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일이? - 1
< 1 >
2037 정규시즌 마지막 162번째 경기가 펼쳐지는 날.
시즌 내내 혈전을 벌여왔지만 여전히 지구우승이나 와일드카드가 결정되지 않은 일부 팀은 정말 피가 말랐다.
일단 자이언츠가 포함된 NL 서부지구부터 순위.
1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24승37패.
2위 LA다저스 88승73패.
자이언츠는 지구우승이 확정이고 다저스 역시 오늘 경기에 져도 와일드카드는 차지한다.
다음 NL 동부지구.
1위 워싱턴 내셔널스 90승71패.
2위 필라델피아 필리스 88승73패.
우연인지 운명의 장난인지 다저스와 필리스의 성적이 같고 여기에 재밌는 상황까지 겹쳤다.
다저스나 필리스가 둘 다 지구 2위로 와일드카드가 유력하긴 한데 중부지구 우승을 어느 팀이 가져가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왜 그렇게 복잡하냐고? 보자.
NL 중부지구 순위다.
1위 시카고 컵스 88승73패.
2위 신시내티 레즈 87승74패.
1위 컵스의 승패를 보면 절대 우연이 될 수 없지?
이게 그냥 신기한 일도 다 있다며 웃고 넘기기 어렵다.
딱 한 게임 차다. 오늘 컵스가 지고 레즈가 이기면 두 팀은 시즌 성적이 동률이 되어 타이브레이크 게임을 치러야 한다.
타이브레이크 게임이 생긴 이유는 2012시즌부터 와일드카드가 두 장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와일드카드가 한 장일 때야 리그 1위 팀이 디비전시리즈에서 유리할 게 없었다.
하지만 와일드카드가 두 장이면?
와일드카드 게임을 치러야 하고 이긴 팀도 에이스를 소모한 채로 디비전시리즈에 나가게 된다. 당연히 리그 1위 팀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전에는 2개 팀이 동률로 리그 1위가 될 경우 상대전적으로 리그 1위를 결정했지만 그 후론 리그 1위를 가리는 데에도 타이브레이크 게임이 필요하다.
같은 지구에서 2개 팀이 동률로 1위를 할 경우에도 마찬가지.
상대전적이 아닌 타이브레이크 게임을 통해 지구우승과 와일드카드를 결정하게 된다.
어쨌든 지금 경우의 수가 머리 터진다.
오늘 경기 컵스가 이기고 레즈가 지면 그대로 끝이다.
컵스는 중부지구 우승. 레즈가 탈락하고 다른 경기결과를 볼 것도 없이 다저스와 필리스가 와일드카드 게임을 치른다.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하지만 레즈만 이기고 나머지 세 지구의 동률 세 팀이 지기라도 하면? 이게 최악이다. 무려 네 팀이 동률이니까.
먼저 중부지구 우승을 가리기 위한 타이브레이크 게임을 가져야 한다. 일단 지구우승은 정해야 하잖아.
그걸로 끝도 아니다. 88승74패의 세 팀이 남는다.
와일드카드는 두 장. 팀은 세 팀. 어떻게 경기를 치러 와일드카드를 나눌 건지 규정은 있는지 모를 상황을 맞는다.
포스트시즌 일정 다 꼬이는 거지 뭐.
그래도 현재 분위기는 레즈가 가장 불리하다.
무조건 경기에 이기고 세 팀 중 하나라도 져주길 기다려야 하니까. 꼭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다저스는 리빌딩을 선택한 로키스와, 컵스 역시 중부지구 최하위 브루어스와 경기를 갖는데 레즈 상대는 카디널스거든.
카디널스가 자이언츠에 스윕을 당할 때 신시내티 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도발했던 걸 세인트루이스 시민이면 다 안다.
쉽게 말해 어그로를 잔뜩 끌어뒀다.
오늘 같은 날이 올지는 모르고.
