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세비지 마을 공략 (3)
“크악!”
세비지 워리어의 등장과 함께 오크들의 진영에 구멍이 생겼다. 세비지 워리어가 압도적인 스피드로 오크 전사들을 해치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셋이나 되는 오크 전사를 꿰어 버린 세비지 워리어는 기세를 몰아 다른 세비지를 몰아세우고 있는 오크 무리를 휩쓸어 버렸다.
“왔구나!”
까앙
그런 놈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다름 아닌 로칸이었다. 장난감을 뺏길까 걱정하는 아이처럼 모든 걸 팽개치고 달려와 녀석의 공격을 막았다.
“놈!”
후아앙!
그때, 오크 투사가 바로 끼어들었다. 애초부터 세비지 워리어의 등장을 상정해 두고 있던 오크 투사는, 세비지를 상대하는 대신 언제든 전투를 치를 수 있도록 몸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럼에도 셋이나 되는 전사를 잃었다는 것은 세비지의 움직임이 얼마나 빠른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일부러 적진을 파고들며 놈이 나타나는 타이밍을 재고 있던 로칸이 좀 더 빠르기는 했지만.
‘이 새끼가.’
그렇게 잡은 기회를, 오크 투사가 끼어들어 다시 빼앗아 가 버렸다.
“와라!”
스르륵!
오크 투사의 도발에 세비지 워리어도 지지 않고 화답했다.
서로를 알고 있는 둘에게 이미 로칸은 안중에도 없었다.
까가강!
다시 한 번 둘의 무기가 부딪히며 큰 파장을 만들어 냈다. 충격파까지는 아니지만 무형의 기파가 모두를 휩쓸었다.
덕분에 주변이 소강상태에 빠진 것은 당연한 일.
오크, 세비지 할 것 없이 그들의 주위에서 물러나니 충분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싸움을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지만 전과 달리 적당히 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뛰어난 전사들인 만큼 전투도 좋아하지만, 보다 수준 높은 전투를 볼 수 있는 것에도 무척 관심이 많아서였다.
‘어딜!’
그때, 로칸이 초를 쳤다. 둘의 공방 사이로 끼어든 것이다.
“읏차!”
평범한 오크 전사라면 육편이 되어 버렸을 테지만 그가 누구인가. 일찍이 1레벨에 오크 투사를 잡은 로칸이 아니던가
30레벨까지 달성한 마당에 당해 줄 이유가 하등 없었다. 오히려 로칸은 둘을 모두 튕겨 내 버렸다.
“뭐냐!”
오크 투사가 소리치고 세비지 워리어가 노려보았다. 자신들의 싸움이 방해받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로칸도 지지 않고 세게 나갔다. 눈을 부라리고 오크 투사를 올려다보았다.
“족장이야말로 이게 뭡니까 저놈과는 내가 먼저 전투를 시작했소! 전사의 명예를 더럽힐 참이오 ”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의 말처럼 일단 놈과 처음 무기를 맞댄 것은 오크 투사가 아닌 로칸이었으니, 계속해서 오크 투사가 세비지 워리어를 상대하겠다면 그건 싸움에서 물러나지 않는 전사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었다.
오크 투사에게 먹힐 만한 키워드를 로칸은 알고 있는 것이다.
“크흥!”
그래서인지 오크 투사의 눈빛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강한 상대와 붙고 싶은 마음은 여느 오크와 다르지 않으니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눈빛이었지만, 족장이 되어 전사의 율법을 어기라고 종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러서지 마라!”
그 말을 끝으로 오크 투사가 한발 물러났다.
‘물러서기는 이놈아. 넌 내가 1레벨일 때 잡았다, 흐흐!’
남은 것은 세비지 워리어와 로칸뿐. 하지만 세비지 워리어는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첫 격돌에서 로칸의 힘이 만만치 않음을 확인했던 까닭이다.
“누구든 똑같다. 일족을 범했으니 순서대로 죽여 주마.”
하지만 전의를 상실한 것은 아니다. 뱀 같은 눈을 빛내며 로칸의 심장을 찔러 왔다.
“거참, 성격도 급하긴!”
전생에도 성급하기로 소문났던 로칸이 할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말만큼 행동도 가볍지는 않았다.
오크족 배틀 액스를 들어 날의 옆면으로 빛살처럼 찔러 오는 놈의 공격을 막아 냈다.
“쳇, 수리비 좀 깨지겠군.”
막아 낸 부위가 이 일격에 움푹 파였다. 그만큼 놈의 힘과 속도가 대단한 것이다. 간을 좀 볼까 했는데 이래서야 수리비가 아까워서라도 힘들 것 같았다.
