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폭격 (2)
절벽 위에서 쏟아 내는 폭격!
고저차를 이용해 쏟아 내는 일방적인 공격에 150레벨의 적병들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피하다가 숨이 끊어졌다. 레벨 차이가 난다고는 하지만 공격력만큼은 압도적이었으니까.
간혹 궁수나 마법 계열의 클래스를 가진 이들도 있긴 했지만 정말 소수였고, 로칸도 그들을 우선적으로 처치하고자 했기에 역공을 당하는 일은 없었다.
간헐적으로 날아오는 화살 따위야 가드 스킬을 이용해 막거나 쳐 내면 그만이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소모품인 투척 무기를 이용한 사냥이라 비용적인 압박도 엄청나긴 했다. 전리품 획득을 고려하더라도 일반적인 유저라면 상상도 못 할 돈을 쏟아부은 것이니까.
전생에도 이 방법을 찾아내고 실천한 것은 로칸 같은 근접 계열 클래스가 아닌, 마법사 클래스 유저였을 만큼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로칸이 해냈다.
가만히 있어도 상점으로 그득그득 쌓여 가는 돈들은 로칸이 쓰는 것보다도 훨씬 많았고, 덕분에 로칸은 돈 걱정 따위는 하지 않고 절벽 아래로 돈을 내다 버릴 수 있었다.
대신 그만한 경험치가 보상으로 돌아왔으니까.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후우! 이 지겨운 짓도 이제 끝이군.”
그렇게, 150레벨을 ‘어거지’로 달성하고 나서야 로칸의 폭격도 비로소 멈추었다.
아무리 돈지랄로 만들어 낸 무한 사냥이라지만 한자리에서 십수 일 동안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는 것은 심적으로 지치는 일인 것이다.
그렇기에 정확히 150레벨을 달성하는 순간, 사냥을 멈추기로 결심한 것이다.
“슬슬 레벨 업도 더디고, 150레벨이면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의 제한도 풀렸겠지.”
절벽 아래에 등장하는 적병들의 레벨이 140~150 수준인 이유도 있었다.
더 이상 놈들을 사냥해도 경험치가 극적으로 차오르지는 않았으니 굳이 무리를 해 가며 여기에 더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룬 북 사용, 철응의 전초기지로.”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로칸은 즉시 전초기지로 되돌아갔다. 행보관 NPC에게 전공을 보고했다.
“어디 보자……. 응 자, 자네, 이걸 진짜 자네 혼자 해냈단 말인가 ”
무려 보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노가다로 쌓아 올린 전공이다.
그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상승한 레벨 덕분에 사냥 속도는 더 빨라져 나중에는 리젠 속도가 사냥 속도를 따라오지 못할 지경이 되었으니 그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예, 정산해 주시죠.”
“허허, 이거 걸출한 신인이 나타났군! 좋네. 자네라면 자격이 충분하지.”
[계급 시스템이 해금되었습니다.]
[전공를 인정받아 ‘병사’ 계급이 되셨습니다.]
[계급은 전공과 각 왕국의 공헌도를 쌓아 승급시킬 수 있습니다.]
[보유 공훈 포인트 : 324]
계급은 말 그대로 계급이었다.
본래라면 군대에 끌려가야 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겠지만 다행히 게임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유저들에게는 권한과 권리만 있을 뿐, 의무는 없었다.
그래 봤자 병사 계급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대출이야 좀 더 받을 수 있겠다마는.’
그나마 있는 혜택조차 로칸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고.
하지만 중급 병사, 상급 병사, 십인장, 백인장 등으로 승급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전쟁과 관련된 퀘스트를 받을 수도 있고, NPC 병사를 거느리고 임무를 수행할 수도 있다.
그에 따라 퀘스트 난이도와 보상이 달라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겠지.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공훈 포인트.’
바로 적대 진영을 살해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공훈 포인트!
계급 시스템에 편입되어야만 비로소 이것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뭣 빠지게 싸워 봐야 허송세월이지.’
공훈 포인트가 없다면 적대 진영을 해치워도 결국은 PK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리고 이 공훈 포인트를 모으면 공훈 상점이라 불리는 별도의 상점에서 특별한 아이템들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럼 슬슬 날뛰어 볼까나 ”
초반에 공훈 포인트 324점이면 적지 않은 수치였지만 로칸은 아직 목말랐다. 그가 원하는 물건을 구입하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더 포인트를 모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 공훈 포인트를 긁어모을 수 있는 환경이 이 맘때쯤 조성되기 시작했다.
