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
증폭의 보주 (2)
“문제라고 ”
이리넬의 발언에 모두가 인상을 찡그렸다.
다른 이들도 아닌 하이 마스터들이다. 그들에게 문제라고 말할 정도라며 보통 일은 아닐 게 분명 했다.
모두가 긴장한 가운데, 이리넬이 다시 입을 열었다.
“최근 타락의 힘을 정화할 수 있는 어떤 것을 만들어 내는 것에는 성공했습니다만, 아직 그 힘이 너무 미약합니다. 지금 상태로는 마스터 레벨급의 타락한 몬스터도 정화하기 어렵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
“힘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있나 ”
“우리가 뭘 하면 되지 ”
방법은 찾았지만 연구가 완료되려면 시간이 걸린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딘가의 도시가 파괴되고 있을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는 분명히 큰 문제였다.
그녀가 말하는 개발이 끝날 때에는 이미 모든 것이 멸망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타락의 구슬, 다른 하나는 정화의 힘을 담고 증폭 시킬 수 있는 매개체.”
“타락의 구슬 ”
“매개체 ”
모두가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이리넬이 한숨을 작게 내쉬며 입을 열었다.
“정화의 힘을 키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빠른 방법은 타락의 힘을 제물로 삼을 때 일어나는 강한 반발력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정화의 힘이 타락의 힘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더 강한 힘을 내고, 마침내 이겨 내며 타락의 힘을 먹어 치우는 것이죠. 때문에 정화의 힘이 역으로 잡아먹히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타락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몬스터를 타락시키는 타락의 구슬이죠. 효율은 좀 떨어지지만 그냥 타락한 몬스터를 사냥한 뒤, 시체에 정화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고요.”
“끄응, 그래서 그 타락의 구슬이라는 것은 어떻게 얻을 수 있지 ”
그 말이 조금 어려웠는지 머리를 긁적거리며 묻자 이리넬이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모릅니다.”
“몰라 ”
드워프 하이 마스터가 ‘장난하냐 ’ 하는 눈빛으로 눈을 부라렸지만 이리넬은 조금 위축되었을 뿐, 겁을 먹지 않았다. 학자로서의 자존심인지 이를 악물고 버텨 냈다.
“그건 타락 제조실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야 갓 꼬리가 잡히기 시작한 타락 결탁자들의 은거지이지요.”
타락한 몬스터, 타락 결탁자. 위치가 위치인 만큼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들 들어 본 바가 있었다.
그러나 타락 제조실이라니 그런 것이 발견됐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것도 같지만 점조직으로 되어 있어 추적이 어렵다는 이야기 또한 같이 들은 것 같았다.
결국에는 별다른 힌트도 없는 상태에서 알아서 찾아내야 한다는 소리인데, 지금처럼 조급한 상태에서는 뒷목 잡을 이야기였다.
그때, 구세주 같은 이가 나타났다.
“혹시 필요한 타락의 구슬이 몇 개나 됩니까.”
“열 개……. 일단 열 개 정도면 어지간한 타락의 힘은 흔들어 놓을 수 있을 걸로 보고 있습니다.”
바로 로칸이었다. 이미 아스타페 백작으로부터 회수한 타락의 구슬이 몇십 개나 그의 인벤토리에 들어있었다.
다만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의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 또한 큰 문제는 아니었다.
“받으십시오. 그리고 정화의 힘을 최대한 키워 주십시오. 그랜드 마스터에게도 통할 만큼.”
“이, 이건……! 아니 그보다 그랜드 마스터라고요 ”
그 행동에 이리넬이 두 번 놀랐다.
갑자기 허공에서 수십 개의 타락의 구슬이 튀어나온 것에 한 번, 그랜드 마스터라는 이야기에 또 한 번.
하지만 로칸이 입을 다물자 더 캐묻지는 않았다. 자신의 주제와 역할을 파악한 것이다.
그녀는 이 이상 깊게 파고들 이유가 없었다. 자격이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할 일은 정화의 힘을 최대한 키우고 정화의 보주를 만들어 내는 것뿐이었다.
