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LB의 새끼 고양이-176화 (176/188)

MOM(Monster of Monster) -1

< 1 >

올해 가을야구는 많은 볼거리를 제공 중이다.

NL에선 두 번의 타이브레이크 게임 뒤에 언더독 레즈가 챔피언십까지 올라갔고 AL에선 매 경기가 혈전이었으니까.

2년 동안 부쩍 늘어난 메이저리그 팬만 즐거웠다.

그래도 이젠 4강이 가려졌다.

NL의 자이언츠와 레즈.

AL의 양키즈와 LA에인절스.

챔피언십의 주인까지 가려진 후엔 드디어 월드시리즈다.

▶ 내셔널리그야 자이언츠가 이기겠지?

▶ 배팅하라면 자이언츤데 레즈도 기세론 안 밀리지.

▶ 두 팀이 좀 비슷한 구석이 있지 않냐?

▶ 진짜 두 팀 비슷해. 작년에 자이언츠는 카디널스랑 와일드카드 남은 한 자리 가지고 시즌 말까지 머리가 터졌거든. 그러다 전문가들 예상 다 뒤엎고 챔피언십까지 나갔고.

▶ 올해는 레즈가 시즌 최종전에서 컵스랑 동률 만들고 타이브레이크 게임에서 이겨 지구우승 먹었지. 덕분에 NL에서 타이브레이크 게임만 두 번이 열렸는데 다 이해한다 쳐도 내셔널스 상대로 스트레이트 3연승은 생각도 못 했어.

▶ 챔피언십까지 올라간 과정이 비슷한 거고 내용 면에선 질적으로 달라.

▶ 다르다고? 어떻게?

▶ 작년 자이언츠 도약엔 조와 2년 차 신예들이 중심이었지?

▶ 그랬지. 리키가 도중에 부상으로 이탈하긴 했어도 전반기 승수 쌓을 때 자기 역할 다했고.

▶ 자이언츠는 올해 그 전력을 더 보강했어.

▶ …… 반면에 레즈는 작년 후반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루키들 모두 지킨 게 아니네.

▶ 패이튼 래닝을 다저스에 판 게 실수였어.

▶ 버스터랑 래닝이 스윙이 제일 좋았는데 미친 짓이었지.

▶ 보강은 못 해도 포텐 터진 애들 다 지켰으면 지구우승을 타이브레이크 게임으로 가릴 일도 없었을 거다.

▶ 역시 구단주가 투자를 아끼면 팀의 한계가 나타나.

▶ 자이언츠는 포텐 터진 애들로 적당히 성적 낸다는 생각 대신에 바르가스부터 몇 명을 사들였는지 생각해봐.

▶ 그 결과가 한 시즌 124승이고.

▶ …… 레즈엔 돈 못 걸겠네.

▶ 그래도 요즘에 화제가 된 개리 월터? 그 양반 타격이론 배운 루키들이 9월에 또 올라와서 챔피언십까지 온 거야.

▶ 그래 봐야 1차전에 또 곰탱이 나온다.

▶ 곰탱이가 상대 타선 멘탈 터뜨리는 재주가 있어서 1차전에 공략 못 하면 그 여파가 다음 경기까지 계속 미치지.

▶ NL에선 곰탱이 대신 누구한테 사이영 상 줄까?

▶ 받겠다는 미친놈이 나왔을까?

▶ 상 없어지는 거야. 아니면 이름 바꾸고 선발방식도 바꿔서 좀 수긍할 수 있게 만들던가.

▶ AL 이야기도 좀 해봐. 아무래도 양키즈겠지?

▶ 지금 페이스면 하디가 2승은 건져줄 테니까.

▶ 하디?

▶ 크리스토퍼 하디. NL만 보지 말고 AL 경기도 좀 봐라. 양키즈에 올해 콜업돼 미치는 애 한 명 있어.

▶ 역시 야구는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애들이 있어야 재밌어.

.

.

MLB 팬 포럼은 읽는 맛이 있다.

야구전문가 안목이 아니라 깊이가 없을 거라고?

천만의 말씀. 원래 정보만 닫히지 않으면 전문가 10명의 판단보다 일반인 1,000명이 머리를 맞댄 결론이 더 정확하다.

