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
캬루스 VS 로칸 (2)
“캬루스…….”
쐐애애액…… 쩌엉!
로칸이 낮게 그의 이름을 읊조리자 또 한 발의 화살이 날아왔다. 이번에도 캬루스였다.
“끌끌, 어르신의 이름을 그렇게 함부로 부르면 쓰나.”
이번에도 평타. 게다가 아주 대놓고 활시위를 당겼음에도 로칸은 막아 내는 것이 쉽지 않음을 느꼈다.
과연 그가 작정하고 연사를 날리거나, 스킬을 뿌려 대면 어떨까.
로칸은 절로 식은땀이 나는 것을 느끼며 배틀 액스를 꼬나 쥐었다.
“뭣 됐군.”
으득.
그러나 포기한 것은 아니다.
상대가 강하다고, 이길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포기했다면 로칸이 전생에 그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을 리 없다.
군중 속에 숨어들어 적의 마스터, 하이 마스터들을 도륙하려던 로칸은 처음의 계획을 포기했다.
자세를 바로 하고 당당하게, 허리를 꼿꼿이 폈다. 더 이상 도망치거나 숨지 않고 그의 대적자로서 전면에 나섰다.
“스로잉.”
후우우웅!
어디 그뿐인가 아예 손도끼까지 한 자루 꺼내 집어 던졌다. 마치 캬루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흐흥 ”
캬루스가 슬쩍 몸을 틀어 그것을 피했다.
그러나 애초에 로칸 역시 피해를 주려고 던진 것은 아니었기에 실망하지 않았다.
둘의 시선이 다시 허공에서 얽혔다.
“어디 개새끼 두들겨 패는 데 나이 많다고 봐주는 거 봤어, 영감 ”
로칸이 거칠게 말을 내뱉었다.
어차피 적대 진영에, 유저도 아닌 NPC에게까지 말을 높여 줄 이유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캬루스는 화를 내는 대신 웃었다. 그의 거친 언행이 흔들리는 스스로를 다잡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재미있었다.
저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자신의 강함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을 텐데. 그럼에도 저렇게 이빨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대견했다. 흥미로웠다. 붙어 보고 싶어졌다.
“크허허허허헝! 찌끄레기들은 빠져라!”
먼저 힘을 내보인 것은 로칸 쪽이었다. 광기의 함성을 담아, 캬루스의 뒤에 도열한 적들에게 일갈을 했다.
고작 마스터 레벨인 주제에 마스터 레벨은 물론 하이 마스터까지 다수 섞인 그들에게 하는 말로는 실로 오만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 고함에 담긴 저릿한 기운에 아무도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더구나 로칸은 아직 광전사의 진짜 힘인 버서크를 사용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들었나 당장 저 망아지 같은 놈을 잡아다 꿇어앉힐 게 아니라면 끼어들지 말게.”
검은용군단 속에 깔린 그 묘한 침묵 속에서 캬루스가 낄낄대며 웃었다.
“캬루스 님이 직접 나서실 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제가 저놈의 무릎을 꿇리고 목을 베어 오겠습니다.”
그때 우람한 덩치의 오크 하나가 그의 앞으로 나섰다. 딱 봐도 하이 마스터였다. 당장 마스터 레벨만 되도 로칸의 기세에 눌려 능력치가 깎이고 행동이 위축되었으니까.
놈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캬루스 대신 로칸과 겨룰 것을 청했고, 캬루스도 재미있다는 듯 그것을 승낙했다.
“그래 보시든가.”
저벅저벅.
놈이 로칸을 향해 걸어오자 절로 길이 열렸다. 유저들이 놈의 기세에 위축되어 슬금슬금 몸을 피한 것이다.
그 덕분에 유저들이 학살되는 것은 늦추었기에 로칸도 한 발 앞으로 나섰다.
하이 마스터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 역시 마스터 스킬을 써야 할 테지만 다행히도 그에게는 시간 역행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해볼 만했다.
잘만 이용하면 오히려 시간을 꽤나 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오크 하이 마스터 바쿠칸이다.”
놈은 로칸의 앞에 당당히 서서 자신이 덩치만큼 커다란 대검을 땅에 꽂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눈빛으로 로칸을 내려다보았다.
“내 이름은, 알지 ”
반면 로칸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를 도발했다.
싸움에 앞서 서로의 이름을 아는 것. 그것은 상대의 명예를 존중하는 일이었다.
