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
격노왕 (3)
쩌저저적!
난무와 조합된 웨폰 브레이크! 생성 스킬 무장 해제의 핵심인 그것이 떨어져 내리자 란스의 주 무기인 랜스도 버티지 못했다.
웨폰 브레이크는 공격을 가하는 쪽인 로칸의 무기 성능과 힘 수치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데 이쪽은 힘도 괴물, 무기도 무려 +8강짜리인 것이다.
무기의 기본 성능만 봐서는 란스도 비슷하거나 오히려 그쪽이 더 좋았지만 강화발의 차이는 엄청났다.
대번에 랜스 전체에 굵은 금이 가고 파편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닿았……다 ”
후드드득!
그리고 마침내 폭풍 같은 연타를 견디고 로칸에게 닿았을 때는, 이미 무기의 중심축마저 무너져 그대로 쇳조각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몸에 닿기는 닿았으되 대미지는 0.
사실상 랜스가 아니라 분필로 찌른 것처럼 찌른 쪽이 바스러져 내렸다.
“뭐 하냐 ”
씨익.
당황한 빛이 역력한 란스를 향해 로칸이 하얗게 이를 드러냈다.
그리고 한 번 더 배틀 액스를 떨쳤다. 조금 전과 같으면서도 다른 스킬이다.
“아머 브레이크, 난무.”
생성 스킬 슬롯이 부족해 정식 생성 스킬로 등록하지는 못했지만 두 스킬의 콤보는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강화되지 못한 두 스킬의 시너지를 아이템의 강화가 충분하고도 넘칠 만큼 커버하고 있는 것이다.
쩌적 쩌저적!
그리고 그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단단히 몸을 감싸던 란스의 갑주들이 넝마가 되어 하나둘 조각나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어어…….”
랜스를 잃은 충격과 몰아치는 연타에 정신 줄을 놓은 란스는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무력화되고 말았다.
이제 가진 것이라고는 달랑 방패 하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였지만 이미 패닉 상태에 빠진 터라 다시 한 번 돌격의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덥다. 끝내자!”
퍼억!
저항조차 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뻔한 일. 로칸은 자비 없이 놈의 목을 쳐 버렸고, 곧 기다리던 알림이 나타났다.
[돌격왕 란스를 처치하셨습니다.]
[폐관 수련 중이던 격노왕 란도르에게 소식이 전해집니다.]
[격노왕 란도르가 분노합니다. 피하십시오. 앞으로 5분 후, 격노왕 란도르가 나타납니다.]
격노왕 란도르의 등장!
그러나 알림의 경고와 달리 로칸은 오랜 친구를 만나는 반가운 표정으로 대기했다.
아예 폭격으로 주변을 날려 버리고 싸우기 좋은 공터까지 만들며 그를 환영했다.
화염 저항의 이점을 살려 놈에게 상태 이상 ‘화상’을 입게 만든다 그럴 생각도 없고 당할 리도 없었다. 이미 타락한 힘까지 거머쥔 녀석이라면 고작 산불 따위에 피해를 입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산불은 어디까지나 적의 증원을 막기 위한 방책일 뿐, 진짜는 격노왕과 로칸의 맞대결이었다.
“왔군.”
“캬아아앙!”
[격노왕 란도르의 워 크라잉에 노출되셨습니다.]
[타이틀 한계 돌파의 영향으로 워 크라잉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로칸과 같은 광전사 클래스인 놈은 광전사 전매특허인 워 크라잉을 내지르며 기세 좋게 등장했다.
놈 정도 되는 레벨과 능력이면 로칸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타이틀 한계 돌파를 보유한 로칸에게는 레벨 차이에 따른 효과가 무용지물!
“흥!”
거기다 오히려 놈의 등장과 함께 수많은 타이틀들이 동시에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능력치를 비롯해 공격력과 방어력이 증가하고, 심지어는 스킬 레벨마저 한 단계 상승했다.
강제로 끌어올려진 능력이기에 300레벨의 그것과 비교하자면 손색이 있었고, 300레벨에게는 ‘그것’이 있으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어차피 상대 역시 300레벨인 것은 아니었다. 타락한 힘 때문에 그에 준하는 힘을 갖추고는 있겠지만 말이다.
“크허허허허헝!”
로칸은 굴하지 않고 워 크라잉을 마주 터트리고, 내재된 폭력성을 드러내며 달려드는 란도르를 향해 쏘아져 갔다.
“쌍격살!”
“난무!”
콰과과광!
그러나 경시하는 마음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보통의 상태라면 눈 아래로 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격노왕은 평범한 산적 두목이 아니었다.
타락한 몬스터.
심지어 타락한 힘의 일부를 제 것으로 체화한 강력한 몬스터였다.
인간의 탈을 썼되 인외종으로 분류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한계와 경지를 초월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쌍도끼를 그저 휘둘러 오는 놈에게 난무를 써서 맞부딪쳐 간 것이다.
“큭.”
