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랭커 회귀하다-32화 (32/500)

# 32

호수의 기사 (1)

MP 길드의 대책 회의는 거기까지였다.

보고하던 녀석은 룬 북을 사용해 어디론가 사라졌고, 피리아는 남아 다른 길드원들과 레벨 업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별거 없네.’

놈이 여기 있다는 것은 최소 70레벨쯤 된다는 것.

로칸이야 훈련과 타이틀 효과로 능력치가 뻥튀기되고 전생부터 쌓아 온 컨트롤 실력이 엄청나니 혼자 다니는 것이지, 이 근방에서 자리를 잡고 사냥하려면 최소 70레벨대 파티 한둘은 있어야 했다.

그런 면에서 피리아의 실력도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좋다고도 말하기 어려웠다.

‘딱 그 레벨대의 움직임, 딱 그 레벨대의 판단.’

초반에 두각을 드러내던 놈들이 대부분 그렇듯 피지컬이 좋아 당장은 앞서가고 있는 모양이지만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기에 롱런은 무리였다.

더는 볼 것이 없다고 느낀 로칸은 몸을 돌려 다시 자신의 갈 길을 갔다.

* * *

로칸의 목적지는 청명 호수. 15분쯤을 더 달리자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광경이 펼쳐졌다.

“아무도 없나 운이 좋은데 ”

로칸이 운이 좋은 것일까, 이곳이 인기가 없는 것일까.

그것은 알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방해 없이 혼자 해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어디 보자……. 훌륭하군!”

‘숲 괴물의 열매’ 다음 얻어야 할 것은 ‘깨끗한 고기’였다. 청명 호수의 물을 마시며 성장한 동물들을 잡아 그 고기를 얻어 오는 것이다.

딱히 종류를 가리지는 않았기에 운이 좋으면 토끼 한 마리를 잡고도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었지만 재수가 없으면 80레벨이 넘는 푸른 늑대나 핏빛 곰을 상대해야 할 수도 있었다.

“이번엔 정말 운이 좋아.”

그리고 로칸의 앞에는 그들 모두가 있었다. 70~80레벨에 해당하는 선공형 동물들의 숫자만 무려 열이 넘었다.

평소에는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물만 마시고 사라지는 놈들이지만 인간의 혼탁한 기운은 그들 모두의 심기를 자극했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로칸을 포위하더니 당장이라도 공격할 태세를 갖춘 것이다.

“크르르르…….”

하지만 로칸은 환하게 웃었다.

레벨 업을 서두르는 그에게 있어 이런 상황은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놀아 보자!”

로칸은 지체하지 않고 덤벼들었다.

버서크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그 상태에는 숙련도가 잘 오르지 않았다. 아직은 성장이 필요한 때이니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두려는 것이다.

그 때문에 택한 것은 속전속결!

놈들이 협공을 하기 전에 먼저 파고들어 각개격파를 마음먹었다.

“크왕!”

로칸의 눈빛에 살광이 깃들자 놈들이 발작적으로 덤벼들었다. 마치 침략자와 수호자들 간의 싸움 같은 모습이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자신은 침략자가 맞으니까.

로칸은 마주 달려드는 푸른 늑대 한 마리의 머리통을 쪼개며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좋구나!”

인간형 몬스터의 경우 2차 직업을 갖기도 하지만 그 이외의 몬스터는 무조건 종족 특성이 강화되었다.

그 때문에 동물들의 움직임에 익숙하지 않은 대부분의 유저들이 어려움을 겪었지만 로칸은 달랐다. 동물이든, 인간이든, 언데드나 그 밖에 본 적 없는 형태의 괴수들과 셀 수도 없는 전투를 치러 보았던 그였으니까.

고작해야 100레벨도 되지 않은 놈들의 움직임 따위는 너무나 뻔해서 설령 자신보다 능력치가 앞서더라도 해치울 자신이 있었다.

“크허허헝!”

그리고 곧장 워 크라이를 터뜨렸다. 사자왕의 봉인된 투구 효과에 힘입어 놈들의 기세를 단번에 죽여 놓았다.

야수의 본능에 공포를 심어 주고, 놈들뿐 아니라 청명 호수 전체가 떨도록 만들었다.

“숄더 차지!”

쿠웅!