‘저번에 싸웠던 오크 투사였으면 졌을 수도 있겠는데 ’
세비지 워리어의 무기는 크리스. 구불구불한 꼬챙이처럼 생긴 무기였다.
용도는 역시 찌르기. 세비지의 장기인 민첩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무기 중 하나이다 보니 대검을 휘두르던 타취할이었다면 상성에 밀려 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이 월등하니 한 방만 걸리면 또 모르겠지만 놈의 방어 스킬이 세비지 워리어의 공격력보다 조금만 낮아도 농락을 당했을 터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 간의 싸움일 때 이야기이다.
지금 세비지 워리어의 상대는 로칸. 자비 없는 폭력의 왕이었다.
“버서크!”
“크허허헝!”
버서크 없이도 할 만했겠지만 로칸은 굳이 오래 끌 생각이 없었다.
고생과 고행으로 실력을 쌓을 단계는 예전에 넘었고, 놈을 상대로 연습하듯 옛 실력을 끌어 올리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어차피 만족하지 못할 테니까.
“스피어 샷!”
워 크라이의 효과로 온몸이 욱신거리는 가운데 세비지 워리어가 달려드는 로칸에게 크리스를 내질렀다.
일점 폭발.
세비지의 공격이 강력한 힘과 속도로 몸을 터뜨릴 듯 쏘아졌지만 로칸은 웃었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렸다. 그리고 정직했다. 스킬을 응용하지 못하고 그대로 쏘아 낸 탓에 노리는 위치가 빤히 보였다.
그런 것을 맞아 줄 수는 없지. 로칸은 가볍게 어깨를 틀어 피해 내고 배틀 액스를 내리찍었다.
후웅! 콰앙!
폭탄이 터지듯 세비리 워리어의 발치가 터져 나갔다. 과연 보스급이라는 것인지 간신히 뒷걸음질을 쳐 피해 낸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로칸은 배틀 액스와 함께 기울어진 무게 중심을 통째로 옮겼다. 도끼 자루를 기둥처럼 붙잡고 놈을 향해 슬라이딩을 했다.
살인 태클!
발목을 세우고 힘을 실어 놈의 발목을 날아 찼다.
“읍!”
우득!
녀석의 발목이 90도로 돌아간 것이 눈에 보였다.
엄청난 고통에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걸 보니 살짝 미안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죽을 놈이다.
로칸은 몸을 벌떡 일으키며 땅에 박힌 배틀 액스를 다시 뽑아들었다.
절뚝거리는 놈의 자세가 불안정해 보였다. 언제라도 균형을 잃고 넘어질 듯 고통에 땅을 딛지 못하고 부들거렸다.
‘쇼하고 있네!’
하지만 로칸은 속지 않았다. 저것은 모두 연기였기 때문이다.
역습의 한 방을 노리고 방심한 채 들어오라는 유인에 속는 대신, 로칸은 다시 배틀 액스를 땅에 박았다.
“이거나 처먹어라!”
쐐애액!
던져진 것은 두 자루의 손도끼.
각각 놈의 몸통과 성한 다리 한쪽을 노리고 던지자 놈도 어쩔 수 없었다. 놈은 폴짝 뛰며 로칸의 손도끼를 피하고 크리스를 내질러 튕겨 내야 했다.
“대시, 스트라이크!”
“컥!”
피할 곳 없이 공중에 떠올랐으니 샌드백이 되는 건 당연했다.
기다렸다는 듯 달려든 로칸의 배틀 액스가 크리스를 튕기고 가슴에 박혔다. 마치 둔기라도 되는 듯, 그대로 바닥에 내리찍었다.
정신을 차릴 틈이 없도록 머리를 걷어차고 장작 패듯 몇 번이나 연거푸 도끼질을 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굉장한 업적! 난폭한 숲의 두 패자를 모두 쓰러뜨리셨습니다.]
[타이틀 ‘난폭한 숲의 정복자’를 획득했습니다.]
[당신은 이 타이틀의 최초 획득자입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 오크 캠프의 오크들을 선동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세비지 마을을 정복했습니다.]
[타이틀 ‘흑막’을 획득했습니다.]
[당신은 이 타이틀의 최초 획득자입니다.]
[최초][난폭한 숲의 정복자][레어]
난폭한 숲의 두 패자를 무릎 꿇린 이에게 부여되는 칭호
[보유 효과]
-힘 +10
-민첩 +10
-숲 지형에서 모든 능력치 5% 상승
[최초][흑막][유니크]
칼과 같은 혀로 둘 이상의 적을 상잔시키는 전쟁을 일으킨 당신의 지모에 찬사를 보냅니다.
[보유 효과]
-지능 +20
-지혜 +20
[특수 효과]
-[신분 위장] 사용 가능
‘이것 봐라 ’
난폭한 숲의 정복자는 예상했지만 흑막은 의외였다.
