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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랭커 회귀하다-204화 (204/500)

# 204

하프엘프의 참전 (1)

진영 대 진영의 대전쟁이 발발했음에도 하프엘프들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간단하다. 싸우는 것보다 싸우지 않는 것이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토에 대한 욕심도 딱히 없었고, 애초에 호전적인 성격도 아니다.

영역을 침범하는 존재를 용서하지 않지만 먼저 나서서 싸움을 걸기에는 너무 온순했다.

‘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지.’

그러나 딱 한 가지가 끼어들면 이야기가 달랐다.

바로 세계수.

세계수의 부활을 종족 퀘스트로 삼고 있는 그들인 만큼, 세계수에 위협이 되는 어떤 행위든 발견한다면 아주 저돌적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침묵도 세계수의 재목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었다.

‘사실, 간단하잖아 ’

그렇다면 어떻게 하프엘프들을 전장으로 끌어낼 수 있을까.

간단하다. 움직이지 않는다면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세계수의 재목들을 지킬 수 없을 것이라고 강한 압박을 넣어 주면 되었다.

문제는 그것이 ‘검은용군단’의 소행이어야 하고, 그리기 위해 수작을 부린 것을 절대 걸리면 안 된다는 제한이 붙었지만 그거야 당연한 일이다.

‘안 걸리면 장땡이지.’

모든 것을 해도 된다. 걸리지만 않는다면.

로칸이 군대에서 배운 상식 중 하나를 떠올렸다. 머릿속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죽음의 늪에 입장하셨습니다.]

[검은 마기가 몸과 정신을 침습하기 시작합니다.]

[주의하세요! 장시간 머무를 시 능력치 저하와 부정적인 정신 계열 효과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불굴의 의지 효과로 모든 부정적인 정신 계열 효과에 저항합니다.]

목표는 검은용군단 중에서도 언데드 지역, 죽음의 늪이라 불리는 필드였다.

한창 전쟁이 한창인 최전방과는 다른 지역이다.

분쟁 지역에 속하는 비교적 변두리 지역으로, 인근 경계에서의 전투는 늘 검은용군단이 열세지만 바로 이 ‘늪’ 때문에 정작 황금사자 진영에서는 승리하고도 제대로 전진을 하거나 점령하지 못하는 비운의 지역이기도 했다.

“그게 어디 있더라…….”

황금사자 진영은 물론 언데드가 아니고서는 흑마력을 다루는 클래스가 아닌 이상 버티기 힘든 지역 특성 때문에 유저들도 퀘스트가 아닌 이상 잘 들어오지 않았기에 로칸도 정보는 많지 않았다. 퀘스트를 위해 딱 한 번 와 본 것이 전부였으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기억하는 이유는, 그만큼 강렬한 지역이 남았기 때문이다.

“으으, 언데드는 코도 없는데 이 지독한 냄새를 왜 맡아야 하는 거야 ”

“참아, 인마. 여기에 오래 있기만 해도 능력치가 오르는데 이 정도는 참아야지.”

은신한 채 늪의 안쪽으로 조심조심 움직이던 로칸의 곁으로 언데드 유저들이 몇 번이나 스쳐 지나갔다. 검은 마기가 충만한 지역의 효과가 언데드에게는 굉장한 플러스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른 종족들에게는 디버프 효과를 주지만 유독 언데드만큼은 가만히 있어도 검은 마기가 흡수되어 능력치가 상승했다.

그러니 언데드 유저라면 이곳을 필수적으로 거쳐 갈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발각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로칸의 가까이까지 접근한 자들도 있었지만 레벨 차이가 워낙 큰 관계로 무사히 지나칠 수 있었다.

죽음의 늪의 적정 사냥 레벨은 210 정도. 이제 막 클래스 익스퍼트를 달아 로칸과는 거의 100레벨 가까이 차이가 나는 언데드 따위로는 자동 은신 해제가 발동하지 않았다.

‘이쯤인 거 같은데…….’

그런 놈들을 지나쳐 로칸은 죽음의 늪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어갔다.

마기에 중독되어 미쳐 버린 몬스터들이 날뛰는 통에 능력치 상승을 노리고 이곳에 온 언데드들조차 꺼리는 필드였다.

[마기에 물든 흡혈 거목][Lv 234]

그렇게 다시 한참을 들어가자 그렇게 찾아 헤매던 놈을 찾을 수 있었다.