자동차가 부딪히는 듯한 묵직한 충격음과 함께 핏빛 곰의 육중한 몸이 쓰러졌다. 가슴은 함몰되고 거칠게 내지르려던 앞발은 힘을 잃고 덜렁거렸다.

다른 놈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스스로 도망을 쳐도 놓아줄지 모르는 상황에서 광기에 휩쓸려 불나방처럼 덤벼드는 놈들은 결코 로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순식간에 주위는 피바다가 되고, 놈들의 피는 청명 호수로 흘러들어 갔다.

-호수를 더럽히는 자 누구인가!

“젠장.”

그때 전투의 열기에 취해 있던 로칸의 정신이 돌아왔다. 놈들의 붉은 피가 투명한 청명 호수로 흘러드는 순간, 호수에서 어떠한 음성이 들려온 것이다.

[호수의 기사 아트와이트][Lv 100]

청명 호수의 수호자가 노한 기색을 표하며 몸을 일으킨 것이다.

호수의 물로 이루어진 녀석의 몸체는 곧 제대로 된 형상을 갖추었다.

정령 같은 모습에서 점차 진짜 사람의 형태로 바뀌며 로칸을 향해 적의를 드러냈다.

“이걸 깜박했네.”

오래 전 호수의 정령을 사랑한 기사가 죽어서도 수호자로 남을 것을 맹세한 것이라는 설정이라는데, 레벨이 무려 100이나 되었기에 로칸도 난색을 표했다.

트린식의 졸업 레벨이 바로 100레벨이기 때문이다.

크톤에서 트린식으로 넘어오는 것은 꼭 특정 레벨을 달성하지 못해도 괜찮았지만 트린식을 벗어나는 것은 달랐다.

100레벨이 되지 못한 이가 함부로 트린식을 벗어났다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기만 하다가 다시 돌아올 수도 있었다.

그 정도로 100레벨이 가지는 의미는 컸고, 99레벨과 100레벨의 무력 차이는 엄청났다.

“튀었다가 다시 와야 하나 ”

그러니 로칸이 놈을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능력치로만 따진다면 이미 100레벨 수준에 도달한 그였지만 100레벨의 강함은 단지 능력치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조합 스킬이 있었기 때문이다.

1차 직업과 2차 직업에서 얻은 스킬을 자신의 행동과 조합하며 만들 수 있는 조합 스킬의 존재가 압도적인 무력의 차이를 만들어 냈다.

그렇기에 로칸조차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고 도주를 떠올렸다. 일단 청명 호수를 벗어났다가 다시 오면 호수의 기사가 사라져 있을 테니까.

“이놈을 벌써 상대할 필요는 없지.”

꼭 아트와이트가 아니더라도 100레벨 몬스터와는 언제고 한판 붙어야 하긴 했다. 그것이 3차 전직의 조건이니까.

99레벨로 100레벨의 몬스터를 잡는 것, 그리하여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 내는 것.

그것을 하지 못하고 발목이 잡혀 오랫동안 트린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일 필요는 없었다. 나중에 소급 적용이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이놈은 거지였다.

난이도는 트린식 주변에 있는 100레벨 몬스터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주제에 드롭하는 아이템이 ‘호수의 정수’라는 잡템 이외에 전혀 없는 것이다.

“……가만 ”

거기까지 떠올린 로칸의 머릿속에 어떤 가설이 떠올랐다.

마테리안의 목적이 청명 호수가 가진 정화의 힘을 연구하는 것이라면 호수의 정수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퀘스트가 원하는 대로만 움직여서는 쓸 만한 업적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떠올린 로칸은 도망치기 위해 돌렸던 몸을 다시 돌려놓았다.

자신을 향해 살벌한 기세를 뿜으며 다가오는 호수의 기사를 향해 어쩔 수 없다는 듯 배틀 액스를 들어 올렸다.

“까짓 거, 한번 해 보자!”

생각해 보면 못 할 것도 없었다. 99레벨에 비해 부실한 방어구는 사자왕의 봉인된 투구 하나로 커버가 가능했고 무기의 공격력이 약한 것도 타이틀 효과로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을 테니까.

더구나 능력치는 오히려 평범하게 99레벨까지 올렸던 당시보다도 높은 상태였다.

