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LB의 새끼 고양이-164화 (164/188)

마지막 카드, 팀 스피릿 - 3

< 1 >

어제 맨슨이었던가?

빈스네 짐(gym)에서 버스터 포지의 사인이 들어간 미트를 발견하곤 깜짝 놀랐던 게 기억난다.

버스터 포지. 2008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5번째 픽으로 자이언츠와 역대 최고액 620만 달러의 계약금에 사인했던 포수.

2010년 데뷔한 첫해부터 18홈런을 기록했고 자이언츠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힘을 더하더니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견인했다.

신인왕은 당연히 포지의 몫이었고 그 후 메이저리그의 최고 포수를 논하는 자리에 항상 이름을 올렸다.

뭐 자이언츠 짝수해의 신화는 범가너, 포지와 함께 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2011년. 포지는 말린스와의 경기에서 홈 충돌로 인해 발목이 부러지고, 인대가 손상되는 중상을 입으며 시즌 아웃을 당한 경험이 있다.

당시 미국에서는 포지의 부상으로 인해 포수를 보호하는 문제를 두고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지금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잔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홈플레이트에서 충돌이 그만큼 위험하단 이야기다.

포지는 당시 선수 생명이 끝날 위기까지 몰렸으니까.

주자의 대시. 포수의 블로킹.

사실 누가 양보를 하겠나?

주자도 어설픈 대시는 오히려 큰 부상의 위험이 있고 포수도 제대로 블로킹 자세를 못 갖췄을 때 포지 같은 경우를 당하는데.

어쨌든 니스와 카디널스의 포수 켄드릭의 충돌에 양 팀 벤치에선 자리를 박차고 달려나갔다.

“주루코치 사인 나왔어?”

“멈추라고 신호 보냈어. 니스가 못 본 거지.”

“켄드릭이 빈볼 맞았다고 생각한 거야. 르비어가 커트 테러하다가 볼넷으로 나가고 켄드릭까지 1-2구 커트하니 카디널스 투수가 일부러 맞혀버렸다고.”

내가 보기엔 분명히 오해다.

나도 가끔은 힛 바이 피치 볼을 내기에 안다.

공 끝을 제대로 채지 못했을 때 아차 하는 마음이 생기고 일부러 감추지 않는 한 표정에도 드러나거든.

그런데 켄드릭이 옆구리에 공을 맞고 쓰러질 때 바라봤던 투수의 표정엔 자책의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먼저 카디널스 투수 허리를 꺾어버리겠다고 방방 뛰었을 걸. 마운드에 올라선 퇴장을 당하든 말든 타자 머리에 105마일 포심을 꽂아줬을 거고.

시즌 말, 포스트시즌 앞두고 몸 사려야 한다고?

월드시리즈 진행 중에도 벤클은 일어나는 법이다.

벤클로 선수들 개인이 악감정을 남기는 건 꼴불견이지만 일단 부딪힐 때 기세가 꺾여선 안 된다.

“젠장! 디어커 걷지도 못하는데?”

“홈으로 중계된 코스가 나빴어. 공이 먼저 도착했어도 홈플레이트에서 상체가 빠져있었거든.”

역시 새비지.

지금은 1루를 보지만 오랫동안 자이언츠의 안방을 지켰던 포수였기에 그 순간에도 상황을 한눈에 파악한 모양이다.

심하게 다친 게 아니면 좋겠는데.

다음 이닝 빈볼이 날아다니고 서로 덕아웃을 박차고 나와 주먹질을 할망정 저런 충돌로 부상은 원치 않는다.

이건 동업자 정신이다.

< 2 >

“디어커 선수 구장까지 들어온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옮겨졌는데요. 부디 큰 부상이 아니길 바랍니다.”

“르비어 선수의 대시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슬라이딩으로 파고들다간 자신이 다칠 수 있거든요. 중견수가 홈으로 뿌린 공을 받느라 무게중심이 옮겨갔던 디어커 선수고 미처 복귀하기 전에 충돌이 일어난 거죠. 운이 없었다고 할까요?”

“네. 그런데 문제는 지금 분위기죠. 최다승 기록만 아니면 지구우승도 확정돼 여유가 있는 자이언츠와 갈길 바쁜 카디널스. 카디널스 입장에선 오늘도 앞길을 막는 자이언츠가 원망스러운데 주자와 충돌로 주전 포수가 부상까지 당한 그림이 나왔으니까요.”

“르비어 선수도 부상을 당한 건 마찬가지지만 사람이 항상 객관적일 순 없죠. 오늘 양 팀 2037시즌 마지막 시리즈 이제 1차전인데 분위기가 싸늘해져요.”

.

.

경기는 재개되었다.

천재지변이 없는 한 어지간해선 메이저리그는 끝을 보니까.

이거 농담 아니다. 비가 와도 방수포로 구장을 덮었다가 비 멈추면 경기 재개하는 곳이 메이저리그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실제 샌프란시스코에선 지진으로 월드시리즈가 중단된 역사가 있다. 1989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사이의 월드시리즈 3차전이었다.

