 붙었다.
[사자의 불꽃] 효과가 적용되며 맞고 베이고, 부딪치는 곳마다 시뻘건 홍염이 치솟았다.
쥐 고기의 노린내가 사방을 뒤덮었다.
“휠 윈드!”
놈들의 한복판에 떨어진 뒤 로칸이 할 일은 하나였다.
휠 윈드!
일대를 쓸어버리는 무지막지한 회전의 힘이 놈들을 베고 때렸다. 골통을 부숴 놓고 뼈마디를 아작 내 버렸다.
찌직!
하지만 상대 역시 하이 마스터급. 방비하지 못했던 수십이 죽어 나갔지만 나머지는 재빨리 몸을 빼며 휠 윈드를 피해 냈다.
아무리 빠르게 회전한다지만, 회전 한 번당 한 번의 공격이다.
날랜 몸을 자랑하는 하늘쥐들은 요령 좋게 그것들을 피해 내는가 싶더니 일제히 몸을 날렸다.
마스터 스킬 전광석화!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속도를 붙인 하늘쥐들이 일제히 로칸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지뢰진!”
쿠웅!
그때, 로칸이 돌연 배틀 액스를 회수해 바닥을 찍었다.
레이지 버서커의 하이 마스터 일반 스킬이 발동한 것이다.
로칸을 중심으로 강력한 충격과 파동이 일대를 휩쓸었다.
공격력의 80%나 되는 무지막지한 위력에 사자의 불꽃까지 더해졌으니 날아들던 하늘쥐들이 발작을 하며 나뒹굴었다.
그러나 영악하게 한 템포 늦게 짓쳐 들어온 놈들이 있었다.
뒤늦게 뛰어든 하늘쥐들은 또 다른 마스터 스킬, 붉은 이빨을 드러내며 로칸을 물어뜯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광풍 현신!”
쩌억!
로칸이 오랜만에 거신의 모습으로 화했다.
몸집이 크게 부풀려지고 모든 공격력과 방어력, 생명력이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로칸을 깨물었던 하늘쥐들의 입이 쩍 벌어지더니 변화를 느끼기도 전에 입이 찢어졌다. 얕게 박아 넣었던 이빨 그대로, 아가리가 찢어지며 죽어 버린 것이다.
“흥!”
파악은 모두 끝이 났다.
순간적인 생명력 하락을 체크한 결과, 설령 붉은 이빨에 당한다 해도 불사 효과 없이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로칸은 더 이상 손 속에 자비를 두지 않았다.
하이 마스터급의 몬스터인 하늘쥐는 충분히 위험했지만, 로칸을 잡기에 충분한 수준은 아니었다.
고작해야 쥐새끼일 뿐이기 때문인지 마스터 스킬의 위력이 형편없었다.
“그렇다면 시간을 끌 필요가 없지!”
덩치가 불어난 덕에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라 벌레 수준으로 격하된 하늘쥐들을 무심히 바라보며 로칸이 힘을 발산했다.
학살의 시작이었다.
“아니, 이렇게나 많이?”
쥐 소굴을 거의 쓸어버리다시피 한 로칸의 활약 덕분에 하늘쥐 고기는 인벤토리에 수북하게 쌓였다.
워낙 처참하게 박살을 내놓은 터라 따로 도축을 할 만큼의 상태는 아니었지만, 전리품으로 자동 획득한 하늘쥐 고기만 해도 수백 개를 넘어섰다.
오죽하면 의뢰를 맡긴 붉은 부리 주점의 주인마저 놀랄 정도.
조인족 전사라 할지라도 이만한 숫자를 금방 모아 올 수 있을까?
새삼 로칸을 다르게 본 주점 주인은 그를 한 명의 전사로 인정했다.
좀 더 높은 수준의 퀘스트를 부여했다.
[하늘 멧돼지 사냥][퀘스트]
[하늘 소 사냥][퀘스트]
레벨은 비슷하지만 좀 더 사냥하기 까다로운 놈들의 고기를 주문했다.
당연하게도 로칸은 그것들을 수행했고, 처음에는 다소 버벅거리긴 했으나 빠르게 적응하며 퀘스트를 완료했다.
크기는 거대했지만 애초에 놈들의 형태가 지상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사냥법을 익히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것이다.
일반 상태에서는 조금 애를 먹을지 몰라도 광풍 현신이 있었으니, 오히려 쉬운 편에 속했다.
“좀처럼 써먹어 볼 기회가 나지 않는군.”
