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랭커 회귀하다-191화 (191/500)

# 191

만인살 (2)

드워프 대 오크.

오크 대 드워프.

그들의 전투는 꽤나 박진감 넘치는 맛이 있었다.

오크족에는 마법사 역할을 하는 주술사와 위력적인 일격을 꽂아 넣는 궁수들이 있었고 드워프족에도 대지의 신을 모시는 사제와 강철 활을 당기는 원거리 공격수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전투는 거의 근접 전투의 성패에 따라 갈렸다.

양쪽 모두 전사에 특화된 종족인 데다 성격마저 호전적이라 근접 전투로 승부를 가리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함정이나 전술을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힘 대 힘의 맞대결을 벌이는 것이 보통이었다.

끝까지 주문과 원거리 공격을 고수하는 자들이 있다면 대부분 유저들일 정도랄까.

이번 전투 역시 비슷한 양상이었다.

“죽여라!”

“끌끌끌, 또 난전인가 그것도 좋지!”

드워프와 오크가 한 몸처럼 엉겨 붙었고 누가 우위라고 할 수 없는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양측의 주문 사용자들 역시 전투에 직접 참여해 공격을 가하기보다 전사들이 유감없이 싸울 수 있는 판을 만드는 것에 주력했다. 적의 공격 주문과 원거리 공격을 무력화시키거나 아군을 보호하는 데 대부분의 힘을 쏟는 것이다.

“젠장, 이래서야 제대로 꿀을 빨 수가 없잖아!”

덕분에 유저들의 진영에서는 볼멘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국지전이라고는 하지만 수백이 엉겨 붙어 싸우는 상황에서 후방에 자리를 잡고 원거리 공격을 쏟아부으면 제대로 꿀을 빨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적들이 공격을 상쇄해 대는 통에 제대로 공격이 성공하는 것 열 번에 한두 번이 고작인 것이다.

그래도 작정하고 원거리 공격만 날려 댄다면 일부 킬과 어시스트를 주워 먹을 수 있겠지만 그럴 바에는 차라리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이 나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최대한 근접해서 요격당하기 전에 힘을 발휘하는 것. 그러나 그조차도 매섭게 밀려오는 적의 공세를 생각할 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순간적으로 진영이 무너지고 근접해서 캐스팅하던 주문 사용자들이 죽어 나자빠지는 일이 흔하게 일어났으니까.

“막아! 막으라고!”

“씨발, 마스터가 섞여 있으면 어떻게 막으라……. 컥!”

그러나 그렇다고 근접 계열이 이득을 보는 구조도 아니었다.

상대 진영에는 같은 클래스 익스퍼트급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간간이 마스터급도 섞여 있었다.

진영의 일부가 무너지고 다시 빠르게 채워지는 것도 보통 그들이 마스터 스킬을 사용할 때였다.

더구나 전쟁에 나선 것은 산전수전 다 겪은 양 진영의 베테랑 병사들이었기에 유저들의 컨트롤로는 다소 부족함을 느낄 때도 많았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본전치기도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나마 퀘스트 보상이 있기에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 것뿐, 만약 그마저 없었다면 진작 포기하고 다른 사냥터로 도망을 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몇 번을 죽고 장비 한두 개를 떨구더라도 보상만 제대로 받을 수 있다면 충분히 복구하고도 남을 테니까.

그렇게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을 때, 오크족의 후방에서 흙먼지가 일어났다. 단기필마로 수백을 가로지르는 존재가 있었다.

“미친! 저게 뭐야 ”

“하이 마스터인가 드워프 하이 마스터라도 나온 거야 ”

“아니, 인간인데 인간 진영하고는 꽤 거리가 있지 않았어 ”

“종족 협동 작전 아니, 그렇다고 보기엔…….”

볼링. 오크들과 전투를 치르던 유저들은 볼링을 떠올렸다. 고작 말 한 필이 밀고 들어오는 것뿐인데 힘이 좋기로 소문난 오크들이 붕붕 날아 땅이 처박히는 것이다.

아니, 아예 목만 떠오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로칸! 로칸이다!”

“미친, 그놈이 왜 저기서 나와 ”

겹겹이 쌓인 오크들을 헤치며 나오면서도 전혀 속도가 줄지 않는 그의 모습이 가까워지자 유저들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 소리에 드워프 유저도, 오크 유저도 깜짝 놀라 전투를 잊을 정도였다.

“튀, 튀어!”