“타락 제조실을 처음 발견한 것이 저입니다. 나름대로 연구를 해 보느라 이것들을 보관하고 있었죠. 이제 정화의 보주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주시죠.”
“정화의 보주 아, 그래요. 이름 붙이자면 그런 이름이 될 것 같군요. 말씀드린 것처럼 정화의 보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몇 가지 매개체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세계수의 가지, 다른 하나는 증폭의 보주입니다.”
“말도 안 되는!”
그 말에 발끈하고 나선 것은 하프엘프 하이 마스터 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수의 가지는 하프엘프들이 지닌 보물 중의 보물이었으니까.
잘려진 가지에 불과했지만 죽은 것이 아니라 세계수의 생명력을 그대로 담고 있기에 운만 좋다면 굳이 다음 대의 세계수를 찾기 위해 새싹을 찾고, 묘목으로 기르지 않아도 세계수가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마법사가 사용하면 최강의 마법 지팡이가 되고 둔기로 사용해도 미스릴에 버금가는 막강한 병기가 된다.
그런 것을 고작 타락의 힘이나 흩어 버리는 데 사용하라고 아무리 고대 황제가 위험하다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프엘프들의 염원인 세계수의 부활만 이루어 낸다면 그들은 고대 황제보다 더 큰 힘을 쥘 수 있으니까.
“세계수의 묘목은 어떻습니까.”
그때, 로칸이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
“새싹 정도로는 무리겠지만 묘목이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나로는 안 될 수도 있지만.”
그 말에 하프엘프 하이 마스터도 조금은 진정이 됐다.
세계수의 묘목 역시 ‘가능성’을 품은 존재들로서 큰 가치를 지녔지만 최근 어떤 인간의 도움으로 상당히 많은 숫자의 묘목을 만들어 내는 것에 성공했다는 보고를 들은 적 있는 것이다.
그 인간이 로칸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구해 보지.”
그렇다면 로칸이 굳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 구하려면 구할 수도 있겠지만 하프엘프에서 그 정도 투자는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 증폭의 보주뿐이었다.
“증폭의 보주는 어떻게 얻을 수 있지 ”
“그 또한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재료를 모아 새롭게 제작하는 방법과 기존에 만들어진 증폭의 보주를 구하는 것이죠. 하지만 어느 쪽도 쉽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꼭 어느 한쪽을 골라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둘 다 해 보죠. 한 팀은 재료를, 한 팀은 완제품을 구해 보는 걸로.”
“그러지.”
통합 경매장에 매물로 나왔다면 단숨에 구할 수 있겠지만 하이 마스터에게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 말하는 것이 고작 경매장에 올라왔을 확률은 극히 적었다.
그러니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는 소리인데, 넷이 함께 움직이면 더 빠를 수도 있지만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완제품을 구하는 것이 더 빠를 수도 있으니까.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알려 다오.”
“알겠습니다. 다만 재료의 경우 저희가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것도 있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증폭의 보주 제작][퀘스트]
증폭의 보주를 제작하기 위한 재료를 모으자!
-깨지지 않는 크리스털 획득 : 0/1
-균형의 보석 가루 획득 : 0/1
-다섯 잎 클로버 획득 : 0/1
-응축의 주문서 획득 : 0/1
-방출의 마법진 획득 : 0/1
-성공 보상 : 증폭의 보주 제작, 대량의 경험치
[증폭의 보주 획득][퀘스트]
증폭의 보주를 획득하자!
-증폭의 보주 획득 : 0/1
-성공 보상 : 정화의 보주 제작, 대량의 경험치
두 개의 퀘스트가 동시에 나타났다.
결국은 증폭의 보주를 찾아 정화의 보주를 만들라는 것인데, 증폭의 보주 제작에 필요한 재료들을 터치하자 일부는 획득 장소가 나타나고 일부는 물음표만 나타났다.
이리넬의 말처럼 몇몇 재료들은 재료의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정말 몰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다섯 잎 클로버의 경우 생성 위치가 랜덤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럼 팀을 나눠 볼까요 ”
“그 전에 검은용군단 쪽에도 내용을 전달하지.”
