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 괜찮아 (6/53)

5. 괜찮아

‘…-래서, 이번에 엔터테인먼트 하게 된 거야.’

‘정말? 와, 형 드디어 꿈 이루네! 축하해.’

‘그래서 그런데, 너 진짜 우리 회사 안 올래? 어? 이 예쁜 외모 어디에 쓰게, 나한테 주라. 응?’

‘아~ 진짜, 형도 참. 나보고 아이돌 하라고? 하하!’

소란스러움이 가득하다. 주변에는 대화 소리가 가득한데 그저 내 시야는 핏물을 흘리는 스테이크에 고정되어 있다. 내가 할 일은 그것뿐이라는 양 입을 꾹 다문 채 칼질을 멈추지 않는다.

고기를 썰어서 입에 집어넣는 행위를 반복하는 내내 대화는 계속됐다. 다른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오고, 곧 그들의 말에 다른 이들도 참여하며 대화는 한층 더 소란스러워진다.

그리고 나는 절대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아버지 오셨어요.’

의자 끌리는 소리에 칼질을 멈췄다. 그리고 그제야. 처음으로 시야가 올라간다. 모두가 서서 앞을 바라보다 내게로 하나둘 시선을 옮긴다. 나는 가장 상석에 있는 남자를 쳐다본다.

때마침 뒤에서 빛이 쏟아진다. 피곤하다.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앉으라는 소리가 들린다. 쥐었던 팔걸이를 움켜쥐었다가 금세 손을 떼 버린다.

그리고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져 있다. 소란스러웠던 장소가 순식간에 적막해졌다. 나는 그게 꽤 마음에 들었지만 티 내지 않으려 시선을 내린다. 깨지지 않을 것 같던 침묵 속에서 곧 놈이 말을 꺼낸다.

‘저, 아버지. 이번에 형이-….’

대화가 이어진다. 속이 울렁거렸다. 툭, 발끝으로 다리를 건드리는 감각에 고개를 들었다. 앞에 앉은 누나가 날 물끄러미 쳐다보다 입을 벙긋거린다.

속 안 좋아?

눈치도 빠르지. 고개를 흔들고는 반쯤 남은 고기를 포크로 쿡쿡 찔렀다. 웃겼다. 남자는 대화 한번 참여하지도 않는데 놈 혼자 신나서 뭐라 말을 한다. 

그리고 모두들 놈을 사랑하지.

‘희민이 녀석이 예쁘장하게 생겼잖아요, 그래서 들어오라고 했죠.’

‘하. 주희민 머리로 연예인을 하면 그건 인재 낭비지.’

‘하하, 낭비 수준이야? 고마워, 형.’

거긴 또 얼마나 달콤한지 몰라. 나는 고개 들어 턱을 괸 채 그쪽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빛마저도 나와 놈을 차별하는지. 놈의 주변이 환하니 밝다. 절묘하게도, 창문에서 들어온 빛은 내 바로 옆자리에서 끊겨 있다. 그 빛의 선을 응시했다가 다시 놈과 그 주변을 살핀다.

대화는 끊김 없이 이어진다. 놈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힐끔힐끔 상석을 바라봤다. 소용없어.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 남자는 계속 이쪽만 쳐다보고 있거든. 안타깝게도. 코웃음이 나온다. 같잖다. 놈은 원하던 것을 다 쥐었다.

그러나 개중 딱 하나, 네가 그렇게 바라던 것 중에 딱 하나는 절대 못 가지겠네. 절대. 절대……. 하지만 그러면 뭐 해. 내가 바라는 건 내게 하나도 쥐어지지 않는데.

‘이미 다른 애들은 다 뽑아 놨는데 한 명 더 필요해서, 공석-’

‘형.’

‘…….’

‘…….’

내가 내뱉은 소리에 물이라도 끼얹은 듯 순식간에 적막해진다. 왜? 형이라고 해서 그래? 형이라는 호칭에도 부를 수 있는 계급이 따로 존재하는지는 또 몰랐네. 이를 드러내며 웃자 누나가 내 다리를 제 신발 앞코로 툭툭 건드린다. 그걸 눈치채지 못한 척, 턱을 괸 채 그쪽을 바라본 채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거 내가 할래.’

‘어, 어?’

‘에렌? 엘앤엘? 하여튼 그거. 아이돌.’

웃음을 멈췄다. 시선을 상석으로 옮긴다. 남자의 표정은 알 수 없다. 서늘하게 날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다. 쳐다보지 마. 속으로 생각한다. 남자는 시선 한번 피하지 않는다.

‘그거 나 해 보고 싶다고.’

보지 마. 나한테 관심도 없으면서. 나한테 그러지 마. 제발.

‘선율이, 역시 엘앤엘에 아예 마음 없었던 건 아니었구나. 진짜… 너무 다행이다.’

강이헌이 다정하게 내뱉는 목소리에 시선을 내렸다.

강이헌, 미안해. 

사실 그동안, 단 한 번도. 소속감도, 마음도. 전혀. 내겐 전혀 없었어. 

지금은 늦었어?

느리게 눈을 떴다. 새하얀 빛이 쏟아졌다. 아득하게 멀어져 있던 소란스러움이 훅 가까이 다가온다. 반복해 눈을 깜빡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대기실.

“어? 일어났구나, 선율아.”

곧장 강이헌이 웃으며 다가온다. 무슨 꿈을 꿨더라. 뭔지는 몰라도, 이상하리만치 죄책감이 온몸을 파고든다. 그러다 잠들기 직전 했던 생각을 떠올리곤 이해한다. 죄책감. 그래, 죄책감. 슬쩍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자연스러워 보였으면 좋겠다.

“매니저 형이 데려다줬어?”

“응. 그동안 많이 피곤했는지 깨워도 안 일어나더라.”

그래,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스태프들과 멤버들이 뒤섞여 여기저기에 앉아 있다. 저 멀리 카메라도 하나 돌아가고 있다. 익숙한 광경이다. 구석에 안마 기계까지 어깨에 올리곤 눈을 감은 최백도, 스태프들 틈새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공진하와 하대진도, 구석에 앉아 책을 펼친 신기운까지.

“답장 안 와서 걱정했는데, 잠들었던 거구나? 촬영장에서 무슨 일 있었던 건 아니지?”

강이헌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며 날 들여다본다. 그 모습에 눈을 굴리다 뒤늦게 시선을 맞춰 끄덕였다. 별로. 나쁜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으니까.

“어! 깼어?!”

하대진의 목소리가 귓가에 훅 들어왔다. 곧장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반사적으로 내 쪽으로 달려들던 하대진이 시선이 마주치자 뚝 멈춰 선다. 멈춰, 섰다.

너는 다가오지 않고 그곳에 멈췄다.

눈을 한 번 굴리는 모습을 깜짝 놀라 멀거니 쳐다봤다. 왜? 하대진, 왜 거기서 멈췄어? 왜 너 머뭇거려? 너 안 그랬잖아. 너, 와서 걱정해 주려고 했잖아. 너 나 여태까지 그렇게 대해 줬잖아. 그런데 너, 왜. 왜 거기서 멈춰 서서,

“매니저 형이 선율이 연기 천재라고 하던데, 뭘 걱정해~!”

“그래도, 형. 처음으로 개인 활동하는 거잖아.”

공진하가 장난스레 강이헌을 툭 치며 말하자 강이헌이 한숨을 내쉬며 날 힐끔힐끔 쳐다봤다. 그 모습을 보다 자연스레 시선이 하대진 쪽으로 옮겨졌다. 하대진이 자리에 멈춰 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너, 왜. 거기에. 멈춰 서서. 왜 나한테 가까이 안 와?

‘너 처음 회사 들어왔을 때 기억하냐? 너한테 음료수 좀 흘렸다고 너 내 머리 위에 그거 그대로 쏟았잖아.’

