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LB의 새끼 고양이-168화 (168/188)

열심히 달려온 대가 - 3

< 1 >

6회 말이 끝났지만 스코어는 그대로 0:0

자이언츠가 메이저리그에 새로운 발자취를 남길 거라 믿고 달려온 팬들은 말린스의 의외의 선전에 긴장을 했다.

사실 그렇지.

이제는 진짜 시즌 막바지.

123승의 자이언츠와 79승의 말린스가 맞붙는데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물어볼 필요는 없으니까.

물론 언더독의 반란을 기대하는 사람도 많다.

특히 자이언츠가 공공의 적이 된 2037시즌이라 그냥 자이언츠가 얄미워서 말린스를 응원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도 돈을 걸고 배팅을 하라면?

장담하는데 배당률이 10:1은 우습게 넘어갔을 거다.

하지만 경기의 중반을 넘어서며 상황이 묘하게 흘러갔다.

주자를 단 한 명도 허락하지 않은 투수와 두들겨 맞고 또 맞으면서도 꾸역꾸역 6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투수들의 대결.

누가 보더라도 앞에 서술한 투수의 우위가 점쳐지지만 그 투수에겐 디비전시리즈가 기다린다는 게 문제다.

6이닝 7안타에 볼넷도 2개를 내줬지만 무실점이면 말린스 투수들도 호락호락 물러설 것 같지 않고.

시즌 말이 아니면 이런 투수운용은 절대 엄두도 못 낸다.

차라리 한 경기를 버리는 장기 레이스를 생각하지.

관중석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조는 디비전시리즈에도 나가야 하는데.”

“그런데 또 내려가라고 말할 상황도 아니라……”

“타자들은 왜 갑자기 물방망이가 돼서 승리투수 조건도 못 만들어주는 거야?”

“…… 그냥 승리투수가 아니잖아.”

“안타는 제법 나왔어. 말린스가 투수 갈아 치워가며 이를 악물고 막는 거지.”

자이언츠 벤치의 분위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7회 초 말린스 공격이 끝나고 내린다면?”

“…… 그건 원래 계획이었죠.”

맞다. 원래 계획이었다.

상황 봐가며 6-7이닝이면 조에겐 큰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워낙 대단한 피지컬과 회복력을 가진 선수고 가끔 컨디션 난조를 보인 적은 있어도 그게 결코 부상 때문은 아니었으니까.

또 컨디션 난조란 말도 무색하게 6-7이닝은 거뜬히 던져왔던 조니까. 그것도 최소실점으로.

선수 본인이 아무리 강력히 원했어도 그런 판단이 서지 않았더라면 오늘 경기에 선발 낙점은 몇 번이고 더 생각했을 터였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참 고민스럽다.

조가 6회까지 8K.

자신의 기록인 23K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말린스 타자 중 1루를 밟은 선수가 아무도 없다. 그리고 얼마나 효율적인 투구를 했는지 지금까지 던진 공의 개수가 고작 54개.

어떤 감독이나 코치가 저런 투수를 내릴 수 있을까?

경기 후반 퍼펙트게임을 진행 중인 투수를 내린다?

월드시리즈 7차전이라도 욕 먹을 일이지.

또 아직 자이언츠는 득점이 없다.

조를 내리는 건 저 훌륭한 투구를 하고 승리를 포기하라는 말인데 그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게다가 팀이 메이저리그의 새 역사를 쓰려던 순간에 그를 내려서 지기라도 하면?

한 경기가 더 남았다 해도 내일을 절대 장담할 수 없는 게 메이저리그다. 말린스는 기세가 오를 테고.

하지만 4일 휴식 후 정규시즌 경기가 아니라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 나가야 할 투수다.

그간 팀을 이끌어온 스톤햄이 양보한 제1선발 자리.

그 상징을 물려받았으니 눈이 벌게져서 던질 녀석이 조다.

이런 딜레마는 진짜 머리를 터지게 만든다.

“진짜 은퇴하고 싶은 심정이야.”

“……”

“내 자리 노리던 거 아니었어?”

“욕심은 났는데 그냥 심장을 지키기로 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한 팀의 감독이란 자리?

극한직업이다.

< 2 >

6회 말에도 점수는 안 났고.

다윗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질 이쯤이 딱 좋다.

뭐가 좋냐고? 악당 골리앗이 세상은 동화가 아니란 걸 가르쳐주기에 딱 좋아.

갈라파고스 제도의 페르난디나 섬.

새끼 바다 이구아나는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언젠가 BBC 동물 다큐에서 수십 마리 뱀의 추격을 뚫고 달아나는 이구아나를 봤는데 그건 낭만적이라 영상이 된 거다.

사실은 빠져나가지 못하고 잡아먹히는 놈이 수십 배니까.

난 악당이고 생태계의 반란을 받아들일 생각은 진짜 눈곱만큼도 없다. 진짜 악당. 내가 MLB에서 추구하는 목표거든.

