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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사랑에 관하여 (39/53)

11. 사랑에 관하여

지그시 바라보던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요즘 메신저 창에 들어가는 게 습관이 된 기분이다. 나도 모르게 새로운 연락을 못 본 건 아닌가 재차 확인을 하게 된다. 이거 혹시 핸드폰 중독 같은 건가? 진동이나 알람 소리도 없었으니 연락이 없는 게 당연한데도 계속 반복해서 같은 창을 켜고 있다.

테이블 옆에 핸드폰을 놓고 다시 숟가락을 들다가 왠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해진 테이블에 슬쩍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에 앉은 최백과 공진하는 물론이고 강이헌까지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아니, 아니야. 아, 벌써 시간 늦었네.”

강이헌이 핸드폰도 보지 않고 어색하게 말을 이었다. 뭐야, 갑자기? 내가 이상하게 먹었나? 재빠르게 숟가락질을 하는 강이헌과는 달리 최백과 공진하는 여전히 말없이 날 바라본다. 왜 저러지?

“뭐 묻었어?”

“……아니야.”

뒤늦게 대꾸한 공진하가 숟가락을 뜨는 찰나, 무표정한 얼굴의 최백이 대뜸 말을 꺼냈다.

“너, 요즘 핸드폰 너무 보지 않냐?”

“내가?”

“어.”

의아하게 눈을 깜빡이다 어색하게 눈을 굴렸다. 잠깐만… 이거 아까 나도 한 생각인데, 최백도 느낄 정도면 중독이 맞는 모양이다. 마음이 약간 심란해졌다. 다른 사람들한테 중독이냐고 핀잔을 줄 때랑 느낌이 다르다. 핸드폰 중독은 어떻게 벗어나는 거지?

“그런 것 같은데.”

“……흥.”

코웃음에서 짜증이 느껴진다. 갑자기 화가 난 듯 자리에서 일어난 최백이 제가 쓴 식기를 정리하는 모습에 멍하니 그 모습을 쳐다봤다. 싸늘하게 굳은 표정이며 소음까지. 누가 봐도 성질이 잔뜩 난 사람이었다.

대뜸 화를 내는 태도에 뭐라 말도 못 하는 나를 힐끔 바라본 최백이 한 번 더 코웃음을 친다. 나한테 화라도 난 거냐고 묻기도 전에 놈은 휑하니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한테 진짜 화난 것 같은데? 떨떠름하게 공진하와 강이헌을 돌아봤다.

“뭐야, 쟤 왜 저래? 나, 무슨 짓 했어?”

“그…….”

“에이, 아니야. 신경 쓰지 마. 오늘 몇 시에 나가? 리딩 준비는 잘했어?”

“아직 느긋해.”

머뭇거리는 강이헌의 말을 자른 공진하가 가볍게 대꾸하며 물었다. 다시 슬쩍 화면을 켰다. 알림 하나 없는 핸드폰에 현재 시간이 뜬다. 시간도 엄청 남았네. 저번과는 달리 가까운 위치에 넉넉한 시간이라 밥도 더 느긋하게 먹을 수 있었다.

말을 삼킨 채 밥을 먹던 강이헌이 날 돌아보며 환하게 웃었다.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다. 최근의 강이헌이 이런 표정을 지을 때는 둘 중 하나였다. 첫째, 우리 노래가 상위권 차트에 있을 때. 둘째는 내 이야기다.

“생각할수록 신기해. 선율이가 주연이라니, 처음 연기한다고 했을 때는 생각도 못 했었는데. 오늘 어때? 긴장되지는 않아?”

“괜찮아. 연습도 꽤 했고.”

확실히 ‘주연’이라는 두 글자가 주는 무게가 상당하다. 진짜 빨리 주연이 되긴 했지. 이래서 ‘아이돌 파워’라며 혀를 내두르는 사람들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은 몇 년은 더, 혹은 몇 작품 더 커리어를 쌓아야 주연을 따낼 수 있을 텐데. 음, 나는 작가가 좋게 봐 줘서 그런 거긴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 가는데, ‘연습’이라는 단어에 예민하게 눈을 번뜩였던 공진하가 은근한 어조로 말을 걸었다.

“저번 밤에 있었던 그 연습 말하는 거지?”

“……너, 나 봤어?”

“그럼. 야밤에 수상하게 나갔다 들어오는 걸 보고 많은 생각을 했지!”

일부러 밤에 어디 갔다 오냐 캐묻지 않았으면 해서 아무도 없는 거 확인하고 나갔는데……. 내 방에 왔었나? 어색하게 눈을 깜빡였다. ‘야밤’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어감이 이상하다. 몹쓸 짓을 하고 들어온 기분이다. 진짜 연습만 하고 왔는데.

