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LB의 새끼 고양이-187화 (187/188)

Bad Guy! - 2

< 1 >

[…… 저는 파드리스에서 갓 트리플A로 승격하던 조를 자이언츠의 품으로 데려왔어요. 당시 자이언츠는 선발진 붕괴로 고전할 때였고 즉시 전력감이 아닌 투수 유망주라도 필요했거든요. 정말 신의 한 수였죠. 또 조가 콜업된 2035시즌부터 워낙 눈에 띄는 활약을 했던 탓에 노리는 팀이 많았지만 잘 지켜냈습니다. 전임 단장이었던 요한슨 씨 멱살을 잡아야 했다면 정말 잡았을 겁니다. 결과가 어땠나요? 메이저리그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2037시즌의 자이언츠에 대해선 들어봤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조는 자이언츠와 장기계약을 맺었어요. 그 계약을 추진한 제가 여기 빈스네 짐(gym)에 들어올 자격이 없겠어요? 물론 구단주 존슨 씨와 요한슨 씨 몫으로 테이크아웃은 해갈 생각입니다.]

- 자이언츠 신임단장 세이우드 페일의 인터뷰 중에서.

(인터뷰 장소는 이젠 자이언츠 짐(gym)으로 더 유명한 빈스네 짐에서.)

< 2 >

“참 아이러니입니다. 월드시리즈뿐만 아니라 포스트시즌 전체에서 퍼펙트게임을 달성한 기록은 딱 한 번뿐이거든요. 바로 1956년에 돈 라슨 선수가 세운 기록인데 어느 팀 소속이었는지 혹시 조 선수는 아십니까?”

“모를 수 없죠. 양키즈 선수였잖아요. 공을 받은 포수는 그 유명한 요기 베라, 양키즈의 전설 중 한 명이고요.”

“네. 그 양키즈 선수가 세운 기록을 양키 스타디움에서 양키즈를 상대로 깨버렸는데 오히려 박수를 받은 느낌이 어떻습니까?”

“깼다는 말은 틀렸어요. 그 자리에 다시 오른 거죠. 제가 돈 라슨 선수의 영광을 다시 기억나게 했으니 양키즈 팬들도 박수를 보내줬다고 생각합니다. 또 원래 메이저리그에 영원한 기록은 거의 없잖아요. 물론 시대변화에 따라 깨지기 힘든 기록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오늘도 그 기록을 넘어서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오늘 마지막 순간에 아쉬움이 남았어요. 언젠가 그 기록을 다시 넘어설 생각이 있습니까?”

마지막 순간에 남은 아쉬움이라?

난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당연합니다. 마운드에서 오늘처럼 몰입해본 경험은 처음인데 오늘 투구의 느낌을 되살리려고 계속 노력할 겁니다.”

이거 방송용 멘트 아니거든.

구장에 나와 하우어의 미트, 그리고 타자만 존재하는 것 같은 극한의 몰입감을 다시 느껴보고 싶으니까.

그래서 목표를 남겨두려고 마지막 투구에 그런 삽질을?

아니다. 이건 너무 재수 없는 생각이다.

어쨌든 마지막 공?

.

.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8회 말 마지막 타자가 이를 악물고 배트를 휘둘렀지만, 그가 예상했던 베어-팜의 궤적보다 더 낮게 떨어진 공이었다.

놔뒀으면 볼로 판정이 날 수도 있었던 공.

하지만 무의식이 저 공은 스트라이크라고 세뇌를 시켰겠지.

오늘 나는 메이저리그에서 3년을 보내며 타자들을 상대하기 위해 썼던 모든 방식의 투구를 다 이용하고 있다.

맛있는 스테이크 하나가 나오려면 먼저 고기가 중요하고, 또 적당한 불 조절과 고기의 풍미를 살릴 소스, 마지막으로 요리사의 인내가 어우러져야 하거든?

그래야 누구나 감탄할 멋진 스테이크가 나와.

내가 던지는 네 종류의 공이 고기라면 완급과 무브먼트의 조절이 불 조절에 해당할 거고 볼 배합을 이용한 심리전은 소스다. 그리고 배트를 헛스윙으로 끌어내기 위해 유인하며 참는 거다.

이렇게 최고의 스테이크를 구워본 적이 있었나?

야구를 시작하고 처음이다.

덕아웃에 돌아왔더니 말없이 옆에 음료수가 놓인다.

