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LB의 새끼 고양이-172화 (172/188)

세상에 이런 일이? - 3

< 1 >

필리스는 미누 조란 선수에 대해 많은 데이터를 모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디비전시리즈를 위한 대비책으로 처음 데이터를 수집했던 게 아니다.

데뷔한 첫해 고작 두 달을 던지고 9승4패.

소포모어 징크스를 앓는다는 2년 차엔 아예 24승4패.

필리스의 거포 베나블과 예고 벤클까지 벌이며 메이저리그 팬들의 관심을 모았던 투수가 조였다.

그 후론 필리건에게 야유가 아닌 조공을 받는 투수가 됐다.

미친! 아무리 필리건이 구단도 이해 못할 사차원 전투종족이라지만 어떻게 다른 팀 선수에게 조공을 바치나?

어떻게 홈구장에서 벌어진 벤클에 루키가 당했는데 팬들이 박수를 보내나?

조라는 투수의 모든 면이 연구대상이었다.

뭐 올해 성적은 더 좋고 노히터와 퍼펙트게임이 해마다 쏟아지는 투수니 실력은 물을 것도 없었다.

그런데 실력 이외에도 묘한 마초 근성을 가졌다.

구세대부터 신세대까지 아우를 수 있는 파워 피처의 전형으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투구는 퍼펙트게임 진행 중에도 마찬가지다.

세 번째 퍼펙트게임 때였던가? 27번째 아웃카운트를 남겨두고 스트라이크 존에 거침없이 박히던 하이 패스트볼엔 필리건이 더 큰 환호를 보냈다.

물론 때때로 기가 막힌 심리전도 펼친다.

투구의 90% 이상이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간다는 점을 역이용해 유인구로 배트를 끌어낸 적도 종종 있었으니까.

양키즈가 그 변형 패턴에 톡톡히 당했다.

하지만 대체적인 성향은 마초다.

그런 마초가 동료들에겐 굉장히 끔찍하다.

직접 개발한 스트레칭을 마이너에서부터 팀의 동료들과 공유하고 경기 중에 동료가 다치면 퇴장을 불사하고 싸운다.

다름 아닌 선발투수가!

그래서 실력은 둘째. 상품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올해 슈퍼2 조항의 혜택을 받아 연봉조정협상 권한이 생긴다. 작년에 바르가스를 FA로 영입하는 등 매우 공격적인 트레이드를 감행했던 자이언츠가 조를 끌어안을 수 있을까?

당연히 사치세 수백만 달러를 물더라도 조를 잡으려 할 자이언츠란 걸 모르지 않지만 욕심이 생겼다.

세간에 도는 양키즈와 다저스의 7억 불 배팅설은 필리스의 작품이었다. 자이언츠가 움찔하길 바랐던 작품.

그런데 재밌는 건 양키즈와 다저스가 7억 불 배팅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단 사실이다. 자이언츠가 7억 불은 어림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하면 조 쟁탈전에 뛰어들겠단 신호였다.

그럼 자이언츠는? 여유롭게 그 정도 가치가 있는 선수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 시점에서 필리스는 포기했다.

필리스가 스몰 마켓은 아니다.

해마다 페이롤 10대 구단을 나열하면 1-2위는 못해도 대충 순위에는 오르니까. 하지만 7억 불은 오버다.

그래서 알아봤더니 자이언츠는 곧 중계권 협상이 있다.

2년 남았으니 내년엔 협상이 시작된다. 조 같은 녀석을 보유하고 있는 팀이라면 대박이 터지고도 남는다.

사상 최대의 중계권 계약이 가능할 텐데 조건은 조와의 장기계약이 될 게 뻔하고.

자이언츠 구단주가 미치지 않는 한 트레이드는 없다.

그럼 적어도 10년은 자이언츠가 서부지구를 호령한다.

어차피 다른 지구라 상관이 없는 게 아니다.

가을야구에서 계속 걸림돌이 된다.

또 그렇게는 못 놔두지.

선수들끼리도 친한 것과는 별개로 경기장에선 투쟁심을 불태우는데 구단 입장에선 말할 것도 없다. 사업은 사업이다.