경기 시작 30분 전 리히터 기준 7.1의 강진이 덮쳤다.

3차전 경기 취소는 물론 월드시리즈가 무기한 연기된 최초의 경우였을 거다.

역설적으로 그 정도나 돼야 경기가 중단된다.

어쨌든 재개된 경기.

맞서 싸우는 동안 선수들이 화기애애한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이제는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 살기가 서렸다.

딱!

“아웃!”

이닝이 종료되고 6회 초 카디널스 공격.

카디널스의 사정이 안타깝다고 내가 투구를 대충 해줄 생각은 전혀 없다.

퍼엉!

“스트라이크!”

구속의 완급조절이 이젠 의도하는 수준의 80-90%까지 이뤄지는 터라 타자가 배트타이밍 잡기도 쉽지 않고.

그래도 이를 악물고 배트를 고쳐잡는 표정이 보인다.

1차전 저울은 이미 기울었지만 만만하게, 편안하게 던지도록 하진 않겠단 뜻이겠지.

퍼엉!

“볼!”

딱!

“파울!”

타자의 집중력이 무섭게 올라갔다.

노리는 공을 골라내기 위해 하나 정도 빠지는 공엔 기어이 배트를 멈추고 존 안에 들어오는 공은 커트.

이런 게 기세고 맞불이다.

딱!

“파울!”

가을좀비 카디널스.

작년에도 폭풍 같은 추격전을 벌이더니 올해 역시 부족한 전력으로도 마지막까지 중부지구 순위 다툼에 뛰어든 이유가 있다.

뭔가 끈끈해진다고 할까?

이런 건 배워야 한다.

딱!

“파울!”

하지만 나도 이젠 요령이란 게 생겼거든.

아주 조금씩 타자의 무게중심을 앞으로 끌어낸다.

스스로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리고.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존 중앙과 바깥쪽으로 포심, 스핀-커터를 섞다가 몸 쪽에서 반대로 흐르는 팜-체인지업이면 자세가 무너지지.

얼마나 분한지 덕아웃에 들어가다 자기 배트를 부러뜨리고 나를 한 번 노려보는데 오늘은 굳이 눈싸움을 할 것 없다.

무서워서 피하는 거 아냐, 이 친구야.

딱!

“아웃!”

다음 타자는 공 하나로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다.

타자는 대기타석에서 몸만 푸는 게 아니다. 투수가 앞 타자를 어떤 공으로 상대하는지, 구위는 어떤지 계속 살핀다.

그러다 자연히 앞 타자를 상대하던 공에 눈이 익숙해진다.

포심이나 스핀-커터를 예상했다가 눈앞에서 뚝 떨어지는 베어-팜에 배트가 나간 결과 공 하나에 땅볼 아웃이다.

다만 이게 완전한 승리라곤 볼 수 없다.

어차피 투수와 타자 1:1 상황에서 유리한 쪽은 투수니까.

그래서 타석에서 볼넷과 몸에 맞는 볼, 희생 플라이, 희생번트, 타격 방해, 주루방해 등이 빠지고 타율은 타수 대비 안타 수로 계산해 10타수 3안타면 타자의 승리다.

딱!

“파울!”

퍼엉!

“스트라이크!”

뭔가 전해 들은 것 같은데.

무게중심을 끌어낸다는 걸 알았을까?

그렇다고 억지로 무게중심을 뒤에 두면 존 경계로 파고드는 공은 지켜만 보게 되지.

퍼엉!

“볼!”

딱!

“파울!”

결국 어쩔 수 없이 끌려 나오는 거야.

각 리그 타격 20위권쯤 되지 않는 한 존에 따라 무게중심을 자유롭게 옮기진 못하니까.

Eagle Eye로 바라보는 무게중심이 조금 쏠렸다 싶으면.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너희들 집중력이 올라가면 나도 따라서 긴장을 해줘야지.

< 3 >

“르비어는 어때?”

“무릎 쪽에 염좌인데 심한 건 아니랍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상대 팀 선수는 구급차에 실려 나갔어도 우리 팀 선수부터 챙기는 걸 나쁘다고 할 사람도 없고.

“다행이군. 카디널스 디어커는?”

“뼈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데 아무래도 남은 시즌에 더 출전하진 못할 거라는데요.”

“빈볼은 아니었는데 우리 루키들이 좀 흥분했어.”

“타이밍이 오해하기 딱 좋았잖아요. 루키들이야 점수 차가 벌어졌다고 대충 스윙하지도 않겠지만 오늘은 눈빛들이 달라진 채 타석에 들어갔고요.”

애쉬비 코치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어제 조와 리키 무리가 확장로스터로 올라온 선수들을 챙겨 밖에서 식사를 했고 뭔가 이야기가 오갔다는 걸.

덕분에 오늘 루키들이 의욕에 활활 불탔다는 걸.

의욕? 좋지.

다만 약도 잘못 쓸 때는 독이 된다.