“룬 북 사용, 크로스로드로.”
한층 강력해진 로칸의 육신이 먼 거리를 넘어 크로스로드에 당도했다.
“아 씨발, 또야 ”
“개새끼들, 게릴라 오지네.”
“그 새끼들 때문에 난 사흘째 퀘스트도 막혔어!”
그와 동시에 상스러운 욕들이 귓가에 꽂혔다.
로칸이 아닌 누군가를 향한 것이었지만 로칸은 사정을 듣지 않아도 그 대상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시작됐군.’
바로 검은용군단의 유저들.
이곳 크로스로드뿐 아니라 3차 도시 곳곳에서 적대 진영과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한 것이다.
아직은 계급 시스템에 편입되지도 못해 치고받고 싸우는 것이 고작이지만, 상대 진영의 장비가 호환된다는 것과 상대를 잡으면 동 레벨 몬스터보다 많은 경험치를 준다는 이유로 퀘스트 지역에 죽치고 앉아 다가오는 모든 이들을 죽이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장비랑 경험치는 개뿔.’
아니다. 사실은 달랐다. 그냥 재미있을 뿐이다.
아무리 그럴싸한 말과 이유로 포장을 해 봤자 결국 원인은 하나였다.
재미있으니까.
상대보다 우위에 서서 죽이고, 괴롭히고, 농락하는 그 쾌감 때문에 그런 짓들을 하는 것이다.
‘그게 게이머의 본능이지.’
나중에는 공훈 포인트를 얻기 위해서이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적의 시체를 두고 시시덕거리기 위함인 경우가 컸다.
그렇기에 무리를 해서 상대 진영까지 쳐들어가거나 게릴라전을 펼쳐 대는 것이다.
“어딥니까 ”
“예 아…… 돌발굽 멧돼지들이 있는 지역인데 지금은 가지 마세요. 한 열 놈쯤 파티 짜고 놀고 있으니까.”
전혀 모르는 이들이지만 로칸은 대뜸 다가가 물었다.
그들은 여전히 분이 가시지 않는지 씩씩대면서도 선뜻 복수를 요청하지 못했다.
1, 2차 도시에서라면 모를까, 3차 도시부터 적대 진영이라는 공동의 적이 생기면서 같은 진영 간의 보이지 않는 유대가 생긴 까닭이다.
로칸이 가서 한 놈이라도 쳐 죽여 준다면 기분이 나아지겠지만 가 봤자 애먼 목숨 하나 더 버리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오히려 말리는 기색이 강했다.
“그렇군요. 정보 감사합니다.”
괜히 시선 끌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로칸도 알겠다고만 답을 하고 몸을 돌렸다.
‘벌써 돌발굽 멧돼지 지역까지 어지간히도 얕보이는 모양이군.’
돌발굽 멧돼지의 서식지는 크로스로드에서도 얼마 떨어지지 않는 사냥터였다.
심지어 하프엘프 인정 퀘가 있는 테칼로나 숲보다도 아래쪽에 위치한 지역이었으니 일대 전선이 쭉 밀렸다는 소리였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된 것일까
‘이것도 나 때문인가 ’
원래 매니악한 종족과 직업을 고르는 이들이 대개 컨트롤이 좋고, 전략이 좋다지만 전생에도 이 정도 차이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가만 생각해 보니 그럴 것도 같았다. 크로스로드를 3차 도시로 삼는 이들의 대부분이 자신 때문에 돈도 버리고, 성장 속도도 느려진 것은 사실이니까.
물론 좋은 점도 없지는 않다. 상위 등급의 아이템과 강화 된 아이템, 강력한 제작 아이템이 있는 자신의 상점이 장비 차이를 만들어 줄 테니까.
‘돈이 없는 게 문제인가 보군.’
하지만 그것을 구입할 만한 재력을 갖춘 이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일부 길드와 팀, 재력가, 하드코어한 현질 유저만이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 뿐이니까.
그 때문에 최상위 유저의 전투력에서는 밀리지 않을 수 있어도 전체적인 전투력은 손색이 있는 듯싶었다.
물론 길드들이 나서서 정리를 해 줄 수도 있다. 크로스로드에서 활동하는 상위 길드라면 그들보다 우월한 장비를 바탕으로 게릴라 파티쯤은 쉽게 쓸어버릴 테니까.
그러나 그들도 레벨 업을 해야 하는 시점에 늘 도시에 붙어 있을 수만도 없는 일이다.