내가,

‘그래서, 그래서 네가 하나도 안 불쌍해. 욕먹어도, 죽을 것같이 창백해져도. 하나도 안 불쌍했어.’

내가 빌어먹을 새끼라서?

‘지금은 늦었어?’

일그러진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매니저와 했던 말이 뒤섞이고 어디에서 들었는지 모를 말들이 뒤섞여 귓가를 가득 메운다. 나는. 씨발, 난. 나는. 난 왜. 입을 열어 뭐라 말하려다 내뱉지도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내가. 내가 늦어서. 내가 후회하고 모든 걸 끌어모으기엔, 이미 늦어서. 시야가 아득하다. 정신이 몽롱해지고, 바닥이 무너진다. 누워 있던 소파의 부분 부분이 무너지며, 텅 빈 허공 위에 멈춰 서 있는 기분이었다.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기분. 의지했던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린 기분.

‘지금은 늦었어?’

자리에 우두커니 선 하대진이 시야에서 돌아간다. 나는 깨달았다. 저 말은 내가 한 말이다. 내가 내뱉은 말이었다. 꿈속에서. 엘앤엘에 마음이 있어서 다행이라 말하는 강이헌에게 죄책감을 가지면서.

그랬어. 강이헌. 형. 형 사실 나, 엘앤엘에 마음 같은 거 없었어. 첫 번째에도, 두 번째에도, 세 번째마저. 그냥 내가 지금 주어진 게 그거밖에 없어서. 이게 내 마지막 자존심이라서. 그냥 그래서 열심히 했었어.

시야가 어두워진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다. 내뱉을 용기조차 없는 말을 속으로 내던지며 그 자리에서 그대로 침잠했다. 형, 엘앤엘은 내게, 그건. 그리고 손등에,

“선율아.”

온기가 퍼졌다. 시선을 옮기기도 전에 뺨에 손이 닿았다. 느리게 옮겨진 시야에 공진하가 가득 담긴다.

“놀아 줄까?”

허리 굽혀 시선을 마주한 공진하가 묻는다. 웃지도, 얼굴을 굳히지도 않은 채 별일 아니라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그저 평이하게. 그렇게 물었다.

나는 그런 공진하의 얼굴이 생경해서 빤히 그 얼굴을 쳐다봤다. 이상한 얼굴이었다. 언제나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오늘은 더더욱. 아니. 이 행동이 이상한 건가? 나는 새파란 컬러 렌즈를 낀 눈을 들여다보며 그 말을 되새겼다. 놀아 줄까.

그러다 문득, 과거의 공진하가 불쑥 앞에 튀어나온다.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린 공진하가 다정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인다.

‘앞으로 화나면 내 방 두드려. 내가 놀아 줄게.’

속삭인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떨어진다. 나는 그 모습을 멀거니 쳐다봤다. 환하게 웃던 남자가 겹쳐지며 물끄러미 응시하는 현재의 공진하로 변한다. 그날처럼 환하게 웃지도, 쉽사리 떨어지지도 않은 채 내 시선을 마주하고 있다.

나는 멍하니 그 눈동자를 응시했다. 귓가를 가득 메우던 소음들은 사라져 있다. 재촉하듯 늦었냐며 혼자 되묻던 나도, 매니저의 말에 후회하며 자책하던 나도, 모든 것에 상처받은 나도 전부 사라져선. 그저 시야엔 가득, 너만이 가득했다. 아마 이 순간, 내 온 신경에 공진하로 가득 차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얼핏 들었을 정도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것 같기도, 알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한 공진하가 나머지 손으로 내 오른쪽 뺨도 감싸 쥐었다. 놈의 양손의 온기가 그대로 뺨에 옮겨진다. 그렇게 감싸 쥔 채, 눈을 들여다보며, 짐짓 의젓해 보이기까지 한 얼굴을 하고선.

“내가 필요해?”

천천히 뱉어진 말이 가슴속 어딘가에 내려앉는다. 그 순간, 모든 것은 온전해졌다. 세상을 뒤흔들던 불안은 사라지고 그저 평온만이 가득해진다. 그리고 그 이후에야 세세한 것들이 느껴졌다.

아까와는 달리 쥐 죽은 듯 조용해진 대기실이나, 뺨에 닿은 손가락 끝에 이어지는 잔 떨림 같은 것을. 한편으론 한없이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던 놈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 것을 알아차렸다. 많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결국 모든 것을 제쳐 두고, 나는 그저 모른 척 미소 지었다.

“뭐 하고, 놀아 줄 건데?”

뒤늦게, 공진하가 따라서 미소 짓는다. 나는 그 미소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뭐, 뭐 하는 거야!”

하대진의 당황한 목소리에 한결 표정이 풀린 공진하가 내게서 떨어졌다. 양 뺨을 감싸고 있던 온기가 떨어지는 걸 응시하다 곧이어 내 쪽으로 다가온 하대진에게 시선을 옮겼다. 하대진은 깜짝 놀란 얼굴로 나와 공진하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지. 하대진을 봐도 아까처럼 끔찍하진 않았다. 덜덜 떠는 손으로 마법이라도 부렸을까. 오히려 하대진보다는 선뜻 떨어져 나간 공진하에게 신경이 쏠렸다.

“지금 그 분위기 뭐야? 어어?”

“으응? 분위기?”

공진하가 능청스레 말을 늘이며 되묻는다. 양손을 등 뒤로 한 채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얼핏 귀여운 척을 하는 것 같지만, 나는 어쩐지 그게 자신의 두 손을 감추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 이런 건 우리 막내가 겪기에는 너무 빨랐나?”

그렇게 말하곤 하대진을 쳐다보며 음흉하게 웃는다. 그 모습을 보곤 하대진이 표정을 구기며 얼굴로 끔찍함을 나타냈지만 공진하는 오히려 꺄르르 웃으며 하대진의 주변을 뱅글뱅글 돌았다.

우리 막내 놀랬냐, 형이 배려가 없었다, 그렇게 내뱉는 말들은 얼핏 들으면 하대진을 다독이려는 것 같은 말투였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누가 봐도 성격을 긁으려는 사람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주변을 맴돈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아니. 어쩌면 저 모습은 공진하만의 방어 기제일까? 과거의 내가 가시를 세우며 상처받지 않으려 실제로 상처를 받기도 전에 남을 먼저 상처 주며 지켰던 내 자존심처럼. 공진하의 저 웃는 얼굴도 하나의.

거기까지 생각하다 그만두었다. 과한 생각이었다. 계속 이어 가기에는 너무 개인적이면서도 확실한 건 없는, 그런 과한 생각.

“드세요.”

멀찍이 서 있던 신기운이 다가와 물병을 내밀었다. 얼결에 그 물병을 받으며 신기운을 올려다봤다. 별다른 기색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이다. 뭐지. 목말라 보였나. 한 모금 마시고 돌려주니 한 번 더 마시라며 밀어낸다. ……뭔지는 몰라도 내가 엄청 목말라 보였나. 대체 내가 무슨 표정을 지었기에 물을 주지.

“요즘 형은 왠지.”

물병을 내려다보며 고심하다 신기운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날 물끄러미 바라보는 다갈색 눈동자를 마주 보며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여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은 과거에도, 지금도, 한 번 겪어 낸 미래에서조차 변하지 않은 채. 여전히 무심해 보이는 시선을 하며 날 쳐다봤다. 그건 어느 날은 끔찍했고, 또 어느 날은 감사했던 시선이다. 그리고 지금은.

“지금 막 태어난 사람 같네요.”

생각을 끝까지 이어 가기도 전, 툭 튀어나온 소리가 생각을 갈랐다. 무슨 의미인지 모를 소리다. 막 태어난 사람 같다고?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애매하게 신기운을 쳐다보는데 답은 어째 놈의 반대편에서 대뜸 튀어나왔다.

“사회성이 모자라긴 하지.”

신기운이 몸을 비틀어 제 옆을 확인한다. 최백이었다. 비스듬히 서서 앉아 있는 날 내려다보던 최백이 고개를 기울인다.