명예 오크 전사 타이틀 효과 때문에 이런 유의 타이틀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시스템은 오크들을 로칸의 ‘아군’으로 인식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평판이 좋을 뿐, 결국은 적이 될 종족이라는 건가 ’
하지만 어쨌든 로칸에겐 좋은 일이었다. 근접 계열이 여유 능력치를 투자하기 꺼리는 지능과 지혜까지 올려 주는 데다 [신분 위장]이라는 특수 능력까지 사용이 가능하게 되었으니까.
‘이건…… 써먹을 수 있겠군.’
잠시 동안 표시되는 이름과 외모를 바꿔 주는 특수 스킬이다. 당장은 쓸데가 없겠지만 상황에 따라 꽤 유용하게 써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취익! 훌륭하다!”
“우워어어어어어어!”
“남은, 킁! 놈들을, 킁킁! 쓸어버려라!”
로칸이 타이틀을 확인하는 동안 오크 투사와 오크 전사들은 흥분이 극에 달했다. 오크들은 사기가 크게 떨어진 세비지들의 몸을 칼로 유린하고 마을을 파괴하면서 불을 질렀다.
[오크 캠프와 세비지 마을의 전쟁에서 오크 캠프가 승리했습니다.]
[앞으로 1개월간 세비지 마을은 폐허가 된 세비지 마을로 지형이 변경됩니다.]
[폐허가 된 세비지 마을에서는 ‘원한의 세비지’가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전체 공지가 아니라 지역 공지였다. 로칸으로 인해 지형이 변화해 버린 것이다.
세비지 마을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한동안은 오크들이 득세하고 세비지의 숫자가 줄어들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러든지 말든지.’
갑작스러운 공지와 영광스러운 승리를 거두고 다시 오크 캠프로 되돌아가는 오크들의 행렬에 유저들이 술렁이는 사이, 퀘스트 완료 조건을 달성한 로칸은 오크들의 틈에서 빠져나와 스테로이안에게로 향했다.
* * *
“구해 왔습니다.”
“뭐 그걸 벌써 ”
이번에도 퀘스트를 받아 나간 지 불과 몇 시간 만이었다.
NPC들은 유저들의 레벨을 가늠할 수 있기에 스테로이안은 30레벨인 로칸이 오크 전사와 세비지를 잡고 피를 얻어 오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단 몇 시간 만에 돌아오자 스테로이안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타이틀 ‘스테로이안의 첫 번째 조수’를 획득했습니다.]
[당신은 이 타이틀의 최초 획득자입니다.]
‘응 첫 번째 조수 ’
이 타이틀의 명칭은 그냥 ‘스테로이안의 조수’가 아니던가 로칸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쿨하게 받아들였다. 아무래도 최초 획득 보너스가 붙은 모양이었다.
[스테로이안의 첫 번째 조수][유니크]
스테로이안이 거둔 첫 번째 조수에게 주어지는 칭호. 스테로이안에게 신분 증명을 받을 수 있다.
[보유 효과]
-체력 +10
-맷집 +10
-[명탐정의 조수] 효과로 이동속도 +5%
‘오! 고작해야 지능과 지혜를 조금씩 올려 주나 했더니.’
지능과 지혜가 아니라 엉뚱한 체력과 맷집, 이동속도만 올랐지만 타이틀 효과 자체는 쓸 만했다.
“그럼 잠깐만 기다리게.”
두 병의 피를 받아 든 스테로이안은 즉시 작업에 들어갔다. 이렇게 로칸이 빨리 올 줄은 몰랐지만 대부분의 준비는 이미 완성된 상태였다.
약 10분 정도 이리저리 시약을 옮기고 섞어 대더니 한 병의 약을 만들어 로칸에게 건넸다.
“이걸 트린식에 있는 마테리안 님에게 전해 주게.”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퀘스트를 툭 던졌다.
[개량된 해독제 전달][퀘스트]
스테로이안이 개량한 해독제 시제품을 트린식에 있는 마테리안에게 전달하자.
-성공 조건 : 마테리안에게 개량된 해독제 전달
-보상 : 3실버, 보통의 경험치
‘졸업이군.’
보상은 여전히 형편없지만 그 의미는 남달랐다. 이것이 크톤을 떠나는 마지막 의뢰였으니까.
이제 로칸도 다음 도시로 떠날 준비가 된 것이다.
어차피 크톤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이미 모두 얻어 낸 상태.
로칸은 이대로 트린식으로 넘어가 다음 계획을 이루고, 상위권 유저들과의 격차를 좁히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마법사 길드를 나가는 즉시 인벤토리를 정리하고 트린식으로 떠날 채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