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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랭커 회귀하다-243화 (243/500)

# 243

타락의 정수 (1)

엘프와 하이엘프가 나타난 것은 하프엘프의 진영 쪽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세계수에 접근했으나, 세계수의 공격을 받고 패퇴하며 물러났다는 소식을 확인했다.

전원이 마스터와 하이 마스터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수가 무려 수백에 이름에도 불구하고 그랜드 마스터인 세계수를 어찌할 수 없던 것이다.

‘물론 전력을 다한 건 아니겠지만.’

그들에게 종교나 다름없는 세계수를 상대로 하는 것이기에 전력을 다하지 못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전력을 다했다 한들 뭔가 달라졌을까

로칸은 아니라고 보았다.

마스터 레벨이 클래스 익스퍼트를 학살하고, 하이 마스터가 다수의 마스터들을 썰고 다니는 것 이상의 격차가 그랜드 마스터와 하이 마스터 사이에 존재했으니까.

로칸이 제대로 비벼 볼 생각을 하지 못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지금의 세계수라면 해볼 만은 하겠다만…….’

자신만큼 타이틀을 획득하고, 템빨로 무장한 하이 마스터라면, 그리고 상대가 이제 막 초입에 들어서 힘을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그랜드 마스터라면 어떻게든 비벼 볼 만하다고 생각하지만 그조차 확신은 없었다.

“접촉해 봐야겠군.”

그들의 위치를 어림으로나마 특정한 로칸은 즉시 이동했다. 광풍 현신의 후유증 같은 건 지금 의미가 없었다.

세계수의 축복.

엘프와 하이엘프라면 모를 수가 없는 그 힘이 사라지기 전에 그들을 만나고, 호의를 얻어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숲 지형, 수백의 인원이 몸을 숨길 수 있을 만한 곳, 그리고 세계수의 활동 반경 근처.’

이 세 가지 조건만 생각해도 그들이 몸을 숨길 수 있는 장소를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자신들을 훤히 드러내고 있을 리는 없지만 반대로 공격형 함정으로 사람들을 적대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로칸은 마음 편히 그들을 찾았다.

[일루젼 필드에 노출되셨습니다.]

[타이틀 거짓을 꿰뚫어 보는 자의 효과로 환상에 저항했습니다.]

불굴의 의지와 달리 환영만을 보여 주는 마법에 노출되었지만 로칸은 가볍게 저항했다.

그러나 무리해서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도 않았다.

정말 이곳에 엘프들이 있다면, 그들이 먼저 자신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냐, 넌 ”

잠시 기다리자 울창한 숲 너머에서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숲의 일족을 만나기 위해 온 인간 공작, 마스터 버서커 로칸입니다.”

“네가 어떻게…… 세계수의 축복을 받고 있지 ”

그러나 정중한 자기소개에도 엘프들은 경계를 풀지 않았다.

오랜 세월 세상과 소통을 단절하고 지냈던 이들인 만큼 당연한 일이다.

때문에 로칸은 행동으로 그것을 증명했다.

“그것은……!”

죽음의 홀.

그것을 꺼내 보이자 엘프들이 무장해제되었다. 홀린 듯한 눈을 하고 로칸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스윽.

그러나 그것을 마냥 보여 주고 있을 생각은 없다.

견물생심이라고, 그들이 어떻게든 이것을 손에 넣으려 들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엘프들이 탐욕 없는 종족이라 알려지긴 했지만 당장 하프엘프들만 해도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던가 세간의 평가 따위를 믿기에는 로칸의 짬밥이 너무 많았다.

“아아…….”

“그걸 어떻게 손에 넣은 거지 ”

“그건 우리 엘프들의 보물, 그러니…….”

그리고 그 예상은 일부 적중했다. 엘프들이 죽음의 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려는 낌새를 보인 것이다.

“이건 제 겁니다. 갖고 싶으면 합당한 비용을 지불하시죠.”

냉정한 그 말에 엘프들도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아주 오래전 사라진 물건에 대한 소유권 주장이 턱도 없는 억지라는 걸 그들 역시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죽음의 홀에 합당한 값을 치를 방법이 없었다.

“……그렇지. 제 것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해 놓고 이제와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무리겠군. 그래, 세계수의 축복을 받은 자여. 우리를 찾은 이유는 무엇인가 ”

하지만 다행히 강제력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박살을 내 줬겠지만.

