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고대 황제의 부활 (1)
고대 황제의 유적. 거창해 보이지만 실상은 별거 없었다.
이 말을 고고학자들이 듣는다면 노발대발하겠지만 적어도 로칸의 기준에서는 그랬다.
발굴 중인 유적, 딱 그 정도였으니까.
불과 얼마 전 발굴이 시작된 고대 황제의 유적은 고고학자들이 먼지 털어 가며 무언가를 찾는, 그런 곳이었다.
그럼 로칸도 땅을 파고, 붓질을 해 가며 고대 황제의 유물을 찾아야 할까
그럴 리가. 로칸은 흙바닥에 뒹굴며 보물찾기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차피 여기에는 없어.’
고대 황제의 무덤이 대부분 그렇듯, 이곳은 ‘가짜’이니까.
정확히는 생전의 성세를 과시하기 위한 보여 주기용 무덤이었다. 최대한 화려하게 치장을 해 두었으니 발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보물이 많겠지만, 정작 고대 황제의 시신이나 그가 남긴 유산은 하나도 건질 수가 없었다.
‘진짜는…….’
로칸의 시선이 어딘가로 향했다. 바로 천장. 정확히는 천장에 그려진 일곱 개의 벽화였다.
얼핏 보기에는 고대 황제가 이룬 업적들을 그림과 글로 적어 놓은 것처럼 생겼지만 사실은 그 안에 고대 황제의 진짜 무덤으로 향하는 열쇠가 숨겨져 있었다.
1장. 아주 오래된 옛날, 인간족의 황제가 붉은 십자군을 일으켰다.
2장. 열 명의 기사와 일천의 기사가 붉은 망토를 두르고 한 몸처럼 따르니 모든 종족이 엎드려 경배를 올렸다.
3장. 황제는 모든 것을 짓밟고 영원한 제국을 선포하였다.
4장. 세상을 공포로 다스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을 취했다.
5장. 그러나 그 또한 늙고 병들었다. 아주 길었지만, 결국 끝은 존재했다.
6장. 마지막 순간, 황제는 자신이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하늘 위의 하늘이 있음을 깨달았다.
7장. 너무 늦었음을 통탄하며 붉은 구슬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 다시 돌아올 날을 기약하였다.
‘와, 이게 읽히네 ’
타이틀 비밀 추적자의 효과일까 벽화와 함께 적힌 꼬부랑글자들이 쉽게 읽혔다.
본래는 스킬 북도 따로 없는 고대어 스킬을 직접, 제2외국어 익히듯 익혀야만 읽을 수 있는 것이지만 로칸에게는 아예 한글로 번역되어 나타난 것이다.
군데군데 흐릿하거나 철자가 틀리게 번역된 곳도 있었지만 충분히 문맥으로 토씨 하나까지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과연 유니크+ 등급의 타이틀이 아닌 것이다.
‘이 내용대로라면 가장 주목해야 할 벽화는 바로 마지막.’
그렇게 놀라는 것도 잠시, 로칸은 이곳에 온 목적에 충실했다. 벽화를 통해 황제가 묻힌 진짜 장소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벽화의 내용대로라면 마지막, 붉은 구슬을 봉인하는 곳에 집중해야 했다. 신전 같은 모습을 한 장소에서 붉은 구슬을 봉인하는 고대 황제의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니까.
그러나 로칸은 그것이 페이크라는 것을 알았다. 진짜 중요한 그림은 그 바로 앞에 있는 여섯 번째 벽화였다.
고대 황제가 하늘을 바라보고, 그 하늘에 어떤 도시가 그려진 여섯 번째 벽화.
그 벽화에서 고대 황제가 서 있는 자리가 바로 그가 묻힌 진짜 무덤의 위치인 것이다.
‘스크린 샷 저장.’
로칸은 즉시 벽화의 모습을 사진으로 저장해 두었다. 생각 같아서는 단숨에 찾아내고 싶었지만 로칸조차 그 정확한 위치는 알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의 전공은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신들린 전투였지, 이런 수수께끼나 유적 탐사가 아니었으니까.
때문에 퀘스트가 발동한 후 나타난 결과물들을 때려잡는 것은 잘했어도, 그 과정까지 상세히 알고 있지는 못했다.
