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
작전명 앤트맨 (4)
결과적으로, 트롤들은 후쉬칸성을 탈환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하이 마스터 하나를 잃었으며 스물에 가까운 마스터와 3천에 달하는 클래스 익스퍼트급 병사들을 잃었다. 로칸이 돌파만을 중심으로 힘을 썼음에도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것이다.
이 정도면 후방의 주요 거점 하나분의 전투 병력이 증발한 셈이었다.
‘멍청한 놈들.’
전 성주를 포함해 여섯이나 되는 하이 마스터가 일제히 나섰다면 로칸을 죽일 수도 있었겠으나, 후쉬칸을 탈환해야 한다는 조급함과 그 안에 무슨 함정을 파 놓았을지 모른다는 조급함이 병력을 나누게 만들었다.
한데 모여 후쉬칸 탈환전을 벌이는 대신, 각개전투로 모여들어 가능한 빠르게 성을 되찾는 것에 주력한 탓에 오히려 각개격파를 당하며 소중한 하이 마스터까지 잃게 된 것이다.
게다가 로칸은 돈은 돈대로 두둑이 챙기고 무사히 몸을 빼내기까지 한 상태였다.
트롤들의 일방적인 손해라고밖에 볼 수 없는 대승을 거두었다.
“피해는 ”
“마스터급 둘과 익스퍼트급 서른이 사망했습니다. 부상자들은 회복에 들어갔으니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인간 측에도 피해가 없지는 않았다.
트롤들에 비하면 약과이긴 하지만, 인간은 고레벨의 숫자가 더 적으니까 작은 피해도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델라스는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커다란 대승에 기뻐하며 대답했지만 로칸의 표정은 좀처럼 풀릴 줄을 몰랐다.
그가 이만한 승리를 거둔 것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당장 날뛰며 좋아하기보다는 한 발 앞의 상황을 내다볼 필요가 있었다.
“놈들의 밑천을 싹 털어 왔으니 놈들에게 시간을 주어서는 안 돼. 그러나 섣불리 덤벼들었다가는 이쪽의 대가리가 깨지겠지. 트롤 사냥꾼은 어떤 종족이든 사냥할 준비가 되어 있는 놈들이니까.”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
로칸의 신중한 발언에 탈라란과 델라스가 침을 꿀떡 삼켰다. 이미 전 병력을 이곳에 집결시킨 마당에 어쩌자는 것인가 사냥이나 하다 돌아가자고
“어쩌긴, 신중하게 털어먹어야지.”
씨익.
그들을 돌아본 로칸이 사악한 미소를 피워 올렸다. 사실 이미, 후쉬칸 공략전은 준비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투석기 설치 완료!”
“발리스타 설치 완료!”
“지정한 위치로 이동 중!”
로칸이 선택한 방법은 의외로 정공법이었다.
공성 병기를 이용해 이미 넝마가 된 성벽과 성문을 다시 두들기고, 그 과정에서 가능한 많은 숫자의 트롤을 사냥한다.
적에게는 이미 방어 시설과 수성용 병기가 사라진 상태. 어떻게든 돈을 긁어모아 새로 설치를 한다 해도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쏴라.”
피유유융. 콰광!
이쪽의 공격력과 사거리가 더 앞설 테니까.
로칸이 강화술사를 이용해 강화시킨 병기들에, 일부는 드워프 진영에서 공수해 온 병기들도 섞여 있었다.
그들 역시 전쟁을 치르는 중이라 구하는 것이 만만치는 않았지만 단 몇 기 정도라면 웃돈을 주고 빼내 올 수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의 힘이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크악!”
“막아라! 어떻게든……!”
성벽을, 혹은 성벽 너머로까지 투사체가 떨어지기 시작하자 후쉬칸성 내부에서는 난리가 났다.
드워프들이 그랬던 것처럼 스톤 엣지로 바위를 소환해 쏘아 내기도 했지만 화염 포션, 폭발 포션, 독 포션까지도 담아 날리기 시작한 것이다.
트롤이 생명력 회복에 특화된 종족이라지만, 그들이라고 여러 대미지에 장점만 갖는 것은 아니었다.
[트롤 사냥꾼 히후락이 정제된 사멸독에 중독되었습니다.]
일정 수준 이하의 독쯤은 생명력으로 커버해 버리는 놈들이지만, 오히려 한계 이상의 독에는 더 빨리 중독되고 더 큰 피해를 입는 것이다.
생명력 회복이 빠르다는 것은 그만큼 몸 안의 순환이 빠르다는 의미이기도 했기에, 독은 어떤 의미에서 트롤들의 천적과도 같았다.
