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
헬하운드 (3)
“폭격.”
시작은 역시 폭격부터였다. 굳이 원거리 공격이 없어도, 그들의 진형을 흩어 버리지 않아도 상대가 되지 않을 테지만 로칸은 대충대충 상대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철저한 박살.
전투 의지를 꺾는 정도가 아니라 앞으로 자신을 보면 오줌을 지리도록 만들어 줄 작정이었다.
“버텨!”
이미 영상을 통해 그 위력을 접했을 텐데도, 놀랍게도 헬하운드의 선택은 회피가 아닌 돌진이었다.
그 한 방을 피하기 위해 흩어져 버리면 진형 효과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자신이 있던 것이다.
그들의 진형 효과가 방어에 특화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레벨이 비슷해도 쉽지 않을 로칸의 공격인데다 지금은 레벨 차이마저 훌쩍 나는 상태. 고작 투척 무기라고 얕봤던 손도끼가 대량 살상 마법처럼 막대한 피해량으로 그들과 부딪혔다.
“커헉!”
“미친!”
“계속 가! 진형을 유지해!”
단박에 선두에 선 탱커 하나가 곤죽이 되어 쓰러졌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빈자리를 메우며 로칸을 향해 짓쳐 갔다.
강력한 원거리 공격을 몇 초마다 쏟아 내는 로칸을 잡기 위해서는 단숨에 달려들어 물어뜯어야 한다고 믿었다.
“크허허허허헝!”
그러나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행동을 멈춰 세우는 것이 있었다.
마나를 머금은 강력한 파장.
그것이 귀를 통해 뇌속을 뒤흔들자 행동은 정지하고 몸은 축 늘어졌다.
움직이는 것은 딱딱거리며 소리를 내는 입뿐.
저항조차 하지 못하는 그들의 틈으로 로칸이 날듯이 떨어져 내렸다. 단죄의 철퇴, 아니 배틀 액스를 내리꽂았다.
“억…….”
투구째 머리가 쪼개지는 것쯤은 예삿일이다. 이미 장비빨로만 기본 공격의 치명타 확률을 30%까지 상승한 로칸이니까.
여기에 타이틀 효과가 더해지니 굳이 치명적 일격을 사용하지 않아도 거의 두 방에 한 방은 치명타가 터지는 것이다.
때문에 로칸은 굳이 스킬을 쓸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허물어지는 적의 시신을 발로 차 동료들에게 떠넘기고 재차 배틀 액스를 횡으로 휘둘렀다.
“막아!”
간신히 첫 공격을 피한 갓독이 소리를 질러 보지만 아직까지 움직일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로칸의 공격을 그대로 허용하며 갑옷이 찢겨 나갈 뿐이었다.
그마저도 로칸이 그를 노리지 않았기 때문에 입을 놀릴 수 있는 것이지만.
“흩어져!”
그 비싼 값을 주고 산 방어구가 제 역할도 하지 못하고 박살이 나는 것을 목격한 갓독은 재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진형 효과의 포기.
다른 이점도 있긴 하지만 방어력 강화가 메인인데 그것이 무의미하다면 굳이 한데 모아 둘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딜!”
하지만 벗어나도록 가만 둘 로칸이 아니다. 도끼 자루를 짧게 쥐더니 단타로 놈들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도끼날이든, 옆면이든, 그것도 아니면 자루든 상관없다. 일단 한 방 갈기기만 하면 풀썩 쓰러져 버리니 기동력을 빼앗고 최대한 빠르게 숫자를 줄여 놓았다.
“대체 레벨이 몇이야 ”
“버서크를 쓰고 온 건가 ”
“지랄. 버서크 이펙트도 없잖아! 저거 깡대미지라고!”
이쯤 되니 헬하운드도 미칠 노릇이었다. 초식동물 무리 속에 떨어진 맹수처럼 휘젓고 다니는 로칸을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다.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도 갈려 나갈 것 같아 몸을 빼내고 가능한 원거리 공격들을 퍼붓고는 있지만, 타격을 주기는커녕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하고 있으니 사태가 실감나는 것이다.
이길 수 없다.
그는 차원이 다른 상대다.
“대장!”
마음속 깊이 공포가 자리 잡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길드장인 갓독을 부르는 것밖에 없었다.