노움 하이 마스터가 기계 전서구를 작동시키는 것으로 정보 전달은 간단히 끝이 났다.
이제는 팀을 나눌 차례. 그러나 선호하는 바는 한쪽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한쪽은 조사와 탐색이지만 다른 한쪽은 전투였으니까.
증폭의 보주 완제품이 있는 곳은 총 세 곳이었는데 모두 고대의 마법사들이 잠들어 있는 던전이었다.
아무래도 증폭의 보주가 가진 특성상 주문 사용자들이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다들 숨바꼭질 같은 조사와 탐색보다는 전투를 치러 얻어 낼 수 있는 완제품 획득 쪽을 선호했고, 결국 가위바위보를 통해 팀이 갈라졌다.
“크핫하하! 그럼 고생들 하라고!”
‘……아오.’
드워프와 노움, 하프엘프와 인간. 팀은 결국 이렇게 나뉘어졌다. 패배한 쪽은 로칸이 있는 하프엘프, 인간 팀이었다.
승자인 드워프와 노움은 당연히 완제품을 찾는 쪽을 선택했고, 곧장 첫 번째 던전을 향해 떠났다.
“우리도 움직여요. 일단 위치가 확실한 것부터 찾고, 나머지는 수소문을 하는 게 좋겠죠 ”
“음…… 일단 다섯 잎 클로버는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로칸은 최대한 빠르게 일을 처리해서 놈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리라 마음먹었다.
“네 위치를 알고 계신가요
“아니오. 저는 모르지만 누군가는 알고 있겠죠.”
씨익.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스크린과 키보드를 소환해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거래 게시판에 짧은 글 하나를 작성했다.
[다섯 잎 클로버 5백 골드에 삽니다.][작성자 : 로칸]
-다섯 잎 클로버 5백 골드에 삽니다. 종족은 관계없이 모두 거래합니다.
그것은 짧은 글이지만 금세 커다란 이슈를 불러왔다.
5백 골드! 현금으로 따져도 수천만 원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아니던가
로칸이 가지고 있고, 또 이 시간 벌어들이고 있는 돈에 비하면 별것 아닐 수 있었지만 일반 유저들 기준으로는 로또와 같은 돈이었다.
그런 것을 고작 클로버 하나 찾는 걸로 벌 수 있다고
애초에 클로버 종류는 마을과 필드, 심지어 던전에서까지 볼 수 있는 흔한 종류의 잡템이기에 모두가 눈에 불을 켜는 것은 당연했다. 레벨이 낮아도 누구나 구할 수 있으니까. 다만 그 위치가 랜덤할 따름이다.
물론 네잎 클로버까지는 구했다는 사람을 봤어도 아직 다섯 잎 클로버라는 게 존재한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지만 모두가 희망을 품었다.
아예 보조 직업으로 ‘채집’을 익히는 자들까지 수두룩하게 나타났다. 사냥도 멈추고 다섯 잎 클로버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이른바 클로버 러시라고 불리는 현상이 일어났다.
“괜찮은데 ”
반응이 뜨겁자 로칸은 내친 김에 다른 글도 작성했다.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균형의 보석 가루와 깨지지 않는 크리스털에 대한 제보도 받았다.
어차피 위치를 안다 한들 지금 유저들의 수준으로 획득까지는 가기 어려울 테니 유력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똑같이 5백 골드의 사례를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확실한 정보인지 확인을 거친 뒤, 정확할 경우 후불로 정보료를 지불하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글쓴이가 누군가, 무려 로칸이다. 거짓말을 하고 돈을 지불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차피 고대 황제와 붉은 십자군에 의해 상당수의 사냥터가 파괴되어 곤란하던 차에 잘됐다는 듯 유저들이 이 비공식 퀘스트로 몰려들었다.
“이제 가시죠.”
“……그래요.”
그리고 그사이, 로칸과 하프엘프 마스터는 이미 위치를 알고 있는 응축의 주문서와 방출의 마법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