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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랭커 회귀하다-51화 (51/500)

# 51

세계수의 새싹 (1)

하프엘프들이 퀘스트를 내린 테칼로나 숲은 크로스로드에서 정말 멀었다. 이동속도를 2배 이상 올려 주는 말을 타고서도 30분은 족히 달린 것 같았다.

엉덩이가 아려 오는 것을 느낀 로칸은 목적지에 도달하자마자 일단 마크부터 쓰고 봤다. 룬 북의 저장 공간은 작았지만, 이미 크로스로드로 넘어온 이상 딱 세 곳의 지점만 남겨두면 되었으니 나머지 장소들을 삭제한 덕이었다.

“수고했다.”

삐익!

호루라기를 불어 말을 역소환한 로칸은 묵직한 배틀 액스를 꼬나들었다.

이제 그의 애병이 될 살육자의 도끼.

아직 5강밖에 되지 않아 강화 이펙트가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붉은빛의 흉흉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은 그것을 꼬나들고 하프엘프들을 찾아 숲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누구도 그를 보고 누군가를 살리러 가는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초입은 중립 몹이 대부분이라 좀 심심한데.”

하지만 그 살벌한 기세와 달리 로칸에게 달려드는 몬스터는 없었다.

테칼로나 숲의 초입에는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유저에게 선공을 가하지 않는 일명 중립 몬스터밖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로칸은 그것이 못마땅했다.

장비를 싹 업그레이드한 마당에 몸이 근질근질하지 않겠나 평소 성격 같았으면 어디로든 뛰쳐나가 일단 한 대 때리고 봤을 테지만 지금은 퀘스트가 먼저였다.

그답지 않은 인내심을 발휘하며 일단 실종되었다는 하프엘프 채집조를 찾았다.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찾았다.”

로칸이 찾은 것은 채집조가 아니었다. 그들이 남긴 흔적이다.

그가 알기로 채집조는 실종된 것이 아니라 욕심을 부리며 숲의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고립이 된 것이니까.

이미 대략의 위치는 알고 있지만 바로 찾아내면 의심을 살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들의 흔적부터 찾은 것이다.

“이제부터 발자국만 찾으면 되겠군.”

그들이 남긴 흔적은 ‘신발’이었다. 정확히는 그들 중 하나가 남긴 것이지만 이곳에서 강력한 몬스터를 만나 도망치는 과정에서 신발이 벗겨진 것이다.

그 후에 그들이 목적한 무언가를 찾아내었고, 욕심을 부리며 더 안으로 들어갔다가 아직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설정 덕에 이제부터는 일정 간격으로 남겨진 하프엘프의 발자국만 찾으면 그들을 추적할 수 있었다.

그들이 피해 도망친 몬스터는 어떻게 됐냐고

“까꿍이다, 이 자식아.”

가뜩이나 몸이 달았던 로칸의 샌드백이 되었다.

오염된 숲의 정령이란 이름을 가진 나무 괴물의 레벨은 115. 광산 코볼트보다도 높았지만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바로 ‘오염된’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조합 스킬이 봉인된 것이다.

대신 물리적인 스펙이 크게 올라갔지만 상대는 로칸이다. 힘 대 힘이라면 나무 괴물이 아니라 더한 것이 와도 밀릴 생각이 없는 그였으니 일격에 단단한 껍질이 터져 나가고 얼마 걸리지 않아 밑동이 잘려 쓰러지고 말았다.

“깔끔하구먼.”

베고 패고, 일부러 몇 대 맞아 주기까지 하며 강화한 장비의 성능을 측정한 결과, 아주 만족스러웠다.

치명타가 터지지 않아도 터진 것 같은 압도적인 공격력도 마음에 들었고, 방어력이 제법 올라 생명력 감소를 줄여 주는 방어구의 상태도 마음에 들었다.

자질구레한 옵션 없이 대미지와 치명타 확률뿐인 것도 딱 그의 스타일이었다.

이쯤 되면 너무 강력해 패치를 당하지 않을까를 걱정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지는 않겠지. 거저 얻은 게 아니니까.’

그러나 로칸은 확신했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애초에 이 모든 것이 더 로드가 안배하고 추구하는 바였다. 혼자서 1백을 베든 1만을 베든 직접 영향을 끼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이쪽.’

멈추기는커녕 더욱 도약을 다짐한 로칸은 서둘러 발자국을 찾았다.

하프엘프들은 인간보다 엘프들의 특성을 더 닮아서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발자국조차 찾기 어렵고, 그조차도 제법 거리를 두고 있어 신경을 날카롭게 세워야 했다.

발자국을 찾을 뿐 아니라 중간중간 습격해 오는 몬스터들까지 상대해야 했으니까.