이른바 집단지성의 힘이다.

항상 문제가 된 건 정보의 차단이나 왜곡.

거기에 더해 쓰레기 언론의 악의가 팬의 눈을 가린다.

예를 한 번 들어볼까? 특정 타자의 삼진 소식이 유독 많이 나오던 때가 있었어.

그런데 OPS는 타자를 평가하는 주요항목이거든.

OPS라는 건 딱 장타율과 출루율의 합이고 출루율이 강조되는 현대야구에서 삼진이 많다는 건 타자에게 좋은 평가가 못 돼.

범타는 진루타라도 나올 수 있는데 삼진은 그냥 꽝이니까.

깊이 들어가면 삼진과 볼넷의 비율을 따져야 하는데 그건 머리만 아프니 패스하고 팬들의 인식만 보자고.

삼진이 많으면 출루율 낮고 공갈포나 날리는 타자로 인식돼.

하지만 사실 그해 타자의 기록을 살펴보면 지난 2-3년 동안 삼진 먹은 숫자와 올해 차이가 없었어. 출루율도 비슷했고.

즉 똑같은 삼진을 먹었는데 보도만 많았던 거야.

왜? 내년에 FA였거든.

내년에 FA 신분을 얻는 선수.

다만 기자들 눈 밖에 났던 선수.

삼진의 개수는 같은데 삼진에 대한 보도는 두 배가 됐다?

그 안에 담긴 악의를 읽을 수 없다면 좀 곤란하겠지?

나도 악의를 담아 말하자면 입금 안 돼 까인 거야.

[내일 투구나 생각해요.]

미네가 걱정스러운 듯 날 달랬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면 전화를 받았거든.

내일 챔피언십 1차전 선발투수로 예고된 내 정신을 사납게 할 생각인지 좀 뜬금없는 내용의 통화를 했다.

- 사이영 상은 그냥 받으면 안 되겠습니까?

황당했다.

사이영 상은 정규시즌이 끝난 후 기자단의 투표로 뽑는다.

발표만 월드시리즈 종료 후에 할 뿐이지. 다시 말해 이미 수상자가 결정됐어야 맞다.

트리플 크라운을 했든 퍼펙트게임을 두 번을 했든 당사자인 내가 수상거부를 선언했으니 다른 수상자 골라놨으려니 했는데.

“관심 없습니다.”

- 기자들과 관계개선을 바라지 않습니까?

“그 관계 내가 헝클었던가요?”

- …… 조 선수의 데뷔전 후에 몇몇 기자들이 잘못된 접근을 했던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조 선수 역시……

“나 역시 고분고분하진 않았단 말이죠?”

- ……

“결국엔 타협했다는 전례를 만들기 싫어요.”

- …… 조 선수는 앞으로 단 한 번이라도 발을 헛디뎌선 안 될 겁니다. 이 결정에 대한 대가로 말입니다.

“그래요. 헛디디면 그때 물어뜯으세요.”

단순한 협박은 아닐 거다.

사생활에서도 흠집을 잡히지 않아야 할 테고 어쩌다 잔뜩 두들겨 맞는 날이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까대겠지.

당장 내일 챔피언십. 다음은 월드시리즈.

앞으로 10년, 20년 계속될 거야.

그래도 어쩌겠어.

세상 적당히 휘어지면서 사는 게 좋다지만 내 성질머리가 휘어지질 못하는데.

“괜찮아. 미네도 알잖아. 나 멘탈 좋은 거.”

[…… 미녀들이랑 파티에도 못 갈 거예요.]

“큭큭! 안 가는 거야. 원래 파티 좋아하지도 않고. 내가 파티에 간다고 법에 걸리겠어? 한 경기쯤 엉망으로 던진다고 누가 잡아가겠어? 물어뜯든 말든 이제 관심도 없어.”

[와! 기자들 기분 나쁘겠다.]

“실컷 짖었는데 대꾸도 없어서?”

[전엔 같이 으르렁거리기라도 했잖아요.]

“이젠 품위를 지켜야지. 같이 짖는 건 곤란해.”