‘그놈들이 처음 나타난 게 어디였더라…… ’
다만 전생의 경험을 토대로 대략의 지역을 가늠해 볼 뿐이었다. 어떻게 퀘스트를 진행시킨 것인지는 몰라도, 고대 황제가 부활하여 활동한 위치를 떠올리면 그가 묻힌 장소를 대략 찾아낼 수 있지 않겠나
문제는 그 위치가 꽤나 광범위하다는 것이지만 ‘여섯 번째 벽화’라는 단서가 있으니 한결 나을 터였다.
그렇게 스크린 샷을 확보한 로칸은 즉시 고대 황제의 유적을 벗어났다. 결국 황제의 영혼을 추출해 낼 수 있는 것은 그의 무덤에 있을 테니까.
“이렇게 처음 현질을 하는군.”
고대 황제의 유적을 벗어난 로칸은 현생에서 더 로드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인 게임 결제를 시도했다.
더 로드에서는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만 캐시 아이템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했는데 로칸이 이용한 것도 바로 그런 종류였다.
“프린트.”
컴퓨터 또는 기기에 저장된 이미지 파일을 게임 내로 불러오는 것.
본래는 외부에서 찾은 공략집이나 학생들의 문제집 등을 게임 내에서 손에 쥘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공하는 서비스였지만 로칸이 손에 넣은 것은 좀 전에 찍은 벽화 스크린 샷이었다.
“조수 소환. 길잡이.”
그것을 손에 넣은 로칸은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해 공간을 넘은 뒤 즉시 조수를 불러냈다. 그것도 길잡이 능력을 지닌 조수를.
“이곳을 찾아라.”
그다음 할 일은 분명했다. 벽화에 그려진 고대 황제의 위치를 찾는 것.
이미 과거와 많이 변했을 수도 있는 지형이기에 뛰어난 눈썰미를 지녀야 한다는 문제를 조수 소환으로 해결한 것이다.
물론 길 찾기 관련 스킬을 가진 유저나 용병으로도 발견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럴 경우 ‘소문’이 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용병들이 보고 들은 내용은 주점, 정보 길드 등을 통해 단편적으로 흘러 나가도록 설계되어 있으니까.
전생에는 이 사실을 모르고 은밀히 퀘스트를 진행하던 길드들이 꽤나 낭패를 보기도 했었지.
“길잡이의 감. 길 찾기.”
로칸에게서 프린트를 받아 든 길잡이는 곧장 스킬을 사용해 길을 찾기 시작했다.
이 넓은 땅덩어리에서 수백, 어쩌면 수천 년 전의 그림을 보고 같은 장소를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동시에 이곳은 현실이 아니었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기이한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다.
바로 스킬이라는 이름하에.
“이쪽으로.”
그가 사용한 길잡이의 감은 한마디로 ‘찍기’였다. 길잡이 특유의 감을 이용해 목표한 장소가 있을 법한 방향을 찾아내는 것이다.
현실이라면 그게 뭐냐고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스킬로 발휘된 이상, 적중 확률은 무려 70%가 넘었다.
“서두르지.”
휘익!
로칸이 말을 소환해 내자 길잡이도 비로소 뛰기 시작했다. 말만큼은 아니지만 길 찾기와 이동에 특화된 그의 속도는 평범하게 달리는 말과 큰 차이가 없을 만큼 빠른 것이다.
그렇게 부리나케 달리고 또 달렸지만, 조수 소환 지속 시간 내에는 목적지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제 남은 것은 로칸의 몫. 길잡이가 정해 주었던 방향을 샅샅이 훑으며 달리고 또 달렸지만 좀처럼 벽화 속의 장소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 ”
쩌적, 쩌저적.
야간시까지 발휘하며 밤을 대낮처럼 휘젓고 다니던 그때, 로칸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
정확히는 그의 인벤토리 내부에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
찌액
하프엘프들의 온실에서 손에 넣었던 생명의 빅버드의 알이었다.
그것이 인벤토리 밖으로 튀어나와 부들거리는가 싶더니 알을 깨고 새끼가 태어났다.
알 껍질을 부리로 톡 깨고 밖으로 나와 로칸을 보고 갸웃거렸다.