“세계수를 되돌리는 데 협조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세계수를 ”

엘프들로서는 흥미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세계수를 가장 되돌리고 싶은 건 그들일 테니까.

한데 로칸의 발언에는 좀 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그들을 돕겠다는 게 아니라 자신을 도우라니 뭔가 방법이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한 차례의 접촉으로 방법을 찾지 못한 엘프들로서는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었다.

“협조하시겠습니까 ”

로칸은 자신의 계획을 풀어놓았다. 자신이 알아낸 점과, 가지고 있는 능력의 일부, 간단한 계획을 풀어놓았다.

엘프들이 맡아 줘야 할 역할까지도.

“……좋아. 해 보지.”

잠시 고민하던 엘프들은 흔쾌히 그 제안을 수락했다.

어떤 함정일수도, 확정적으로 정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들로서는 작은 희망에라도 기대고픈 것이다.

사실 그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 타락에 잠식된 채 오랜 시간을 보낼 경우, 세계수를 되돌릴 수 없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로칸과 엘프들의 연합이 성사되었다.

* * *

타락한 세계수.

놈이 지나가는 곳은 언데드의 영역보다 더한 죽음이 드리웠다.

언데드들의 경우 죽음의 기운을 뿌려 대지를 물들이기에 생명력이 충만한 것들은 살아남기도 했지만, 세계수가 지나간 자리는 달랐다.

생명력은 생명력대로, 죽음은 죽음대로 빼앗겨 버린 아무것도 없는 땅. 무(無)의 대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변해 버린 대지에는 동식물은 물론 몬스터, 언데드조차 살 수 없어서 아예 필드가 변형되고 있었다.

결국 그 환경에 적응한 무언가가 나타나는 식이겠지만 이대로라면 중앙 대륙이 아예 새로운 환경으로 바뀌어 버릴 판이었다.

때문에 세계수의 폭주는 이제 어느 한 종족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고대 황제의 출현 때처럼 여덟 종족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만한 사안인 것이다.

“묘하게 돌아가는군.”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각자의 생각이 달랐으니까.

일단 황금사자 진영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검은용군단 쪽에서 난동 중인 세계수를 관망하는 입장이었고, 검은용군단 역시 데스로드의 부활에 실패한 언데드가 소극적으로 나온 데다 오크와 트롤 역시 각자의 신기를 찾아 헤매느라 방어에 치중하는 입장이었다.

그들 역시 신기를 얻어 낸다면 세계수를 말살하고 세상을 뒤집을 수 있을 테니까.

그중 가장 안타까운 것은 고블린들이었다.

종족 퀘스트를 완수하고, 무려 고블린 대사제의 힘을 현세에 끌어들였건만 상성이 좋지 못해 세계수에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으니 이보다 불행한 종족이 있을까 싶을 정도.

하지만 로칸은 한편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모두가 세계수를 꺼리고 기피하는 까닭에 세계수를 독식할 수 있으니까.

‘잘하면…….’

세계수의 사냥에만 성공한다면, 어쩌면 폭렙으로 바로 하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준비 됐습니까 ”

“신호만 주게.”

아쉬운 쪽인 엘프들은 로칸의 요구에 성실히 따랐다.

자신들의 무력과 아이템 정보, 스킬 정보까지 낱낱이 밝힌 것은 물론 그의 지휘에 따라 목숨까지 바칠 각오를 다졌다.

세계수만 되돌릴 수 있다면, 이 땅에 뿌리 내릴 수 있다면 세계에 흩어진 숲의 일족들이 모여들 테고 다시 강성한 옛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 것이다.

“시작하죠.”

잠시 세계수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로칸이 신호를 보냈다.

엘프와 하이엘프들이 각자의 힘을 개방하며 세계수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자연 제어!”

“포자의 비!”

“에너지 드레인!”

사실 엘프들의 스킬은 세계수를 상대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세계수의 자식들이라 불리는 종족 특성답게 동류의 스킬들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오히려 세계수가 흡수해서 더 강해지거나 힘을 회복할 수 있는 종류가 많은 것이다.

그렇기에 로칸은 개별 면담을 통해 그들의 마스터 스킬을 몽땅 바꾸어 놓았다.

적어도 세계수에 흡수되지 않을 것으로.

그워어어어엉!

