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랭커 회귀하다-2화 (2/500)

# 2

폭력의 왕, 돌아오다 (2)

3개월은 길고도 짧게 흘렀다.

더 로드의 오픈을 기다리는 마음을 생각하면 3년처럼 길게 느껴졌지만 오픈 전까지 필요한 준비를 마치려면 무척 숨 가쁘게 느껴진 것이다.

그 3개월이란 시간 동안 영민은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 먼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 기억하는 것들, 경험했던 것들을 잊지 않도록 컴퓨터에 옮겨 적었고 만약을 대비해 이중, 삼중으로 백업을 해 두었다. 물론 철저하게 보안을 걸어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주 기본적인 사항들을 제외한 굵직한 것들만 적었는데도 거의 책 한 권 분량에 육박했다.

다음으로는 가지고 있던 모든 게임 계정들을 처분했다. 오픈과 동시에 캡슐을 구입할 수 있도록 미리 총알을 구비해 두는 것이었다.

과거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더 로드가 출시한 이후에도 아이템의 일부만 팔아 치웠지만, 이제는 안다. 더 로드를 접하는 순간부터 다른 게임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실제로 더 로드를 플레이하고 나서 다른 게임을 해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것도 점검 때문에 시간을 때우기 위해 몇 판 했을 뿐이었으니 미련 없이 모든 아이템과 계정까지 통째로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 올려 버렸다.

“3천만 원이라,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

이미 몇몇의 가상현실 전투 게임에서 네임드로 불리던 그였기에 값은 후하게 받았다.

그렇게 손에 넣은 돈이 무려 3천만 원이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당분간은 걱정 없을 것이다.

캡슐을 최고급으로 맞추면 1천5백만 원 정도 할 테고 남은 1천5백만 원이면 몇 달의 캡슐 유지비와 생활비, 준비물 들을 구입하는 비용으로는 충분할 것이다. 그 이후부터는 더 로드로 돈을 벌 수 있을 테니 걱정 없었다.

이 돈으로 잠깐이라도 투자를 해 볼까 하는 유혹도 들었지만, 영민은 생각을 다잡았다. 그가 게임 이외에 아는 것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대략이나마 어디 주식이 몇 년 후에 빵 떴다는 정보는 한두 가지 알고 있지만 그때까지는 시간이 너무 길었고, 무엇보다 이제부터는 더 로드가 더 큰돈이 될 것이기 때문에 생각을 접은 것이다.

“생활비가 곧 끊길 테니까 이 정도는 남겨 두고…….”

몸만들기를 비롯해 여러 준비를 하느라 1학기를 망쳐 버렸고 2학기에는 게임을 위해 휴학까지 했다는 사실을 부모님께서 아신다면 용돈이며 생활비가 끊길 것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실제 과거에도 그랬으니까.

과거에는 바람난 여자 친구한테 차인 여파로 방황하느라 1학기를 망치고 더 로드에 빠져 사느라 2학기까지 망쳤었다.

물론 지금은 헤어진 여자 친구의 생각을 단 1분도 하지 않는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도 마음을 정리한 지 오래였다.

“소문은…… 어쩔 수 없지. 어차피 끝까지 다닐 것도 아니고.”

전 여친과는 과 CC였다. 돌아온 그날 이후로 과 생활도 잘하지 않고 수업도 거의 들어가지 않아 과에는 게임이 아닌 전 여친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져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더 로드에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학교는 계속해서 휴학하거나 등록만 해 둘 생각이니까.

어차피 대학교도 취업을 위해 다니는 것 아닌가 곧 더 로드가 직업이 되는 시대가 온다. 그때는 아예 자퇴를 하고 제대로 게임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와 같은 상황을 반복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열렸다!”

더 로드의 캡슐 예약 판매는 정말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졌다.

아무런 소식도 없다가, 심지어는 게임 전문 웹진에서조차 모르고 있다가 포털 사이트 광고를 도배하면서 이슈가 된 것이다.

황당했지만 효과는 대단했다. 온통 가상현실 전용 캡슐에 대한 내용으로 도배가 됐으니까.

제작사가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는 이유로 사기라는 주장도 많았지만 영민은 주저 없이 최상급 옵션으로 결제를 했다. 아직은 사람들이 주저하지만 곧 없어서 못 사는 상황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 같아서는 한두 대쯤 더 구입해서 되팔기라도 하고 싶었지만 게임사인 팔콘에서 철저하게 1인 1 구매만을 인정하는 까닭에 포기했다.