“시들기도 빨리 시들고.”

“…….”

화초. 이젠 나조차도 퍼뜩 그 단어가 떠오를 정도다. 세뇌라도 시키는 건가 싶어 노려보자 무표정하게 내려다보던 최백이 기분 좋다는 듯 방긋 웃는다. 쟤는 어디서 강의라도 받고 오는 거 아닐까. 어떻게 하면 성격 나빠 보일 수 있는지 알려 주는 강의. 어떻게 저렇게 사람 속을 긁는 행동을 잘할까. 저 정도면 재능이다 싶어 혀를 찼다.

“사회성은 형도 없을 텐데요.”

와. 신기운이 툭 내뱉은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놈은 참… 알 수가 없었다. 누가 들어도 기겁할 소리를 내뱉으면서도 태평하고, 그 태평함에 물들듯 주변 사람들은 그 말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기보단 푸스스 웃으며 날려 보내곤 했다. 아, 물론……. 최백은 예외다.

“우리 같은 새끼들 중에 사회성 좋은 놈이 몇이나 된다고.”

최백이 비웃으며 팔짱을 낀다. 그 말에 신기운이 눈을 느리게 깜빡이더니 손을 들어 올렸다.

“산증인이랑 가장 오래 있지 않으셨어요?”

놈이 가리킨 끝에는 강이헌이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스태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

뭐 이렇게 강해……. 예시도 대화도 모든 게 딱 들어맞아서 기가 찼다. 떨떠름하게 신기운을 돌아보았다. 그때였다. 강이헌을 빤히 쳐다보는 신기운을 사이에 두고, 놈을 돌아본 최백과 내가 시선을 맞부닥뜨렸다.

최백의 기가 막힌다는 표정과 시선이 그대로 마주쳤다. 예상치 못한 일에 내가 눈을 깜빡인 것처럼, 최백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져 갔다. 찌푸렸던 눈썹도, 살짝 벌어졌던 입도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러고는,

“…….”

최백의 눈이 가늘어진다. 표정은 가늠하기 어렵다. 노려보는 것 같기도, 살펴보는 것 같기도 한 얼굴이다.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는 놈이 부담스러워져 시선을 피하려는 찰나 신기운이 내 쪽으로 몸을 틀었다. 비스듬하게 서서 날 바라보던 최백이 신기운에게 천천히 가려진다.

“그래서 그렇게 느꼈나 봐요.”

“…….”

“형이 죽을 것 같다고.”

‘형이 방에서 자살할 것 같아서요.’

어느 날의 목소리가 겹쳐 든다. 놈은 물끄러미 날 내려다봤다. 정말 아무런 악의도, 호의도 없는 말이었다. 그저 말 그대로의 말이었다. 그건 나조차도 알 수 있는 어투였다. 그러다 무심결에, 아주 새삼스레 무언가를 깨닫는다.

“엘앤엘! 녹화 준비해 주세요!”

쾅! 큰 소리로 문이 열리며 내질러진 목소리에 소란스럽던 주변이 잠잠해지나 싶더니 금세 분주해졌다. 삼삼오오 모여 있던 스태프들이 사이사이를 가르고 들어와 마지막 정리를 해 준다. 그건 신기운과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마주한 시선은 금방 가려졌다.

내 앞을 막아선 코디가 날 이리저리 살피다 수정 화장을 하려는 듯 급히 무언가를 찾는 모습에 눈을 감았다. 귓가에는 신기운의 목소리가 재차 울렸다.

‘형이 방에서 자살할 것 같아서요.’

느리고, 확실한 어조로. 아마 그날과는 다르게. 단어 하나하나가 귓가를 파고들 듯이. 눈을 감자 시야가 어두워지나 싶었다가 금세 밝아졌다. 눈꺼풀 위로 쏟아진 빛이 그대로 쏟아져 내린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변한 것 같아. 아니, 어쩌면 변한 것 없이. 이건 지금의 온전한 나일지도 모른다. 이 갈 길 없는 막막함과 탓할 이 없는 분노와 끝없는 죄책감은 지금의 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필요해?’

뺨에 닿았던 온기의 떨림을 떠올렸다. 창백한 안색으로 웃던 공진하가 시간을 거꾸로 걸어간다. 가까스로 나를 따라 웃었던 공진하가 무표정하게 돌아간다.

그건 분명 찰나 의젓하고 믿음직스럽게 보였던 얼굴이었다. 하지만 아니다. 그건 날 지탱할 수 있다는, 불안을 이겨 내게 해 주겠다는 그런 얼굴이 아니었다. 그 하얀 안색은 분명, 나한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네가 필요해.’

양손을 등 뒤에 숨긴 기억 속의 공진하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는 엘앤엘의 컴백 무대는 화려했다. 생방에 들어가기에 앞서 수록곡 중 하나를 먼저 사전 녹화했다. 강이헌이 아니었더라면 꿈도 못 꿔 볼 기획이었다. 녹화할 수록곡은 타이틀과는 다른 잔잔한 발라드였다. 길가의 거리처럼 꾸며진 무대 위, 나는 가장 객석과 먼 곳에 위치한 의자에 앉았다. 카페처럼 꾸며진 곳이었다.

“선율아, 나랑 카메라만 바라봐.”

시작 전, 근처에 앉은 강이헌이 걱정스레 말하며 주변을 훑었다. 내가 상처받을까 봐 걱정되는 모습이다. 나는 그런 강이헌의 말을 충실히 이행했다. 아닌 게 아니라 강이헌은 대체 얼마나 걱정이 되는 건지 노래를 하는 내내 내 곁을 맴돌며 시선을 마주했다. 누가 보면 전쟁터라도 나온 줄 알겠다. 대체 뭘 그렇게 경계하는 건지. 최백한테 뭐라도 들었나?

뭐가 됐든 그 행동은 참 괴이하긴 했다. 거의 고정석인 양 카페 한구석에 앉아 있는 나와는 달리 강이헌은 이미 동선이 짜인 걸로 알고 있었는데 계속 내 주변만 서성이고 있으니 말이다.

스태프와 상의가 된 건지 내 주변만 빙글빙글 맴돌면서도 타박 하나 듣지 않는다. 저번 생에도 이런 촬영이었던가. 잘 모르겠다. 희미하게 든 죄책감이 속을 갉아먹었다 사라진다.

촬영이 끝나자 강이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얼마나 긴장하며 주변을 살핀 건지, 짐짓 피곤해 보이기도 한다. 걱정도 많지, 아무리 그래도 무대 때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내가 그렇게 믿음직스럽지 못한 걸까? 아니, 못하겠지. 그럴 거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강이헌이 보디가드라도 된 듯 바싹 붙어 따라왔다. ……진짜 그렇게까지 해야 해? 남들 볼 땐 엄청 이상해 보일 것 같은데. 역시 눈에 띄는 행동이었는지, 무대를 내려오자마자 최백이 곧장 강이헌을 돌아봤다.

“네가 쟤 엄마냐?”

답지 않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강이헌을 타박한다. 역시. 남들 눈에도 너무 대놓고 챙기는 게 보인 모양이다. 그나저나 최백이 저런 얼굴도 하는구나. 최백이 로봇도, 기계도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매번 저런 표정이 낯설다.

최백의 그 낯선 표정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은 강이헌이 환하게 웃으며 잘됐다는 듯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 한없이 다정해 보이는 얼굴에 문득 아까 신기운이 놈을 가리키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산증인이랑 가장 오래 있지 않으셨어요?’

“그래 보였어?”

“그럼 안 그래 보이겠냐? 딴 놈들은 스테이지를 쓸고 다니는데 너희 둘만 그 구석에 처박혀서 나오질 않는데? 거기서 뭐 데이트라도 했냐?”

“하하. 하여튼 형도 말 되게 잘한다니까. 그거 나중에 방송 때 써먹으면 좋겠다! 편집도 안 되고 재밌게 나가겠는데?”