문제는 그러고도 경력을 모두 해소해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2격 대 10격.
무려 5배나 더 배틀 액스를 휘두르고도 놈의 쌍도끼에 실린 힘을 완전히 해소해 내지 못했다.
로칸은 시큰거리는 손목을 부여잡을 새도 없이 빠르게 물러나 다음 공격에 대비했다.
“감히 본좌의 계획을 망쳐 놓다니, 죽여 주마!”
심지어 놈은 타락한 힘을 이끌어 그만한 파괴력을 발휘하고 있음에도 기존에 만난 다른 타락한 몬스터들처럼 이성을 잃지 않았다.
동생의 죽음 때문인지 조금 많이 격앙된 것처럼 보이지만 어쨌든 그 힘을 컨트롤해 내고 있는 것이다.
“연환참격!”
“회피!”
란도르가 연이어 쌍도끼를 떨쳐 내자 로칸으로서도 함부로 부딪히기 어려웠다. 그만큼 타락한 힘을 거칠게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로칸의 공격력도 어마어마했지만 타락한 힘이 가지는 순간 파괴력은 만만치 않았다.
진심으로 부딪히면 호각을 이룰 수도 있겠지만 놈의 힘이 최고조일 때 굳이 부딪쳐 주는 것은 로칸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아슬아슬하게 피해 내며 계속해서 틈을 노렸다.
“미꾸라지 같은 놈! 언제까지 피해 다닐 거냐!”
녹빛 귀기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로칸을 핥은 란도르가 거듭되는 회피에 노성을 터트렸다.
아무리 봐도 자신과 같은 타입인데, 자꾸 부딪쳐 주지 않으니 더욱 화가 치미는 것이다.
“그거야 내 맘이지.”
그러나 로칸은 놈이 뭐라 하든 말려들지 않았다. 계속해서 약을 올리듯 피해 내며 놈의 힘을 소진시켰다.
일격 일격에 스민 타락한 힘은 마법 같은 방출 계통의 힘에 비해 소진 속도가 느렸지만, 어쨌든 헛방을 날릴 때마다 타락한 힘이 소진되는 것은 분명하니까.
그런 상황이 반복되자 참지 못한 것은 란도르였다.
“쥐새끼 같은 놈! 어디 이것도 피하나 보자. 버서크!”
가뜩이나 거친 성격이 동생의 죽음과, 타락한 힘의 영향으로 더욱 거칠어진 터였다.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참은 것도 용할 정도였다.
선언처럼 외친 그의 시동에 눈 속에서 번들거리던 녹빛의 귀기가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버서크, 그 이상의 강화가 일어났다.
“방어, 방어, 방어!”
하지만 로칸의 선택은 다소 의외의 것이었다. 반지에 내장된 스킬을 사용해 실드를 겹겹이 두르고 버티기에 들어간 것이다.
평소의 로칸을 생각하면 이상해도 보통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란도르는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이미 완전히 돌아 버린 눈으로 살육과 파멸만을 떠올리고 있었다.
콰앙!
“크윽.”
일격에 세 장의 실드가 찢겨 나갔다.
아주 미묘한 걸림만이 있을 뿐, 공들여 펼친 보람도 없이 가뿐하게 파괴되었다.
“또냐!”
그러나 로칸은 그 틈이면 족했다. 2배로 뻥튀기된 놈의 힘과 속도를 피하고 비껴 낼 수 있을 만큼의 틈을 원했을 뿐이다.
놈의 쌍도끼가 머뭇거리는 사이, 배틀 액스를 비스듬히 비껴 부딪친 로칸은 그 충격을 이용해 뒤로 몸을 날렸다.
“쌍격살!”
“탈출!”
분노한 란도르가 재차 스킬을 날려 보지만 이번에도 반지의 힘이 그를 공격 범위에서 이탈시켰다.
3미터나 훌쩍 떨어진 위치에서 나타나자마자 뒤로 폴짝 뛰어 거리를 벌렸다.
“리프 어택!”
“반격!”
란도르가 날 듯이 뛰어올라 따라붙었지만 로칸은 더욱 영악하게 굴었다.
“캔슬, 회피!”
반격을 백스텝 상태에서 캔슬해 버리더니 생성 스킬 회피를 발동해 아예 뒤로 물러나 버린 것이다.
그러고는 폴짝 뒤로 공중제비까지 돌며 놈을 약 올렸다.
“캬아악! 죽여 버리겠다!”
“그럼 살리려고 했냐 ”
퍼엉!
대시와 돌격을 사용해 달려오자 이번에는 기계공학 아이템이 바닥에서 폭발했다. 바로 연막탄. 그것이 놈의 오감을 속였다.
“광풍살!”
그러자 놈의 대응이 매서웠다. 연기가 자신을 삼키는 동시에 쌍도끼를 사방으로 거칠게 휘두르며 연기를 베어 내듯 주변에 광풍을 뿜어낸 것이다.
콰광!
