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LB의 새끼 고양이-157화 (157/188)

AL동부 : 양키즈 - 6

< 1 >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주심의 콜은 다른 때보다 더 우렁찼고.

콜을 듣는 순간 난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미 리글러 앞에서 20개의 아웃카운트 중 16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기어이 삼진이 싫다면 범타로 잡으나 삼진으로 잡으나 차이도 없는데 이 인간이 이를 악물고 커트를 해댔다.

좋은 공 골라서 홈런이라도 치려고?

대단한 집중력이긴 했지만 그럼 나도 열 받지.

오늘 거의 던지지 않았던 몸 쪽 높은 코스를 포심으로 찌르고 다음 공은 같은 코스처럼 보여도 뚝 떨어지는 베어-팜.

기어이 삼진을 빼앗았다.

“다리 괜찮아?”

덕아웃에 들어가지 않고 기다리던 하우어에게 물었다.

오늘 볼로 배트를 끌어내다 보니 베어-팜이 땅에 처박히는 경우도 많았고 하우어가 진땀 좀 흘려야 했다.

방금 7회 말엔 파울 타구에 다리 안쪽도 맞았고.

또 주니어가 깨졌나 싶었는데 그나마 다행, 허벅지 안쪽이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어이 일어나 마스크를 썼던 녀석이다.

“나 결혼 못하면 어떻게 책임 질래?”

“그걸 왜 내가 책임을 져? 네 얼굴이 져야지.”

“…… 내 얼굴이 어때서?”

“누군가 빅 풋이 실재하는지 궁금해하면 너를 보라고 가리킬 건데? 다운그레이드 버전은 충분할 거다.”

“큭큭큭! 하우어 울겠다.”

“공에 맞고 울어, 말에 맞고 울어. 불쌍한 하우어.”

덕아웃에 들어오던 다른 동료들이 들었는지 킥킥거리며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고대 약탈혼이 있을 때면 하우어도 희망이 있는데.”

“하우어 인상을 보면 굳이 약탈이 필요 없지.”

“진정한 위너야. 피를 안 흘려도 원하는 걸 얻는.”

“결론은 시대를 잘못 태어난 거네.”

“다시 태어나.”

누구 한 명 타겟만 잡히면 정말 호흡 끝내준다.

티키타카의 정교함도 이 장면에 비하면 한 수 아래야.

자이언츠 덕아웃 한쪽에서 베이커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선수들이 낄낄대는 장면을 보며 대신 한숨을 몰아쉬었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가?

원래 7회가 지났다면 긴장감이 팽팽해야 정상이다.

조에게야 처음이 아니지만 남들은 평생을 메이저리그에서 뛰어도 달성이 어려운 기록이 또 눈앞에 있으니까.

그런데 저들의 덕아웃 분위기는?

“지금 저 친구들 모르는 걸까요?”

“난 조만 모르고 있다는데 걸겠어. 나머진 알아도 이젠 익숙해져서 저렇게 긴장을 푸는 거고.”

“한 경기에 기록을 몇 개나 깨고, 그것도 모자라……”

애쉬비 코치는 말을 아꼈다.

그보다 더한 것도 해봤다지만 그래도 불문율이니까.

“양키즈가 당해본 경험이 있던가?”

“글쎄요. 제가 기억하는 20년 내엔 없습니다.”

AL동부. 그중에 양키즈와 레드삭스면 적어도 타격에선 한 수 먹어주고 들어가는 팀이다. 과거에도 지금도.

오죽하면 투수 검증은 AL동부에서 받으라고 할까.

그런 건 구단의 팀 컬러다. 팜을 육성할 때도 FA나 트레이드에서 선수를 끌어올 때도 공을 들이는 건 타자.

그런 이유로 애쉬비 코치의 기억 속에 지난 20년 동안은 양키즈가 이런 수모를 당한 적이 없었다.

“작년부터 내가 자이언츠 감독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마찬가집니다.”

아직 1점 차의 안심할 수 없는 경기.

하지만 자기 배터리 골려 먹기에 앞장서는 선발투수를 보고 있자니 걱정이 되질 않는다.

이 메이저리그에서 한두 점은 언제든 터질 수 있는데도.

물론 조라고 패배가 없진 않다. 작년엔 4패를 기록했고 올 시즌에도 2패가 있는데 지금 느낌을 누가 이해할지 모르겠다.

설명할 순 없지만 질 것 같지 않은 느낌.

어떻게 해도 이길 것 같은 느낌.

오늘 딱 그런 느낌이 온다.

그렇다면 벤치가 해야 할 일에나 신경을 쓰는 게 남는 일이다.

정말 연봉도둑이 될 게 아니라면.

“하디였지? 가을에 또 만날 것 같으니 그 선수 데이터나 분석팀에 요청해봐.”

“이미 말해뒀습니다. 마이너 기록도 샅샅이 뒤질 겁니다.”

< 2 >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7회 말 리글러를 삼진으로 잡는 순간 21K 기록은 깨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8회와 9회. 남은 2이닝에 하위타선으로 이어지니까.

그리고 8회 말. 5-6-8번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 20K를 채웠다.