‘수비대에 기대기도 어렵지.’
그렇다면 수비대는 어떨까
도시 밖으로 순찰을 도는 수비대원들도 분명히 있었다. 레벨도 150이나 되고, 혼자서 다니기도 하지만 둘에서 다섯까지도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상대 진영이 미쳤다고 그들을 건드릴까. 그들만 흘려보내면 제 세상이니 굳이 건드리지 않고 잠시 웅크려 있으면 그만이었다.
대부분의 크로스로드 수비대는 도시 자체를 공격하지 않는 이상 함부로 나서지 않으니까.
“좋은데 ”
상황을 가늠한 로칸은 만족스러운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것까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모든 상황이 짜 맞춰진 것처럼 자신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기대에 부응해 줘야지.
빠르게 정비를 마친 로칸은 흑색 말을 소환해 돌발굽 멧돼지의 서식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쿡쿡쿡, 병신들, 될 것 같냐 ”
푸확!
빠르게 질주하는 로칸의 시야에 말로만 들었던 놈들의 모습이 잡혔다. 당연하게도 퀘스트를 위해 나타난 하프엘프와 드워프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사냥터의 레벨은 110 정도. 아마 저들은 120레벨쯤 되었을 터였다.
현재 로칸을 제외한 최고 레벨이 130대라고 하니 그 정도면 상당한 고렙이다.
더구나 파티까지 이루었으니 이 근처에서 사냥하는 유저들이 당해 낼 방법이 없다.
로칸처럼 광전사 클래스이기라도 하다면 버서크를 쓰고 덤벼 보겠지만, 로칸 같은 미친 능력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조차 허무한 결말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스러져 가는 유저들을 보며 로칸이 말 위에서 하얗게 웃었다.
동시에 그 웃음만큼이나 밝게 번쩍이는 손도끼를 꺼내 들었다.
“폭격.”
쐐애애애애액.
“씨, 씨……!”
콰앙!
너무나 여유로운 상황에 방심하던 언데드 한 놈의 두개골이 날아갔다.
파괴력은 극도로 증가되었지만 로칸의 컨트롤은 명중률까지 놓치지 않는 것이다.
단 한 방에 빈사.
질긴 생명력의 언데드가 아니었다면 즉사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위력이었다.
그 한 방에 모두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저 새끼 뭐야 ”
“흩어져!”
적대 진영이라서인지 소리가 뭉개져서 들렸지만 대충 알아먹을 정도는 되었다.
진영이 다를 경우 아예 소통이 되지 않도록 설정하는 게임도 많았지만 적대 진영과 협력을 해야 하는 일도 종종 생기는 더 로드였기에 그 정도는 아닌 것이다.
빠르게 흩어지는 검은용군단의 게릴라 파티.
로칸은 폭격의 힘이 적용되지 않은 손도끼를 마구 날려 놈들을 더욱 흩어 놓았다.
“늪지의…… 헉!”
트롤과 언데드, 오크, 고블린.
늘 보아 오던 것과 다른 외형이라는 것은 큰 무기였다. 상대가 어떤 클래스인지 좀처럼 짐작하기 어려우니까.
그 심리적인 빈틈을 이용하기 위함인지, 장비를 맞추지 못한 것인지 놈들은 애매한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로칸은 정확히 주문 사용자를 골라냈다.
움직이는 속도만 봐도 대충 각이 나올 정도로 로칸의 경험치가 높은 까닭이다.
“운은 오지게 좋은 놈이네!”
“말만 타면 다냐!”
“조합 스킬 제작법을 내놓고 빌면 살려 줄지 생각해 보마!”
안타깝게도 놈들은 그것을 운으로만 치부했다.
단번에 주문 사용자가 둘이나 박살이 났지만 그것을 의도한 것이라고 생각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 판단 미스는 참담한 결과로 다가왔다.
기동력을 봉쇄하기 위해 일제히 접근한 놈들을 보며 로칸이 말을 박차고 뛰어오른 것이다.
삐익!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흑색 말이 흐릿해졌다. 남은 것은 높이 뛰어오른 로칸뿐!
“멍청한 새끼!”
“꼬치로 만들어 주마!”
허공에서 갈 곳을 잃은 그를 보며 적들이 비웃었지만 로칸의 입가에는 여전히 비릿한 미소가 걸려 사라질 줄을 몰랐다.
“포스, 대미지 체인지.”
“……!”
투척 무기가 아닌 배틀 액스로 펼치는 폭격.
포탄 같은 일격이 적들을 향해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