카디널스의 순위 다툼. 초반부터 벌어진 점수 차.

이런 상황인데 동료가 몸에 공을 맞자 의욕은 투쟁심으로 변했고 안타까운 결과를 만들었다.

그런데도 곰탱이 조는 또 무시무시한 투구로 삼자범퇴.

지금쯤 카디널스는 가을좀비가 아니라 가을 독사일 것 같다.

“누구 한 명 맞을 분위기지?”

“배트 집어던지고 뛰어나가지 못하게 잡아야죠.”

정답을 말했다.

지는 경기에서 분위기 전환을 위해 일부러 주심에게 항의도 하고 심지어 벤클도 유도하지만 지금 이기고 있는데 왜?

하지만.

“…… 이번에 조가 타석에 설 텐데 조도 잡을 수 있겠나?”

“…… 망할!”

타석에도 서는 조까진 생각을 못했다.

망할 내셔널리그.

“어딜 앉아? 대기타석에나 나가셔.”

“어? 벌써 차례 돌아왔어?”

벤치에 등 딱 대자마자 날아온 핀잔이다.

또? 하긴 지금 스코어 8:0. 타격이 꽤 활발했지.

리키가 던져주는 배트를 받아 다시 덕아웃 밖으로 나왔다.

붕! 붕!

가볍게 배트를 휘둘러보는데 느낌이 좋다.

투수도 경기 전 불펜에서 어깨를 풀 때 오늘 투구가 어떨지 대충 느낌이 오는데 타자도 마찬가지다.

경기 전 훈련에서, 대기타석에서. 스윙을 하며 느낀다.

나야 1년이면 타석에 들어서는 횟수가 겨우 120번 내외지만 스윙할 때 똑같이 감이 온다.

내 스윙이 부드러운지, 힘은 실렸는지 등등.

요즘 또 손맛을 못 봤는데 잘 하면 오늘도 하나?

입맛을 다실 때였다.

따악!

“오! 터너! 이제 타율도 관리할 때지?”

“큭큭! 시즌 몇 경기 안 남았지만 챙길 건 챙겨야지.”

자이언츠에게 자비 따윈 없다.

6회 선두 타자 터너가 안타를 뽑아내며 1루로 나갔고.

딱!

“아웃!”

다음 고든도 안타는 없었지만 적절한 진루타.

1사에 주자를 2루에 두고 내가 타석에 들어갔다.

투수에겐 마운드를 지킬 정도의 타격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타점도 기록인데 없는 것보단 낫지.

바닥을 잠깐 고르고 투수를 바라봤다.

맞다. 이번 이닝에 카디널스는 또 투수를 바꿨지.

저 투수 주력 구종이 포심과 커터였던가? 잠깐 헛생각을 할 때였다.

사인도 없이 바로 와인드업에 들어간 투수.

거기까진 상관없는데 지금 공이 어디로 날아오는 거야?

퍽!

피하질 못했다.

< 4 >

“헛! 지금 무슨 일입니까? 조 선수 머리를 향해 날아간 공이었어요. 헬멧을 썼어도 저런 공에 직격을 당하면 위험하죠. 몸을 비틀긴 했는데 맞은 부위가 어딘가요?”

“아! 자이언츠 덕아웃에서 선수들 달려 나옵니다. 카디널스도 뛰어나오죠? 우선 조 선수 부상을 살펴야 할 때예요. 지금 선수들이 뒤엉킬 때가 아닙니다.”

“자이언츠의 안다르 밀스, 마크 맨슨 선수 등이 지금 많이 흥분한 모습입니다. 이틀 전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조 선수의 조언에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던 선수들이거든요. 오늘 경기 사실 빈볼을 예상할 수는 있었어요. 그래도 같은 투수끼리 빈볼은 선수들을 흥분시키기 충분합니다.”

“빈볼 던진 투수를 죽일 듯이 달려드는데요. 카디널스 선수들이야 누구에게 잘못이 있든 결사적으로 말려야죠. 같은 팀 동료를 지키는 것도 당연하고 무엇보다 마운드에 선 투수니까요. 몸싸움이 격렬합니다.”

“요즘 벤클이야 메이저리그에서 문화가 돼버린지라 보통은 관중들도 호응을 하는데 지금 AT&T파크엔 야유가 빗발칩니다. 아마도 조 선수의 부상을 걱정하는 걸 텐데요.”

“네. 어느 기사를 봤더니 자이언츠 선수단 내부에서도 조 선수를 팀 에이스로 대우한다고 했거든요. 그만한 성적을 내고 팀을 위해 헌신할 줄 아는 선수니까요. 동료들과 관계 또한 베스트에 들어가고요. 팬들의 사랑도 뜨겁죠.”

“그런 투수의 머리에 공을 던졌으니…… 잠깐, 조 선수 일어납니다. 벤클은 마운드 쪽에서 벌어졌는데 타석에서 일어난 조 선수 지금 뭔가요? 벤클에 뛰어들어요? 머리에 공을 맞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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