“…….”

기가 막힌다. 강이헌은 세도 너무 셌다. 최백의 타박이 전혀 안 들어 먹힌다. 친하다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세 번째 생에 와선 더 느끼고 있지만 그게 또 새삼스럽게 훅 다가온다. 진짜 친하구나. 강이헌도, 최백도. 대화 사이사이에서 새 나오는 감정들이 부드럽다. 참. 낯설게도. 또한 참, 부럽게도.

두 사람을 스쳐 지나 바닥을 내려다봤다. 나아가던 걸음이 서서히 느려진다.

“야, 그 정도면 능력이다.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능력.”

“뭐가? 방송용 에피소드 준비해 두면 편하고 좋잖아.”

“아 미친, 강이헌 1절만 해라. 어?”

“하하하! 표정 진짜 웃겨!”

멈춰 선 나를 두고, 두 사람이 나란히 대화를 나누며 걸어갔다. 소리가 멀어져 간다. 모두가 떠나고 남은 내 두 발만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적당히. 되는대로. 그렇게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데. 나는 낄 수가 없다. 나는 그냥 여기서 지켜볼 뿐이다. 매번 그렇지.

‘희민이 녀석이 예쁘장하게 생겼잖아요, 그래서 들어오라고 했죠.’

‘하. 주희민 머리로 연예인을 하면 그건 인재 낭비지.’

‘하하, 낭비 수준이야? 고마워, 형.’

언젠가의 소리들이 희미하게 귓가 어딘가를 울린다. 이 기분은 뭐라고 하는 걸까. 단 한 번도 정의할 생각조차 못한 그 감정이 궁금했다. 새삼스레. 아니, 처음으로. 모른 척, 혹은 괜찮은 척 넘겼던 수많은 과거를 끄집어내 낱낱이 분해해 보고 싶어졌다.

나는 무슨 감정으로 그들을 지켜봤을까. 나는 왜 그걸 지켜보기만 했을까. 그러다 하필 나는 왜 그날, 그 순간 그렇게 내뱉었을까. 나는 왜 거기에 낄 수 없을까.

당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떠올리는 소리는 언제나 일정하다. 낮고, 그렁대는 듯한, 분노를 억누른, 경멸을 감추지 않는.

‘어디서 감히,’

왜 당신은 놈한테는 일언반구도 없이, 그냥 묵묵히 앉아 있었을까.

‘어디서 감히 이 집에 들어와!’

좆같은 주희민은 되는데 왜 나는,

“-주선율!”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제야 시야에 가득 하대진이 들어왔다. 내 앞에 얼굴을 들이민 놈의 표정이 미묘하다. 무언가 걱정하는 것 같기도, 살피는 것 같기도 한 얼굴이다.

“뭘 그렇게 멍때리고 있냐? 곧 생방이라 여기에 이러고 있는 거 민폐거든?”

타박하는 척 그렇게 말하곤 은근슬쩍 내 표정을 살핀다. 그게 또 참. 나도 모르게 웃으려다 표정을 굳혔다. 아까와는 달리 코앞까지 와 있네. 비틀린 생각이 툭 튀어나온다. 아직도 생생하다. 놈이 나한테 달려오려다 멈춰 서서 고개를 숙였던 모습이. 누가 봐도 그건 머뭇거리는 행동이었다.

씨발, 나한테 그렇게 잘해 줘 놓고. 줬다 뺏는 걸까? 사실 그 따뜻한 말도, 밥도 모조리 다 놈이 줬으니 하대진이 뺏어도 난 뺏기는 대로 있어야겠지만, 그게 맞지만. 그게 또 묘하게 배알이 틀렸다. 아까와는 다르게 말이다. 놈을 지그시 노려보자 되레 하대진이 내가 이상하다는 듯 쳐다본다.

“근데 너 오늘 무슨 일 있어?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무슨 일? 어이가 없다. 그 무슨 일 네가 만들었다.

“뭐. 아깐 나 피하더니.”

“뭐? 피해?? 내가??? 언제!”

하. 모르는 척하네. 기가 막혀서 절로 얼굴이 굳었다. 삐딱하게 서선 팔짱을 끼며 노려보자 하대진이 의아한 얼굴로 눈을 끔뻑였다. 하대진 연기도 해? 뭐 이렇게 태연해?

“아까 대기실에서.”

“어어?”

씨발, 이 새끼 진짜 잊었어? 기가 막힌 것을 넘어서 속이 터졌다. 놈에겐 별거 아니었나 싶어져서. 오려다 멈춘 그게 진짜 문자 그대로 별거 아닌 행동이었나 싶어서. 달려오려다 뚝 멈춰서 시선을 피하던 게 진짜 대수롭지 않은 행동인데 나 혼자 신경 쓰는 것 같아서!

그렇게 생각하며 놈을 노려보다 퍼뜩, 생각 하나가 뇌리를 파고든다. ……그래. 사실은, 어쩌면. 그 모든 게 오로지 내게만 중요한 것이었을까 봐. 그런 생각이 들자 불안해졌다.

진짜 그러면 어쩌지? 사실 그게 얼마나 별거라고. 그게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냥 오려다 말았을 뿐인데. 그냥 오려다가 말았을 수도 있지. 별 의미 없이. 그런데 내가 머저리처럼 의미 부여를 해서.

“아.”

이제야 알아차렸는지, 뒤늦은 깨달음 소리가 들렸다. 하대진이 깜짝 놀란 눈으로 눈을 깜빡이다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나며 얼굴을 가린 손을, 나는 아까까지 하대진이 짓던 표정을 지으며 쳐다봤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이유도 모를 반응이었다. 지금 이 대화의 어느 부분에서 얼굴을 붉힐 만한 말이 있었지?

“너…, 얼굴.”

“아, 알거든! 말하지 마라!”

“엄청 빨개.”

“아, 말하지 말라고!”

하대진이 결국 양손으로 제 얼굴을 감쌌다. 창피해한다. 누가 봐도 창피해하는 얼굴이었다. 대체 왜? 어느 시점에서 창피할 말이 있었지? 멈춰 선 게 창피했나? 달려가려다 멈춘 자신의 모습에 자존심이라도 상했을까? 아니, 무슨. 대체 그게,

“왜?”

생각이 툭 입 밖으로 나왔다. 그 말에 하대진이 어깨를 움찔거리며 우물쭈물한다.

“아, 아씨… 그게…….”

“…….”

한참을 고심하던 하대진이 슬쩍 손을 내려 날 흘겨본다.

“너, 너, 너 같으면 태연하게 볼 수 있겠냐……. 아침부터 낯부끄런 말이나 하고 갔으면서…….”

낯부끄런 말……. 알 수가 없다. 내가 뭔 말을 했다고. 그 전에 낯부끄런 행동을 해서 멈춰 선 거란 말이야? 진짜 별것도 아닌 거였다. 그냥 창피해서 그랬던 거라고? 역으로 내가 얼굴이 붉어질 판이다. 그거 하나에 그렇게 의미 부여를 했다. 그 행동 하나에 그렇게.

혹시 내가 싫어졌나 하고. 내가 빌어먹을 새끼여서 싫어졌나 하고. 세상이 무너진 줄 알았다. 씨발, 진짜. 다 끝난 줄 알았어. 왜냐하면 난, 난 진짜 오랫동안 빌어먹을 새끼였고, 그건 변하지 않으니까. 누군가의 타박을 온전히 이해하며 고개 끄덕일 정도로. 나는. 지금. 아직도. 그러다 툭. 말이 떠오른다. 아침의 일이다.

‘좋네.’

‘네가 걱정해 줘서 좋다고.’

……잠깐만. ……그거? 이어지던 생각이 멈췄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속 깊숙한 곳까지 긁어 내려가던 생각이 뚝 멈췄다. 하대진이 말한 ‘낯부끄런 말’이 혹시 저 말일까? 저 말 같다. 저거 말고는 특별할 것도 없었다.