물론 알고는 있지만 직접 언급하지도 않는다니 그것도 하이 마스터가 아닌 고작 마스터 레벨 따위가
대번에 바쿠칸의 눈빛에서 불똥이 튀었다. 근육이 꿈틀거리며 당장이라도 대검을 들어 로칸의 정수리를 쪼개 버릴 듯 했고, 매서운 투기가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흐억!”
그나마 가까이에 있던 인간 유저들이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투기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능력치가 깎이고 다리가 후들거린 것이다.
그러나 로칸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여러 타이틀 효과가 그를 굳건히 지키고 섰기 때문이다.
“시작할까 ”
“왜, 선공이라도 양보해 줘 ”
히죽.
부들거리는 바쿠칸을 다시 도발하자 이번에는 즉각 반응이 왔다. 놈이 대검을 뽑아 들더니 곧장 횡으로 휘둘러 온 것이다.
피유우웅!
공간이 서럽게 울었다.
검이라기보다 철퇴나 둔기처럼 휘두르자 피리 소리 같은 파열음이 났다.
“자, 양보해 줬다.”
하지만 역시나, 로칸에게는 닿지 않았다.
로칸은 예상했다는 듯 백스텝을 밟아 가뿐히 피해 내더니 비웃음을 띠고 그를 조롱했다.
분에 못 이긴 일격이긴 했으나, 그의 말처럼 선공을 양보한 것처럼 된 것이다.
“언제까지 나불거릴 수 있는지 보자!”
덕분에 바쿠칸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누가 보면 레드 오크라도 되는 줄 알 것처럼, 희한하게 얼굴만 달아오른 채로 대검을 롱 소드처럼 마구 휘둘렀다.
‘이 힘 센 돼지 새끼가…….’
자신이 유도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저돌적으로 나오는 모습에 로칸도 살짝 긴장했다. 일대일 상황이 만들어지면서 몇 가지 타이틀이 잠긴 상태인 것이다.
그 봉인 아닌 봉인을 풀기 위해서는 작은 장치가 필요했다.
“퀘스트 발동.”
로칸은 어렵사리 놈의 공격을 피해 내면서 또 하나의 퀘스트를 발동시켰다.
[호롤롬성 방어전][퀘스트]
검은용군단의 습격에 맞서 호롤롬성을 방어하라.
-성공 조건 : 호롤롬성의 방어
-성공 보상 : 1골드
내용은 간단했다. 그들이 등지고 있는 호롤롬성의 방어.
다만 성공 보상이 이상했다.
이만한 일을 맡기면서 성공 보상이 고작 1골드라니 아무리 유저가 많다 한들 너무한 처사였다.
그러나 그 또한 최대한 빠르게 퀘스트를 발동시키기 위한 방법일 뿐이었다.
[방어전]이 인정되는 순간 아주 강력한 타이틀을 발동시킬 수 있으니까.
[타이틀 ‘최초의 기사’의 효과로 ‘기사도’가 발휘됩니다. 방어전 진행 시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타이틀 ‘최초의 점령군’의 효과로 방어전 진행 시 모든 능력치가 20% 상승합니다.]
[타이틀 ‘최초의 점령군’의 효과로 적과의 인원 차이에 비례해 공격력과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퀘스트 발동과 함께 타이틀 효과가 발동했다.
강력한 힘이 근육에 스며들고 자신감이 솟았다. 지금이라면 저 흉악한 오크 놈과 팔씨름을 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스트라이크!”
로칸이 난무를 보는 듯한 검격의 사이로 배틀 액스를 묵직하게 찔러 넣었다.
쩌엉!
묵직한 감각과 함께 바쿠칸의 대검이 처음으로 멈추었다. 이게 아닌데 하는 듯한 표정과 함께 표정에 당황이 서렸다.
“뭐, 이 새끼야. 난무!”
“큭, 웨폰 가드!”
이번에는 로칸의 차례다. 힘에서 차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로칸이 적극적인 공세를 취했다.
바쿠칸으로서도 방어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쉬이 막아 낼 수 없는 강격.
그러나 그는 하이 마스터다. 이대로 밀리고 있지만은 않았다.
“오라 붐!”
무기를 매개로 오라를 터트리며 로칸을 타격해 밀쳐 냈다.
“큭!”