그런 독들이 안개처럼 피어오르며 놈들을 덮치자 놈들도 가만히 엉덩이를 뭉개고 있을 수만은 없게 되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앉아서 당하게 생겼다.
“성문이 열린다!”
“모두 전투준비!”
결국, 트롤들이 성문을 열고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두들겨 맞고만 있느니,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전면전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조차도 ‘전력’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이미 한 번 당해 본 경험이 있기에, 언제 어떻게 성안으로 숨어들지 모르는 로칸을 경계하기 위해 병력의 일부는 쪼개어 성 안쪽에 놓아 둘 수밖에 없었다.
내성 안으로 모든 병력을 집중시키는 것으로 방어를 굳히며 여섯의 하이 마스터 중 무려 넷을 동시에 내보냈다.
마스터의 숫자만도 무려 오십에 가까웠으니 접근하는 동안의 피해를 고려하더라도 저 거지 같은 인간들의 부대쯤은 말끔히 지워 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로칸이라는 변수를 제외하면 전력상으로 거의 2배에 달하는 수준이었으니까.
“가라! 놈들을 해치워라!”
하지만 변수는 또 있었다. 바로 유저들.
로칸은 여러 퀘스트를 통해 모아 놓은 유저들을 이번 기회에 싹 풀었다.
카잔티아에서 끌고 온 병력도 무려 4만에 육박했지만 유저들의 숫자 또한 2만을 넘겼다. 드워프들이 아이템을 미끼로 끌어 모은 숫자보다 무려 2배나 많은 숫자였다.
심지어 이번 공략전에 대해 언급이 없던 상태에서 급하게 끌어모은 숫자가 그러했으니 작정하고 모았다면 3만, 아니 4만에 이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슬슬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꽤 많은 이득을 볼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인식한 유저들은 적극적으로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다.
“우와아아!”
“어차피 몇 놈 빼면 다 거기서 거기야! 이참에 레벨 업 좀 해 보자고!”
“저놈 템 좋아 보이는데 좋아, 저건 내 거다!”
“흐흐! 저놈들은 광역기 방어도 없는 거 맞지 다 죽었어!”
기사들의 지시에 따라 기세 좋게 달려 나가는 유저들.
그 덕에 병사들은 계속해서 공성 병기를 운용할 수 있었고, 그중 일부는 달려 나오는 트롤의 후방에 꽂히기도 했다.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
주눅 든 모습 없이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유저들의 모습에 트롤들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지만 실상 말처럼 쉽게 쓸어버리지는 못했다.
그들의 대부분이 유저들과 비슷한 클래스 익스퍼트급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상대의 주력인 마스터, 하이 마스터가 건재한 상황에서 쉽게 마스터 스킬을 쏟아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와아아아아아아!”
결국 치열한 난전이 시작되었다.
마스터의 숫자가 월등하고, 인간 측에서는 마스터와 하이 마스터가 굳이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기에 약 3만 병력인 트롤들이 되레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좀비처럼 밀려드는 그 기세를 쉽게 꺾이지 않았다.
더구나 유저들은 인간의 특기인 ‘협동’을 통해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시작했다.
제대로 합만 맞추면 마스터 레벨도 꺾을 수 있는 유저들이 소규모지만 단단히 뭉치기 시작하자 트롤들도 좀처럼 뚫어 내기 어려운지 밀고 들어오는 속도가 점점 늦춰졌다.
거의 답보 상태에 이르렀다.
로칸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바로 그때였다.
“반가워, 친구들. 나 보고 싶었지 ”
놀랍게도 로칸이 나타난 위치는 트롤의 부대보다 훨씬 뒤쪽, 그것도 성문의 바로 아래였다.
“언제 ”
“막아! 아니 죽여! 놈은 혼자다!”
‘까고 있네. 불과 2~3시간 전에 한 명한테 털려 놓고 ’
이번에도 카이를 이용한 은밀한 기동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내성 입구까지도 갈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미 진출해 있는 트롤들을 동요시키기 위해서.
예상대로 자신을 발견한 트롤들은 돌아와야 하나 그대로 밀어붙여야 하나 갈팡질팡하기 시작했고, 그때 인간 측의 본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자! 사냥꾼 따위는 산으로 돌려보내 버려! 영혼의 언덕이 있는 그곳으로!”
로칸의 등장이 신호인 것이다.
“쏴라!”
“내성에 접근하지 못하게 해!”
덩달아 바빠진 것은 내성에 머무르며 수비하던 트롤들이었다.
그들은 로칸을 발견하자마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활시위를 당겨 댔고, 조합 스킬이며 마스터 스킬을 아끼지 않고 쏟아부었다.
로칸 하나만 잡으면 이 전쟁이 끝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끼지 않고 모든 것을 게워 냈다.