어차피 캡슐은 옵션이다. 좋은 캡슐일수록 감도가 더 좋아지고 오랫동안 플레이할 수 있기는 하지만 기존 가상현실 게임 접속기로도 충분히 이용은 가능했다. 더 로드가 급속도로 확산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니까.

“닷새 후가 기대되는군.”

배송에서 설치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사흘. 그리고 더 로드의 오픈은 닷새 후였다. 정확히는 닷새 후 자정.

새벽 시간대에는 상대적으로 접속자가 적기 때문에 과부하가 걸릴 확률이 적고 혹시 모를 버그가 발생하더라도 대처할 시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유저들도 잠을 자야 하기 때문에 원성을 높일 시간과 사람이 줄어드는 것이지만.

‘하지만 그럴 일도 없지.’

비싼 계정비를 받는 더 로드의 경우 런칭 초반 사기가 아니냐는 오해 때문에 그렇게 많은 유저가 접속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완성형에 가까운 상태로 내놓았기 때문에 금방 소문이 돌아 접속 인원이 폭주에 가깝게 증가해도 단 한 번의 문제조차 일으킨 적이 없었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결제에 성공하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휴학 신청 기간까지는 아직 두 달쯤 남았고, 컨디션 조절만 하면 되겠어.”

앞으로 닷새. 3개월도 참았는데 닷새를 더 못 참을까. 영민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었다.

지난 3개월 동안 꾸준한 운동으로 영민의 몸은 꽤 좋아진 상태였다.

3개월간 얼마나 극적인 변화가 있겠냐마는, 군대를 다녀온 지 오래되지 않아 썩 쓸 만한 몸 상태를 유지하던 차였다.

게다가 이번에는 더욱 오랜 시간 게임을 접속하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게임 진행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격투기까지 배운 그였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니 식단 관리와 도장 등록만으로도 최고의 컨디션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 가능했다.

“후우! 후우!”

주변에는 챔피언 경력이 몇 번이나 있는 체육관이나 도장이 제법 있었다.

그러나 영민이 선택한 것은 평범한 동네 무술 도장이었다.

유도며 합기도와 같은 무술을 몇 가지나 함께 가르치는 조그만 곳이었지만 어차피 도장은 기구와 시설을 이용하려는 것뿐이었기에 만족했다.

대신 자신의 전투 스타일을 소화할 수 있도록 근육을 키우고 감각을 끌어 올리는 데 집중했다. 현실에서도 최대한 비슷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누군가는 게임 하나를 위해 뭐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해 보면 안다. 더 로드는 그럴 가치가 있었다.

어찌나 악착같이 운동을 하는지 관장이 격투기 선수라도 준비하느냐고 물어볼 정도로 근육을 쥐어짠 영민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영민의 독특한 클래스와 전투 방식을 생각하면 완전한 준비는 아니었다. 그것은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좀처럼 하기 어려운 것이니까.

“오늘도 열심이구먼. 자네 덕에 다들 열심이야. 계속 수고하게.”

“아, 예.”

운동 중인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고 가는 관장을 보며 영민이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곧 다들 열심히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더 로드의 오픈과 함께 모든 종류의 무술과 격투기 도장이 크게 부흥하는 시기가 올 테니까.

레벨은 되는데 컨트롤이 안 돼서 자신보다 낮은 레벨의 몬스터에게 죽임을 당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영민도 그 때문에 처음에는 비싼 돈을 주고 유명한 도장을 찾아다녀 봤다. 더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

하지만 제대로 된 무술이라는 것을 배우기까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고, 그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전에서 쓸모가 있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일단 손에 쥔 무기가 다르고 활용법부터 다르니까.

그럼에도 게임 초반에는 소위 무술, 또는 격투기를 배운 이들이 선전하기는 했다. 아무래도 직접 몸을 써야 한다는 점에서 오래도록 수련해 왔거나 ‘생명체’를 타격하는 것에 익숙한 이들이 더 빠르게 적응했던 것이다.

‘그래 봤자 초반뿐이지만.’

하지만 어디까지나 초반뿐이었다.

