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랭커 회귀하다-99화 (99/500)

# 99

기사의 맹세 (3)

레밍턴 영지.

그곳은 레밍턴 남작이 지배하는 아주 허름한 도시였다. 아니, 도시라고 부르기고 조금 민망할 정도.

그나마 근처에 저급한 마정석을 채굴할 수 있는 마정석 광산이 있어 먹고살 만한 수준이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꽤나 어려움을 겪었을 정도의 생활수준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로칸이 다시 한참을 말을 달려 도착한 곳은 이보다 더 깊숙한 산골짜기에 위치한 영지였다.

[리나이 영지에 진입하셨습니다.]

바로 리나이 영지.

영지의 절반이 산으로 되어 있지만 특산물이라고는 소량의 구리뿐이고, 그나마도 몬스터들이 많아 제대로 채굴하고 있지 못한 데다 농사를 지을 만한 땅도 그리 비옥하지 못해 영주조차 빈곤한 삶을 이어 가는, 망해 가는 영지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

“이곳의 기사가 되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예 기사라고요 ”

오죽하면 영주 성을 지키던 경비병마저 로칸의 대답에 화들짝 놀랄 정도일까.

[리나이 영지의 경비병][Lv 181]

심지어는 몇 없는 경비병의 레벨조차 200을 넘기지 못했다.

로칸의 대답을 들은 경비병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로칸을 힐끗거리다가 안쪽으로 뛰어들어 갔고, 곧 안에서도 반응이 왔다.

너무나 놀란 나머지 영주가 직접 뛰쳐나온 것이다.

‘어이구야…….’

예상은 했지만 처참한 수준이 아닐 수 없었다.

당장 로칸이 걸치고 있는 장비만 하더라도 영주 옷값의 몇 배는 되지 않을까

워낙 궁핍한 영지인지라 검소하게 생활을 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영주의 위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차림새였다.

‘그래서 고른 것이기도 하지만.’

로칸이 굳이 이런 허름한 영지와 영주를 선택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바로 하나는 영지의 잠재력, 다른 하나는 ‘몰락 귀족’이라는 콘셉트였다.

아직은 아니지만 조만간 이 영지는 몰락하게 된다. 인근의 레밍턴 영지에 잡아먹히고, 나중이 되어서야 포텐이 터져서 대박을 맞는 것이다.

‘그 전에 내가 먹어야지.’

로칸은 그 전에 이 영지를 집어삼킬 생각이었다.

자신이 귀족의 지위를 얻을 조건이 되는 순간, 귀족이라는 이름에 맞지 않게 궁핍한 삶을 이어 가는 리나이 영주에게 거금을 안겨 주고 리나이 영지를 통째로 사들이려는 것이다.

영지 구매라고 하면 거창할 것 같지만, 사실 이 정도 수준이면 2천에서 3천 골드면 충분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크로스로드의 상점에서는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으니 그 정도 돈이야 얼마든지 마련 가능했다.

“그, 그래. 기사가 되고 싶어 찾아오셨다고요 ”

그런 로칸의 음흉한 속내는 알지 못하는 리나이 영주는 짐짓 근엄한 척을 하며 눈치를 살폈다.

“예, 이곳 리나이 영지의 기사가 되고 싶습니다.”

꾀죄죄한 몰골로 그러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로칸은 필사적으로 표정 관리를 하며 진지하게 임했다.

“으음…….”

그 모습에 리나이 영주도 고민이 되는 듯싶었다.

당장 실력 있는 기사가 부족해 영지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산지의 몬스터조차 토벌하지 못하고, 때때로 민가에 내려오는 몬스터들로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에서 로칸 같은 기사가 있다면 든든할 것 같은 것이다.

더구나 로칸은 방문자이지 않은가

당장의 수준이야 어떻든 금세 강해질 것이고, 또 설령 몬스터 토벌 중에 죽더라도 얼마든지 되살아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최고의 가성비가 아니던가

다만 한 가지, 고민이 되는 것은 리나이 영지에 그의 녹봉을 챙겨 줄 만큼의 돈이 없다는 것이다.

