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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랭커 회귀하다-218화 (218/500)

# 218

눈에는 눈, 이에는 이 (3)

“됐군.”

새롭게 업데이트된 영지 관리 창을 확인한 로칸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킬라만타 공작이 관리하던 영지들마다 그득그득 쌓인 영지 보유금도 흐뭇했지만 황제가 선심 쓰듯 던져 준 추가 영지들과 병력들도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킬라만타 공작을 따르던 하이 마스터들은 모두 죽거나 투옥되었지만 공작의 위에 올랐으니 ‘등용’을 사용하면 랜덤한 확률로 마스터 레벨의 기사를 고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잘만 키운다면 하이 마스터까지 키워 낼 수 있겠지.

물론 자금이야 크게 소모되겠지만 공작급의 영지를 얻었는데 비용이 대수랴. 들어오는 세금을 한 달만 ‘몰빵’해도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기사를 고용할 수 있을 터였다.

[경험치 5,000을 획득하셨습니다.]

[공훈도 6을 획득하셨습니다.]

거기서 로칸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단순히 휘하 병력의 전투력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전쟁에 뛰어들어 적을 처치할 때마다 획득하는 경험치와 공훈도의 일부가 로칸에게 나뉘어 들어왔다.

하나하나로 본다면 얼마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이 수천, 수만에 달한다면

“후후, 이게 꿀이지.”

그야말로 앉아서 레벨 업을 할 수도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즉시 자금을 동원해 병력을 충원하고, 그들 중 상당수를 전장으로 투입했지만 정작 로칸은 곧장 전장에 나서지 않았다.

그의 힘까지 더해지면 치열한 전장의 분위기를 뒤바꿀 수 있겠지만 아직 할 일이 남은 것이다.

[파멸의 예언서][????]

파멸의 예언을 담고 있는 예언서. 특수한 힘에 의해 봉인되어 있다.

킬라만타 영지를 먹은 뒤, 수색을 통해 찾아낸 아이템.

어쩌면 타락 결탁자의 모든 것이 담겨 있을 비서가 그의 앞에 놓여 있었다.

“흐음, 봉인이란 말이지…….”

파멸의 예언서. 얼핏 봐서는 무엇인지 알지 못할 수 있었지만 로칸은 들어 본 적 있었다.

정확히는 이 아이템에 대한 것이 아니라 키워드를 들어 보았을 뿐이긴 했다.

타락, 그리고 파멸.

그 두 단어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에 대해.

때문에 로칸은 봉인을 풀 방법을 알 것도 같았다.

“이건 어떨까 ”

로칸이 꺼낸 것은 타락의 구슬이었다. 이전에 얻었던 타락의 구슬은 모두 소모했지만 타락한 몬스터를 찍어 내던 킬라만타 공작인 만큼 영지를 뒤지니 타락의 구슬이 무수히 쏟아졌다.

그것을 한 개, 두 개 예언서 위에 올리자 변화가 일어났다.

요사스러운 녹빛이 번들거리더니 쩌적 하고 예언서가 깨지기 시작했다.

“젠장.”

파사사삭.

방법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예언서는 그대로 파괴되었다. 남은 것은 몇 가지 단어만 남은 종이 쪼가리뿐이었다.

[타락…… 파멸…… 고대…… 주문…… 아마…… 부활…….]

“이게 뭔 소리야 ”

알 수 없는 단어의 조합.

애써 얻은 예언서를 날려 버린 로칸이 짜증스러운 투덜거림을 내뱉었다. 이미 날려 버린 아이템은 어쩔 수 없지만 단어는 기억해 둘 필요가 있었다.

뭔가 그럴싸한 단어의 조합 같게도 느껴졌지만 차후 다른 키워드라도 찾아낸다면 알아 낼 수 있는 것이 있겠지.

로칸은 조각난 예언서의 파편들을 수습하고 밖으로 나섰다.

이제, 반격의 시간이다.

* * *

로칸이 사라진 전장. 그곳을 채운 것은 유저들이었다.

그간 로칸의 위세에 눌려, 혹은 그 이름값에 치여 제대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던 상위 길드들이 몽땅 뛰어들어 전장을 더욱 치열하게 만든 것이다.

전쟁의 여파로 사냥터가 포화 상태, 또는 훼손되어 사냥이 여의치 않게 된 것도 한몫을 할 터였다.

덕분에 황금사자 진영, 검은용군단 할 것 없이 최상위 유저들이 뛰어든 전장은 하루하루가 치열했고, 처절했으며 새로운 영웅들을 낳았다.