고개를 돌려보니 스톤햄. 이런! 전에도 그러더니.

“고마워요.”

대답도 안 한다.

그저 씩 웃기만 하고.

참 고마운 사람이다. 내가 자이언츠에 와서 팀에 녹아들고 자신감을 갖게 된 데는 스톤햄의 도움이 참 컸다.

무엇보다 한 팀의 에이스란 이런 모습이란 걸 배웠다.

시즌 후반에 들어와 주전들의 피로가 조금씩 누적될 때 스톤햄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자이언츠의 124승도 어려웠을 거다.

선수단 미팅을 한 뒤로도 매 경기 후 메이저리그 최고승률을 향한 매직넘버를 불러주며 우리 모두를 채찍질했거든.

잔잔해 보이지만 그거 다 위장이라니까.

영화에 나온다면 아마 막후 실력자, 흑막, 이런 배역일 게 뻔해.

퍼엉!

“스트라이크 아웃!”

오늘 양키즈 투수들도 역투 중이다.

시슬러가 4와 3분의 2이닝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자이언츠 타선을 막아냈고 페로니가 그 뒤를 이어받았다.

페로니가 비록 2실점을 했지만, 사흘 휴식이 짧아 공이 무뎠다기보단 그냥 우리 타자들이 잘 때렸다.

알잖아? 야구는 상대적인 거.

아무리 잘 던져도 잘 때리면 답 없으니까.

다만 그 2득점 후 자이언츠 타자들 전부 태업 중이다.

배트만 들고 나가서 멀뚱멀뚱 투수 바라만 보다 들어와.

눈싸움에서 이기면 안타로 인정해주는 규정이 메이저리그에 새로 생겼는지 알아봐야 하나?

퍼엉!

“스트라이크 아웃!”

9회 초 마지막 공격 역시 마찬가지.

이젠 페로니도 그냥 배팅 볼 같은 공을 던진다.

어깨에 힘을 빼고 존 구석구석을 노리는 것도 아니고.

님들! 설마 2:0으로 스포츠 토토에 걸어서 그런 건 아니죠? 월드시리즈 4차전이면 배당률도 높을 텐데.

퍼엉!

“스트라이크 아웃!”

자, 공수교대.

2:0으로 배팅한 우리 선수들 도와줄 시간이다.

그래야 배당금 중 절반은 내 몫이라고 우길 수 있지.

덕아웃에 들어오면 잠깐 들리던 소음이 마운드에 올라서면 사라진다. 이거 양키즈 팬들의 배려?

모르겠다. 이 순간엔 다시 몰입이 시작되니까.

퍼엉!

“스트라이크!”

지금 이 느낌대로 또 던질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머릿속에 내 공의 궤적과 타자가 내밀 배트의 궤적이 그려지는데 이게 날마다 되면 사기지.

또 생각하는 대로, 마음먹는 대로 공이 들어간다고.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이렇게 던져야 헛스윙을 끌어낸단 느낌 그대로.

퍼엉!

“볼!”

볼 판정이 나오긴 했어도 이건 어디까지나 밑밥.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허를 찔린 타자는 하늘 무너진 표정으로 돌아간다.

하우어에게 공을 받아드는데 양키즈 벤치가 대타를 불렀다.

6회 말에 8번 타자를 바꿨었는데 또 바꾸는 건가? 오늘은 누가 타석에 들어와도 무섭지 않다.

의식하지도 않았는데 머리가 대타 프로필을 검색한다.

저 타자의 스윙, 장점, 약점, 마지막으로 노릴 만한 공.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노리는 게 확실한 타자는 오늘처럼 각성한 나한테 안 되지.

퍼엉!

“스트라이크!”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오늘 삼구삼진만 몇 개더라?

아니. 지금까지 공 90개도 안 던진 것 같은데.

볼 판정 나온 게 대여섯 번. 파울이 나와 심장 쫄깃하게 만든 게 두세 번.

진짜 오늘은 미친 날이다.

평생 이런 투구를 다신 할 수 없을지도 몰라.

다시 대타.

이제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인가?

몸에 잔 떨림이 번져간다. 마치 소름이 돋는 듯이.

이러면 안 되지. 메이저리그에서 9회 말 투아웃에 퍼펙트게임 깨진 게 몇 번인데.

타율이나 출루율이 썩 좋은 타자는 아니다.