포스트시즌 탈락이 결정된 카디널스지만 레즈에 고춧가루를 뿌리기 위해서라면 마지막 경기 과연 대충 뛸까?
세인트루이스 시민들이 지켜보는 홈경기인데?
< 2 >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따악!
“와우! 르비어! 달려!”
진짜 시즌 마지막 경기.
124승 기록이야 어제 세웠고 지구우승도 대충 1억 년 전에 확정된 자이언츠지만 오늘도 AT&T파크는 가득 찼다.
중요한 경기가 아니더라도 팬들이 기꺼이 찾아와준다.
이게 기쁘고 고마운 거다. 뭐 성적만 오르면 팬은 자연히 늘어난다고 하는데 선수와 팬의 관계가 소원해도 그럴까?
절대 아니라고 본다.
솔직히 말해 열기를 느끼기엔 직관이 좋지만 경기를 제대로 보려면 중계방송을 보는 쪽이 나으니까. 각각의 장면을 여러 각도에서 찍어 보여주고 놓친 장면을 다시 보는 것도 가능하다.
집에서 팝콘 씹으며 보면 돈 안 들고 편하고.
그런데도 찾아와준 팬이다.
“와! 이게 무슨 컨셉이야? 미녀와 야수?”
당연히 살갑게 다가가야 한다.
“큭큭! 조는 동료들도 곰탱이라고 하잖아요. 그럼 저 같은 미녀랑 사진을 찍으면 당연히 이 컨셉이죠.”
“나쁘지 않네. 그 야수, 원래는 왕자잖아?”
덕아웃 밖에 나와 팬들이랑 어울리는 걸 싫어하면 안 되지.
특히 내게는 굉장히 귀한 여자 팬이라고.
16? 17? 여자라고 부르기도 뭐하지만.
“에이! 조가 왕자는 아닌데. 뭐 제가 조금 아깝지만 왕자로 삼아줄 수 있는데 어때요?”
“…… 지금 뒤에 노려보는 분이 아빠 아냐?”
“맞아요.”
“형제는 몇 명?”
“위에 오빠가 세 명.”
“됐네. 내가 곰탱이어도 샷건을 네 발씩 맞고는 못 살아.”
“큭큭큭!”
“하하하!”
주변에서 터지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사진을 찍어주고.
내 이름이 박힌 저지마다 사인도 잔뜩 해준다.
이번엔 이젠 얼굴도 익숙해진 아저씨다.
“조, 어깨는 문제 없지?”
“당연하죠. 몰랐어요? 어제가 완투하며 투구 수 가장 적은 날이었잖아요.”
“하하! 맞아. 3회까지 공 19개. 멋졌지.”
“어제는 공이 확실히 잘 긁힌 날이었어요.”
“월드시리즈까지 쭉 잘 긁혀야지.”
이 아저씨 내 컨디션엔 기복이 없는 줄 아나?
나도 실점도 하고 QS를 간신히 달성하기도 한다고요.
투수나 타자나 리듬이란 게 있어 그 리듬이 최고조일 때 포스트시즌에 나가면 사고를 치기도 한다.
가을에 미치는 선수가 나오는 팀이 월드시리즈를 가져간다는 말은 꼭 농담이 아니거든.
내 리듬이 하강기고 상승기류를 탄 타자를 만나면?
답이 없다. 두들겨 맞아야지. 아무리 잘 던져도 공이 수박 만하게 보이는 타자에게 어쩌겠어.
그래도 여기서 약한 척은 곤란하겠지.
필요하면 허세라도 부려야 하는 게 프로선수다.
“우리 감독님한테 말만 잘해줘요. 격일로 던지래도 가능하니까.”
“하하하! 데드볼 시대도 아니고 자이언츠에서 20년 부려먹을 선수를 그렇게 막 굴릴 순 없지. 그나저나 디비전시리즈 상대는 누가 될 것 같아?”
“아! 지금 다른 구장 소식 알 수 있어요?”