벤클을 말렸다고 칭찬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미안.

그저 큰일을 앞두고 팀에 부상자 나올까 봐 그랬어.

카디널스 투수에게 부린 오지랖?

깨끗하게 실투 인정하고 사과했으니까.

적당히 감상에 젖는 건 좋지만 구질구질한 건 질색이야.

퍼엉!

“스트라이크!”

오늘 세 번째 타석에 들어선 1번 타자.

첫 타석에선 2루 땅볼. 존 중앙에 몰린 공이라고 생각해서 스윙을 했을 텐데 베어-팜 윗부분을 깎아 치고 말았다.

유인구에 속았다고 생각하며 들어왔을 두 번째 타석.

볼카운트가 몰린 순간까지 인내심을 발휘하긴 어려운 법이다.

역시 베어-팜. 이번엔 낙폭이 훨씬 컸고 놔뒀으면 볼 판정이 나왔을 공에 헛스윙. 삼진을 먹었다.

지금 궁지에 몰린 느낌일 걸.

함부로 승부를 걸 수도, 기다리기도 어려우니까.

더 초조하게, 혹은 체념하게 만들어주면 편해진다.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104-105마일쯤 됐을 구속이다.

초구에 던졌던, 6회까지 눈에 익은 98마일 전후의 공이 아니지.

[105.1마일. 찍어 누를 거예요?]

‘다시 만날 일 없으면 눈에 익지도 않을 거야.’

[악당!]

‘미네 취향인데 뭐.’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역시 6회까진 꺼내 들지 않았던 팜-체인지업이었다.

다음 2번 타자. 표정이 확연히 굳어있다.

그런데 스탠스가?

리드오프처럼 컨택에 자신 있는 게 아니라 아예 오픈 스탠스?

어떻게든 나부터 끌어내릴 생각인 모양이다.

디비전시리즈를 준비해야 할 자이언츠 입장도 알 테고 말린스 투수들이 분전하고 있으니 기록 둘을 한 번에 막으려는 의도.

사실 퍼펙트게임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다.

진짜!

두 번의 경험을 통해 느꼈지만 27K로 경기를 끝낼 게 아닌 이상 정말 행운이 많이 뒤따라줘야 하거든.

뭐 빗맞은 안타라도 나오면 노히터마저 깨지는 거다.

브레이브스 전에서 퍼펙트게임을 할 때도 바르가스와 터너의 슈퍼플레이가 아니었으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딱!

“파울!”

그래서 편안하게 던진다.

오픈 스탠스여도 나올 홈런은 나오지만 일단 확률은 크게 줄어드니 오히려 던지기 편하다고 할까?

뜬금없는 한 방이 언제든 터지는 게 메이저리그잖아.

퍼엉!

“볼!”

오늘 주심의 존 설정은 변함이 없다.

바깥쪽에 걸치는 듯 마는 듯? 여간해선 안 잡아준다.

뭐 넓으면 좋겠지만 계속 일관성이 있으면 절대 눈썹도 찌푸려선 안 된다.

누가 뭐라 하든 주심도 프로.

그 권위를 무시해봐야 이득이 눈곱만큼도 없다.

그러니 케인! 불필요한 항의는 하지 말자. 진짜 내 개인기록은 신경 안 쓰니까.

따악!

어이쿠! 역시 엉뚱한 곳에 정신이 팔리면 이런다.

오픈 스탠스여도 반발력만 제대로 이용하면 얼마든지 장타는 나오는 법인데 설마?

.

.

타격음을 듣는 순간 달리기 시작했다.

빠른 타구가 아니라 다행이긴 한데 코스가 ‘빌어먹을’이다.

수비 시프트에 의해 좌측으로 당겨진 야수들. 원래 포지션에 섰어도 유격수 키를 넘었을 까다로운 타구.

그래도 뒷걸음을 치며 타구를 확인해야 할 터너보단 페드로 자신이 달리는 게 확률이 높았다.

“터너 비켜!”

타구만 똑바로 바라보며 몸을 던졌다.

만약 터너가 비키지 않는다면 충돌이다.

또 슬라이딩에 실패해 공을 빠뜨리면 자칫 인사이드 파크 홈런을 줄 수도 있다.

그런 모든 변수?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

최선이 항상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도전하고 결과에 책임질 줄도 알아야 프로다.

퍽!

< 3 >

“쳤습니다. 좌중간 조금 높이 뜬 타구인데 유격수 터너 선수가 물러서며 잡기엔 어려워요. 아! 후안 페드로 선수. 타구를 향해 달려듭니다. 수비 시프트에 따라 3루 쪽으로 치우쳐 섰던 페드로 선수가 어느새 달려왔어요. 슬라이딩! 잡았나요? 페드로 선수는 공만 보며 슬라이딩을 하고 터너 선수는 몸을 틀어 그 위로 뛰어넘느라 화면이 가려졌거든요. 두 선수 아주 서커스를 했는데 글러브를 확인해야죠. 아웃! 잡았습니다. 슬라이딩을 하고도 달려오던 힘을 죽이지 못해 앞으로 더 굴러간 페드로 선수. 끝까지 공을 놓치지 않고 2루심을 향해 글러브를 보여줍니다. 자이언츠 선수들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하는데요.”