딱히 특별한 공에 장점이나 단점도 없는 타자고.

퍼엉!

“스트라이크!”

초구는 얌전히 지켜본다.

일단 컨택을 하려고 휘두를 줄 알았는데.

뭐 서서 지켜봐 준다면 나로선 나쁠 게 없다.

하우어의 미트가 고정됐고.

와인드업-킥킹-스트라이드-릴리스!

잠깐! 그런데 내가 지금 던지려던 공이 뭐였지?

초구에 바깥쪽 높은 코스로 스트라이크를 잡았으니 몸쪽 낮게 떨어지는 베어-팜을 던지려고 했는데.

왜 나도 모르게 그립도 다른 포심을 던졌을까?

반성하는 시간은 짧았다. 타자의 스윙이 나왔거든.

따악!

.

.

“어떻게 보면 맞바꾼 거겠죠? 27K를 했으면 라이브볼 시대의 최소투구 퍼펙트게임 기록을 못 깼을 테니까요. 이전 기록이 데이비드 콘의 88개였는데 조 선수가 87개로 끝냈잖아요.”

“정확한 투구 수는 몰랐어요.”

“하하! 그 투구 수마저 계산해가며 기록을 깼으면 전 백악관에 조 선수를 해부해보자고 청원을 넣었을 거예요. 아마도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에게 먼저 암살을 당하겠지만요. 그런데 재밌는 건 또 있어요. 데이비드 콘도 양키즈 소속이었던 거 몰랐죠?”

“…… 그런가요?”

“네. 그가 1999년 양키즈에 있을 때 맞아요.”

젠장! 인터뷰하다가 욕 나올 뻔했다.

나 정말 양키즈 팬들에겐 나라 팔아먹은 죄인이랑 동급이네.

그래도 마지막 대타의 타구가 바르가스 글러브에 들어갔을 때 정말 뜨겁게 박수를 보내준 관중들에게 고맙다.

그 순둥이 양키즈 팬들이 어땠는지 알아?

“Joe! Make Yankees your home!”

“Nope! Make New York your home!”

날 양키즈 프랜차이즈 스타로 삼겠다며 외쳐댔다고.

< 3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0 뉴욕 양키즈]

…… 시즌 124승으로 컵스가 가지고 있던 단일시즌 메이저리그 최고승률 기록을 깼던 자이언츠. 그들이 끝내 포스트시즌 무패의 행진마저 멈추지 않았다.

다만 자이언츠의 승리를 예상한 사람은 많았을 텐데 경기가 끝날 때까지 관중의 호흡마저 잡아 둔 그 투구는 누가 예상했을까?

한 경기 탈삼진 기록이 26K로 늘어났다.

또 그 26K는 중단 없는 연속 탈삼진의 새 기록이고.

정규시즌 탈삼진 숫자가 2년 연속 300K를 넘는 조 선수지만 때로는 범타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경기를 풀어갈 때도 많았다.

워낙 뛰어난 구위에 삼진이 많아졌을 뿐 일부러 삼진을 의식하는 투구를 하진 않았단 뜻이다.

하지만 오늘. 월드시리즈 4차전.

그는 한층 더 진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계에서 들은 캐스터들의 멘트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조 선수에게 더는 놀랄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꽤 오만한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놀랐던 점들은 그저 일부였다고 봐야 합니다. 드라이 진, 드라이 베르뭇, 올리브. 그것들을 따로따로 맛보고 마티니 맛을 안다고 하면 안 되잖아요.”

“…… 재료만 맛보고 칵테일의 황제를 안다고 했단 말인가요?”

“네. 오늘 조 선수 투구는 마티니를 보여주고 있어요. 그동안 너희가 나에 대해 뭘 알고 있었냐는 질문을 던지는 거죠.”

이보다 조의 투구를 더 인상적으로 표현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칵테일의 황제, 명품 마티니를 맛보게 해준 조 선수의 투구에 경의를 표한다.

더불어 이제 2037시즌은 끝났지만 2038시즌이 더 기대된다.

보다 공격적으로 탈삼진을 노릴 조 선수의 투구가 또 어떻게 진화할지 궁금한 건 본 기자만이 아닐 테고.

.

.

방금까지 전용기 안에서부터 광란의 파티를 벌이던 원수들이 잠들고 펼쳐 든 태블릿에 꽤 오글거리는 기사가 떴다.