‘일단은 추적부터. 전투야 잠시 후 원 없이 할 테니까…….’

넘치는 자신감과 실력, 끓어오르는 전투 본능까지 지닌 로칸이었지만 발자국을 추적하는 중에는 냉철하기만 했다.

은신까지 사용해 전투를 최소한으로 하며 채집조를 찾는 데 주력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소모품을 아끼기 위함이었다.

돈과 소모품이야 넘치게 있었지만 곧 치열한 전투가 예정되어 있다. 게다가 포션은 쓸 곳이 따로 있었다.

‘빙고.’

발자국의 방향과 알고 있던 대략의 위치가 맞물리며 세 명의 하프엘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처를 입었는지 제각각 붕대를 감고 있는 모습이었기에 로칸은 조심스레 은신을 풀고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웬 놈이냐!”

“인간 진 버서커 로칸입니다. 테릴 님께서 연락이 되지 않는 여러분을 걱정해 저를 보내셨습니다.”

“테릴 님이 인간을 ”

무기를 인벤토리에 넣고 양손을 펼쳐 싸울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지만 그들의 경계심은 풀릴 줄을 몰랐다.

크로스로드의 하프엘프 수장인 테릴의 이름을 듣고 살짝 반응하기는 했지만, 도로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것이다.

‘명색이 같은 진영인데 믿어 주지, 쫌.’

구하러 온 사람을 대놓고 경계하는 그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쩌겠나, 인정 퀘를 마치기 전까지는 계속 이 모양일 것을.

로칸은 더러워서라도 빨리 마쳐야겠다고 생각하며 말을 덧붙였다.

“테릴 님이 인간을 보낼 리 없다는 거겠죠 맞습니다. 제가 이 임무를 맡은 것도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보십시오, 저는 이미 드워프들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킁킁.

로칸의 말에 강아지 새끼처럼 코를 킁킁대던 그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드워프들의 인정을 받는 순간, 그들의 향기가 일부 스민 것이다.

테릴이 굳이 확인해 보지 않고도 로칸을 믿은 것 역시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믿어 보겠어요.”

‘안 믿으면 어쩔 건데 ’

약한 주제에 잰 척만 하는 그들을 보며 로칸이 혀를 찼지만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없이 호의적인 영업용 미소로 그들을 대했다.

“그럼 돌아가실까요 안전은 걱정 마십시오. 이래 봬도 오는 길에 ‘오염된 숲의 정령’을 다섯이나 가뿐하게 잡았죠. 이 동네 몬스터쯤은 혼자서 다 해결할 수 있으니 편하게 따라오시면 됩니다.”

로칸의 말에는 약간의 뻥도 섞여 있었다.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그리하여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

‘물어라, 물어라.’

그러자 그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로칸을 따라나서는 대신 시선을 다른 곳, 숲의 더 안쪽으로 옮겼다.

“정말……인가요 오염된 숲의 정령을 쉽게 잡았다는 게 ”

“물론입니다. 이걸 보시죠.”

하프엘프들 중 하나가 어렵게 말을 꺼내자 로칸은 즉시 인벤토리에서 ‘오염된 정령의 기운’이라는 아이템을 꺼냈다.

나중에 퀘스트 아이템이나 제작 아이템으로도 쓰이는 것이지만 지금은 능력의 증명을 위해 쓰이고 있었다.

“정말이군요. 그렇다면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

[어린 하프엘프들의 결의][퀘스트]

테칼로나 숲으로 채집을 떠났던 어린 하프엘프들의 부탁. 그들은 크로스로드까지 호위하기 전, 그들이 원하는 장소까지 데려다주기를 원한다.

-성공 조건 : 테칼로나 숲의 중심부 도착

-실패 조건 : 테칼로나 숲의 중심부 이동 포기 또는 하프엘프들의 사망

-보상 : 채집조의 안전 확보 퀘스트 보상과 합산

‘좋았어.’

로칸이 바라던 바였다. 혼자라면 모를까, 셋이나 되는 애송이들을 호위해야 한다는 것이 위험 요소이긴 했지만 지금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방해꾼은 없겠군.’

방해꾼이 없을 테니까.

크로스로드의 북쪽에 위치한 테칼로나 숲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언데드 지역의 퀘스트 장소이기도 해서 나중엔 적대 진영의 퀘스트를 망치려는 방해꾼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다.

분쟁 지역은 아니지만 적대 진영과 마주치는 최초의 장소라고나 할까.

하지만 아예 3차 도시 진출자가 없는 지금이라면 방해꾼들을 만날 걱정은 없었다. 몬스터만 주의하고 집중하면 그만이었다.

“위험할 텐데 괜찮겠습니까 ”

“저희는 어떻게 돼도 괜찮아요.”