모은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찾았다.

딱히 드러난 약점이 없으면 약점을 만들면 되니까.

구속의 완급조절과 베어-팜을 비롯한 브레이킹 볼의 변화조절이 능숙해진 이후의 최근 경기를 집중 분석했다.

그래서 1차 공략방안을 연구해 냈는데.

망할!

퍼엉!

“스트라이크 아웃!”

저 녀석은 다시 진화했다.

< 2 >

“타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능숙한 스윙이 있습니다. 뭐 바르가스나 베나블 선수처럼 상황에 맞춰 스윙에 변화를 주는 타자도 있지만 그게 누구나 가능한 건 아니죠. 투수가 투구 폼에 변화를 주는 게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지금 조 선수는 타자의 스윙에 따라 대처하기 버거운 코스에만 투구를 하고 있어요.”

“네. 그렇네요. 어퍼 스윙을 하는 타자에겐 하이 패스트볼. 스트라이크 존의 몸 쪽과 바깥쪽 상단만 노리죠? 반대로 레벨 스윙에는 낮은 공, 혹은 낮게 떨어지는 공만 던지고요. 이건 뭐…… 조 정도의 투수면 구위로만 눌러도 실점 상황은 거의 안 만나거든요. 그런데 저렇게 타자를 철저히 분석까지 해오면…… 메이저리그가 괴수들의 천국이긴 한데 그 괴수들마저 압살하는 괴수가 출현했어요. 생태계가 무너집니다.”

“원래 바깥쪽 승부를 통해 타자의 중심을 끌어내고 존 중앙이나 몸 쪽을 공략하던 게 패턴이었다면 이젠 패턴조차 없습니다. 어떤 공이 들어올지 예측 자체가 안 되요. 같은 궤적으로 날아오다 홈플레이트 앞에서야 구분이 되는 포심과 스핀-커터만 해도 공포잖아요? 그런데 베어-팜은 이제 종 슬라이더인지 커브인지 본래 궤적이 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공들이 각 타자에게 맞춤형으로 스트라이크 존 외곽 곳곳을 찌릅니다. 2회 베나블 선수 표정 보셨죠? 어느 정도 스윙을 조절할 수 있는 타자조차 어이가 없게 만들어요.”

.

.

3회 초 투수까지 삼진. 깔끔하다.

날 들여다보겠다면 난 심연이 돼주려던 작전 성공이다.

특히 베나블. 오늘 그 자식 SNS에 놀려먹을 거리가 생겼으니 기쁨이 두 배고.

“입 찢어진다.”

“흐흐. 내가 말했잖아. 이 작전 먹힌다고.”

“후! 껍질은 곰탱이가 그 껍질 벗겨내면 여우니.”

“그냥 여우야? 백 년, 아니 천 년쯤 묵은 여우지.”

덕아웃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날 기다리던 하우어가 여우 타령을 하자 내가 대꾸하기도 전에 새비지가 받아쳤다.

뭡니까? 새비지!

이제 나 놀리는 데까지 동참한 거예요?

애쉬비 코치가 대놓고 곰탱이라고 하더니.

“데뷔해서 계속 데이터 모으고 분석한 건데 잘 써먹어야죠.”

“하하! 써먹는 건 좋은데 자이언츠 데이터도 모은다며?”

“…… 어떤 배신자가 불었어요?”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리키부터 시작해 저 악의 무리가 밤이면 내 방을 차지하고 놀았던 게 워낙 오래 된 일이라.

어쩌다 보니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선수들 데이터를 모으던 사실이 알려졌고 원하면 공유도 해줬다. 데이터란 게 모으기만 한다고 의미 있는 것도 아니잖아. 어떻게 써먹을지 고민이야 각자 몫이니 잊고 지냈는데.

그때 자이언츠 선수들 데이터 모으던 것도 당당히 밝혔다.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은 서로 다를 수 있겠지만 당시엔 내가 자이언츠에 계속 남을지 알 수도 없던 때였으니까.

또 나만 남는다고 끝이 아니다.