이거 또 구단의 기획기사 아닐까?

“조, 오늘 멋있었다.”

“멋있긴. 미쳐 날뛰었던 거지.”

고개를 돌려보니 스톤햄과 프린츠다.

“안 잤어요?”

“피곤할 사람은 너야. 우린 어깨도 안 풀었어.”

“17이닝 던지겠다곤 했지만, 진짜 감독님이 불펜을 비워버릴 줄은 몰랐어요. 무슨 배짱이었는지 몰라요.”

“하하! 널 마운드에서 끌어내리려면 탱크를 몰고 가야 한다는 걸 감독님도 알았단 증거야.”

“큭큭! 오늘 경기로 몸값이 더 폭등할 텐데 자이언츠랑 헐값 계약했다는 생각은 안 들어?”

계약? 어떻게 아나 했는데 생각해보니 프린츠네.

자이언츠 구단주와 혈연인데 팀에서 가장 힘든 보직 중 하나라는 불펜에서 박박 구르는 프린츠.

이 양반이 모르는 게 더 이상한 일이지.

“왜 이래요? 아직 사인 남았어요.”

“흐흐. 우승 축하행사랑 네 장기계약 발표도 함께 할 계획이라는데 어디서 블러핑이야?”

“…… 설마 옵션에 대해서도 들었어요?”

“들었지.”

조금 황당한 기분이 든다.

아무리 구단주인 존슨 가문의 사람이라고 계약이 외부에 발표되기도 전에 전부 아는 건 반칙 아냐?

“와! 구단이 그렇게 계약 내용 발설해도 되는 거예요?”

“음, 이젠 말해줘도 되겠네. 지금까진 스톤햄만 알던 건데. 예전에 이사회에 대해 말했던 거 기억나?”

이사회? 존슨 씨가 50% 지분을 넘기기 전 32인 이사회?

…… 설마?

“빨리 아니라고 해줘요.”

“아니긴. 난 지금도 내 지분 꽉 쥐고 있어. 네 계약에 대해 알 자격은 충분하지?”

< 4 >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자이언츠 선수단을 정말 뜨겁게 환영했다. 우승을 확정 지은 장소가 AT&T파크였으면 주 방위군이라도 출동해야 팬들을 진정시켰을 거야.

지금 우승 축하에도 이 많은 사람이 몰린 걸 보면 뻔해.

누가 보면 여기서 슈퍼볼 결승전이 벌어지는 줄 알겠어.

선수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불리고, 나와 인사를 하고.

열광적인 박수 속에 구단이 미리 준비해뒀던(만약 우승을 놓쳤으면 저 반지들 다 어떻게 했을까?) 반지에 입을 맞췄다.

이 반지의 기원이 자이언츠라는 걸 모르는 사람도 많다.

최초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기념해 반지를 준 팀이 뉴욕 자이언츠거든.

그렇게 대충 행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다.

“헤이! 샌프! 하나 더 좋은 소식이 있어요.”

미친! 우승 축하행사는 그냥 행사로 끝내자고 해놓고.

마이크를 잡은 프린츠를 말리려 했지만, 선수들에게 어떻게 약을 쳤는지 전부 인의 장벽을 쌓으며 나를 막아섰다.

“날 죽여야 지나갈 수 있다.”

“기꺼이!”

“하우어로 끝이 아니야. 다음은 나도 있어.”

“드디어 자넷을 새출발시키겠네.”

그래. 하우어, 리키. 너희들 은퇴식도 오늘 하자.

우두둑! 목을 꺾으며 온몸의 근육을 이완시키는데.

이 자식들은 그저 어그로를 끄는 탱커였을 뿐이었다.

본진은 따로 내 뒤에 대기 중이었고 그들이 날 덮쳤다.

“스톤햄! 젠장!”

< 5 >

내 장기계약 발표는 엄청난 후폭풍을 낳았다.

올해 슈퍼2 조항의 수혜자가 되고 그치는 게 아니라 자이언츠와 10년짜리 장기계약?

설마 했던 자이언츠 독주가 시작된다는 신호라나?

너무 많은 인터뷰 요청에 시달려 난 잠시 미국을 떠났다.

원래 한국방문 계획도 있었고 제시에게 부탁해 개인적으로 출발하는 거라 몰래.

그리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는데.

보드지 한 장이 날 반겼다.

Bad Gu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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