210레벨대의 사냥터에 있기에는 터무니없는 레벨과 특수 능력을 가진 거대한 나무 형태의 몬스터. 속칭 검은 엔트라고도 불리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더 레벨이 높은 엔트보다도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이크!”

은신을 풀자마자 가지를 길게 늘어뜨려 발목을 휘감으려는 놈을 피해 로칸이 황급히 뒤로 몸을 날렸다.

“폭격!”

후우우웅!

그러고는 곧장 손도끼를 날려 놈을 공격하고 다음 공격을 위해 자세를 바로 잡았다.

“끄엉!”

레벨을 생각하면 이 정도 만으로도 충분할 테지만 놈의 생명력은 일반적인 동 레벨 몬스터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이 또한 놈을 상대하기 어려운 점이지만, 진짜는 놈을 상대로 ‘근접’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푸확!

놈의 몸에 폭격이 꽂히며 갑옷 같은 껍질이 부서졌다.

연약한 나뭇결을 드러내는가 싶더니 피 분수 같은 검은 액체를 내뿜었다.

검은 수액.

마기를 사용하는 자들에게는 좋은 영양제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강력한 디버프를 선사하는 놈의 체액이었다.

부스스스.

그뿐만이 아니다. 검은 수액은 훌륭한 공격 수단이자 방어 수단인 동시에 흡혈 거목에게는 치료제 역할을 했다. 상처를 봉합하고 치유 효과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만한 생명력을 가지고 회복 능력까지 갖추었다니!

사기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만났다.

“사기고 나발이고…….”

촤르르륵!

머리카락 같은 가는 줄기를 마구잡이로 뻗어 오며 로칸을 붙잡아 피를 빨려는 거목을 향해 사슬의 폭풍이 쏟아졌다.

말살의 사슬.

그 압도적인 공격력 앞에서는 동 레벨 대비 높은 생명력도, 검은 수액의 회복 능력도 모두 무의미했다.

“레벨이 깡패지!”

퍼버버버버벅! 쿠구구궁.

사정없이 두들겨 대는 사슬의 난무에 거목이 천천히 쓰러졌다.

“그럼 채집을 시작해 보실까 ”

본래 놈에게 섣불리 가까이 가는 것은 바보짓이었다. 검은 수액은 그쳐 스치기만 해도 효과가 발동하고, 심지어 전염까지 되기 때문이다.

검은 수액에 중독된 다른 몬스터 등과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디버프 효과가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더구나 완전히 씻어 내지 않는 이상 일반의 상태 이상 회복 스킬로도 쉽게 회복되지 않아서 골치가 아프다.

[검은 수액에 접촉했습니다.]

[몸 안으로 검은 마기가 침습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하락합니다.]

[모든 캐스팅 속도가 증가합니다.]

[일정 시간이 지날 때마다 생명력이 하락합니다.]

하지만 로칸은 과감하게 놈에게 다가갔다. 어차피 놈을 타격하며 사슬에 검은 수액이 흠뻑 적셔졌기에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디버프를 받겠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이 근방에서 로칸을 위협할 만한 존재는 없었다. 몬스터든, 유저든.

“읏차.”

퍼억!

때문에 검은 수액의 디버프를 받는 대신 놈의 몸뚱이에 몇 번이나 도끼질을 더했다.

장작을 패듯 쓰러진 놈의 시신을 유린하고, 대신 놈에게서 흘러나오는 수액을 빈 병에 잔뜩 담았다.

[검은 수액을 획득하셨습니다.]

검은 수액은 드롭템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직접 빈 병에 담아 완전히 밀봉한다면 써먹을 수 있었다.

전생에는 아예 이것을 이용해 보스전 등에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보스가 날뛰며 검은 수액을 사방으로 뿌려 버리면 오히려 아군의 피해가 더 커져서 다른 용도로 쓰이는 경향이 더 컸다.

바로 NPC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전쟁에서 상대 마을의 우물에 독을 풀듯 검은 수액을 흘려 약화시킨 뒤 공략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군의 피해도 당연히 생기겠지만 어쨌든 공략이 조금은 더 수월해지니까.

덕분에 아직은 본격적으로 쓰이지 않고 있는 계륵 같은 물건이지만, 로칸이 그것을 알뜰히 모아 담았다.

