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me give you a good reason! - 4
< 1 >
세이버 매트릭스.
SABR(The Society for American Baseball Research)라는 모임에서 만들어진 야구를 통계학적,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론이다.
빌 제임스는 SABR를 창시할 때만 해도 몰랐을 거다.
세이버 매트릭스가 수많은 변화를 겪으며 단순한 개인의 취미 차원을 넘어서 야구 전반에서 쓰일 만큼 널리 퍼질 줄은.
여전히 사람들은 투수들에겐 승, 패, ERA, 탈삼진, 먹어준 이닝 등을 보고 타자에겐 타율과 홈런, 도루, OPS 등 직관적인 올드스쿨 수치를 따진다지만 세이버 매트리션은 다르다.
또한 수치를 이해하는 수준을 넘는 장인들이 존재한다.
그 데이터 신봉자 일부는 온갖 수치를 대입해 선수를 평가한다.
그리고 혼자 즐기는 수준으로 분석을 끝내지도 않는다.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해 칼럼을 만들어 개인 사이트에 올리기도 하고 공개된 토론장에 올려 격렬한 논쟁도 주고받길 즐겨한다.
오늘도 MLB닷컴의 팬 포럼엔 쉽게 진화되지 않을 내용의 주장이 올라왔다.
# 자이언츠 미누 조를 탐내는 팀이라면?
2037시즌 자이언츠의 질주가 무섭다. 안정된 투타 조합에 벤치의 선수기용과 작전이 선수들의 역량을 한층 끌어올리는, 메이저리그 강팀의 최적화된 본보기고.
오늘은 그런 자이언츠 선발진에 대해 알아본다.
특히 미누 조. 이제 데뷔한지 3년차를 맞는 이 영건은……
…… 따라서 bWAR의 피칭 스탯인 RA/9는 작년에 이어 최고 수준을 찍고 있다. 아직 bWAR로 분석하기에 충분한 데이터는 아니지만 현재 조 선수의 포심 완급조절과 베어-팜의 낙폭 조절이 완성된다면 지금 이 현실성 없는 수치도 더욱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 공개된 IPAT와 CLM 수치를 신뢰한다면 무조건 10년 이상 마운드에 서게 될 이 선수의 몸값은 그러면 얼마가 적당할까? 투수로서 개인통산 WAR 최고기록인 월터 존슨의 152.3을 돌파할 투수의 몸값이다. 참고로 WAR 1당 가치평가는 천만 불을 넘어선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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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이 미친놈들은 좀 조용히 있을 것이지.”
“이게 취미이자 생활인 사람들이니까요.”
다저스 데이브 단장의 푸념에 스카우트 팀장인 리켄이 얼굴에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벌써 태동한지 60년이 넘은 세이버 매트릭스다.
초창기의 과격한 이론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신뢰를 쌓았고 이젠 관심이 없는 사람도 수치 자체는 많이 믿는 편이다.
더구나 선수의 몸값에 관련된 부분은 원래 없던 관심도 끌어오지 않던가.
단장은 영입을 추진 중인 선수 몸값이 뛰는 게 달갑지 않은 모양이지만 리켄이 보기에도 조의 가치는 상상 이상이다.
RA/9는 수비력 편차를 배제한 9이닝 당 실점 수치로, 수비중립화는 DRS를 통해 계산된 동료 야수들의 수비 퍼포먼스를 리그평균 수준으로 맞추는 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걸 올드스쿨 수치로 전환했을 땐 조정 ERA라고 보면 된다.
작년 기록이 254이닝 316K ERA 1.877
올해는 벌써 97이닝을 던지며 114K 17실점을 한 투수.
게다가 베어-팜 구종을 실험적으로 던지며 내준 점수를 감안해야 한다.
싼값에 업어온다는 건 생각도 못할 일이다.
또 데려와도 당장 내년 연봉을 얼마나 줘야할지도 모르고.
“하필 자이언츠라 더 문제야.”
“다저스도 차기 에이스를 자이언츠로 보낸다면 LA 시민들이 다저 스타디움에 불을 지르고도 남을 걸요.”
라이벌은 라이벌이다.
선수들끼리 관계가 아무리 좋아도 연고지 팬들은 팀의 핵심을 라이벌 팀에게 보내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뭐 방법은 있다. 다른 팀과 삼각트레이드로 엮는 방법.
하지만 시즌이 진행될수록 저 투수에 대한 고평가만 나와 협상을 시도하기도 어렵다.
“이 추세면 올해 자이언츠가 최소 NL챔피언십은 가져갈 거야. 이미 꽉 채운 페이롤인데 월시 우승이라도 하면 자이언츠가 선수들을 모두 지키긴 무리지.”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죠. 다만 트레이드를 해도 조를 데려갈 팀은 몇 곳 안 됩니다.”
“양키즈와 필리스, 그리고 우리 정도?”
선수 한 명에게 수천만 달러를 안겨주면 당연히 사치세를 물어야 제대로 된 로스터를 채울 수 있다.
나머지 인원을 모조리 팜에서 올릴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최고의 WAR를 찍는 선수와 그에 걸맞은 로스터를 운영할 만큼 재력이 되는 빅 마켓이 많지는 않다.
그 중에 연 4억 달러에 육박하는 페이롤도 감수해봤던 경험은 그래도 양키즈와 다저스뿐이다.
“음, 타이거즈와 레드삭스도 넣어야 합니다.”