[큭큭! 마초곰탱이에게 품위라니……]

“…… 웃지 마.”

[흐흐!]

“웃지 말라고!”

미네와 장난을 치며 다 털어버렸다.

마이웨이. 각자 자기 갈 길 가는 거야.

기자들? 쓰고 싶은 대로 쓰라 하고, 난 내 내키는 대로 살고.

내가 관심을 두는 건 좋은 동료들과 야구를 오래 함께하고 팬들과 어울리는 거지. 겉 포장이 아니니까.

욕할 사람은 어차피 하던데 뭐.

< 2 >

“어제 클럽에서 실컷 달린 사람?”

“하우어랑 바레이타를 의심해봐야 합니다.”

감독님은 웃자고 한 말일 텐데 당장 제보가 들어간다.

그 둘이 여자들만 보면 눈에서 막 하트가 날아가거든.

“그럼 오늘 마스크는 케인에게 맡길까?”

감독님의 시선이 내게 날아왔다.

“저는 완전 괜찮습니다.”

“큭큭!”

“하하하!”

장난이란 게 받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즐거운 법이지.

감독님이 내게 토스를 했고 내가 네트 너머로 강스파이크를 날리자 하우어의 얼굴이 노랗게 변했다.

엉겁결에 타겟이 되어 변명도 못 하고 잘릴 판이니까.

설마 진짜 클럽에서 달려서 대답을 못 하는 건 아닐 테고.

“가, 감독님! 모함이에요!”

뒤늦게 울부짖는 하우어를 실컷 놀려먹은 후에야 경기 전 브리핑이 시작됐다.

“오늘 레즈 선발은 루 스웨지. 투수 분석은 다 해봤겠지?”

“좋은 투수긴 한데 경기 초반에 제구가 흔들리는 단점이 있던데요. 구속도 조금 떨어지고요.”

페르시가 정확하게 봤다.

이건 투수들에게 꽤 큰 단점이다.

어깨가 늦게 풀린다고 불펜투구를 늘리면 실제 마운드에서 던지는 투구 수가 줄어드니까. 반대로 불펜투구를 조절하면 자칫 초반에 난타당할 위험이 크고.

불행히도 레즈의 선발 스웨지는 어깨가 늦게 풀린다.

공이 아직 눈에 익지 않았다고 초반에 지켜만 볼 게 아니라 적극적인 공세에 나서면 일찍 무너뜨릴 수 있다.

“모두 같은 생각인가?”

“어제 몇 명씩 영상 함께 봤습니다.”

자이언츠의 강점이지.

결론을 혼자 내리지 않고 소통한다는 점.

스웨지뿐만 아니라 레즈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투수들 영상을 눈이 빠지도록 함께 돌려봤을 거다.

“좋아, 벤치랑 의견이 같아. 컨택은 신중하게 하되 적극적으로 스윙을 가져가. 투구 수 늘리겠단 생각 버리고.”

“알겠습니다.”

좋아. 잘하면 선취점도 빨리 뽑겠네.

좋은데 뭐야? 왜 이야기가 그게 끝이야?

왜 다 일어나서 밖으로 나갈 분위기인 거야?

나 자이언츠란 팀에 와서 한 번도 안 당해본 왕따 당하는 중?

“감독님.”

“왜?”

“저 선발인데요.”

“그래서?”

“투수에겐 아무 말 없는 건가요?”

“5회만 던지고 내려오라면 말 들을 거야?”

“……”

“연장은 절대 허락할 수 없다면 말 들을 거야?”

“……”

“큭큭!”

“하하하!”

미치겠다. 내가 내 무덤을 팠다.

알아서 타겟 설정하고 미사일 좌표까지 찍어줬어.

라커룸을 나가다 말고 키득거리는 인간들, 아주 신났네.

그런데.

“원래 에이스에겐 잔소리 안 해. 앞으론 배터리가 서로 의논해서 시프트를 직접 내리는 것도 허용할 거야.”

“…… 너무 편하게 연봉을 버시려는 것 같아요.”

“30년쯤 뒤에 자네도 나처럼 해 먹어. 자네 같은 투수 하나 미리 키워놔야 가능하겠지만.”

