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me give you a good reason! - 7
< 1 >
“느린 화면으로 다시 볼까요? 와! 정말 육안으로 봐선 공이 더 빨랐는지 발이 더 빨랐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봐서야 겨우 알겠네요. 미세하게 공이 먼저 새비지 선수의 미트에 들어갔어요. 올림픽 기록경기를 예로 든다면 100분의 1초대의 차이라고 봐야 할 정도입니다. 이 정도면 브레이브스 벤치가 챌린지를 요구할 것 같았는데 그냥 넘어갔어요.”
“7회 바르가스 선수와 고든 선수가 보여줬던 슈퍼 플레이와 비교해 절대 부족하지 않은 수비였거든요. 다른 복합적인 이유도 있고 그런 플레이에 챌린지 요청은 브레이브스에게 잃는 게 더 많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어쨌든 이제 한 타자가 남았는데요. 지금 AT&T파크는 수만 관중으로 가득 찼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조용합니다. 모두 조 선수의 대기록 수립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은 거겠죠? 심지어 브레이브스 저지를 입은 일부 관중들도 침묵 중입니다.”
“아마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곁에 앉은 사람들이 힘껏 입을 틀어막을 거예요. 좀 전 제가 블랑코 당신의 입에 글러브를 쑤셔 박은 것처럼 말이죠. 제 아들이 바르가스 선수의 사인을 받아다 달라고 준 글러브였는데…… 아, 지금 저도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마지막 타자 역시 대타가 나오는데요. 최근 각 지구 순위가 앞을 짐작하기 어려우니 백업멤버들의 잦은 교체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마이크 아마스. 이 선수도 지난 주 메이저에 콜업이 된 선수예요. 타율 0.291에 출루율 0.382가 트리플A에서 얻은 성적입니다.”
“비록 아웃이 되긴 했지만 방금 전 프랫 샐다나 선수의 팜-체인지업을 노린 타구는 정말 날카로웠거든요. 어차피 투수 타석이고 브레이브스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겁니다. 비록 큰 부담이 될 타석이지만 이런 것도 이겨내야 메이저리거죠.”
“다만 조 선수의 표정엔 변화가 없습니다. 타석에 누가 서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죠? 바로 와인드업. 초구 헛스윙! 전광판에 찍힌 수치를 보세요. 105.4마일. 놀랍습니다. 9회에도 저런 구속이 쉽게 나오는 것도 놀랍고 조금 전 위험한 타구를 맞았던 걸 개의치 않고 한복판에 포심을 던지는 강심장은 정말……”
“바로 2구 던지는데요. 다시 헛스윙. 이번에도 포심이었죠? 올 시즌에 보여주는 완급조절의 절정입니다. 98마일. 이런 투구면 사실 체인지업이 따로 필요가 없어요.”
“이제 공 하나가 남은 걸까요? 유인구 하나쯤 던질 만한데 조 선수라면 그냥 정면승부를 할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3구를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던질 투수는 메이저리그를 다 뒤져도 생각나는 선수가 조 선수뿐이거든요.”
“또 인터벌 없이 투구를 준비합니다. 제3구……”
“…… MLB를 기록의 경기라 부르는 것에 모두 동의하실 텐데 지금 이 순간 미답(未踏)의 영역이 개척됐음을 알려드립니다. 아직 메이저리그에 퍼펙트게임을 두 번 달성한 투수는 없었지만 오늘 여기 AT&T파크에서 그 주인공이 탄생했습니다.”
“관중들이나 시청자들 지금 중계를 들을 정신이 있을까요?”
“…… 없겠는데요. 마치 오늘이 독립기념일 같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선 독립기념일에도 이런 모습은 못 봤지만요. 중계 그냥 여기서 마쳐야겠습니다.”
< 2 >
AT&T파크가 뒤집혔다.
지난 퍼펙트는 피츠버그에서 달성해 관중들에게 축하는 받았을망정 이런 모습은 없었는데 이건 뭐.
그동안 필리건들 과격하다 했던 걸 반성한다.
구장을 찾으면 소리도 좀 지르고 떠들썩한 분위기를 즐겨야 하는데 숨죽이며 지켜봤던 걸 한 번에 토해내는 것 같다.
내 주변을 둘러싼 원수들에게 짓밟히느라 몰랐지만 일부 팬은 펜스를 넘어서 달려왔던 모양이다.
“조! 축하해요.”
“미누! 자이언츠에 꼭 남아야 해요.”
“샌프란시스코를 팔아서라도 널 사게 만들 거야.”