이런 경우 방어 스킬이 부족한 로칸이 불리했다. 때문에 로칸은 바쿠칸의 기대와 다른 선택을 했다.
피해를 상쇄하며 물러서는 대신, 방어력과 생명력을 믿고 오히려 몸을 밀어 넣은 것이다.
“반격!”
로칸의 몸이 뒤로 쭉 밀려나는가 싶더니 급격히 속도를 내며 놈에게 짓쳐 들었다.
오라 붐의 대미지를 몸으로 받아 내며 대미지를 맞교환했다.
그러나 이쪽은 뻥튀기된 치명타 대미지까지 더해진 상태.
방어 스킬을 전개할 새도 없이 검을 들어 막으려던 바쿠칸의 옆구리에 로칸이 나무꾼처럼 배틀 액스를 박아 넣었다.
“크헉!”
쿠웅!
그 한 방에 바쿠칸의 거체가 하늘을 날았다. 볼썽사납게 바닥을 구르더니 한 손으로 옆구리를 부여잡고, 다른 한 손으로 대검을 땅에 짚으며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충격은 몸에 남아 있지만 형편 좋게 바닥에 누워만 있다가는 목이 달아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왜, 개미가 말이라도 걸어 ”
그러나 로칸은 달려들지 않았다. 농락하듯 가만히 서서 긴장하고 다음 공격에 대비하는 놈에게 대화를 걸었다.
“이 개 같은 인간 놈이!”
“뭐래는 거냐 돼지 새끼가!”
콰과과광!
로칸과 바쿠칸이 다시 부딪쳤다. 고작 마스터 따위에게 밀렸다는 사실이, 추태를 보였다는 사실이 치욕스러운지 일격, 일격에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로칸을 거꾸러뜨리기는 무리였다. 정예들을 추려 비교적 적은 인원을 끌고 왔다지만 로칸의 타이틀 효과가 최대치까지 적용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아쉽군.’
그럼에도 로칸은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모두가 ‘관전’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면 더 강해질 수 있는데.
전투 상태로 인식되지 않아 만인살의 효과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투는 박빙으로 흘러갔다.
바쿠칸이 뜨거운 콧김을 씨익 하고 뿜어 댔지만 분노만으로는 로칸을 쓰러뜨릴 수 없었다.
“어디 이것도 막아 봐라!”
계속되는 공방에도 제대로 이득을 보지 못하자 바쿠칸이 몸을 빼냈다. 전신의 마나를 끌어 올리며 마스터 스킬을 발동시켰다.
“거인의 일격!”
순간, 놈의 대검이 거대한 기둥으로 탈바꿈을 하고 로칸을 향해 무너져 내렸다.
“……!”
콰과과과과과광!
초토화!
놈의 검이 닿은 모든 공간이 파괴되었다.
붕괴된 건물에 깔린 것처럼 압사당한 듯 납작해지며 유저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소멸해 버렸다.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로칸도 마찬가지였다.
“후욱, 후욱!”
모든 것이 사라져 평평해진 대지를 바라보며 바쿠칸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건 피할 수 없다. 더 큰 힘으로 막아 내지 않는 이상 이 기술을 피하거나 막아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구나 이렇게 가까운 위치에서는 더더욱!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로칸의 시체를 눈으로 훑으며 비로소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멍청한 녀석!”
“……!”
그리고 그때, 캬루스가 놈을 향해 혀를 찼다.
소름끼치도록 섬뜩한 기운이 등을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괴력. 파멸의 일격.”
꽈아아앙!
급히 허리를 비틀어 방향을 전환했지만 너무 늦었다. 그보다 한발 먼저, 사슬을 손에 감은 솥뚜껑만 한 주먹이 놈을 강타했다.
방어력을 무시하는 무지막지한 일격이, 하이 오크의 괴력에서 일어난 거력까지 더해진 채로 파고들었다.
“어, 어떻게…….”
그 한 방에 바쿠칸의 어깨가 꿰뚫렸다. 그야말로 관통. 어깨 부근에 주먹 크기가의 구멍이 생겼다. 간신히 목숨은 부지했지만 전투력은 이미 급감했다고 봐야 했다.
그런 놈의 시선이 로칸에게, 그가 나타난 ‘아래’로 향했다.
“……땅굴 ”
그곳에는 집게발을 부딪치며 주인을 대신해 승리의 기쁨을 만끽 중인 디그독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