“카이!”
끼윳! 콰과과광!
그런 놈들을 향해 날아든 것은 카이의 거대한 몸뚱이였다.
대붕으로 변할 때면 로칸조차 혀를 내두를 만큼 어마어마한 생명력을 지닌 카이가 놈들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 내고 내성의 1층 입구를 들이받은 것이다.
쿠구구구구구궁!
그대로 내성 자체가 무너지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만큼 커다란 소음이 전장 가득 울려 퍼졌다.
내성 위의 열린 창문을 통해 화살을 쏘아 내던 녀석들까지 균형을 잃고 쓰러지거나 창밖으로 떨어질 정도의 큰 충격이었다.
그래 봤자 실질적인 대미지는 거의 없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로칸에게 필요한 것은 아주 잠깐의 시간이었으니까.
[영혼 수집가의 권능][에픽]
영혼의 힘을 쥐어짜 이적을 발휘할 수 있는 영혼 수집가의 권능이 담긴 반지.
-영혼 수집 : 5,042 / 10,000
-사냥한 영혼을 수집할 수 있다.
-자신보다 20레벨 이상 낮은 영혼은 수집할 수 없다.
-수집한 영혼을 소모하여 이적을 발휘할 수 있다.
-이적 [강화] : 소모 영혼 100
-이적 [영혼의 시계 되감기] : 소모 영혼 1,000
-이적 [영혼 군단] : 소모 영혼 5,000
-이적 [초월 각성] : 소모 영혼 10,000
바로 영혼 군단을 소환해 낼 시간 말이다.
“영혼 군단 소환.”
우우우우우웅. 키아아아아아아악!
로칸이 차고 있는 반지로부터 귀곡성이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반지 안에 봉인되어 있던 5천 개의 영혼 중 1천 개가 랜덤하게 선택되어 영혼체의 모습으로 현신했다.
로칸의 충실한 수하가 되어 살육의 빛을 번뜩이기 시작했다.
[영혼 군단에게 지배자의 오라 효과가 적용됩니다.]
“실버 라이온의 광휘.”
[영혼 군단에게 실버 라이온의 광휘 효과가 적용됩니다.]
그뿐이 아니다. 로칸이 가지고 있는 몇 안 되지만 강력한 군단 버프 효과까지 발동했다.
최소 280레벨, 심지어 마스터 레벨까지 끼어 있는 영혼 군단이 한층 강화되었다.
“저, 저게 무슨 ”
“빌어먹을! 소환술사이기까지 한 건가!”
영문 모를 상황에 트롤들이 더욱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지만 로칸의 반응과 판단은 신속했다. 소환된 영혼체의 종류를 파악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우어어어!”
가장 먼저 성문 밖으로 움직인 것은 무려 1백 기에 달하는 ‘생명을 착취당한 고대의 좀비’였다.
생명 착취의 광선을 입으로 쏘아 대는 마스터 레벨의 몬스터. 그들이 한층 강화된 능력을 바탕으로 트롤들의 뒤통수를 노리며 생명을 갈구했다.
“크악!”
포격과 같은 광선은 사거리도 엄청났다.
한참이나 멀어져서 난전 중인 트롤들의 뒤통수에, 등짝에, 그보다 더 아래쪽에 광선을 꽂아 넣었고, 그때마다 적중당한 트롤의 몸체가 부르르 떨리며 무기력해졌다.
푸확!
그런 틈을 타 치명타를 날리는 자들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 남 좋은 일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로칸 역시 확실하게 경험치를 빼앗아 먹고 있었다.
“그럼 가 볼까 ”
좀비의 후방에 대기하는 1백 기를 제외한 나머지 8백 기의 영혼 군단은 이미 내성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외성 쪽은 이미 불바다에, 진한 독무가 펼쳐진 상태였지만 영혼체인 그들에게는 소용없는 일이었다. 한껏 강화된 놈들이 몸을 바쳐 길을 뚫어 주고 있었다.
[백독불침의 효과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물론 로칸에게도 마찬가지다.
‘고대 황제가 이런 기분이었군.’
시원하게 뚫려 나가는 길을 보며 로칸은 새삼 고대 황제가 왜 스스로 나서지 않고 부하들에게 대부분의 전투를 맡겼는지 알 수 있었다.
1만을 죽이고도 겨우 3~4천 개밖에 모으지 못한 영혼을 몽땅 소모한 것이 아깝기는 했지만 아끼다가 똥 되는 수가 있었다.
당장 이곳만 무너뜨릴 수 있다면 이후 전쟁이 재미있게 돌아갈 것을 알기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었고, 그 결과가 눈앞에 드러나고 있었다.
후쉬칸성이 진정으로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