동료의 트레이드는?

내가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게 된 계기가 구단의 트레이드 결정이었는데 경우의 수는 다 생각해 뒀어야지.

난 앞으로도 당당하게 동료의 데이터까지 모을 생각이다.

서로 사이가 좋은 것과 별개로 마운드와 타석에 섰을 때는 온몸을 부딪혀 싸워야 하거든. 그게 팬이 원하는 바고.

혈투 끝에 마무리는 훈훈함.

그런 사뭇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인 걸 스포츠맨십이라며 팬들이 좋아하는 걸 어떡해?

“배신자? 네 옆에 있네.”

끼익!

덕아웃에 들어가던 발걸음이 자동으로 멈췄다.

주춤주춤.

하우어는 내게서 조금씩 거리를 벌리고.

하하하! 마누라란 자식이 감히 내 뒤통수를 쳐?

뭐 숨길 건 없다지만 대놓고 알릴 이유도 없는 건데.

이해는 된다.

내가 아무래도 스톤햄에게 많은 걸 배우듯 하우어는 새비지를 통해 포수의 노하우와 타자의 스킬을 배웠다. 요즘엔 1루 수비훈련도 함께 하는 것 같고.

서로 많은 걸 공유하다 보면 데이터도 봤겠지.

데이터에 자이언츠 선수도 들은 걸 알았을 테고.

날 특이하다고 생각했으려나?

뭐 한 번도 문제 삼은 적은 없었다.

오늘 이야기가 나온 건 장난을 치는 것뿐이고.

그래도 하우어 네놈은 매우 맞아야지.

“우아악! 곰탱이가 또 미쳤어.”

< 3 >

3회 말.

난 쉴 생각도 못 하고 대기타석에 배트를 들고 나갔다.

2회 안타는 하나 나왔지만 자이언츠도 득점은 없었다.

고든이 먼저 타석에 들어갔다.

대기타석은 배트 휘두르며 몸만 풀라는 곳이 아니다.

타자 다음으로 투수를 관찰하기 좋은 위치다.

퍼엉!

“볼!”

딱!

“파울!”

오늘 필리스 투수는 절대 좋은 공을 던지지 않는다.

철저하게 유인구를 던지며 성급하게 배트가 나가는 타자에게 땅볼을 유도하는 중이다.

문제는 저런 투구는 필연적으로 투구 수가 늘어난다.

아직 볼넷이 없는 이유는 그나마 자이언츠 타자들이 배트를 빨리 내밀어준 덕분인데 곧 나까지 타순이 한 바퀴 돈다.

이제부턴 쉽지 않을 걸.

올해 15승9패로 필리스 내에선 최다승 투수.

조금은 더 공격적인 모습을 팬들이 원하지 않을까?

아직 실점이 없지만 타자들이 지켜보고 골라내기 시작하면 5이닝을 버티기 어려울 것 같다.

“망할 자식아! 스트라이크를 던져. 아님 타자를 맞혀버리던지.”

“그래! 40명 다 맞혀서 병원에 보내면 우리가 이겨!”

역시.

원정을 온 필리건들이 고함을 빽빽 지르잖아?

그런데 참…… 나도 병이다. 배트를 들고 어떻게 때릴 건지 고민할 시간에 투수의 투구나 걱정하다니. 이런 것도 직업병인가.

퍼엉!

“볼!”

어쨌든 이거 타순 한 바퀴 안 돌아도 되겠는데?

벌써 고든이 볼을 고르기 시작했다.

방금 공으로 투 볼 원 스트라이크.

투수에겐 답답한 볼카운트다.

여기서 스트라이크를 잡아야 투 볼 투 스트라이크.

다시 유인구를 던져볼 기회가 온다.

따악!

“와아아!”

“저 멍청이! 차라리 맞혀버리라니까.”

자이언츠 팬의 환호와 필리건의 욕설 속에 고든이 선두 타자 출루에 성공했다. 이러면 나 번트를 대야 하나?

힐끗 벤치를 봤는데 사인은 없다.

배트를 두어 번 휘두르고 타석에 들어갔다.