“그럼 지금부터 제 지시를 정확히 따라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 즉시 강제로라도 데리고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좋아요.”

싫다고 해도 멱살 잡고 끌고 가고 싶은 쪽은 로칸이었지만 일단 관계 설정부터 확실하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이 천방지축들이 어디로 튀어 나가 어그로를 끌어올지 모르니까.

‘고삐는 채웠으니 가 볼까 ’

나중에 많은 이들이 실수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NPC라고, 퀘스트를 주는 인물이라고 하고 싶은 대로 다 따라 주었다가 제멋대로 나서는 하프엘프들 때문에 몬스터가 꼬여서 전멸하거나 소모품을 때려 붓는 상황이 종종 발생되던 것이다.

그래서 로칸은 명령권 확보를 최우선으로 했다.

“가고 싶은 장소를 이 지도 위에 표시해 주십시오.”

아예 지도를 보여 주고 위치를 특정한 다음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렸다. 이동하라면 하고, 숨으라면 숨고, 직선거리를 두고도 빙 둘러 움직이고.

그러던 어느 순간, 하프엘프들이 처음으로 지시를 거부하고 멈추어 섰다.

“잠시만요.”

“뭡니까.”

그들을 슥 돌아본 로칸은 그 이유를 바로 알아차렸다. 그들의 목적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린 이걸 얻어야 해요.”

그들이 가리킨 것은 작고 푸른 새싹이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을 만한 잡초 같은 싹이었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아우라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그 모습에 하프엘프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세계수의 새싹이에요. 정확히는 세계수가 될 가능성을 품고 있는 새싹이죠. 제대로 성장한다고 세계수가 될 수 있을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단 한 그루라도 세계수가 된다면……. 아무튼 우리는 이 가능성을 품은 새싹들을 채집하기 위해 이곳에 왔어요.”

알고 있다. 알다마다. 그리고 자신의 역할도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럼 시작하시죠. 나타나는 몬스터는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걸 어떻게…….”

세계수가 될 가능성을 품은 새싹에는 일종의 수호령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언데드들에 의해 숲 전체에 ‘어떤 수작’이 부려져 있는 지금은, 그 수호령 중 일부가 오염되어 채집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오염된 숲의 정령이었다.

“미리 공부 좀 했죠.”

하프엘프들은 씨익 웃는 로칸의 모습에 당황하면서도 어딘지 믿음직스러움을 느꼈다. 이미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빠르다.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즉시 장비를 이용해 조심스레 새싹을 옮겨 담기 시작했다.

“누가 감히 숲의 정기를 빼앗으려 하는가!”

그 순간, 공간이 응축되고 거대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녹빛 광기를 띈 거대한 나무 괴물이 몸을 일으켜 원흉을 뭉개 버리려 들었다.

“나다, 인마!”

“어어억!”

퍼억!

그때 전차처럼 부딪쳐 온 로칸의 몸이 너덧 배는 될 법한 나무 괴물을 뿌리째 밀쳐 버렸다.

그뿐 아니라 몸체의 일부를 터트려 뽀얀 속살을 끄집어냈다. 보통 숄더 차지가 아니라 조합 스킬, 파괴의 돌진이 발휘된 것이다.

“포스! 스트라이크!”

[크리티컬!]

거기서 그치지 않고 포스가 깃든 도끼질이 이어졌다. 오염된 숲의 정령의 거체가 구멍 난 치즈처럼 형편없이 망가지며 놈의 핵을 노출시켰다.

“형 바쁘다. 얼른 끝내자!”

로칸은 망설임 없이 그것을 잡아 뜯었다. 덩치도 더 커지고 레벨도 높아졌지만 기본적인 공략은 ‘숲 괴물’과 같은 것이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몸체를 깎아 낸 뒤 핵을 취한다는 공략을 충실하게 이행하며 순식간에 놈을 거꾸러뜨렸다.

“거기, 잠깐!”

그리고 얼른 몸을 돌려, 놀란 표정으로 세계수의 새싹을 마저 채집하려는 하프엘프들을 제지시켰다. 그 전에 할 일이 있는 것이다.

어떤 호기심 많은 한 유저가 발견해 낸 방법.

바로 이 자리에서 세계수의 새싹을 성장시키는 것이었다.

그냥 저대로 세계수의 새싹을 가져가면 아무리 많은 수량을 가져간다 한들 보상에 한계가 있지만 여기서 한층 더 성장한 상태로 가져간다면 당연히 보상이 크게 뛸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성장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줄어드니까.

만약 실패한다면 하프엘프들에게 몰매를 맞고 척을 지게 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는 끈질기게 설득했고, 실행했으며, 성공했다.

그리고 그 결실이 지금 이 순간 로칸의 손에서 피어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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