각 종족의 최고수들. 가장 먼저 마스터 레벨을 달성한 그들의 이름이 홈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오딘.”

홈페이지를 훑던 로칸이 그 이름 중 가장 윗줄에 있는 이의 이름을 되뇌었다.

섬전의 오딘.

거창한 별칭까지 붙은 그였지만 전생에 불리던 이름은 더욱 대단했다.

창세의 왕.

원수와도 같은 그 이름을 보는 로칸의 눈빛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로칸이 다시 일어섰듯, 그 역시 다시 높이 치솟았다.

아직 자신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자신을 제외한 유저들 중에서 가장 높은 등급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전투력 SS급의 유저 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재미있군.”

로칸이 지금 살피고 있는 것은 이른 바 ‘유저 전투력 등급표’라 불리는 것이었다.

게임사에서 제공한 것은 아니지만, 홈페이지와 더 로드에서 크앙이라 불리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오지랖 넓은 유저이자 객원 게임 웹진 기자가 정리한 유저들의 전투력 측정표였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자신의 판단 만으로 등급을 매긴 것이 아니라 집단 지성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초안은 아무래도 그가 정리했지만, 다수의 사용자가 의견을 피력해 등급과 랭킹이 실시간 갱신되도록 사이트를 구축한 것이다.

그리고 그 등급표에서 전생에 창세의 왕이라 불리며 부동의 랭킹 1위를 지키던 오딘이 SSS가 아닌 SS급으로 분류된 것이 흥미로웠다. 아니, 어쩌면 당연했다.

“한 명뿐이라니.”

SSS급(랭킹 1위, 추정 불가) : 로칸

SSS급으로 분류된 것은 오직 단 한 명, 로칸뿐이었으니까.

전생에는 SSS급으로 분류되던 것이 로칸을 포함해 소위 ‘왕’이라 불리던 십여 명쯤은 되었던 것을 생각할 때 무척 고무적인 일이었다.

이제 로칸 이외에도 마스터 레벨에 오른 유저들이 다수 등장했음에도 그들 모두를 SS급으로 끌어내리고 오직 로칸만을 SSS급으로 분류하고 있었으니까.

같은 마스터 레벨이라도, 급이 다르다는 평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로칸이 벌여 온 일들을 생각한다면 이제 막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이들과 비교하는 것이 우스운 일이었다.

“SSS급이라…….”

로칸이 씁쓸한 웃음을 베어 물었다. 옛 추억이 떠오르는지 순간 눈빛이 아련해졌다.

아직 ‘왕’이라는 칭호는 붙지 않았지만 마치 옛날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이 다시 한 번 생생히 떠올랐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어떠한 기분을 억누르며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상황은 ”

“송구합니다. 그리 좋지 못합니다. 방문자들이 분투하고 있으나 우리 인간의 영역을 간신히 지키는 정도입니다.”

전장 브리핑을 들은 로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전방에 있던 마스터와 하이 마스터들이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달려올 수 있던 것은 사실 100% 인간 유저들의 공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선택한 숫자도 적고 고레벨은 더더욱 적은 인간 유저들보다는 태생적으로 강력한 드워프나 하프엘프의 유저들이 활약한 덕분에 여유가 생겼을 뿐인 것이다.

인간의 경우, 인접해 있는 하프엘프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었다. 바로 오딘, 그가 이끄는 라그나로크 팀이 큰 활약을 한 덕분에 수비가 쉬워진 것이었다.

“그건 상관없다. 진영 간의 전투 상황은 어떻지 ”

하지만 그건 상관없다. 로칸 자신이 전장에 돌아온 이상, 전선은 완전히 뒤집어질 테니까.

“비등해 보이지만……. 점점 버거워지고 있습니다. 황금사자 진영의 방문자들 중 마스터가 다수 탄생했다지만 검은용군단에서는 더 많은 마스터들이 나오고 있는 터라…….”

그러나 전체 상황도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아직은 비등하게 보일 만큼 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오크, 트롤, 언데드, 고블린으로 황금사자 진영에 비해 기본 스펙이 좋은 검은용군단에서 많은 숫자의 마스터 레벨 유저를 배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역시 인간이었다.

황금사자 진영은 일단 인간이라는 치명적인 구멍 종족이 있었기 때문에 1차적으로 마스터의 숫자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로칸이 활약에 홀딱 반해 인간을 택한 유저들도 다수 존재하긴 했지만 그들 중 대다수는 중도 포기했고, 나머지 중에도 마스터 레벨을 달성한 이는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다른 종족들은 벌써 마스터 레벨 유저의 숫자가 최소 열을 넘기고 있는 가운데 인간은 로칸을 포함해도 고작 두 명에 불과했으니 수적인 열세가 나타나는 것도 당연했다.