숙련도가 모자란 것이 아쉽긴 하지만 그 또한 자신의 경험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덤벼, 이 결벽증 새끼야!”

-호수를 더럽힌 자, 죽음으로 사죄하라!

호수의 기사는 지체하지 않고 곧장 달려들었다.

호수 위에서 땅 위로 내려앉는 순간 ‘불멸의 축복’을 잃는다지만 100레벨의 위용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껏 상대해 본 적 없는 맹렬한 기세로 로칸에게 짓쳐 들더니 곧장 강력한 베기를 시전했다.

-아쿠아 슬러시!

“씨발, 시작부터 조합 스킬이냐!”

호수의 기사는 기사와 정령사가 조합된 3차 직업이었다. 덕분에 그의 검에는 포스와 정령의 힘이 동시에 깃들었고, 로칸은 감히 부딪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몸을 날렸다.

“리프 어택!”

공격 대상은 없었다. 단지 점프를 통해 놈의 사정거리를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급하게 땅을 박찬 로칸의 몸이 10미터 거리를 단숨에 뛰어넘었고, 재빨리 몸을 회전시켜 방어 자세를 취했다.

조합 스킬도 무서웠지만 3차 전직부터 익힐 수 있는 ‘포스’의 위력 또한 절대적이었다. 더 나중에 익힐 수 있는 ‘오라’만큼은 아니지만 무기에 마나를 담아 공격력을 크게 증폭시킬 수 있는 기본 스킬이니까.

딱 100레벨이라 오랫동안 유지할 수는 없겠지만 순간적으로 온 오프를 할 수 있는 스킬인 만큼 주의가 필요했다.

하지만 로칸에게는 그것을 상쇄할 수 있는 스킬이 있었다.

바로…….

“버서크!”

버서크를 쓴다고 포스가 깃들지는 않지만 한껏 강화된 공격력은 포스가 깃든 검과 부딪쳐도 밀리지 않는 위력을 발휘할 터였다.

까앙! 까앙! 깡! 깡!

물론 무기가 서로 부딪칠 때마다 내구력이 팍팍 깎여 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오, 내 수리비!’

하지만 반파되어 가는 배틀 액스의 수리비에 속이 쓰린 와중에도 로칸은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무기를 부딪칠 때마다 조금씩 추가되는 마법 대미지에 생명력이 떨어지고 있었음에도 전투 자체는 할 만하다고 느낀 것이다.

-아쿠아 슬러시!

“대시!”

그렇다면 조심해야 할 것은 조합 스킬뿐이었다. 정면으로 받아서는 답이 없는 공격력이기에, 대시나 리프 어택을 이용해 피해 내며 역으로 빈틈을 노렸다.

“숄더 차지!”

-아쿠아 가드!

쿠웅!

한 방 위력을 중시하는 대신 빈틈이 큰 아쿠아 슬러시를 커버하는 검막과 아쿠아 실드의 조합 스킬.

공방 모두에 성실한 놈의 조합 스킬에 로칸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숲 리자드맨의 가죽으로 만든 견갑이 날카롭게 베이는 고통을 참으며 오히려 몸을 더욱 놈에게 밀어 넣었다.

“큭!”

쩌정!

어차피 버서크를 쓴 상태이니 생명력이야 어떻게 돼도 좋았다. 목이 잘리거나 심장이 꿰뚫리지만 않는다면 스킬이 끝난 뒤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으니까.

로칸이 더욱 거칠게 몸을 던지자 놈의 방어 스킬이 깨졌다.

힘과 위력에서 밀리자 검이 튕기며 놈의 자세가 흐트러졌다.

“스트라이크!”

-이스케이프!

방어를 뚫어 낸 로칸이 힘을 짜내 놈에게 도끼를 박아 넣으려는 순간, 놈의 세 번째 조합 스킬이 발동했다.

로칸의 반지에 내장된 것과 유사한 탈출 스킬. 공격과 방어, 그리고 생존기까지, 쿨 타임은 길지만 단 한 번 확실한 회피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호수의 기사 아트와이트가 괜히 100레벨 몬스터 중에서도 최강이라 불리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더럽긴 더럽네.”

그것을 알기에 로칸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면서도 다시 공격을 준비했다.

이미 놈의 조합 스킬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으니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제 제대로 해볼까 ”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진 아트와이트를 향해 로칸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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