“밀어붙여! 도망치게 하지 마!”

“가자! 이건 무조건 이기는 싸움이다!”

“아싸, 꽁승!”

팽팽하던 전황이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로칸을 막아선 오크들이 학살당하기는 했어도 아직 선두의 전투는 치열했지만, 로칸의 이름에 겁을 먹은 오크 유저들이 뒷걸음질을 치면서 전세가 확 기울어 버린 것이다.

반대로 승기를 잡은 드워프 유저들은 힘을 내서 밀고 들어갔고, 수에서도 기세에서도 밀린 오크들은 일방적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휠 윈드!”

퍼버버벅!

심지어 전투에 참여한 마스터들이 로칸에게 발이 묶이다 못해 생사의 고비를 넘기게 되면서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이제는 버서크나 광풍 현신을 사용하지 않아도 마스터쯤은 찜 쪄 먹는 로칸이었기에 그를 막아서는 데만 1백 이상의 병력이 집중된 것이다.

“크허허허허헝!”

그리고 그럼에도 그를 막아 내는 것은 무리였다.

로칸이 광기의 함성을 한번 내지르면 사지가 뻣뻣하게 굳어 얻어맞을 수밖에 없는 그들로서는 로칸을 멈춰 세우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크윽, 버서크!”

하지만 저항하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호전적인 성격이 많은 오크들답게, 광전사 클래스를 선택한 NPC는 얼마든지 있었다.

순식간에 두 눈이 붉게 물든 괴물들이 곳곳에서 솟아났다.

“이 새끼들이, 어디서 눈을 부라려 ”

그러나 상대를 잘못 만났다.

이성을 반쯤 상실하는 피에 굶주린 괴물 따위는 진짜 괴물, 진짜 포식자의 앞에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했다.

로칸은 버서크를 쓰지 않고도 진득한 광기를 주위에 흘리며 적들을 다시 도륙하기 시작했다.

“반격. 급가속.”

거친 적의 공격을 막고, 피하고, 반격하여 살을 찢었다. 뼈를 부수고 영혼을 갈랐다.

철저한 기본기 위주의 전투.

애초에 익힌 스킬이 많지 않은 로칸이기도 했지만 클래스를 증명하는 전투이기도 했다.

클래스 익스퍼트든 마스터든, 광인이든 치밀한 계산으로 덤벼드는 놈이든 누구도 로칸의 상대는 아니었다.

덤벼드는 족족 찢기고 망가지며 로칸의 앞에 싸늘한 시신으로 쌓이기 시작했다.

“크윽, 퇴각! 퇴각하라!”

뿌우우.

결국 오크 진영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퇴각 명령이 내려졌다.

마법 뿔피리 소리가 거칠게 반복되며 후퇴하는 아군의 이동속도를 높이고 적군의 속도를 늦추었다.

“어딜!”

콰과과광!

그러나 로칸은 놈들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하나라도 더 잡아야 보상을 높이고, 적의 전력을 깎아먹을 수 있는 것이다.

리프 어택을 사용해 놈들의 퇴각로 한가운데에 떨어지는가 하면 무자비한 폭격이 놈들의 뒤통수를 때렸다.

“우와아아!”

“이겼다!”

“아싸, 수리권 득템!”

“나 백 명 채웠어! 개꿀!”

순식간에 1백 이상의 오크들을 썰어 버린 로칸은 놈들이 일정 거리 이상으로 멀어지자 소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천리마를 소환했다.

말을 달려 다른 국지전이 벌어지는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쫓아! 로칸만 따라가면 버스 탄다!”

그러자 유저들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로칸만 있으면 어지간한 전투에서 공짜 승리를 거둘 수 있음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따라붙기 시작한 것이다.

이동기가 쉴 새 없이 펼쳐졌고, 여유가 있는 자들은 백골마를 소환해 뒤따랐다.

속도의 차이가 있기에 거리는 벌어지겠지만, 어떻게든 놓치지만 않으면 한 발 걸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두두두두두두두두.

그렇게 로칸은 의도치 않게 한 무리의 부대를 이끌고 전장을 누비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숫자는 전투를 거듭할수록 점점 불어났다.

[제발 로칸은 좀 빠져라…….][작성자 : 워보]

진짜 뭣 같네……. 로칸 너무한 거 아니냐. 왜 애들 싸움에 껴서 생태계 파괴하고 있어 얘만 나타나면 전투 자체가 안 되잖아!

대체 우리 진영 길드들은 뭐 하냐!