나도 모르게 깊게 숙였던 고개를 번쩍 들며 하대진을 쳐다봤다. 내 쪽으로 다가와 날 살피는 중이었는지, 한 보 물러나 있던 하대진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그게 어디가?”

“뭐, 뭐?! 너 그거 별말 아니었냐?! 그냥 한번 해 본 말이야?!”

대뜸 하대진이 성을 냈다. 그 모습에 주변 스태프들이 수군거리며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불화설 도는 거 아냐? 퍼뜩 그런 생각이 든다. 없는 말은 아닐 것 같다. 아마 지금도 은연중에 돌고 있는 말이고.

“아이씨, 그게 그렇잖아……. 뭐, 뭘 또 그렇게 솔직하냐고……. 애초에 누가 그렇게 솔직하냐?”

하대진이 붉은 얼굴로 날 노려보며 웅얼거렸다. 아니, 불화설 안 돌지도 모른다. 싸우는 사람의 얼굴이라기엔 놈의 표정이 너무 수줍은 게 티가 났다.

하대진은 진짜 그 말이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걱정해 줘서 좋다는 말. 그런데 그게 뭐? 별다를 것 없는 말이지 않나.

“게, 게다가 그때는, 그땐 보통,”

하대진이 시선을 피하며 눈을 이리저리 굴린다. 머뭇거리듯 회피하던 시선이 가까스로 닿았을 때야 하대진이 버럭 외쳤다.

“좋다고 안 하고 고맙다고 하거든?!”

“아.”

그러게. 그렇다. 맞다. 걱정해 줘서 고맙다고 하지, 보통.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그냥. 반사적으로 그렇게 나갔다. 좋다고. 아니, 애초에……. 그런 말을 처음 해 보기도 했고.

그렇구나. 걱정해 줘서, 고마워. 그렇게 말하지. 그 말이 어색했다. 책 어딘가에 쓰인 글귀 같았다. 난 한 번도 내뱉어 볼 일 없는, 들을 일 없는 말처럼.

그런데 그 말을 했구나. 내가. 그게 참 기분이 묘했다. 순식간에 공기가 달라진 것 같았다.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감정이 이상하다. 발끝 어딘가에서 시작한 것 같은 감정이 뱃속을 어지럽힌다. 그 간지러움에 결국 푸스스 웃음을 터뜨렸다. 아. 귀여워. 하대진. 대진아.

“내가 너 좋다고 한 게 부끄러웠어?”

“극, 너, 그! 그거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마!”

결국 하대진이 도망쳐 버린다. 저 멀리로 내달리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가를 가렸다. 계속 웃음이 새 나왔다. 저 뒷모습도 귀엽다. 하대진은 바보일까? 우린 어차피 대기실에서 마주칠 텐데 왜 저렇게 도망치는 거야. 웃음을 삼켜 내며 중얼거렸다.

“……도망갔네.”

“도망가지, 보통은.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는데.”

깜짝 놀라 옆을 돌아봤다. 왔는지도 몰랐다. 공진하가 웃으며 놀랐냐고 되묻는다. 언제 왔지? 하대진도 언급하지 않은 거로 봐선 몰랐던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들은 거지?

“너네 안 와서 데리러 왔지! 한 명은 먼저 가 버렸지만.”

의아하게 눈을 깜빡이자 공진하가 양손을 뻗으며 장난스레 윙크한다. 마치 내가 왜 왔냐고 묻기라도 한 듯이. 그 모습이 이상했다. 평상시와 다를 바가 없는데, 이상하게 무언가. 평상시와 달랐다.

말투가 다른가? 행동이 다른가? ……분위기? 가늠하듯 눈을 가늘게 뜨며 살피다, 문득. 아. 알았다. 시선이다.

“가자.”

공진하의 손에 이끌려 어색하게 걸음을 옮겼다. 앞서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바라보다 시선을 내렸다. 맞잡고 있는 손이 낯설어 손을 꿈틀대다 슬며시 마주 잡았다. 그 뒤늦은 행동에도 공진하는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간다. 그저 화답하듯 강하게 내 손을 쥐고선.

공진하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뺨이 상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 건 착각이었을까.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그저 망설임 없는 걸음만 계속된다.

* * *

괜찮아. 열심히 할 거야. 열심히 할게.

…….

괜찮다고? 그건 얼마나 나태한 마음가짐이었는지.

“완벽하게, 그러니 너만 있다면 여긴,”

“최! 백! 포! 유!”

“뭐라도 불러도 괜찮을 세계”

“세! 계!”

“시계의 초침이 움직여 세계의 모든 게 널 위해,”

“이헌아! 이헌아!!”

매번 모르지. 얼마나 세계가 냉정한지. 혹은 충분히 알고 있다 여겼음에도 감히 이해하지도, 쉬이 수긍하지도 못한다.

“슬프게,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

“…….”

적막이 찾아왔다. 시선이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환호 소리가 그대로 멈췄다. 시계의 초침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응원도, 박수도, 욕설 하나 없이 침묵에 휩싸인 채 틀어진 노래만 계속된다. 어떻게 이걸 잊었는지 모를 일이다. 과거에도 이랬는지, 어쨌는지를 떠나, 단 한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과거를 덧그려도”

내가 지금 마이크를 들고 있는 게 아니라 다행이야.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다행이야.

“Just baby, I think it does.”

떨림도, 절망도, 체념도. 그 무엇도 티 내지 않은 채, 정해진 소리를 내뱉는 스피커가 내 목소리를 흉내 낸다.

내 파트를 끝으로 노래는 소리를 죽여 간다. 실제 음원도 이를 끝으로 조용한 부분이 나오긴 했지만. 지금은 마치, 

내가 이 노래를 죽인 것 같다.

「슬프게,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과거를 덧그려도」

짧은 가사가 심장을 파고든다. 덧그려도. 그 이후에 나올 말을 혼자 붙여 보며 그렇게. 수백 번이고 움직였던 동선을 따라 움직이며.

“걱정하지 마,”

“꺄아아악! 진하야!!”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이는 시선의 끝, 공진하의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여긴 그런 세계야.”

아니. 마주치면 안 되잖아. 넌 날 등지고 객석을 봐야 하는데. 순간적으로 깜짝 놀란 얼굴로 놈을 쳐다봤지만 공진하는 그게 제 안무라는 양 날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노래했다. 뒤돈 채 안무하며 그대로 무릎을 꿇는다.

정반대잖아. 객석은 네 뒤에 있다. 네 팬들은 네 등만 쳐다보고 있잖아. 쳐다보는 시선에도 놈은 눈길 하나 피하지 않는다. 그저 환호를 등진 채, 천천히 자리에 앉으며 속삭이듯 눈을 마주했다.

“여긴 충분해, 만족해, 둘 하나 제로 혹은 희망의 세계.”

내게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랑하기도 벅찬 세계…….”

곧이어 최백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

그리고 나는 잠시. 아주 잠시 눈을 감았다. 발밑으로 떨어진 것 같았던 심장이 온몸을 울린다. 괜찮았다. 나쁘지 않아. 웃길 정도로, 아무렇지 않아진다. 모든 것을 놓쳐 버렸다 생각하며 자조하던 것들이 다시 떠올라 온몸에 달라붙는다. 마치 시간이라도 돌린 듯, 혹은 낫기라도 한 듯.

다음 안무를 이어 가기 전, 자리에 일어서며 뜬 눈에서는 여전히. 마주하는 시선 하나. 그래, 모든 게 괜찮았다. 말끄러미 쳐다보는 얼굴에 나도 모르게 웃으며 읊조린다. 할 수 있었다.

* * *

“미친 거 아냐?!”