“페드로 선수 확실히 발이 빠릅니다. 그리고 올해 자이언츠의 선전엔 방금 말씀하신 선수들의 집중력이 큰 역할을 하고요. 정타는 아니었지만 타구의 코스가 좋았거든요. 저 타구가 안타가 됐으면 아무리 멘탈 좋은 조 선수라도 흔들릴 수 있었어요.”

“그렇죠. 저런 수비 하나의 도움을 받을 때마다 투수들은 없던 힘도 생기는 법입니다. 자이언츠는 정말 선수들 전원이 메이저리그의 오랜 기록을 깰 자격이 있음을 플레이로 보여주네요.”

“선수들 스스로가 팀에 자부심을 갖는 겁니다. 자유분방하고 말로 원 팀(One Team)을 강조하지 않아도 필요할 때 팀을 위해 뛰어주는 선수들이 몸값도 높잖아요.”

.

.

욕심 낼 생각이 없었는데.

저런 플레이를 보여주면 어쩌잔 거야?

몸을 내던지는 슬라이딩이 그냥 멋있게만 보일지 몰라도 가슴에 오는 충격이 장난 아니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글러브를 벗고 박수를 보내줬다.

어느새 페드로 뒤를 커버하러 달려갔던 바르가스가 터너와 페드로를 일으키더니 대신 손목을 꺾는다.

뭐냐? 또 맥주 사라고?

어휴! 저 사차원.

저 자식한텐 요로결석이 병이 아닌 것 같아.

어쨌든 관중들이 열광적으로 페드로를 외치며 AT&T파크가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3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선다.

말린스에 아쉬움이 번졌을 테고 저 선수도 마찬가지.

스윙이 커지겠지?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초구부터 팜-체인지업.

배트가 지나간 뒤에야 공이 미트를 찾아간다.

이러면 배트타이밍을 어떻게 잡을지 머리가 복잡해진다.

퍼엉!

“스트라이크!”

결정을 못 내리고 있을 때 인터벌 없는 투구.

계속 공격적으로 물어뜯어야 한다.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 4 >

따악!

“와우! 페드로! 오늘은 네가 히어로다.”

“오늘 고든은 또 빈스네 오븐에 들어가는 거야?”

“갑자기 날 왜 오븐에 넣어?”

“널 오븐에 넣는데 언제 이유가 중요했어?”

“미친!”

“큭큭!”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는 말은 사실이다.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는 댈 수 없어도 사실이다.

좋은 수비를 보여준 선수가 타격도 잘 한다는 말도 역시 사실이다. 이건 그저 선수 컨디션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7회 말에도 점수를 못 냈던 자이언츠.

하지만 8회 페드로가 석 점짜리 대형홈런을 날렸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실이 일단 끊어지면?

안타가 될 수 있던 타구가 상대 호수비에 막히고 8회 초까지 클린업 트리오가 끝내 출루를 못한 순간 말린스는 스스로 무너졌던 셈이다.

그리고 9회 초.

사실 오늘 길어야 7회를 예상하고 출전했는데.

조금 전 애쉬비 코치는 항복이라는 듯 두 손을 번쩍 쳐들고 내게 고개를 저어댔다.

아마 속으로 말했겠지. 네 맘대로 하라고.

말린스는 대타 세 명을 차례로 타석에 올렸다.

자이언츠의 시즌 최다승 기록이야 막을 수 없게 됐더라도 앞으로 미누 조라는 이름에 따라다닐, 한 시즌 퍼펙트게임 두 번의 제물까진 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루키들이라면 날 두들기고 이름을 얻을 기회다.

마운드까지 느껴지도록 힘찬 스윙으로 날 맞았다.

하지만.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딱!

“아웃!”

타자 두 명이 차례로 아웃됐고.

마지막 27번째 타자를 상대로 또 나는 예전 버릇이 나왔다.

[마초곰탱이 맛 들였네요.]

‘당연하지. 사람은 변하는 거 아냐.’

[끝까지 안 변할 자신 있어요?]

‘절대!’

[좋아요. 힘내봐요.]

퍼엉!

“스트라이크!”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나중에 알았다.

차례로 105.4마일-105.6마일에 이어 마지막으로 106마일 공이 케인의 미트로 파고들었다는 걸.

그래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팀으로 함께 도전했던 기록 갱신에 성공했으니까.

We did it together!

퍼펙트고 뭐고 다 함께 해낸 거다.

오늘을 기록하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하겠지?

그날 AT&T파크가 무너졌다고. 선수들과 팬의 함성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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