“조합도 밀릴 테고 ”

“맞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황금사자 진영처럼 종족별 클래스 선호도가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경우에는 마스터 레벨의 숫자가 같더라도 조합의 문제가 있었다.

가장 선호되는 계열의 클래스에서만 마스터 레벨이 우선적으로 배출되다 보니 전술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나마 하프엘프의 경우 전천후라 할 만큼 모든 역할에 잘 어울렸지만 드워프나 노움은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었다.

드워프 종족으로는 근접 계열이 아닌 다른 직군을 고르기 어려웠고, 노움 종족으로는 반대로 근접 계열의 직군을 고르는 게 바보짓이었으니까.

불행 중 다행으로 황금사자 진영 유저들의 선택 비중은 하프엘프가 가장 높았지만 슬슬 한계가 오는 듯싶었다.

“그렇단 말이지…….”

모든 상황을 전해 들은 로칸이 웃었다. 부관들은 부정적이지만 로칸은 상황이 무척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치열한 공방. 그리고 무시당하는 인간.

로칸이 돌아왔다는 소문이 퍼지는 순간 긴장을 하기야 하겠지만 그 경계심은 옅을 것이 분명했다. 그들 자신도 마스터 레벨에 올랐으니까.

기존에는 마스터 스킬 때문에 탈탈 털렸을 뿐이라고 자기 위안을 하지 않겠나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과 변명이 있는 법이다.

처맞기 전까지는.

“좋아. 딱 지금이 ‘그것’을 쓸 타이밍이군.”

“……예 ”

마음을 정한 로칸은 즉시 인벤토리에서 어떤 것을 꺼냈다. 황금으로 치장된 화려하고 멋들어진 명령서.

내전을 종식 시킨 공으로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던 황제에게 얻어낸 바로 그것이 이 순간 효력을 발휘했다.

[휴가증]

“나 지금부터 휴가다.”

“에에에엣!”

로칸이 꺼낸 그것은 다름 아닌 휴가증이었다.

최대 3개월. 그동안 로칸이 전장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아도 된다는 황제의 약속이 담긴 증서였다.

물론 나라가 망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 된다면 당연히 나타나야겠지만 그것은 공작인 로칸도 바라는 바가 아닐 터였다.

그런 만큼 황제는 통 크게 양보했다. 로칸이 바라는 대로, ‘사령관의 의무’를 다하지 않더라도 전혀 페널티가 없도록 휴가증을 써 주었다.

“카이!”

뀻!

“아, 안 됩니다. 공작님!”

당장 작위를 얻지 않아도, 병사나 기사 정도의 지위만 얻더라도 종족 전쟁에 일정 시간 이상 기여하지 않는다면 페널티를 받게 된다.

하물며 무려 사령관이자 공작의 위를 가진 로칸이 3개월이나 자리를 비우게 될 경우 받게 될 페널티는 얼마나 대단할까.

범인은 상상조차 못 할 수준이겠지만 휴가증 한 장으로 그 모든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었다.

로칸은 자유를 얻었다.

카이를 타고 곧장 날아오른 로칸은 부관의 만류 따윈 귓등으로 흘리며 전장을 벗어났다.

어차피 영지 관리야 영지 관리 창을 통해 원거리에서도 가능하니 어찌어찌 버티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나

때문에 그보다는 더 재미나고 중요한 일을 할 생각이었다.

“폴리모프.”

카이를 타고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곳으로 날아온 로칸이 고블린 주술사의 변신 반지에 담긴 내장 스킬을 발동시켰다.

고대 황제에게 구해 준 목숨 값으로 받은 반지였다.

그냥 보기에는 변장 스킬처럼 보이지만, 이 반지를 통해 발휘하는 폴리모프 마법은 단순히 외형만 바꾸는 눈속임이 아니라 골격과 신체 구조까지 모조리 변화시키는 고위 주문이었다.

그렇기에 사흘에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었지만 로칸은 생각해 둔 이미지로 과감히 스스로를 변화시켰다.

우둑 우두두둑.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로칸이 다른 존재로 탈바꿈했다.

인간 로칸이 사라지고, 오크 크록취가 그 자리에 나타났다.

“크릉, 그럼 가 볼까 ”

누런 뻐드렁니를 번들거리는 오크 광전사 하나가 음흉한 미소와 함께 어디론가 이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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