왜 5-6-7이 아니고 5-6-8이냐고? 7번 타자에게 스핀-커터를 던진 게 몸에 맞는 볼을 내줬거든.

일부러 맞힌 것도 아니고, 타자도 일부러 엉덩이 들이대는 양아치 짓을 한 게 아니라 그냥 1루 출루였을 뿐이다.

스트라이크 존에 던지는 공은 안타가 필연.

존을 피해 유인구로 승부하면 볼넷이 필연.

우완이 우타자 상대 스핀-커터는 힛 바이 피치 볼이 필연이다. 내 스핀-커터 제구가 100점짜리는 아니란 뜻이지 뭐.

<세이프 존 설정!> 특성 이용권을 샀어야 했나?

아니. 오늘 타자들 겁줄 의도도 아니었는데.

어쨌든 이제 유인구의 적극적인 활용을 공개했으니 앞으로 이런 기회가 또 온다는 보장이 없다.

최대 23K. 아무도 넘어설 엄두를 못 내게 해버려?

이제 자이언츠의 마지막 공격.

오늘 왠지 경기 진행이 굉장히 빠른 기분이다.

예전 브라이언트와 노히터를 다툴 때나 산체스와 경기를 떠올려 보면 확실히 투수전일 때 경기 진행이 빠르다.

그렇다고 그런 경기가 긴장감이 없나?

천만에.

나중에 팬들에게 사인해주다 들은 말이지만 침 삼키는 것마저 잊고서 경기를 지켜봤다고 했다.

그날 하루 중에 2-3시간이 그대로 삭제됐다고 했던가.

선수들이 집중력을 발휘해주면 그만큼 경기의 밀도가 높아진다는 걸 그때 배웠다.

지금도 1:0의 스코어.

양키즈에선 하디가 내려가고 필승계투조가 올라왔다.

루키에게 9회까지, 끝까지 맞대결을 펼쳐야 하지 않느냐고 헛소리를 할 생각은 없다.

하디는 멋진, 기억에 남을 투구를 했다.

만약 가을야구에 양키즈를 만나면 경계수준을 최상으로 올린대도 이상하지 않을 거다. 기본적으로 훌륭한 투구를 하는 투수가 자이언츠를 상대로 자신감마저 채웠으니 뭐.

아무튼 좋은 선수를 만나 좋은 대결을 했고 얻은 것도 많다.

우리 감독님이며 코치들은 내가 노히터를 진행 중인 걸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알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미네가 알려줬지만.

그런데 퍼펙트까지 해봐서인지 큰 감흥이 없다.

오히려 좋은 투수들과 맞대결을 하며 집중력을 최고조로 올려갈 때 더 즐겁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그런 선수들에겐 꼭 예의를 지키고 싶은 것뿐이다.

마무리를 끝내주게 하는 예의.

딱!

“아웃!”

딱!

“아웃!”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동료들은 역시 개인 커리어까지 희생하며 내가 집중력을 유지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좋아! 기분이다. 오늘은 모두 꾹꾹이 10번씩이다!

“아, 양키즈 선수들 배트가 너무 무거워 보입니다. 3회까진 조 선수의 심리전에 말리고 6회까진 갑자기 템포가 뒤바뀐 전력투구에 시달리고. 7회부턴 아예 종합선물세트예요.”

“네. 이제 9회 말인데 경기 시작한 지 겨우 2시간이 지났죠? 항상 메이저리그의 느리고 지루한 경기진행이 지겹다던 팬들, 어떠신가요? 이래도 지겹습니까? 혹은 지루합니까? 재미가 없나요? 뭐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저는 심박 수에 폭행을 가하는 이런 경기야말로 프로스포츠의 진수가 아닌가 합니다.”

“하하! 그렇습니다. 중반까지 명품 투수전. 그 사이에 갱신되는 기록들. 물론 기록 갱신은 지금도 진행형이죠?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이런 경기는 오래 기억에 남을 겁니다.”

“일단 21K. 조 선수, 자신이 세웠던 탈삼진 기록과 타이를 만들었는데 양키즈 벤치에서 대타를 올렸습니다. 2차전에 마스크를 썼던 라와나 선수인데요. 체력 문제로 경기 출전이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10년 전만 해도 AL을 대표하던 포수였죠?”

“그렇습니다. 2차전에선 자이언츠의 아처 선수를 상대로 선취타점을 올리기도 했어요. 양키즈에서만 거의 20시즌을 보낸 양키즈의 산 역사나 마찬가지인 선수죠.”

< 3 >

21K는 만들었고.

남은 아웃카운트는 둘인데 대타가 나왔다.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카드겠지.

탈삼진 기록을 갱신하지 못하게 막고 되도록 노히터까지 깰 수 있는 타자. 뭐 욕심을 더하면 큰 한 방이 가능한 슬러거.

과연. 양키즈의 지난 20년 역사가 나왔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 헬멧 아래로 보이는 눈빛이 서늘하다.

이런 노장에 대한 예의도 최선을 다해 잡아주는 걸로 지켜야지.

하우어, 미트 고정시켜라.