‘고민되겠지.’

물론 몬스터를 토벌하면 그 부산물로 이득을 챙길 수 있다. 하지만 몬스터의 토벌을 온전히 로칸에게만 맡겨야 하는 상황에서 그의 몫도 챙겨 줘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토벌할 몬스터가 모두 사라진다면, 그다음도 문제였다.

“으흐흠…….”

처음에는 무조건 이득이라고,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 버선발로 뛰어나왔지만 점점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참 뒤, 침묵을 깨고 허탈한 리나이 영주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솔직하게 말하지. 우리 영지에는 자네의 녹봉을 줄 만한 여력이 없네.”

“괜찮습니다. 녹봉은 받지 않겠습니다.”

지나치리만큼 솔직한 대답. 하지만 로칸은 예상했다는 듯 파격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조건이 있겠지 ”

그러나 리나이 영주도 마냥 기뻐하지만은 않았다. 그 이면에 어떤 조건이 있을 것이란 걸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 대신 땅을 주십시오.”

“땅을 ”

리나이 영주의 미간이 좁혀졌다.

영주에게 땅을 달라는 것은 모든 것을 달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비록 일부라 할지라도 선뜻 내어 주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아예 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이곳의 기사로 있는 동안 저 산의 일부 지역에 대한 소유권을 주시면 됩니다. 계약은…… 1년 단위로 하죠.”

아마 1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로칸이 임대가 아니라 이 영지를 사 버리는 데까지는.

그렇기에 자신 있게 지를 수 있었다.

“용병처럼 계약을 하겠다는 건가 ”

“예. 저도 믿고 모실 수 있는 주군인지 확인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

틀린 말은 아니었다. 로칸 같은 기사가, 뭘 믿고 그 같은 영주에게 평생을 봉사하겠나

1년 뒤에 다시 재계약을 하거나 자유 기사로 돌아가겠다는 로칸의 당돌한 요구에 리나이 영주의 눈빛이 흔들렸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는 것이, 머릿속으로 바쁘게 계산을 하는 모양이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영지 운영에 필요한 광산을 달라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만약 제가 선택한 지역에서 광맥이 발견된다면 영주님께 반납하고 다른 땅을 받겠습니다.”

“채굴권을 원하는 것도 아니라고 ”

그러자 리나이 영주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산지의 땅을 달라고 하기에 혹시 이곳의 구리 광맥을 원하는 건가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대체 무엇 때문에 그 땅을 원하는 겐가.”

“대신 그 땅에서 사냥하는 몬스터에 대한 모든 권리를 주십시오.”

“아…… 그렇군.”

그제야 알겠다는 듯 수긍하는 영주.

하지만 그조차도 로칸의 페이크였다. 몬스터의 사체에 욕심을 내서 얕은 수작을 부리는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아마도 리나이 영주는 로칸이 몬스터를 그 땅으로 몰아서 사냥하려는 계획을 세운다고 생각하겠지.

“……좋네. 다만 자네가 몬스터 토벌에 나설 때는 병사 셋과 함께 가야 하네.”

그 조건의 실리에 대해 따져 보던 리나이 영주는 결국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조건을 수락했다.

대신 자신의 지시를 따라야 하며 영지 발전에 적극적으로 힘써야 한다는 조건도 내걸었다.

‘당연하지. 결국 내 게 될 텐데.’

그리고 그것은 로칸도 바라던 바였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 데카른 폰 리나이는 기사 로칸을 나의 기사로 임명하겠다.”

계약 기간이 종료되지 않더라도 합의하에 주종 관계를 끝낼 수 있다는 내용까지 적어 넣은 간단한 계약서 작성을 마친 뒤, 로칸은 리나이 영주에게 기사의 맹세를 하고 그의 기사로 편입되었다.

[리나이 영지의 기사가 되셨습니다.]

[굉장한 업적! 당신은 방문자 중 최초로 기사의 작위를 받았습니다.]

[타이틀 ‘최초의 기사’를 획득했습니다.]