자이언츠와 말린스의 시즌 마지막 경기. 난타전이다.
그래서 경기에 한눈 팔아가며 팬들과 노느라 다른 팀 경기결과엔 관심도 못 갖고 있었다.
“지금 상황이 묘해요.”
대답은 곁에 있던 갓 스물쯤 돼 보이는 다른 청년이 했다.
요즘엔 태블릿에 DMB 수신기를 따로 장착하지 않아도 HDTV 카드가 달려서 나오니 젊은 층은 구장에도 그냥 오지 않는다.
직관은 직관대로 하며 중계도 듣고 화면을 돌려보기도 하는, 멀티태스킹이 생활화된 계층이 10대, 20대니까.
메이저리그가 인기를 누리려면 이런 젊은 층을 공략해야 한다던데. 이렇게 말하니 난 폭삭 늙은 것 같네.
뭐 나는 관중 입장에 서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말한다.
그냥 스포츠는 1년 내내 즐기면 되잖아. 봄부터 가을까진 메이저리그를 즐기고 가을부턴 NFL과 NBA를 즐기고.
적어도 스포츠는 제로섬-게임이 될 필요가 없지.
아무튼 상황이 묘해? 왜?
“설마 타이브레이크 게임 벌어질 상황?”
“네. 레즈가 카디널스에 5:3으로 앞서고 있어요. 반대로 컵스는 브루어스랑 2:2 동점이고요.”
와! 컵스랑 레즈 팬들 머리카락이 곤두서겠다.
“다저스랑 필리스는 어때요?”
“필리스는 브레이브스 상대로 6:1이니 무난히 이길 것 같은데 다저스가 로키스에게 털리는 중이에요.”
어머나? 다저스가?
진짜 로키스 올해 고춧가루 제대로 뿌리네.
잠깐. 뭐 이리 복잡해? 계산 좀 해보자. 대충 휘파람 불 수 있는 팀은 필리스뿐이고 나머지 세 팀은 진짜 끝나기 전엔 끝난 게 아니다.
따악!
“맨슨! 그거야! 다 넘겨버려!”
환호성이 터지지만 솔직히 경기내용에 집중이 안 된다.
맨슨, 홈런이라도 친 모양인데 미안.
이미 다 이뤄놓은 자들의 여유로 치자.
그래서 오늘 전원 신예들로 라인업 짰잖아.
< 3 >
“우리 루키들 잘 싸웠어.”
“그래도 시즌 마지막 경기를 11회 연장은 너무 했다.”
“말린스 녀석들이 독을 품고 달려들어서 그래.”
“그게 다 곰탱이 때문이야.”
“그럼 곰탱이를 처형해야지.”
“누가? 네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8:9 마이애미 말린스]
오늘 경기는 졌다.
기록 때문에 확장로스터 합류 인원들에게 충분한 기회도 못 줬으니 선발부터 신예들로 라인업을 짰는데 결과가 조금 아쉽다.
그래도 잘 싸웠고 질질 끌려다닌 경기는 아니었다.
내년엔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거라 믿는다.
다만 문제는 포스트시즌 일정이 달라졌다.
정확하겐 NL만 달라진 셈이다.
필리스만 웃었다.
레즈도 웃긴 했지만 아직 험난한 여정이 남았고.
휴식도 없이 컵스와 지구우승을 놓고 타이브레이크 게임.
만약 그 경기에서 지면 다저스와 와일드카드를 놓고 또 타이브레이크 게임.
이틀을 쉰 필리스가 웃으며 와일드카드 게임에 나온다.
밑에서 올라오기 전에 머리 터지게 싸우면 좋지 않냐고?
방금 말했지? NL만 일정이 바뀌었다고.
AL은 정상적인 포스트시즌 일정을 따른다.
동부지구 우승 뉴욕 양키즈.
중부지구 우승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서부지구 우승 휴스턴 애스트로스.