대기실 문을 닫자마자 한참 동안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던 하대진이 소리치며 수건을 집어 던졌다. 분위기가 싸늘했다. 난감한 얼굴의 매니저가 우릴 살피다 커피라도 사 주겠다며 스태프들을 데리고 대기실을 나갔다. 가까스로 숨죽이고 있던 스태프들이 나가자 이를 바득바득 갈던 하대진이 제가 더 분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왜 네가 더 화를 내.”

누가 보면 네가 욕먹은 줄 알겠다. 내 말에 하대진이 번쩍 고개를 들며 날 노려봤다.

“넌 왜 안 내냐?! 씨발, 맨날 신경질 부리다가! 왜 이땐 안 내냐!? 어? 왜 오늘은 안 내는데!”

“…….”

난감했다. 사실 난 아무렇지 않았다. 옆에서 누가 더 화내면 차분해질 때도 있다더니 그게 이 상황인 모양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까 공진하가 정반대로 안무한 후부터는 괜찮았다. 오히려 꽤 준수한 무대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런데 나중에 영상 나가면 팬들 소리도 나가려나. 내 부분만 함성 소리 없다면 아무래도 오늘 기사는 주선율 팬 내 왕따설 따위로 이름이 붙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시선은 자연스레 공진하에게 옮겨졌다. 얼굴을 잔뜩 구긴 채로 분노를 온몸으로 표출하고 있는 하대진과는 달리, 공진하는 얼핏 보면 산뜻하게 보일 정도로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창 안무를 하고 내려와 발갛게 열기가 오른 얼굴에는 한 톨만큼의 부정적인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는 최백이었다.

“씨발 진짜, 단합력 좆같이 좋아서 무슨 운동회인 줄 알았네. 정해진 대로만 침묵해? 야, 매니저 형한테 전화해. 그거 씨발 분명 사전에 준비하자고 웹상이든 어디든 글 싸질러 놓은 거 있을 거야.”

“일단, 형. 우선 진정해.”

최백이 눈을 번뜩이며 돌아보는데도 움찔거리지도 않은 강이헌이 기어코 최백을 자리에 앉혔다. 물통 하나를 손에 쥐여 준 뒤 곧장 하대진 쪽으로 걸어간 강이헌이 하대진을 진정시킨다. 그 모습을 차분히 지켜보던 신기운이 날 힐끔 쳐다본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네요, 형.”

“아, 내 말이 그 말이야! 야! 너 왜 화도 안 내냐?! 어? 너 자존심도 없어?!”

“하대진. 진정하랬지.”

“아니, 씨발. 저 새끼가 가만히 있잖아! 지 일인데 가만히 있잖아!”

“…….”

하대진의 눈가가 달아오른다. 아. 이럴 때야말로. 놈이 이 팀의 막내라는 걸 새삼스레 깨닫는다. 하대진의 눈이 충혈되자 냉랭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강이헌이 깜짝 놀라선 손을 이리저리 휘젓는다.

왜 울려 하냐며 어색하게 다독이려는 손길에 하대진의 표정이 점점 더 일그러졌다.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변할수록 분위기가 점점 풀려 간다. 종래엔 내내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던 최백마저 한심하다는 듯 한마디 하고 만다.

“넌 왜 뻑하면 우냐?”

“내, 내, 내가 언제!”

“아. 그리고 반말까지?”

“요!”

결국 하대진이 신경질적으로 내뱉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자 강이헌이 기가 막힌 얼굴로 최백을 돌아보며 “형은 왜 애를 울려!” 한마디 한다. 아. 이상하지. 시작은 나였는데 끝은 하대진으로 간다. 그게 또 웃기고, 어처구니없어서. 이상하게 이 분위기가 참 좋아서. 참 따뜻해서. 별거 아닌데도. 그냥 대화일 뿐인데도.

스스로도 느껴졌다. 확연히 드러났다. 나한테 여유가 생겼다. 정신 차려 보면 바닥부터 짚고 들어가던 나한테. 숨통이 트여졌다. 그것의 시초는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어디서부터, 무엇부터가 금을 가게 했는지는 몰랐지만. 아. 확실히. 편하다. 아무렇지 않아.

“…….”

시끄러워진 분위기 사이로, 이상할 정도로 저 혼자 다른 템포를 걷고 있는 공진하가 걸음을 옮겼다. 통통 튀는 것 같기도 하다. 가볍게 박차 오르듯 걸어 나간 공진하가 빈 의자에 앉더니 핑글핑글 의자를 돌린다.

……쟤는 거의 신난 거 같은데. 열기로 달아오른 뺨에 가리어진 눈동자가 반짝인다. 아니, 아마도. 빛이 반사된 건지, 아니면 공진하의 마음에 여유가 생긴 건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어쩐지 공진하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 나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일순 스쳐 지나간 시선이 일렁이는지, 달아올랐는지. 어찌 되었건. 하지만 그걸 태평하게 바라보는 건 나뿐인지, 그 모습을 눈치챈 신기운이 말문을 열었다.

“형도 아무렇지 않아 보이네요.”

“하, 그렇겠지. 아까 저 새끼 반대로 안무하던 거 봤냐? 미친놈.”

최백이 곧장 맞받아치며 공진하를 노려본다. 공진하가 안무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게 영 기분 나쁜 모양이었다. 하긴, 놈은 최백이었으니까. 이해 가는 상황이다. 그 신경질적인 눈에도 공진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깜빡인다.

“음, 괜찮은 것 같던데.”

저건 무슨 표정일까.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 전, 공진하가 힐끔 나를 쳐다본다. 마주친 눈에 슬그머니 웃는 얼굴이. 시선이 닿자마자 허물어뜨리듯 눈가를 곱게 접은 채 미소 짓는 얼굴이. 숨에 차 발갛게 열기가 오른 얼굴과 겹쳐져, 감정을 그대로 그려 낸 것 같은 얼굴을 마주하자 떠올랐던 생각들은 모조리 허공 어딘가로 내던져진다.

네가 그 순간 뒤를 돈 것이 나를 위함인지, 너를 위함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니, 어쩌면 아무 상관 없이. 그저 그 환하게 웃는 얼굴에 담긴 안도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 나왔다.

넌 참 연약하다. 티도 나지 않으면서, 얼마나 연약한지 몰라. 놈을 알아챘다. 확실했다. 난 널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건.

“그치?”

“그래.”

그건 우리가 참 닮았기 때문에.

* * *

“으아아, 피곤해.”

앓는 소리를 내며 먼저 곯아떨어진 건 하대진이었다. 맞은편에 앉은 신기운이 이어폰을 꽂는다. 강이헌도, 최백도 고된 일정에 곧장 눈을 붙인다.

컴백 후 일주일. 음악 방송이나 화보만으로도 꽤 일정이 빡빡했다. 아마 TV에서는 여기저기서 엘앤엘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컴백 전에 찍어 둔 예능 프로그램들이 이제야 빙글빙글 전파를 타고 돌고 있을 테니까. 얼마 전에는 내가 보러 갔었던 하대진의 프로그램도 송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다음은 나였다.

“오늘이지?”

마음을 읽기라도 한 양 묻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옆에 앉은 공진하가 시트에 깊게 파묻힌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 피곤함이 짙게 묻은 안색을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대답이 어째 앞자리에 앉은 강이헌에게서 나온다.

“으응… 오늘 밤 10시, 10시인가…….”

“뭐가 10시야?”

강이헌이고 최백이고 잠에 들지 않은 모양인지 곧장 반응을 보인다. 반쯤 피곤에 젖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강이헌은 둘째 치고 번쩍 눈을 뜬 최백의 얼굴에선 피곤함이 보이지도 않는다. 그마저도 최백답다.

“선율이 방송…….”

최백의 물음에 몸을 뒤척이며 강이헌이 잠꼬대하듯 대꾸했다. 그 대꾸에 최백이 기가 차다는 목소리로 “너네 주선율 방송 꿰고 있냐?” 하고 물었지만 더 이상의 대꾸는 없었다. 강이헌은 잠든 모양이고, 공진하는……. 얘도 자나? 그사이에 잠든 모양이다.