[당신은 이 타이틀의 최초 획득자입니다.]

[최초의 기사][레어]

방문자들 가운에 최초로 기사의 작위를 받은 이에게 주어지는 칭호.

당신은 이 타이틀의 최초 획득자입니다.

이 타이틀은 오직 최초의 한 명에게만 부여됩니다.

[보유 효과]

-모든 능력치 + 10

-[기사도] 효과로 호위 미션 또는 방어전 진행 시 모든 능력치 10% 상승

더불어 레어 등급의 타이틀까지!

모든 능력치 10 상승은 지금의 로칸에게 큰 의미가 없는 것일 수 있었으나 [기사도] 효과는 나중에 제법 괜찮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호위 미션은 좀처럼 진행할 일이 없지만 방어전이라면 영지전이나 공성전에서 써먹을 수 있겠지.

그렇게 리나이 영지에 편입된 로칸은 즉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영주는 서먹한 모습이지만 그의 눈치를 보느라 할 일을 못 하는 일 따위는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곳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했다.

‘다른 곳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

백작급 정도 되는 귀족의 수하로 들어가서 제멋대로 행동한다 백작이 그를 어여삐 여기거나 큰 공을 세웠다면 모를까, 용납되기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휘하 기사단에 텃세라도 있으면 거기에 시달리느라 한동안 레벨 업은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다.

이것 때문에 전생에는 한때 제작사의 악의적인 콘텐츠 소비 속도 늦추기가 아니냐는 말까지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약하고 영세한 영지이기 때문에 출몰하는 몬스터의 레벨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나야 땡큐지.’

혹자는 그것을 약점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로칸의 입장에서는 그 또한 호재였다.

어차피 당장 250레벨 이상의 고레벨 사냥터는 있어 봐야 그림의 떡이었고, 오히려 200레벨부터 240레벨까지가 고작인 이 동네가 그의 레벨 업에는 딱인 것이다.

게다가 그에게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고레벨 필드와 던전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

부복한 자세를 풀고 일어난 로칸은 눈을 빛냈다. 영주에게 양해를 구하고 즉시 병사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도시와 광산 인근 몬스터 토벌에 들어간다. 영주 성과 도시의 치안을 지킬 병사들을 제외하고 전원 집합해!”

“예, 옙!”

힘이 실린 로칸의 고함 소리에 멀뚱히 구경 중이던 병사들이 된서리를 맞았다.

그 서슬 퍼런 눈초리에 화들짝 놀라 자세를 바로잡더니 각을 잡고 오와 열을 맞춰 서기 시작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로칸이 굴러들어 온 돌같이 느껴지겠지만 잘못 건드렸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것 같다는 공포감과 위압감에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전원 모였나 ”

“예에!”

“대답은 짧고 굵게. 알겠나!”

“옛!”

대한민국 예비역 병장의 포스. 그것에 짓눌린 병사들이 로칸의 지휘에 따라 신병처럼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수, 수고하게.”

영주마저 당황해서 말을 더듬거렸지만 로칸은 어느새 그들을 데리고 사라져 버렸다.

‘바리케이드 혹은 양치기 개 정도로는 쓸 만하겠지.’

하지만 로칸도 그들을 전투 병력으로 쓸 생각은 아니었다. 사냥을 하는 것은 자신 하나뿐. 남은 병력은 길잡이와 몬스터가 새지 못하도록 방향만 잡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리고 가장 큰 역할은 바로 ‘보여 주기’다.

영주에게 보여 주고 어필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앞으로 자신의 지휘를 따르게 될 병사들에게 자신의 무력을 선보일 기회.

로칸은 악당 같은 표정을 지으며 홀로 몬스터들을 향해 뛰쳐나갔다.

“크허허허허헝!”

광기의 외침이 터지자 ‘아군’으로 분류되어 영향을 받지 않는 병사들까지 잔뜩 움츠러들었다.

누가 몬스터도 누가 인간인지 모를 참상에 오들오들 몸을 떨며 새로운 상관에 대한 공포와 복종심을 깊이 품기 시작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