캐릭터가 인간 이상의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그 간극은 좁혀지기 시작했다. 단지 몸을 쓰는 것밖에 모르던 이들이 게임에 빠삭한 이들에게, 감각이 뛰어난 이들에게, 전략이 좋은 이들에게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게임 센스, 전투 센스라는 것은 현실에서 싸움을 잘한다고 무조건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나마 무술을 넘어 살인 기술을 배웠다는 이들이 선전하기는 했지만 그 역시 성장이 조금 빠를 뿐이다. 결국 승자는 ‘게이머’들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영민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으로만 운동을 할 셈이었다. 운동에 투자할 시간에 1분이라도 더 게임에 접속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근육을 혹사시켜 가며 고통스럽게 운동을 하는 것도 며칠 남지 않았다.

‘지금은 이 정도면 충분해.’

영민은 그렇게 마지막 의지를 다지며 준비했던 것들을 복기해 나갔다. 실수로라도 잊지 않도록 외우고 또 외웠다.

그렇게, 더 로드의 오픈일이 다가왔다.

* * *

“후우, 떨리는데 ”

꼬르르륵.

영민이 입을 열 때마다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왔다. 그가 들어와 있는 캡슐 안에 특수한 용액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래전 인기를 끌었던 에반게리언이라는 로봇 작품에 나오는 것처럼 호흡이 가능한 액체였다.

더불어 상당한 영양분까지 품고 있어서 오랜 시간 접속을 끊지 않아도 건강의 악화를 막아 주는 고마운 기능을 했다. 식음을 전폐하는 일이 빈번해질 영민에게 꼭 필요한 기능이랄까.

남들은 들어차는 용액에 식겁하며 버둥거리느라 조작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그때, 영민은 능숙하게 캡슐을 조작해 더 로드에 접속했다.

“5, 4, 3, 2…… 1. 접속!”

순간 아찔한 기분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현실이 아니다. 더 로드의 세계로 들어온 것이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검은 공간이었다.

게임에 접속하면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그곳, 캐릭터 선택 창이었다. 아직은 캐릭터가 없으니 커스터마이징 공간이라 봐야겠지. 눈앞에 나타난 전신 거울을 슬쩍 건드리자 현재 자신의 모습이 나타났다.

‘내가 아는 그대로군.’

기본 종족은 휴먼이지만 진영별로 휴먼, 노움, 하프엘프, 드워프를 선택하거나 반대 진영인 오크와 트롤, 언데드, 고블린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했다.

각자의 특성도 있고 그에 따라 초반의 성장에 차이도 있지만, 유행에 따라 밸런스가 붕괴될 만큼 다른 종족을 압도하지는 못했다.

때에 따라 어떤 종족이 사기라는 말이 나오긴 해도 다른 종족에서 누군가가 뜨면 금방 대세가 바뀌어 버리기 일쑤였고.

군림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종족이 아니라 길드, 혹은 강력한 개인이었다.

MMORPG의 성격을 띠기는 하지만, 성장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초인’이 되어 개인이 다수를 쓸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종족 선택, 인간.”

외형의 변화는 30%까지 가능했지만 영민은 머리색과 스타일 정도만 수정하고 대부분 그대로 두었다. 팔 길이 등을 길게 조정하는 등으로 좀 더 이점을 가지기보다 가장 익숙한 육체를 선택한 것이다. 어차피 팔다리를 늘려 봤자 한계가 있었고 스펙이 좋다 한들 내게 맞지 않으면 바꾸지 않느니만 못했다. 그리고 본판도 나쁜 편은 아니었다.

[여행자여, 당신의 이름을 말해 주세요.]

“로칸. 내 이름은 로칸이다.”

마지막으로 이름까지 정하자 영민은 거울 속 로칸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곧 로칸의 그것으로 시야가 바뀌었다.

* * *

눈에 들어온 것은 우주. 그리고 단위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나무였다.

하지만 로칸은 알고 있었다.

그것이 나무가 아니라 ‘세계’라는 것을.

담담히 지켜보자 로칸의 몸이 빛의 입자가 되어 그 주위를 크게 돌았다.

그러다 번쩍 섬광이 터지며 자기 문구 하나가 나타났다.

[튜토리얼을 진행하시겠습니까 스킵할 시 튜토리얼 보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Y/N.]

로칸은 손을 들어 주저 없이 Y 버튼을 터치했다.

소위 게임 좀 해 봤다 하는 이들이라면 ‘튜토리얼 보상은 별거 없어!’라며 스킵을 해 버리겠지만 그것이 함정이었다. 나중에 가면 별것 아닌 것처럼 느낄 수도 있겠지만 초반에는 이 보상만큼 가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니, 나중에 눈덩이처럼 벌려질 격차의 시작이 바로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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