미치겠다.
자이언츠를 파는 것도 아니고 샌프란시스코를 팔아?
동료들은 물론이고 구장경비와 프런트 직원들까지 총동원돼 벽을 치곤 있지만 그 벽 너머로 나를 불러댄다.
이대로는 라커룸으로 철수도 할 수 없다.
“누가 나 목마 좀 태워줘.”
“젠장. 아직 여자도 목마는 안 태워봤는데.”
앙탈은 부려도 바로 바르가스가 주저앉아 나를 목마 태웠다.
하우어와 페르시가 옆에서 부축을 해주고.
좋아. 벌떡 일어나.
와우! 앞쪽에만 수백 명이네.
바르가스에게 신호를 보내 앞뒤로 몸을 돌려가며 세차게 손을 흔들었다. 한쪽으로 모여 달라고.
말을 해봐야 뒤에는 들리지도 않을 것 같은데.
어? 누가 무선마이크를 가져다준다. 센스 굿이다.
“하이, 샌프란시스코.”
어이쿠! 귀가 따갑다.
진짜야. 필리스와 컵스, 레드삭스. 극성팬으로 이름 높은 이 세 팀에 오늘부턴 자이언츠를 넣어 사천왕 체제로 가야할 것 같아.
어쨌든 여길 탈출하려면 저들을 진정시켜야지.
“여러분의 응원에 행복합니다. 생각 같아선 지금. 바로 여기서. 여러분과 바비큐 구우며 파티를 하고 싶어요.”
“그런데 오늘 기록은 저 혼자 만든 게 아니에요. 지금 제 밑에 깔린 바르가스랑 오늘 오븐에 들어갈 운명인 고든을 비롯해 동료들과 함께 만들었어요. 이 친구들 쉬게 해주지 않으면 전 아마 끔찍하게 살해당할 거예요.”
“사인과 사진? 전 항상 자이언츠 덕아웃 앞에 있습니다. 타이밍만 잘 맞으면 빈스네에서 피자도 함께 먹을 수 있고요.”
< 3 >
오늘은 짧게 수훈선수 인터뷰로 끝낼 수 있는 날이 아니다.
샤워를 하고 새 유니폼을 갈아입고 AT&T파크의 공식인터뷰 룸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부터 터지는 플래시 세례.
무슨 수를 쓴 건지 짧은 시간에 참 많이도 몰려왔다.
물론 이들 전부가 내게 호의적인 기자들은 아니겠지?
축하인사를 시작으로 인터뷰가 진행됐다.
몇 회부터 퍼펙트를 의식하기 시작했냐는 질문.
중간에 볼 배합을 바꾸기 시작했던 게 계획에 있었는지.
7회와 9회. 바르가스와 터너의 슈퍼 플레이에 대한 느낌.
메이저리그 최초의 퍼펙트게임 2회를 달성한 소감과 팬,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대충 무난했다. 예상했던 질문들이었고.
보통 이런 자리는 자극적 질문은 피하는 법이다.
내가 물의를 빚어 소명을 위해 기자회견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여전히 자이언츠와 장기계약을 할 생각은 없습니까?”
뒤쪽에서 오늘 경기완 무관한 질문이 들어왔다.
역시 그냥은 안 넘어가지?
게다가 질문도 딱 의도가 보인다.
인터뷰를 준비했던 구단 직원이 대답할 필요 없다고 눈짓을 보냈지만 난 받아치기로 했다.
“내 1년 계약에 문제라도 있었나요?”
“자이언츠 내부 소식에 따르면 4억 달러 이상의 장기계약 제안이 들어갔는데 조 선수가 거절했다고 하던데요. 요즘 수익 활동을 활발하게 하시던데 구단의 제시금액이 적었습니까?”
그래. 끝장을 보자면 뭐 나도 좋지.
“수익 활동이요?”
“후원기업의 행사에 나가는 게 수익 활동 아닌가요?”
메이저 최초의 2회 퍼펙트 인터뷰?
이미 화기애애한 인터뷰 분위기는 물 건너갔다.