와일드카드 LA에인절스와 보스턴 레드삭스.
깔끔하다.
그 말은 누가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이 되어 월드시리즈에 올라오든 넉넉한 휴식을 취하며 대비할 거란 뜻이다.
반대로 내셔널리그 챔피언은 피로가 누적된 상태일 테고.
그래도.
“이제 느긋하게 지켜볼 일만 남았어.”
“월드시리즈는 좀 빡빡하겠지만 괜찮아.”
“미리 푹 쉬어두면 되지 뭐. 컨디션 관리만 하면서.”
크게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시즌 내내 악당이고 공공의 적이었는데 우는소리를 한다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
124승38패. 승률 0.765.
어찌 됐든 2037시즌의 성적표를 받아든 자이언츠.
선수들은 남은 한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선전을 다짐하며 서로에게 주먹을 들이밀었다.
그러다 장난처럼 옆구리도 쥐어박고 싸우고.
어휴! 덤앤더머들.
< 4 >
“미네.”
[네.]
“자이언츠가 디비전시리즈를 3차전으로 끝내면 챔피언십 1차전에 내가 나갈 수 있겠지?”
[그건 가능할 텐데…… 지금 챔피언십도 1-4차전에 나가려고요?]
“사흘 쉬고 나간다면 감독님이 막을까?”
[차라리 월드시리즈 1-4차전 나가는 게 좋죠.]
“아우! 생각 같아선 다 내가 뛰고 싶다.”
이런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 이유.
매니지먼트의 선물이라 쓰고 미네의 전리품이라 읽어야 할 보상 때문이다.
두 번째 퍼펙트게임을 하고 받은
볼카운트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Scope와 Untouchable을 함께 적용한 것처럼 커맨더를 올려주던 특성이다.
코인 외에 추가로 받은 저 보상 덕분에 후반기 성적이 더 좋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이 세 번째 퍼펙트게임 후엔?
을 얻었다.(난 얻은 거다. 뺏은 건 미네다.)
애초에 <세이프 존 설정!>이란 특성이 있었지만 이용권도 구매해야 하고 다른 특성과 함께 못 쓰는 등 은근 제약이 많았다.
하지만 저건 ‘Eternal’이 붙은 특성이다.
게다가 액티브로 끄고 켤 수도 있다.
몸 쪽 공을 얼마든지 던지면서 필요하면 타자 엉덩이에 105마일짜리 포심도 원하는 대로 꽂아버릴 수 있다니.
최고지.
특히 포스트시즌이다.
투수의 평정심을 깨기 위해선 타자들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데 절대 흔들리지 않을 무기가 생겼으니 내가 안 설레겠어?
[미누가 좋아하니까 뺏어온 보람이 나네요.]
“미네에게 일찍 주짓수를 가르칠 걸 그랬어.”
[큭큭! 미누가 코인을 아끼고 쌓아만 두니까 제가 자꾸 관리자 멱살을 잡게 되죠.]
“매니지먼트도 어차피 아이템 쌓아만 두잖아.”
[…… 어휴! 말이나 못 하면!]
미네와 키득거리며 내일을 기다렸다.
타이브레이크 게임은 정규시즌 종료 다음날 바로 치러지거든.
1차 타이브레이크 게임.
우리 빈스가 슬퍼할 일이 생겼다.
기세를 탄 레즈가 컵스를 꺾고 중부지구 우승을 차지해버린 것이다. 시즌 최종전을 지구 최하위 브루어스에게 내줄 줄은 꿈에서도 생각 못했을 텐데.
그리고 2차 타이브레이크 게임.
다저스와 컵스의 대결에서 빈스는 또 한 번 울었다.
산체스가 나와 컵스 타선을 산발 3안타 무실점으로 묶어버렸으니 컵스는 진짜 딱 사흘 만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셈이다.
그래도 아직 경기가 남았다.
다저스와 필리스. 승자가 자이언츠에게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