퇴각 명령만 내려 준다면 산개를 통해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담아 갓독을 쳐다보는 것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씨발 새끼들아, 그런다고 저 새끼가 봐줄 것 같아 어차피 저 새끼 못 제치면 답이 없어!”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사실이었기에 더욱 속을 후벼 파는 것이기도 했다.
마지못해 달려드는 헬하운드의 길드원들. 그러나 그들 하나하나 어지간한 사람 이상의 독기를 가진 자들이기에 곧 공세는 날카롭게 변했다.
“뭐 어쩌라고.”
퍼억!
그러나 독기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먹힐 만한 상대일 때나 통하는 것이다.
오른팔이 없으면 왼팔로, 왼팔도 없으면 발길질로, 그조차도 안 되면 깨물기라도 해서 저항할 놈들이지만 가차 없이 머리를 터트리고 사지를 잘라 버리는 로칸 앞에서는 재롱에 가까운 시도일 뿐이었다.
“저 새끼…… 스킬도 안 쓰고 있어.”
그리고 그 압도적인 폭력조차 로칸에게는 장난 같은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퍼석.
그렇게 순식간에 헬하운드의 정예들을 반 이상 도륙해 버린 로칸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경고했다.
“한 가지 확실하게 선언하지. 네놈들은 지금 이 시간부로 내 눈에 띄면 무조건 죽는다. 탈퇴를 하거나, 내가 다른 지역으로 넘어갈 때까지 3차 도시에 조용히 처박혀 있든가 알아서 선택해.”
배려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엄청난 피해와 희생을 감수하며 어렵게 중앙 대륙에 넘어왔는데 다시 돌아가라니 로칸이 4차 도시에서 머무는 시간이 얼마나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눈에 띄지 말라니
이제 와서 뒤처지라는 것은 게임을 접으란 소리와 다르지 않았다.
‘그래 봤자 순순히 따를 리가 없지.’
그것은 로칸도 알고 있다. 애초부터 ‘예, 알겠습니다.’ 하고 순순히 3차 도시로 물러날 것을 기대하고 한 말이 아니었다.
그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도둑고양이처럼 새벽 시간대를 피해 다시 협곡으로 향하도록 자극하기 위함이었다.
백골마라는 엄청난 투자까지 한 상태로.
“대체 우리한테 왜…….”
“그게 중요한가 ”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지어 봐도 로칸은 사나운 미소를 지을 뿐이다. 그들이 다른 이들에게 그러했듯이.
“알겠다. 이만 물러…….”
“어억!”
참담했다.
여기까지 남들을 끌어내리고 짓밟으며 승승장구해 오기만 한 그들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참혹한 패배였지만 당장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패배를 시인하는 순간, 로칸은 또다시 배틀 액스를 휘둘러 가까이에 있던 놈의 목을 쳐 버렸다.
“무슨 짓이냐! 지금 물러나겠다고…….”
“내가 언제 지금 살려 준다고 했던가 일단 눈에 띄었으니, 죽어야지.”
“……씨발.”
그들이 어찌 로칸의 분노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만약 시간만 더 있었다면 그들을 쫓아다니며 밑바닥까지 끌어내려 주었을 텐데, 이 정도만 하는 것도 감사해야 했다.
물론 이번이 끝이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로칸은 헬하운드의 정예를 모두 쳐죽이고 나서야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남아 선착장을 빠져나오는 족족 쳐죽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그들이 아예 부활을 하지 않은 까닭이다.
다시 살아나 봤자 정당방위가 아니라도 로칸이 때려죽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다시 보자고.’
그렇게 도합 여섯 번의 전멸로 평균 레벨마저 떨어뜨려 놓은 로칸은 화를 삭이며 일단 물러났다.
그들이 당장 물러나는 제스처를 취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백골마에 돈을 꼬라박고 자멸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럼에도 기어올라 온다면, 그때는 친히 멱살 잡고 절벽 아래로 던져 줄 생각이었다.
“흠, 성능 좋은데 ”
다시 리나이 영지로 돌아온 로칸은 곧바로 신비가 잠든 동굴을 한 바퀴 돌았다. 놈들로는 몸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바퀴나 연속해서 던전을 클리어한 뒤, 개운한 마음으로 밖으로 나왔다.