오죽하면 홈페이지에 로칸을 향한 성토대회가 열렸을까.

로칸이 나타나는 전장마다 상대도 안 되게 깨지다 보니 오크 종족의 유저들은 아예 눈치를 살피다가 로칸이 나타나면 바로 도주하거나 전장을 떠나 사냥터를 전전하는 신세가 되었다.

└크크 : 응 다음 패배자.

└장비빨 : 근데 심하긴 하더라 ㅋㅋ. 무슨 어른 대 아이 싸움 같음. 같은 마스터인데 차이가 이 정도까지 나는 게 말이 되냐 물론 난 로칸한테 빨대 꽂고 꿀 빰. ㅅㄱ

└폰스 : 적대 진영인데 욕해서 뭐 함 ㅋ. 꼬우면 너네도 졸라 짱 센 유저 하나 키워 보든가. ㅋㅋ

└녹트 : 이 생퀴들 말하는 거 보소. 누가 보면 너네가 로칸 키운 줄 알겠다 어쩌다 로칸한테 걸려서 멱살 잡혀 끌려간 놈들이 입만 살았네.

하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검은용군단, 특히 오크 진영의 유저들은 핏대를 세워 가며 소리를 높였지만 이득을 보는 쪽인 황금사자 진영에서는 그들을 약 올리기 바빴고, 결국 화살은 오크 진영의 상위 길드들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라고 별다를 건 없었다.

아직 마스터 레벨은커녕 290레벨까지 갓 올린 유저가 최고 레벨인 까닭에 하이 마스터까지 두들겨 패고 다니는 로칸과 부딪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는 것이다.

대신 로칸이 없는 전장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노력 없이 이득을 보고 싶은 유저들이 대거 드워프 진영으로 몰려감에 따라 비어 버린 다른 전장을 휩쓸고 경험치와 전리품을 싹쓸이하는 것이다.

전장이 열리는 곳은 최전선뿐만이 아니었고 여러 분쟁 지역에서 승전보와 패전 소식이 셀 수 없이 겹쳐 들리기 시작했다.

“개판이군.”

드워프의 편에 서서 오크들을 쓸고 다니던 로칸은 틈틈이 홈페이지를 통해 각 지역의 전황을 파악하며 한마디로 축약했다.

로칸이 트롤의 대군을 쳐부수고 드워프의 편에서 국지전을 몽땅 승리해 버리면서 최전방의 상황은 황금사자 진영이 우세하게 돌아갔지만, 이쪽에 유저들이 대거 몰려 버린 탓에 다른 지역에서는 패전소식이 더 많이 들리고 있었다.

그나마 상위 길드들이 거점을 잡고 분투하며 간헐적인 승리를 따내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검은용군단의 우세였다.

‘슬슬 승부를 봐야 할 것 같은데…….’

게다가 최전선의 드워프 지역에서도 이제는 승리 소식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으니 오크들도 잘 부딪쳐 주지 않는 것이다.

워낙 호전적인 종족이니 이대로 패배하고 물러설 리는 없다고 생각되지만 전투가 잘 일어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대로라면 제대로 재미도 보지 못하고 다른 곳이 먼저 뚫려 버릴지도 모른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

때문에 드워프 성주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자신이라면 이쯤에서 모여든 유저들을 이용해 공성에 나서 볼 만도 할 것 같은데 성안에 무거운 엉덩이를 깔고 앉아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오죽하면 로칸이 다른 지역으로 장소를 옮길까 고민을 할 정도였다.

그나마 트롤의 대군이 한 번 격파당한 후로 트롤 쪽 움직임이 없어 아직은 좀 더 머무를 만했지만, 계속 시간을 끈다면 로칸으로서도 소득을 올리기 위해 다른 곳을 노려야만 했다.

“왔군. 그럼 그렇지.”

그리고 그때, 기다리던 퀘스트가 나타났다.

[취힐라만 공략전][퀘스트]

오크족의 최전방 거점인 취할라만 요새를 공략하라!

-성공 조건 : 취할라만 거점 획득 시 완료

-성공 보상 : 1레벨 상승, 레어 등급의 무기(랜덤), 대량의 경험치, 대량의 명성

-특별 보상 : 공략전 성공 시 기여도에 따라 10위까지 유니크 등급 무기 지급

-퀘스트 진행 중 획득 경험치 1.3배

거점 공략 퀘스트.

드디어 드워프가 오크들을 향해 칼을 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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