“그 행사가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장기투병 중인 어린아이들을 돕자는 취지인 걸 모르진 않을 테고. 지금 그저 시비가 걸고 싶다고 말하지 그래요? 이런 논란을 키워 기사로 올리고 클릭 수 폭발하면 돈 되잖아요. 장단 맞춰줄게요. 물론 그 행사 후원기업의 홍보목적도 있을 거예요. 알아요. 그런데 당신은 그 폭발하는 클릭 수로 얻는 수익을 가지고 뭘 하죠? 작년 챔피언십 이후 자이언츠와 다저스 선수들이 상식 밖의 파티를 벌였다고 왜곡된 기사를 내고 번 돈으로 뭘 했어요? 그냥 솔직히 내가 밥맛이라고 해요. 당연히 나도 당신이 밥맛이라 지금 엿을 먹이니까요. 그리고 질문에 답을 하자면 돈 좋아요. 많이 받을수록 좋죠. 프로는 결국 자기 가치를 몸값으로 증명하니까요. 다만 돈보단 더 원하는 게 있고 자이언츠에 그 원하는 바를 말하기 위해 우선 나를 증명하는 중이에요. 구단과 서로 win-win하길 원해서죠.”
아마 내가 인터뷰란 걸 해보면서 가장 많은 말을 한 인터뷰로 기억될 것 같다.
질문을 했던 기자는 얼굴이 곧 터질 분위기고.
FBI에 신고해서 여기 폭발물 있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다. 불을 지를 바엔 몽땅 태우는 게 내 스타일이다.
“언젠가 이런 조언을 받았어요. ‘조, 우리에게만 인터뷰를 해주는 건 고마운데 기자들과 너무 거리를 두지 말아요. 각 구단 감독과 코치가 선발하는 골드 글러브와 달리 리그MVP나 사이영상은 기자들 투표로 주는 거 알죠? 알버트 벨이 홈런왕이나 타점왕은 했어도 리그MVP에는 오르지 못했던 이유를 생각해봐요.’ 나를 걱정해서 해준 말이었는데 선수 길들이기에 자기들 표를 이용하는 기자들이 있다는 거죠. 뭐 비밀도 아니에요. 그런데 아예 이 자리에서 확실히 밝혀둘게요. 설령 당신들이 내게 표를 던져도 사이영이든 리그MVP든 수상식에서 날 보긴 불가능할 거예요. 난 팬 투표로 뽑는 올스타면 충분하거든요.”
장담한다.
퍼펙트에 관한 기사보단 내 수상거부 선언이 훨씬 기사가 폭발할 거라고.
< 4 >
“벌써 기사 뜨기 시작했다.”
“그래. 어디 봐.”
예정대로 인터뷰를 마치고 모두 빈스네로 몰려왔다.
오늘은 감독님과 코칭스태프도 모두 참가해 먹고 마시는 중.
바레이타를 시켜 미리 빈스에게 연락을 해두지 않았다면 이 많은 인원이 먹을 피자는 내일까지 구워야 했을 거다.
그런데 대화의 화제는 오늘 퍼펙트가 아니다.
내가 인터뷰를 하며 질러놓은 불이지.
“너 진짜 수상 거부할 생각이냐?”
“작년에 기자들이 주는 것보다 훨씬 좋은 걸 받았으니 필요 없어. 올해도 받을 거야.”
페르시가 눈이 동그래진다.
메이저리그에 사이영이나 MVP보다 더 좋은 상?
그게 뭔지 모를 테니 궁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메이저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상도 꽤 있다.
예를 들자면 신뢰도가 바닥을 치는 골드 글러브에 대항해 세이버 매트릭스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투표로 선정하는 상이 있다.
필딩 바이블 어워드.
들어본 사람도 몇 없을 걸.
이 상은 메이저리그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비록 세이버 매트리션들이긴 해도 전문가들이 투표로 주는 상이다.
골드 글러브보다 신뢰도가 더 높다고 평가받는다.
물론 난 이런 상이 아니라 가족이 주는 상이지만.
“미친…… 조, 너 진짜 사고 쳤다.”
“왜? 여기서 더 어떻게 사고를 쳐?”
“네가 사이영 상이나 리그MVP 투표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뭐 충분히 그렇게 해석될 말을 하긴 했나?
“그런데 웃긴 게 뭔지 알아?”
“……?”
이젠 다른 이야기로 떠들던 사람들까지 하던 말을 멈추고 이쪽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자기들도 동의한다는 기자들이 꽤 많아. 만약 시즌 말까지 네 퍼포먼스가 이어진다면 자기는 사이영 상 투표에 아예 기권한단 기자도 나왔어.”
“NL서부지구 담당기자들, 필리스 담당기자들 전분데?”
“…… 진짜 저 곰탱이 불 제대로 질렀네.”
“가운데 손가락만 안 들었지. 그냥 Fuck You! 날린 거야.”
“그레잇! 자이언츠에 오길 정말 잘한 것 같아.”
마지막은 사차원 바르가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