이상하지. 놈이 옆에 있는 게 이젠 자연스럽다. 지쳐 쓰러지듯 눈을 감은 공진하의 얼굴이 생경하다. 그 얼굴을 본 적이 없어서일까, 그 얼굴을 한 적이 없어서일까. 무엇이든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아마 이 얼굴도 점점 익숙해지는 날이 오겠지.

아마 시작은 그날이었다. 의뭉스러웠기에 거리감이 느껴졌던 공진하가 사실은, 어쩌면, 혹은, 아니 진실로. 나와 닮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 날. 그 컴백 날을 기점으로 우리의 분위기는 묘하게 변했다. 그건 남들도 알아차릴 정도라, 강이헌은 순수하게 기뻐했고 최백은 미묘해했다. 공진하를 파악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아.”

“뭐.”

무의식적으로 최백 쪽으로 시선을 옮기다 그대로 눈이 마주쳤다. 심드렁하게 대꾸하는 모습에 입을 다물자 최백도 샅샅이 살피듯 가늘게 든 눈으로 응시한다. 아니, 놈이 바라보는 건 공진하일까? 아니면 우리 둘 모두일까.

“웃기네, 그 꼴.”

둘 다가 맞은 모양이다. 최백이 팔짱을 끼며 의자에 몸을 깊숙이 기댄다. 무언가 상념에 빠진 듯이.

“참 신기해. 아무리 멀던 사이도 순식간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게.”

“…….”

“상상도 못 할 만큼.”

중얼거리나 싶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는 억양도 톤도 뚜렷해서 외려 귀에 박혀 들듯 들려왔다. 그래서 더더욱 기분이 괴이했다. 대체 이 얼마나 뜬금없는 주제인가 싶어서.

놈이 대뜸 내뱉을 정도로 공진하와 나 사이의 기묘한 익숙함이 남들에게 그런 식으로 느껴졌나 싶기도 하고. 표정을 찌푸려도 최백은 변함이 없다. 어차피 그런 놈이다.

“그래서. 이상하다고?”

“글쎄, 어떤 걸까.”

내뱉어진 대꾸마저 평이하다. 잠시 최백이 시선을 내린다. 확연히 보이는 속눈썹, 그 사이로 흘깃 보이는 눈동자 모두 주변의 분위기를 삼킨다. 평상시에는 화려한 생김새로 주변을 서늘하게 장악하면서 저리 쉽게 분위기를 휙 바꾸어 버린다.

무표정하게 시선을 내린 최백의 분위기가 묘하다. 마치 너무 귀하게 커 거친 일 따윈 한 번도 안 해 봤을 것처럼, 놈에게선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고아함이 느껴졌다. 욕을 달고 살며 신경질을 부리는 평소의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네가 궁금하긴 하네.”

그러다 말없이 훅 다가오듯 시선을 맞추고는.

“화초인지, 우렁각시인지.”

망설임도 없이 던지듯 툭, 툭 말을 내놓는다.

“주선율인지.”

“…….”

최백과 시선을 물끄러미 마주한다. 아무렇지 않게 뱉은 말만큼 최백은 큰 표정의 변화도 없이 날 바라보고만 있다. 그 모습에서 나는 최근 생긴 버릇을 되새긴다. 이렇게 날 쳐다보고만 있는 최백을 보면, 무심결에 그날을 덧그리고 마는.

‘얘들아, 쉿.’

시야를 막아섰던 뒷모습을. 조명에 비쳐 저 스스로 빛나는 것처럼 빛을 흩뿌리던 그 모습을. 그 당시에는 바빠서, 많은 일이 있어서. 그런 일들로 지나치려 애썼던 기억이 다시금 위로, 더 위로 기어올라 잔재를 알린다.

응시하는 시선은 순간 날카로운 채찍으로 변한다. 날 외면하지 마. 이기적이게 굴지 마. 날 함부로 판단하지 마. 여태까지 판단한 모든 건 전부 과거에 놓고 오란 듯이.

그건 참 새삼스러운 잔재들이었다.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음에도 무심코 떠올리고 마는 건, 여태껏 최백이 날 싫어한다고 생각해서일까?

혹은 놈을 제멋대로 재단해 판단해 왔던 과거와 현재가 맞지 않아서? 그날과는 달리 조금 더 늘어난 여유에 너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싶어서? 아니면 그 순간, 네게 의지하고 싶어져서?

‘아, 포유들.’

너는 왜,

‘예쁜 말만 해야지.’

대체,

‘우리 포유. 제가 참, 좋아하는 거 알죠?’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제가 계속. 좋아할 수 있게 해 줘요.’

……넌 날 믿지도 않았었는데.

“……내가 할 말이야.”

내가 화초인지, 우렁각시인지, 주선율인지 궁금하다니. 웃기지 마. 그 말은 이미 전부터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반쯤 오기에 차 울컥한 얼굴로 놈을 노려본다.

“너 뭐야?”

“뭐?”

“너 대체 뭔데?”

내 물음에 최백이 기가 막힌단 표정을 짓는다.

“씨발, 뭔 개소리야? 뭐긴 뭐야. 내 이름 몰라서 물어?”

“알아.”

최백의 표정이 괴상해졌다. 말도 안 나온다는 표정이었다. 놈의 찌푸린 표정이 ‘너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냐?’ 하고 묻는 것 같다. 시비라도 거는 것 같겠지. 충분히 그렇게 느낄 만하다. 하지만, 대체 이 이상 뭐라 물어야 할까. 하고 싶은 말이 속에서 뒤섞이고 뒤섞여, 결국 가장 내뱉고 싶었던 게 뭐였는지 잃어버린 것 같다.

“최백.”

“하, 그래. 어. 왜.”

“너 그때 왜 일어났어?”

드디어 툭, 본심이 튀어나왔다. 순간 주변은 그날로 돌아간다. 최백은 내 앞에 앉아 있고, 뒤 한 번 돌아보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니, 돌아봤구나. 퍼뜩 하대진이 뮤직비디오에 대해 떠들던 순간을 기억한다. 채팅 창을 보기도 전의 일이었다. 하대진을 응시하던 시선을 겨우 떼어 냈다가 최백과 시선이 마주쳤다.

이상한 일이지. 카메라 앞에선 절대 뒤 한 번 돌지를 않는 놈이 그날은 그렇게 한 번 뒤를 돌아선,

‘…….’

‘……?’

한참 동안 물끄러미 날 쳐다보다 말없이 고개를 돌렸었다. 퍼뜩 그날의 기억을 주워 담는 순간, 온몸에 서늘한 한기가 맴돌았다. 나는 깜짝 놀라 놈의 눈동자를 멍하니 쳐다본다.

“최백 너… 너 대체 뭐 하는 놈이야?”

놈과 안 지 몇 년인가. 회귀 전이고, 첫 번째 회귀고 하면 대체 몇 년이냐고. 그런데 난 이제 와서. 그동안의 나는 무얼 했기에. 대체 이런 식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냈을까. 잊고 있던 퀴퀴한 과거의 잔해들에 또 얼마나 많은 외면들이 있었을까.

스스로가 무서웠다. 여태껏 내 과오도, 잘못도 아니었다고 생각한 수많은 것들이 전부 다 내 잘못일까 봐. 그래서 결국 나로 끝나는 결말만 나올까 봐. 그랬기에 자연스레 이어져 떠오른 건 윤하늘이었다.

나 너한테도 이렇게 제멋대로 굴었어? 그래서 그 순간, 그런 선택을 한 거야?

“하, 누가 화초 아니랄까 봐 대화 안 통하게 말하네.”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깊게 빠져 있던 상념에서 날 끄집어낸다. 최백이 제 머리를 흐트러뜨리며 “내가 뭐 한두 번 일어나냐? 넌 못 일어나?” 하고 신경질을 낸다.