결국엔 믿는단 소리네 뭐.

확장로스터까지 자이언츠 저지를 입은 선수 전원, 코칭스태프 전원이 모인 자리에서 날 팀의 에이스로 못 박아버린 거고.

< 3 >

딱!

“파울!”

그런데 초반부터 적극적인 타격?

자이언츠만 선택한 방법이 아니었다.

레즈 벤치의 지시사항인지 타자들 개인의 선택인지 공 하나도 그냥 지켜보는 경우가 없었다.

타순이 한 바퀴 도는 3회까진 그 스윙을 이용했다.

적극적인 스윙을 하는 타자들 상대로 미끼를 던지는 투구 패턴은 내가 처음 써먹는 것도 아니니까.

동료들도 1회 2점, 3회 2점. 4:0 스코어를 만들어놔서 여유가 있는 상황이었는데 4회 초 좀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을 얻었다고 말했던가?

과거 세이프 존 설정 특성이 패시브가 돼서 일부러 설정을 끄지 않는 한 힛 바이 피치 볼을 내주지 않는다고.

그래서 과감하게 몸쪽 공을 던질 수 있다고.

그런데도 힛 바이 피치 볼 판정이 나왔다.

몸에 맞았다기보단 프런트도어 스핀-커터를 타자가 피하면서 옷깃에 스친 것이 힛 바이 피치 볼 판정을 받은 거다.

좀 웃긴 상황이지?

특성은 아니라고 하는데 주심은 예스라는 상황.

뭐 ‘제 특성은 몸에 맞은 게 아니라네요!’ 라고 주심에게 항의하면 들어줄까? 그냥 넘어갔다.

넘어갔는데 다음 타자가 버스터.

1회엔 스핀-커터의 완급으로 잡았으니 이번엔 베어-팜을 결정구로 쓸 생각이었다.

원 볼-원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파울.

원 볼-투 스트라이크가 됐으니 이제 베어-팜.

던졌는데.

따악!

항상 생각하지만 잘 때리면 하는 수 없다.

다만 홈런은 주자 없을 때 좀 치라고.

젠장!

< 4 >

“아! 공교로운 상황입니다. 무사에 주자 1루와 3루. 오늘 조 선수에게 홈런을 빼앗은 버스터 선수가 타석에 들어왔어요.”

“네. 일단 점수에 여유는 있습니다. 홈런을 맞고 4:2 상황에서 자이언츠가 다시 한 점을 달아나 5:2니까요. 또 홈런을 맞는 게 아니라면 한 점은 준다는 생각을 해야 맞죠. 오늘 버스터 선수의 타격감이 좋은데 굳이 정면승부를 할 필요는 없어요.”

“자칫 다시 홈런이라도 맞으면 1차전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레즈의 스웨지 선수 투구도 초반보다 훨씬 안정을 되찾아서 쉽게 점수 안 나오거든요.”

“이런 부분에선 벤치의 지시가 없는 한 투수의 선택입니다. 디비전시리즈에 이어 챔피언십에서도 1차전 선발. 자이언츠 벤치가 조 선수를 팀의 에이스로 삼았다면 따로 지시는 없을 텐데 조 선수의 선택이 뭔지 궁금하네요.”

.

.

벤치를 힐끗 봤다.

에이스에겐 잔소리 안 한다더니 사인도 안 줘?

감독님이나 애쉬비 코치나 배 째라는 건데 째지 뭐.

이틀 전 헬-벨께선 개인 성적보단 팀이 이기는 것에 집중하라고 하셨는데 물론 팀이 이겨야지.

개인 성적이야 뭐 상을 받는 것도 아닌데 의미 없고.

다만 저 버스터란 녀석이 내가 땅볼을 유도할 걸 모르겠냐는 질문을 하면? 과연 모를까?

베어-팜을 기다린 듯 노려 때린 녀석이?

월터의 타격이론이 브레이킹 볼도 때리게 진화한 모양인데 아무래도 도망 다니는 건 적성에 안 맞는다.

한 방 더 맞으면 내 동료들도 또 펜스 넘겨주겠지.

내가 직접 사인을 보냈다.

그리고.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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