그 바람은 실제 물리력까지 갖춰 맞닿는 모든 것을 파괴시키기까지 했다.
“다 했냐 ”
덕분에 로칸 역시 멈추어 섰다.
배틀 액스를 들어 올려 공격을 해소해 냈지만 그 눈빛은 지금까지와 달랐다.
로칸의 원래 눈빛으로, 포식자의 그것으로 변해 있었다.
“크르륵!”
“타임 오버다, 새끼야!”
이제는 아주 야수처럼 으르렁거리는 놈을 피하지 않고 허리를 곧게 폈다.
겁을 먹고 도망치는 대신, 환히 웃으며 처음처럼 배틀 액스를 마주쳐 갔다.
“폭주!”
버서크의 발동과 함께 주변을 휩쓸어 버리는 생성 스킬!
로칸은 절묘한 타이밍에 그것을 발동하며 덤벼들던 란도르를 할퀴어 갔다.
“크으으윽!”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스치기만 해도 갑옷이 파괴되고, 거죽이 벗겨질 그 맹렬한 공격을 란도르가 모조리 몸으로 버티며 계속 덤벼든 것이다.
로칸의 배틀 액스가 전신을 쓸어 갈 때마다 기묘한 초록빛 기운이 그를 보호했다. 대미지를 감소시키고 분노를 더욱 끌어 올렸다.
“죽어라!”
“흐흐흐흐!”
하지만 배틀 액스에 닿는 묵직하고도 축축한 기운을 느끼고도 로칸은 웃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상관없다는 듯 더욱 손아귀에 힘을 주며 배틀 액스를 떨쳐 낼 뿐이었다.
퍼벅!
이내 란도르의 쌍격살이 로칸의 가슴팍을 때렸다.
잔뜩 강화를 마친 갑옷은 타락한 힘마저 견뎌 냈지만, 적지 않은 타격일 것이 분명함에도 로칸은 웃었다.
귀신처럼 배틀 액스를 재차 휘두를 뿐이었다.
“나도 손맛 좀 보자!”
퍼버버벅!
버서크 대 버서크.
그것은 이미 정상적인 형태의 싸움이 될 수 없었다.
로칸도 그것을 알기에, 목과 심장만을 보호할 뿐 나머지 부위는 얼마든지 내어 줄 각오를 하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공격력 대 공격력의 싸움이요, 컨트롤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시간 싸움이지.’
서로의 생명력을 0으로 만드는 것은 기본이었다.
다음은 목이 잘리거나 심장이 터지는 것을 막으며 상대의 것을 노리는 것이고, 이것으로 승부를 내지 못한다면 남은 것은 하나였다.
바로 시간.
버서크의 지속 시간이 먼저 끝나는 쪽이 절대적으로 불리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로칸이 어렵사리 가진 것들을 동원해 시간을 끈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란도르가 먼저 버서크를 발동시킨 10여 초의 차이.
그것을 잡아 승리를 이끌어 내고자 함이었다.
“난무!”
“연환참격!”
쿠과과과과광!
버서크까지 사용한 두 사람, 아니 두 괴물의 격돌 여파는 실로 엄청났다.
감히 산불조차 다가오지 못하고 흩어져 버렸고, 무너져 내리던 건물의 잔해는 충격파에 밀려나 다소곳이 쓰러질 정도였다.
둘의 공격이 부딪치는 그 순간, 그 주변에는 오직 파괴만 남을 뿐이었다.
무차별. 무자비. 공격 일변도.
보는 이로 하여금 질려 버리게 만드는 격돌이 10여 분이나 쉬지 않고 계속됐다.
“캬아아악!”
“으흐흐흐, 그래, 이거지!”
이미 장비의 내구도가 크게 떨어져 넝마가 된 상태였지만 두 사람은 개의치 않았다.
정확히 따지자면 격노왕 란도르는 눈이 돌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고, 로칸은 미친놈처럼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겪어 보는 진짜 싸움이던가. 그 희열에 작은 떨림마저 느끼며 쉴 새 없이 때리고, 부쉈다.
여차하면 타락한 힘이고 뭐고 맞닿는 모든 것들 자르고 뭉개 버릴 듯, 순수한 광기의 힘을 내뿜었다.
“커억!”
그리고 마침내, 시간이 되었다.
타임아웃. 란도르의 버서크 지속 시간이 종료된 것이다.
후유증을 감수하고라도 다시 사용하려면 아직 5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조루 새끼. 벌써 끝이냐 ”
그 비루먹은 모습에 로칸이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그 또한 지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10여 초.
이제는 10초 남짓이 남았을 뿐이지만 로칸의 모습에는 여유가 있었다. 이 한 방에 모든 것이 끝장날 테니까.
“타락 사냥. 광살.”
타락한 불의 정령을 사냥하며 진화 조건을 채운 타이틀 타락 사냥꾼의 특수 스킬까지 더해 버서크 후유증에 비틀거리는 란도르의 몸을 찢어발겨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