그 모습에 너 대체 몇 번이나 그런 식으로 굴었냐 물으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이제 와 알면 뭐가 달라져? 어차피 다 지난 일인데. 난 분명 그 순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그게 한 번이면 어떻고 두 번이면 어떨까. 과거의 것들을 의심하고 상처받아 봤자 대체 뭐가 달라진다고.

“……됐어.”

전부. 

이미 한 번쯤 했었던 생각들 아닌가. 하도 과거가 많아 건드릴 때마다 들춰지고, 그에 상처받아 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최백에게 확인받고, 이유를 들었다고 뭔가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애초에 난 놈에게 뭘 바라는 걸까? 왜 그게 내심 궁금할까? 대체 뭘 확인받고 싶어서, 나는.

“씨발, 되긴 뭐가 돼? 너만 혼자 떠들어 대고 말면 그만이야?”

아. 먹먹하던 귓속에 목소리가 휙 꽂힌다. 나도 모르게 숙였던 고개를 들자 최백이 신경질적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

“똑바로 말해. 돌려 말하지 말고.”

“너, 라이브 앱 할 때 나 때문에 일어났어?”

“…….”

곧장 내뱉어진 말에 최백은 놀라지도 않고 쳐다본다. 빙글빙글 속을 맴돌다 툭 튀어나온 본심에 놀랄 법도 한데, 물끄러미 응시하는 시선은 별다른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 그저 태연히 날 응시하다 시큰둥하게.

“어.”

고개도 끄덕이지 않고 수긍한다. 그건 또 얼마나 놀라우리만치 태평한 대꾸인지. 아까까지 날 휩쓸던 죄책감도 체념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나는 말문이 막혀 뭐라 말도 못 하고 놈을 바라보기만 한다. 매번 그랬듯, 어쩔 겨를도 없이. 놈에게서 시선을 떼는 일조차 하지 못한 채.

오히려 최백은 눈을 가늘게 뜨며 날 쳐다봤다. 이상하다는 듯이. 마치 내가 굉장히 일상적인 것을 물어봤다는 듯, 기이하게.

“그게 뭐?”

“…….”

“너 채팅 창 읽었었냐? 하. 평소엔 눈치도 없는 게 그럴 때만 잘 봐.”

시트에 등을 떼며 제 뒷머리를 쓸어 올린다. 표정을 구긴 게 마치 낭패라고 말하는 것 같다. 어안이 벙벙하다. 놈이 나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났단다. 진짜로. 은연중에 알고 있었음에도 입으로 확인받으니 기분이 이상하다. 아니, 네가. 네가 왜?

“너 진짜… 너 대체 뭐 하는 놈이야? 대체 네가 그걸 왜.”

“그럼?”

최백의 검은 눈동자가 내게 옮겨진다.

“그럼 어떻게 해야 했는데. 그 좆같은 걸 보고만 있을까?”

“…….”

“어? 보고만 있냐고, 머저리 새끼야.”

기막혀. 최백은 이제 짜증을 내고 있었다.

“컴백 무대 때도 어영부영 넘어가기나 하고. 눈치만 없는 줄 알았더니. 하! 그게 아니라 다 알고 있었는데 모르는 척을 한 거였어?”

아니, 그건 이미 끝난 일 아닌가. 결국 놈과 하대진의 주도하에 회사에서 처리가 들어갔다. 증거 찾아내서 사과도 받아 낸 게 벌써 이틀 전이다. 거기까지 했음 됐지 뭘 더 어떻게 화내라고? 애초에 그날 난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아니, 하나하나 화내고 신경질 냈으면 좋겠다 이 말인가?

“너 어디 모자라? 왜 당하고만 있어?”

“그게 뭐. 그렇다고 해도 네가 무슨 상관인데? 네가 그걸 왜 나서서 화내는데?”

“하하, 씨발.”

최백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 놈의 얼굴이 점점 화려해진다.

“그걸 하나하나 정의해야 하냐?”

“…….”

“씨발, 당연한 것까지 일일이 대꾸해 줘야 하냐고.”

“…….”

“왜. 내가 끼어드는 게 짜증 났냐?”

최백이 빙긋 웃으며 묻는다. 그 환한 미소에 주변이 다 훤하다. 짜증이 있는 대로 난 모양이었다. 세상 둘도 없이 지은 미소에는 신경질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말없이 응시하는 내 표정을 뭐라 이해한 건지, 최백이 망설임도 없이 말을 이어 간다.

“그럼 네가 똑바로 행동해. 신경 쓰이게 하지 말고.”

문득. 참. 그 말이. 참 새삼스럽게 들렸다. 신경 쓰이게. 신경. 짜증만 일으켰던 놈의 행동들을 떠올리다, 마지막엔 날 돌아보던 모습을 상기하고는 나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었다.

그게 다 진짜 신경 써 준 거였나. ……미친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말든, 놈의 신경질은 이제 정점을 찍고 있었다.

“그럼 네 말대로, 다음부턴 봐도 개무시할 테니까. 그럼 이제 됐냐? 이제야 속이 풀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진심이 툭.

“아니.”

“……?”

“…….”

아……. 씨발……. 의아한 시선에 내뱉은 말을 깨닫고는 잠시 후회한다. 대체 왜 기다림도 없이 나왔는지 모를 말이다.

이상하다. 분명 다 짜증 났는데. 최백이 화초라고 부르는 것도, 툭툭 건드리는 것도. 전부 다 짜증 났는데. 그런데 또 그만둔다니까 왜 막고 싶어졌는지.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고는 놈이 대꾸할세라 재차,

“아니.”

조금 더 강한 어조로 내뱉었다.

“계속해.”

“…….”

“계속 신경 써.”

“…….”

“…….”

“…….”

“…….”

침묵이 오간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침묵이다.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마저 들릴까 눈을 아래로 한 채 무엇도 못 하곤 입만 꾹 다물고 있었다. 할 말을 다 해 버린 이제 와서, 그제야 뒤늦게 이성이 고개를 든 것이다.

대체 나 왜 그딴 말 했을까……. 그렇게 후회하면서. 놈이 대체 나를 어떻게 볼까. 씨발……. 괜히 말했다. 세 번째 회귀 후로는 후회하는 것투성이다. 자괴감인지 창피함인지 모를 감정에 휩싸여 애꿎은 시트만 손톱으로 꾹꾹 누른다.

“싫어.”

최백의 말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번쩍 들어 놈을 쳐다봤다가 움찔 어깨를 떨고 만다. 최백은 기이할 정도로 즐거워 보였다. 야하게 웃는 그 특유의 얼굴을 기울이며, 즐거움이 뚝뚝 흐를 것 같은 목소리로.

“재밌네.”

“…….”

날 갖고 논 걸까? 놈의 말에 일희일비하는 내 모습이 재밌었나. 어쩐지 덥다. 목덜미고 귓불이고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아, 거지 같다.

“주선율.”

짧게 이름을 내뱉는 목소리에 눈을 깜빡인다. 최백의 입에서 튀어나온 내 이름이 낯설었다.

“넌 대체 뭘까.”

그렇게 말하며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소 짓는다.

“…….”

“…….”

“……그래서 결국 너네 친해진 거야??”

여태까지 침묵하고 있던 매니저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며 묻는다. 난 곧장 시선을 피하고 최백이 소리 내 웃었다.

“정말 오늘 주선율 방송 날이에요?”

“아, 오늘 아니던데?”

최백의 물음에 매니저가 시큰둥하게 대꾸한다. 뭐? 오늘이라더니. 힐끔 공진하와 강이헌을 바라보다 매니저 형을 바라봤다. 매니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둘을 힐끔거리며 말한다.

“넌 내일 나오고, 오늘은… 예고편이던데.”

“…….”

“얘네 너 스토커야?”

“하하하!”

최백이 웃음을 터뜨렸다. ……글쎄요. 떨떠름하게 대꾸하면서도 슬그머니 공진하에게서 떨어져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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