난감하게 눈을 굴리는 나보다 더 격한 반응을 보인 건 옆에서 밥을 먹던 강이헌이었다. 공진하의 말에 크게 기침을 한 강이헌이 기겁한 얼굴로 공진하를 바라봤다. 뭐야, 이땐 쟤가 아니라 날 보고 놀라야 하는 거 아닌가? 내 시선을 느낀 강이헌이 어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콜록! 아, 나, 난 밥 다 먹었다. 둘 다 맛있게 먹어. 선율이는 리딩 잘 하고 오고, 형도 오늘 작업 잘 하고.”

“응!”

딱딱하게 굳은 어조에도 이상함을 못 느낀 듯, 환한 미소를 지은 공진하가 양손을 흔들어 보였다. 억지 미소를 지은 강이헌이 그 손에 조심스럽게 하이파이브를 하고는 급히 자리를 떴다.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어느새 얌전히 젓가락질을 하고 있는 공진하에게 몸을 기울였다.

“너, 오늘도 회사 가?”

“다음 앨범 준비해야지. 일정이 너무 타이트해서 시간이 없어.”

싱글 활동이 이제야 끝났는데 무슨 앨범 준비를 벌써부터……. 음. 하긴, 예상보다 일찍 잡힌 콘서트 준비를 위해서라면 별별 걸 다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편곡이라든가, 다음 앨범에 들어갈 노래 작곡이라든가. 이번에도 미공개 곡 같은 거 보여 주나?

“예능은 언제부터야?”

“아직 좀 남았어! 일주일?”

언제부터 일주일이 ‘아직 좀’이나 남은 게 됐는지 모르겠다. 눈 깜빡하면 사라지는 게 일주일인데. 그나저나 예능에 앨범 준비까지 하면 얼굴 보기도 힘들겠다. 이번 봄에는 숙소에 남아 있는 사람이 없겠네. 나도 모르게 슬쩍 주변을 둘러봤는지, 공진하가 왜 그러냐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그냥. 작년 이맘때는 숙소에 많이 있었는데 올해는 아니겠다 싶어서.”

“그러게. 너랑 나랑 백이가 숙소에 잘 있는 멤버였는데, 이젠 셋 다 바쁘니까 조용하겠다.”

담담하게 수긍한 공진하의 맑은 눈에 숙소의 풍경이 담겼다. 내 뒤로 보이는 장면을 물끄러미 보는 모습에 나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각자 방에 있거나 스케줄로 나가 자주 북적이던 거실이 오늘따라 적막하다. 커튼에도 빛이 채 가려지지 않은 공간이 환하게 빛났다.

가만히 뒤를 응시하는 날 봤는지, 나지막한 물음 소리가 이어 들렸다.

“쓸쓸해?”

“아니.”

쓸쓸하기는. 그런 감정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기분이 꽤 좋았다. 숙소가 비었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모두 바쁘다는 거니까. 익숙한 공간 속에서 묻혀 가는 건 이제 질릴 대로 했다. 이제 우리에겐 다른 차례가 온 것이다.

“좀 뿌듯해. 여러모로 성장했다 싶어서.”

웃음을 숨기지 못한 채 공진하를 돌아봤다. 나만 봐도 전에는 저 소파에 누워 죽어 갔는데, 이젠 더 이상 저기에 누워 마냥 지나간 날을 돌아보지도, 무언가를 체념하고 포기하고 있지도 않다. 나는 부정적인 감정 대신 새로운 감정을 쥐었다. 그건 즐거움이었다.

‘잘하면 재밌을걸. 잘해서 인정받으면, 아주 재밌어질 거야.’

작년 이맘때쯤 들었던 말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그 웃음기 없던 담담한 목소리는 이날을 예견했을까?

공진하는 이 말을 했던 걸 기억하고 있나 모르겠다. 웃으며 뭐라 말하려는데, 말없이 날 보고 있던 공진하와 곧장 눈이 마주쳤다. 뒤늦게 흐리게 웃는 표정이 이상하다. 억지로 웃는 얼굴이었다.

“그래?”

“……표정이 별론데. 넌 아니야?”

“나는.”

뚜렷하게 들리던 목소리가 끊겼다. 잠시 입을 다문 표정엔 희미한 미소마저 사라졌다. 생각에 깊게 빠진 얼굴로 시선을 내린 공진하가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난 쓸쓸해.”

그렇게 말하곤 가만 웃는다. 나는 그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되새겼다. 답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는 듯, 공진하는 얼마 안 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말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알려 주는 것 없이 자리가 비어진다.

* * *

보내기를 누르자마자 후회했다.

12:21

쓸쓸하다는 말이 뭔지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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