* * *
“로칸 님, 영주님께서 찾으십니다.”
“영주님이 ”
그런 로칸을 찾아온 것은 그가 몬스터 사냥 때마다 데리고 다니던 병사였다.
병사들 역시 몬스터를 사냥하고 레벨을 올릴 수 있지만 로칸이 독식을 해 버리는 바람에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그의 레벨은 1밖에 오르지 않았다.
그나마도 정기 훈련에서 얻은 경험치 덕분이었다.
“알겠다. 지금 가 보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준 로칸은 즉시 영주성으로 향했다.
로칸이 가져오는 몬스터의 부산물을 팔아 영지의 형편은 제법 나아졌지만 초라한 영주성은 아직 그대로였다. 영지민들의 복지와 시설을 확충하고, 광산을 개발하는 데 모두 투자했기 때문이다.
따로 모으는 돈은 조금 있는 것 같지만 어디까지나 예비비일 뿐, 착복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영지민들에게야 좋은 영주이지만…….’
그렇기에 차후 다른 영지에 잡아먹히게 되는 것이기도 하기에 로칸은 탐탁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 어서 오게.”
집무실로 들어간 로칸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어지간한 귀족이었다면 노발대발할 일이었지만 리나이 영주는 그런 격식을 따지는 이가 아니었고, 그의 입장에서 로칸은 영지를 구한 영웅과도 같은 이였으니 반갑게 웃으며 응대했다.
“찾으셨다고요 ”
“그래. 이것에 대해 상의를 좀 하고 싶어서 불렀네.”
“그건…… ”
영주가 내민 것은 고급스러운 재질의 종이 한 장이었다. 정확히는 서신으로, 인장까지 박힌 것이 아무래도 다른 귀족이 보낸 것인 듯싶었다.
‘이 새끼가 ’
내용을 읽지도 않았건만 로칸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보지 않아도 누가 보낸 것인지, 또 어떤 내용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레밍턴 영지의 영주.
리나이 영주와 마찬가지로 남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이지만 욕심이 많고 이곳보다는 살 만한 영지를 가지고 있어서, 전생에서는 리나이 영지를 집어삼킨 놈이었다.
그런 놈이 왜 아직 시기가 이르기는 했지만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다.
‘간 보는 건가 ’
로칸 자신으로 인해 리나이 영지의 역사가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놈의 탐욕을 생각하면 리나이 영지에 침 바르려 하는 것은 어쩌면 확정 이벤트와도 같은 일이 아닐까 레밍턴 영지의 경우 그 외의 방향으로 확장하려면 부담이 크니까.
굳은 표정으로 편지를 받아 본 로칸의 이마가 살짝 구겨졌다.
‘역시.’
내용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최근 리나이 영지가 발전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기쁜 마음으로 축하한다.
한데 이웃 영지로서 교류가 없었던 것 같다.
이참에 교류를 해 보는 것은 어떠냐.
우리도 인원을 보낼 테니 너희도 인원을 보내라.
간단히 요약하자면 위와 같았다.
그러나 로칸은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간파해 냈다.
‘대놓고 첩자질을 하시겠다 ’
리나이 영지가 워낙 유동 인구가 적어 첩자를 보내면 들킬 것 같으니 아예 합법적이고 정당한 방법으로 염탐을 하겠다는 것이다.
어디가 얼마나 발전을 했고, 또 얼마나 가능성이 있는 영지인지 말이다.
아마 교류라는 명목으로 개발되고 있는 광산도 들어가 보고, 매장량, 채굴량도 체크해 보려는 것이겠지.
안 봐도 뻔한 수작이었지만 리나이 영주 앞에서 난동을 부릴 수는 없었다.
꾸깃 편지를 쥐어 돌려주자 리나이 영주가 애매한 얼굴로 로칸의 의견을 물어왔다.
“내내 관심도 없던 사람이 이러니 좀 당황스럽더군. 자네 생각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나 ”
외교에 재능이 없는 그였지만 뭔가 이상한 낌새는 챈 모양이다. 하지만 정확히 판단을 내리기는 무리인지 로칸의 의견에 따를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 새끼가 어떻게 여길 먹었더라 ’
로칸은 기억을 더듬으며 잠시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부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