“너무 사악하게 던지는 거 아냐?”

필리스의 포수 브리먼이다.

오늘 몸 쪽 높은 곳을 찌른 프런트도어 스핀-커터에 삼진을 먹고 물러났던 것 같은데.

“다음 타석에도 몸 쪽 높은 공 줄게.”

“…… 진짜야?”

“저 투수가 예쁜 거 하나 던져주면. 공평하지?”

“……”

이런 말이 포수를 흔들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사실 트래쉬 토크에 단련된 포지션이 누군데 내가 이빨로 혼란을 주겠어? 헷갈리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마는 거다.

고든이 시야에 들어온다. 진짜 좋은 타이밍을 잡지 않는 한 도루를 감행할 고든은 아니다. 문제는 리드 폭이 좁을 때 내가 어설프게 공을 건드리면 더블 플레이 나오기 딱 좋다는 점이지.

잠깐 엉뚱한 생각을 했는데.

퍼엉!

“스트라이크!”

어느새 사인이 오갔는지 공이 들어왔다.

게다가 이 정도면 오늘 저 투수의 투구 패턴엔 한복판이다.

이런 걸 고정관념이라고 봐야 한다.

내가 투수라고 너무 편하게 던지는 거 아냐?

투수 중에는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타율이라고.

퍼엉!

“볼!”

이건 실투.

다시 중앙에 던지려던 게 조금 낮았다.

살짝 아쉬움에 젖은 투수의 표정만 봐도 알지.

만약 다시 한복판으로 공이 오면? 지금쯤 브레이킹 볼을 섞을 타이밍인데 뭐가 오냐가 관건이다.

오늘 봤던 공은 슬라이더와 투심이었다.

투수 와인드업.

공을 놓는 순간 느껴진다.

다시 한복판. 이런 공이면 장타도 가능한데……

배트가 절반쯤 나간 상태에서 알았다. 내가 낚였다는 걸.

딱!

노아웃.

아웃카운트 하나 없이 주자를 내보냈을 때 투수에겐 위기다.

그런 위기에 대비해 비장의 카드 하나쯤 준비하지 않고 포스트시즌 무대에 투수가 설 거라고 생각했다니.

내가 미친 거지.

흔히 슬러브라고 부르는 구종.

배트를 멈추진 못하고 손목을 틀어 타구 코스만 억지로 바꿔봤는데 결국 공 윗부분을 때려 땅볼이 됐다.

제발 고든 살아줘요.

이를 악물고 1루로 달렸다.

“아웃!”

내 아웃은 관심 밖이다.

고든은?

후! 다행. 야수선택이었나?

타구를 제대로 안 봤는데 3루수가 그냥 1루에 공을 던진 모양이다. 이러면 진루타는 때려낸 거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덕아웃에 돌아가려는데.

“샌프란시스코 지반 약한 거 알지? 어차피 아웃인데 왜 너 같은 뚱땡이가 뛰면서 지반에 충격을 주냐?”

맞다. 여기 1루다.

베나블 저 원수가 여기 수비고.

“뚱땡이? 너 집에 거울 없냐?”

“난 그래서 우아하게 홈런만 치잖냐.”

“…… 내가 저기 버려두고 온 배트 보여?”

“…… 설마?”

“흐흐. 기대해도 좋아. 내가 네 배트로 필리스에 홈런 한 방 날려주고 인증샷 찍고 만다.”

< 4 >

“베나블이랑 무슨 이야길 했어?”

“음, 복수의 형태에 관한 심도 있는 고찰?”

미친놈 보는 듯한 시선 익숙하다니까.

그나저나 필리스 투수에 대한 판단 정정한다.

애초에 5이닝 정도만 막을 생각으로 투구 수를 늘리며 기어이 유인구만 던졌다면 그는 성공했다.

위기상황에 쓸 조커를 숨긴 채 자이언츠 타자들에게 난 도망치는 투구를 하는 중이라고 현혹을 걸었다고.

역시 이 동네 살벌하다니까.

진짜 무서운 동네야.

어쨌든 오늘 베나블에게 공언한 복수 성공시켜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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