짹짹!
이제 갓 태어난 새끼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처음 본 로칸을 어미로 인식한 것인지 방긋 웃으며 로칸의 손바닥 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앙증맞은 새끼 빅버드][Lv 1]
고작 레벨 1. 이걸 언제 키워서 써먹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현실이 아닌 게임인 만큼, 그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오리라는 건 로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앙증맞은 새끼 빅버드를 펫으로 등록하시겠습니까 ]
[앙증맞은 새끼 빅버드가 로칸 님의 펫으로 등록되었습니다.]
대답은 당연히 예스. 펫 등록을 마치자 이번에는 다른 알림이 나타났다.
[펫의 이름을 정해 주세요.]
“……카이로 하지.”
[앙증맞은 새끼 빅버드, 카이][Lv 1]
그렇게 이름까지 정한 로칸은 아예 치트 키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포옹. 짹 째액!
로칸이 딴 것은 값비싼 상급 체력 포션. 유저들도 비싸서 쉽게 사 마시지 못하는 그것을 고작 참새같이 생긴 애완동물에게 마시게 하는 것이다.
‘됐군.’
[앙증맞은 새끼 빅버드, 카이][Lv 21]
짭짭거리며 그것을 마신 빅버드의 레벨이 크게 올랐다. 고작 포션 한 병에 20레벨이 오른 것이다.
그렇다 해도 쓸 만한 수준이 되기까지는 너무나 멀었지만 로칸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빅버드의 단기 육성법은 이미 머릿속에 있었으니까.
포옹포옹.
금세 상급 체력 포션을 다 마셔 버린 빅버드를 위해 로칸은 추가로 포션을 몇 병 더 땄다.
고작 참새만 한 새끼 새가 마셔 봐야 얼마나 마실 수 있겠냐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새끼이기는 해도 포만감 수치는 성체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먹이기 위해서는 주인의 등골이 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특수 탈것이었다.
[기운 넘치는 새끼 빅버드, 카이][Lv 57][배 부름]
덕분에 로칸은 가지고 있던 상급 체력 포션을 몇 개나 그 자리에서 소모해 새끼 빅버드의 레벨을 순식간에 50대까지 끌어올렸다.
유저의 레벨 업과는 꽤나 커다란 속도 차이를 보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유저와 똑같이 레벨 업이 어렵다면 누구도 탈것을 키우지 않을 테니까.
짹짹짹!
레벨이 오른 탓일까 태어난 지 몇 분 되지도 않은 새끼인 카이가 힘찬 날갯짓을 했다.
어설프지만, 허공에 제 몸을 띄우기 시작했다.
‘헐.’
이건 로칸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이렇게 하면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로서도 직접 시도해 보는 것은 처음인 까닭이다.
전생에는 탈것을 키우기 귀찮아 다른 유저가 다 키워 놓은 성체를 구매해 버렸지.
때문에 육성의 재미도, 어려움도 느끼지 못한 그였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다. 기다리기에는 너무 오래 걸릴 테니까. 그리고 원하는 녀석을 키워 내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잘 관리해야 했으니까.
“생각보다 시작이 좋은데 ”
많은 사람이 알던 정보는 아니지만, 특수 탈것은 어떤 성장 과정을 거치느냐에 따라 속성이나 능력이 달라진다.
로칸이 상급 체력 포션을 먹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제 어미였던 생명의 빅버드가 가지고 있던 능력을 일깨우기 위하여.
솔로 플레이가 잦고, 일대다수의 싸움을 즐기는 까닭에 일단 튼튼한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로칸과 로칸의 장비 무게를 견딜 만한 힘도 있어야 하고.
파다다닷.
“응 ”
그렇게 로칸의 손바닥을 떠난 카이가 비틀거리며 어디론가 쪼르르 날아갔다.
제 몸을 못 가누는 것 같아 보였지만 로칸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마치 카이가 무언가에 반응한 것 같달까.
“아.”
그리고 발견했다. 다르지만 익숙한 공간을.
세월에 풍화되어 모습이 조금 변하기는 했지만, 밤의 어스름 속에서 카이가 앙증맞은 발로 통통 걸어 다니고 있는 장소는 분명 고대 황제가 있던 그 자리였다.
“찾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