“한 열댓 마리만 더 잡으면 되려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 마리를 잡을 때마다 구할 수 있는 검은 수액의 양이 꽤나 많다는 것이다.

로칸은 검은 수액의 디버프가 지속되는 채로 계속해서 늪을 헤맸고, 한참이 걸려 겨우 원하던 만큼의 검은 수액을 모을 수 있었다.

“휘유.”

검은 수액을 모두 모은 뒤에는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 개울에 몸을 씻었다.

여전히 검은용군단의 지역인 만큼 그리 깨끗한 물은 아니었지만 검은 수액처럼 디버프를 받는 종류는 아니었기에, 박박 씻어 흘려보낸 뒤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감사합니다.”

“좋은 거래였습니다.”

타이틀 [흑막]의 특수 스킬인 신분 위장을 사용한 채 검은용군단 소속의 유저와 거래도 마쳤다.

본래 다른 진영 간에는 별도의 거래 창을 열 수 없지만 서로 아이템 또는 골드를 드롭해 놓고 주워 가는 방식으로는 거래가 가능한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사기를 치는 자들도 많아 조심해야 했지만 여차하면 박살을 내 버릴 생각으로, 로칸은 홈페이지에서 거래자를 찾은 뒤 거래를 성사시켰다.

“이제 가 보실까 ”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음흉한 미소와 함께 하프엘프들의 지역으로 이동했다.

“오, 자네로군.”

전쟁이 시작된 이후 경계를 꽤 강화하고 있는 하프엘프들이지만 로칸에게는 ‘하프엘프의 친구’ 타이틀도 있었고, 평판 효과 등 각종 보너스 요소들이 있었다.

어중간한 다른 유저들이라면 제지를 당했지만 그가 원한다면 들어가지 못할 곳은 많지 않았다.

그렇게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다름 아닌 ‘온실’이다.

세계수의 묘목을 기르고 각종 영초들을 길러 내는 하프엘프들의 온실.

이미 와 본 적 있는 곳이기에 능숙하게 길을 헤치고 간 로칸은 으슥한 곳을 골라 인벤토리를 열었다.

검은 수액을 꺼내 조심스럽게 이곳저곳에 뿌리기 시작했다.

푸쉬쉬쉬쉭.

검은 수액과 접촉한 식물들이 빠르게 변색되어 갔다.

생명력을 잃는 것은 물론 잎으로, 줄기로, 가지와 뿌리로 그 저주받은 힘을 뻗어 보내며 대지를 물들이고 주변의 땅을 변질시켜 갔다.

“라이즈 언데드.”

여기서 한 가지 더. 로칸은 자신에 대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 검은용군단 유저에게 구입한 네크로맨싱 아이템을 사용했다.

네크로맨서 유저가 아니더라도 언데드를 소환해 낼 수 있는 소모품이다.

다만 주인을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소환자를 공격하기도 하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그런 것쯤은 로칸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박살 내는 것은 일도 아니고, 털끝 하나 닿지 못하게 하며 농락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으니까.

“자, 마구 날뛰어 봐라.”

그러고는 곧장 몸을 일으키는 언데드들을 피해 몸을 빼내, 하프엘프들이 낌새를 채기 전 온실을 떠나 다음 지역으로 이동했다.

세계수와 관련 있는 거의 모든 지역.

로칸이라도 들어갈 수 없는 하프엘프들의 금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을 빠르게 돌며 검은 수액을 뿌리고 언데드를 일으킨 로칸은 아무도 모르게 다시 후쉬칸성으로 돌아왔다.

전장이야말로 그의 알리바이를 가장 확실하게 만들어 줄 장소이니까.

‘우기면 장땡이지.’

특히나 ‘작전 중’이라는 핑계는 무엇보다 강력하다.

설령 로칸을 의심하는 이들이 있더라도 동일 시간에 비밀 작전을 수행 중이었다고 하면, 하프엘프의 림주들이라도 인간 후작인 로칸을 함부로 몰아세울 수 없었다.

‘그 전에 생각할 겨를도 없을 테지만.’

물론 그런 것을 생각할 시간도 없이 세계수의 재목들을 되살리기 위해 분주할 테지만 말이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원하던 결과가 나왔다.

[하프엘프, 참전 선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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