그런 까닭에 엘프와 하이엘프들이 사용하는 마스터 스킬들은 모두 놈을 제약하거나, 놈이 가진 생명력을 빼앗아 오는 종류였다.

어차피 어설픈 공격 스킬을 써 봐야 철벽 그 이상인 방어력을 뚫어 내기 어려우니 아예 생명력 그 자체를 흡수해 오는 것이다.

공격력이나 저항력을 무시하는 특성을 지닌 ‘생명력 흡수’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했는지 놈은 금세 반응하여 성질을 부렸고, 그다음부터는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꾸준히 생명력을 흡수하는 엘프들을 쫓아 세계수가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했다.

“바인드!”

“휩!”

“트위스트!”

그에 맞춰 엘프들도 분주해졌다.

공격을 피하랴, 마법으로 놈의 스텝을 꼬이게 만들랴.

최우선 목표를 생존으로 두었음에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수천수만 갈래로 이루어진 놈의 뿌리와 가지가 동시에 덮쳐 왔으니까.

그나마 그것들 하나하나가 가진 위력은 다른 그랜드 마스터의 공격에 피해 한참이나 약했기에 피하거나 행동을 제한 할 수 있는 것이지, 다른 그랜드 마스터였다면 어림없는 일이었다.

“카이, 우리도 가자.”

그렇게 놈의 시선이 엘프들에게로 쏠린 사이, 로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작아지는 수고를 하지 않았다.

어쩌면 장기전이 될 수 있으니까.

일찌감치 광풍 현신을 써 버려서는 타임 오버로 허무하게 끝날 수 있었다.

“전설을 타는 자.”

그러나 전설을 타는 자는 사용했다.

대붕으로 변하지 않고 크기를 유지한 카이였지만 이동속도와 반응속도는 극적으로 빨라졌다.

한 번에 수백 줄기씩 뻗어지는 세계수의 가지를 피해 내기 위해서는 이것이 필수였다.

‘아쉽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타이틀 효과를 거의 받을 수 없다는 것.

로칸을 극적으로 강화시켜 주는 폭군과 만인살, 최초의 점령군 타이틀은 단 하나의 적을 상대할 때 제대로 힘을 발휘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버텨야 했다.

교감을 통해 능숙하게 카이를 조종하며 세계수에 접근한 로칸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변화를 주었다.

“커져라!”

뀨웃!

동시에 엘리멘탈 바리어도 일어났다.

마스터 레벨에 오르며 강화된 스킬이 진화를 통해 한 번 더 강화되며 일시적이나마 세계수의 공격을 막아 냈다.

가랑비에 옷 젖듯 계속되는 다중 찌르기에 곧 균열이 가고 파괴되었지만 카이의 방어력도 만만치 않았다.

끼유웃!

칼날 광풍. 일진광풍을 일으키는 광풍 스킬에 무형의 바람 칼날이 더해진 공격 스킬이 가지를 자르고 부러뜨렸다.

그사이, 로칸은 날개 모드를 개방했다. 돌진기를 마구 사용하며 타락의 열매에 접근했다.

“세계수의 축복.”

로칸에게 집중하는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엘프와 하이엘프에, 카이까지 노리는 상황에서는 이전처럼 타락의 열매를 뒤로 돌리기 어려웠다.

그 틈에 꺼내진 죽음의 홀과 거기서 뿜어진 세계수의 축복!

그러나 이번에는 타깃이 로칸이 아니었다.

키아아아아아악!

타락의 열매. 생명력 가득한 축복의 힘을 타락의 열매에 쪼이자 세계수가 비명을 질렀다.

죽음을 흡수해 생명력을 충전하던 것이 반대로 작용하며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이다.

“파멸의 일격.”

콰앙!

거기서 끝이 아니다. 타락의 힘에 추가 대미지를 주는 파멸의 일격이 타락의 열매를 때렸다.

부르르르.

그러나 파괴되는 일은 없었다. 크게 흔들리며 기운이 잘게 쪼개지는 느낌은 있었지만 외형은 멀쩡했다.

“데스 드레인!”

마지막으로 데스 드레인이 더해졌다.

단단히 뭉쳐 있는 기운을 흡수하려 들기보다 크게 흔들어 놓은 뒤 흡수를 시도 한 것이다.

그러자 몸이 풍선처럼 터질 만큼 막대한 흑마력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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