반대로 하이 마스터에 오르며 새롭게 익힌 일반 스킬들을 숙련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전생에도 어떻게든 밟아 보았던 경지이고 써 봤던 스킬들이지만, 지금은 그때와 스펙이 달랐다.
어느 정도 대미지가 나오는지, 어떤 식으로 운용을 해야 효율적인지를 파악하는 데 제법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그럼에도, 새롭게 익힌 두 번째 마스터 스킬을 써먹을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전신 무쌍.
지속형 스킬인 만큼 광풍 현신과 중첩해서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고, 유일한 단점인 마나 소모 또한 마나 무한의 상태에서 해결이 되는 마스터 스킬이지만 그것까지 사용하면 전투가 너무 쉬워지는 것이다.
지금의 대미지도 충분하다 못해 넘치고 있는데 그것까지 사용했다간 연습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아쉬워하는 것도 잠시.
곧 그것을 써먹어 볼 기회가 생겼다.
[천적 사냥][퀘스트]
조인족들이 당신의 무력을 신뢰하며 자신들의 천적을 사냥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나가 일족을 사냥하십시오.
-성공 조건 : 나가 일족의 사냥
-성공 보상 : 극대량의 경험치, 조인족의 신뢰, 사냥한 나가의 수 × 10만 코인
-수락 시 나가 일족과의 호감도가 하락합니다
-수락하지 않을 시 조인족과의 호감도가 대폭 하락합니다
나가 일족의 사냥!
하늘섬의 주인은 조인족이었지만 그들에게도 천적은 존재했다. 바로 뱀의 하체를 하고 있는 또 다른 천상 종족 나가가 그들이었다.
“나가 일족이라…….”
난이도를 떠나 로칸은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갈 곳은 천상이고, 그곳에도 역시 나가 일족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천상에서 어느 쪽의 세력이 더 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나가 일족과 척을 지는 것은 위험했다.
하지만 반대로 퀘스트를 수락하지 않으면 조인족과의 관계가 애매해진다. 신뢰에 가까운 관계까지 형성한 조인족과의 평판이 우호나 그 이하로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놈들이 미용 포션을 사지 않을 것은 아니니 평판과 호감도가 바닥을 치지는 않을 테지만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에라, 고민해서 뭐 하냐. 부딪쳐 보는 거지.”
[퀘스트 천적 사냥을 수락하셨습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 조인족들의 신뢰를 받았습니다.]
[타이틀 ‘조인족의 친구’를 획득했습니다.]
[당신은 이 타이틀의 최초 획득자입니다.]
[최초][조인족의 친구][유니크]
당신은 조인족들에게 인정을 넘어 신뢰를 받은 최초의 인간이다. 당신을 친구로 인정한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도우려고 할 것이다.
[보유 효과]
-[하늘 종족의 축복] 효과로 비행 속도 10% 증가
-[하늘 종족의 축복] 효과로 [회피 기동] 사용 가능
-[하늘 종족의 축복] 효과로 공중 전투 시 전투력 10% 상승
“오?”
로칸이 결단을 내리자 생각지도 못한 이득이 돌아왔다. 천적을 대신 사냥해 주겠다고 하자 그들과 신뢰 관계가 형성되며 새로운 타이틀을 획득한 것이다.
그것도 무려 유니크 등급.
특히 좀체 얻기 어려운 비행 관련된 효과를 얻은 것이 꿀이었다.
“나가보다 훨씬 낫군.”
자신이 생각하는 그 나가가 맞다면 나가 종족과 신뢰를 형성한다 한들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심장 적출 또는 독에 대한 저항력.
심장을 적출해 낮은 기온에서도 동면하지 않는다는 나가의 특성과 독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뱀다운 속성을 생각할 때 유추할 수 있는 효과는 그 둘이었다.
둘 다일 수도, 그중 하나만일 수도 있고 그도 아닌 다른 효과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로칸과는 상성이 좋지 않았다.
심장을 적출해 약점을 없앤다는 특성은 버서크의 약점 중 하나를 없애 주기도 했지만 세차게 뛰는 심장의 힘을 이용해 생명력과 힘을 더욱 강화하는 이점 또한 지우기 때문이다.
독 저항력이야 이미 검은용의 포이즌 브레스를 견디며 타이틀 만독불침을 얻고 모든 독에 면역이 생긴 로칸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고.
덕분에 로칸은 만족스러운 웃음과 함께 나가들의 소굴이 있는 하늘섬의 반대편으로 향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