퍼엉!

“스트라이크!”

노장들의 무서움은 인내할 줄 아는데 있다.

이건 내 생각도 아니고 헬-벨을 비롯한 영감님들이 해줬던 말이다. 피지컬이 전성기에 비해 떨어지고 반응이 느릴 순 있어도 어설픈 공에 배트가 끌려 나오진 않는다고 했던가?

1번 꼭짓점을 꽉 채운 포심을 지켜본다.

저 위치로 들어가던 공이 포심이 아닌 베어-팜이었던 걸 덕아웃에서 눈여겨 봤다는 뜻이다.

투수들이 볼 배합을 대충 머리에 그리고 타자를 맞이하듯 타자들 역시 투수의 투구 구성을 생각하며 타석에 선다.

아저씨. 따로 노리시는 게 있나요?

딱!

“파울!”

베어-팜을 노렸네.

놔뒀으면 바운드되어 또 하우어 주니어를 노렸을지 모를 공을 배트가 끝까지 따라간다. 낙폭을 최대로 키워 던진 베어-팜인데 컨택이 가능하다면?

딱!

“파울!”

이 포심은 96-97마일.

딱!

“파울!”

이번엔 거의 105마일 꽉 채웠었고.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마지막은 팜-체인지업이었다.

완급조절된 포심만 봐도 어느 타이밍에 배트를 내야할지 감이 안 오는 법인데 다음 공에 팜-체인지업을 만나면 답이 없다.

라와나. 저 아저씨나 되니 스윙이 나왔지 어중간한 타자는 루킹삼진. 눈 뜨고 얼어붙는다.

하지만 일단 헛스윙. 삼진이었다.

허탈한지 들어가기 전 나를 잠깐 바라보는데.

최대한 예의를 갖춘 표정을 지었다. 의미가 전해질까?

눈빛이 잠깐 마주치고. 허공에 손을 휘젓더니 들어가버린다.

어쨌든 22K.

내가 세운 기록 내가 깼다.

잠깐. 저 아저씨 기록의 희생양이 자기가 되려고, 젊은 선수들 멘탈이 무너지지 않게 하려고 자기가 대타로 나왔던 건가?

이제 자기는 은퇴 시기만 가늠하는 중이라?

내 생각이 맞는다면 진짜 헌신인데.

하지만 그 헌신 의미 없겠어요.

여기까지 온 김에 23K 채울 생각이거든요.

다음 타자도 대타. 저 선수 역시 30대 후반 노장 급인데.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헛스윙이었지만 하나 얻어 걸리라는 건 아니었다.

확실히 구종 하나에 맞춘 스윙.

뭘 노리는 걸까?

방금 스핀-커터에 배트가 나왔으니 아무래도 패스트볼?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이번엔 2구에 팜-체인지업.

남은 건 공 하나. 유인구를 던져도 될 것 같은데.

그래도.

빠각!

배트가 부러졌고 타구가 내 왼쪽으로 지나갔다.

뭐냐? 진짜 공 하나쯤 뺐어야 하나? 나도 흔히 말하는 9회 말 투아웃에 노히터가 깨지는 상황?

당겨치는데 능숙한 타자였고 자연히 시프트가 걸렸었다.

1-2루 사이로 빠질 타구. 하지만 앰브로즈가 포기하지 않았다.

2루 베이스 근처에 있던 녀석이 미친 듯 달려들었고 타구를 향해 글러브를 내밀었다. 내밀었는데.

영화 시나리오를 써도 이렇게 쓰면 욕 먹을 걸.

기다렸다는 듯 불규칙 바운드가 일어나 글러브 끝에 맞았다.

맞고 튀어 오른 타구. 빠지지 않게 앰브로즈가 몸으로 틀어 막았지만 자세가 무너졌다.

당연히 1루로 송구가 살짝 늦었고.

“세이프!”

미친 듯이 질주한 타자.

1루심의 판단은 세이프였다.

하얗게 질려버린 앰브로즈와 새비지.

관중석에서 들려오는 뜻을 알 수 없는 함성들.

그 사이로 우리 감독님이 달려나와 주심에게 거칠게 항의를 하고 챌린지도 걸고.

다 좋은데 왜 내겐 아무도 안 오는 거야?

괜찮다고, 그까짓 노히터 다음에 또 하면 그만이라고 대답할 생각이었는데. 굉장히 쿨하고 시크해 보이게.

인간들이 기회를 안 주네.

< 4 >

“음, 베이커 감독 화가 많이 난 것 같죠? 챌린지 결과가 세이프로 나온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실책이 아닌 안타 판정. 노히터가 무너진 상황이라 더 그럴 겁니다.”

“애매했죠. 앰브로즈 선수가 차라리 따라가지 못했다면 안타가 확실한데 건져 올렸어요. 하지만 그 순간 불규칙 바운드가 일어났고 펌블도 아닌 글러브에 맞고 튕긴 상황이거든요. 이런 경우 판단은 선임기자의 몫이고 베이커 감독이 항의한다고 바뀌기 어렵습니다. 9회 말 투아웃. 애매한 일이 벌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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