“누가 먼저 간을 봐주면 좋겠는데.”
데이브 단장의 염원이 하늘에 닿았을까?
지금 그 간을 보기 위해 움직인 구단이 있었다.
< 2 >
“양키즈가 자꾸 손을 내밀더니 이젠 빨간 양말이야?”
“당연히 올해 달라는 건 아닙니다. 내년 자이언츠가 페이롤 관리에 들어갈 거라 예상해 미리 접촉하는 거죠.”
2037시즌의 특징은 자이언츠의 독주다.
시즌이 시작되고 세 달째. 승률 6할을 넘은 팀도 없는데 자이언츠만 7할을 넘어선지 오래다. 자이언츠의 월드시리즈 진출은 무난하다고 말하는 성급한 예측도 나오고 있으니까 뭐.
당연히 그 이상을 바라보며 막대한 투자를 했지만 문제라면 문제가 생겼다. 자이언츠가 한 번도 페이롤 1위를 찍어본 적이 없다는데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월시 우승이라도 하면 페이롤 조정에 들어갈 거란 짐작.
그런 짐작이 자꾸 자이언츠에 떡밥을 던지게 만들고 있다.
“예전 이사진이었으면 혹했겠지.”
“그들은 땅을 치고 후회할 겁니다. 2년만 기다리면 중계권 협상을 시작할 거고 사치세 따위는 문제가 아닐 테니까요.”
“…… 그 안에 자네가 말한 왕조가 건설될 때 이야기야.”
“아직도 의심하십니까?”
“…… 말도 못하나?”
페릴이 짓궂게 묻자 요한슨은 살짝 그를 외면했다.
그런 요한슨을 보며 페릴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요한슨의 책상 위에 엉덩이를 붙였다.
“오늘 브레이브스 4차전 조가 출전하거든요.”
“나도 알아.”
“경기 결과로 내기 어떠세요?”
“…… 스윕은 안 당하려고 브레이브스도 독을 품고 나올 텐데.”
필리스에게 진 지난 경기도 그랬다.
시리즈 균형을 맞출 생각에 이를 악물고 나선 선수들이 끝내 조를 상대로 역전홈런을 만들어냈으니까.
“누구나 경기 시작 전엔 그럴듯한 계획을 갖고 있죠.”
“좋아! 전에 자네가 탐내던 맥켈란 1946년을 걸지.”
“…… 그냥 제게 주고 싶었다고 하세요.”
“……”
말은 이렇게 했지만 페릴은 알았다.
요한슨도 조의 투구에 대해 의심하진 않는다.
다만 자이언츠의 미래 구상에 조는 절대 빠져선 안 될 핵심.
스톤햄이나 바르가스처럼 FA계약을 체결한 것이 아니기에 서비스 타임이 남았어도 주의해야 한다고 말하는 거다.
멀리 보고 조에게 접촉할 구단은 많고도 많으니까.
그들을 차단하려면 페릴은 이제 바쁘게 생겼다.
< 3 >
“오늘 그 아래 보호구 두 개 차라.”
“…… 미친!”
턱짓으로 물건을 가리켰더니 대번에 욕부터 날아온다.
확실히 그때 트라우마가 너무 컸던지 아님 요즘 꾹꾹이가 부족했던지 둘 중 하나다.
“진짜야. 오늘 베어-팜 사인 많이 내.”
“아직 조절이 자유롭진 않잖아.”
인정해.
감각의 영역인 커브를 베어-팜에 섞으니 아무리 A등급 커맨더 도움이 있어도 여전히 어설프지.
하지만 오늘은 비장의 카드를 쓸 거라고.
만 코인짜리 올마이티 핸드는 여전히 살 생각 없지만 Scope에 따로 Untouchable 이용권까지 구입했단 걸 모르지?
“긁히는 느낌이 오늘 하루는 괜찮을 것 같아서.”
“내가 결혼을 못하게 되면 저주할 거다.”
“결혼 혼자 하냐? 너 여자도 없잖아.”
이 말은 하고 아차 했다. 내가 내 무덤 판 느낌.
아니나 다를까.
“풋! 그러는 넌 여자 사겨본 적이라도 있냐?”
“……”
“누가 들으면 혼자 하렘 차린 줄 알겠어.”
“……”
“이젠 프리앙카랑 화보 찍어도 스캔들도 안 생기지?”
“……”
“그 필리스 탱크탑 아가씨도……”
“한 마디만 더하면 정말 그 물건 쓰지도 못하게 해준다.”
“……”
경기 전 하우어와 나눈 대화였다.
그리고.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지금 난 분노를 가득 담아 공을 던지고 있다.
하우어 따위에게 너도 모태솔로 아니냔 소리를 듣다니.
브레이브스 1번 타자만 불쌍하게 됐다. 105마일 포심만 연속으로 세 개를 던졌으니 준비한 게 완전히 헛수고일 테니까.
스윙을 보니 스핀-커터에 구속을 맞춘 느린(?) 포심을 노렸던 모양인데 미안.
[미누. 릴랙스.]
‘알아. 그냥 무력시위 한 번 해봤어.’
[아닌 것 같은데요?]
‘……’
[예정에 없던 무력시위는 좋았는데 완급조절은 계속해야죠.]
‘흐흐. 당연하지.’
[또 음흉하게 웃는다.]
이봐요. 미네 아가씨.
걱정은 고마운데 나도 알고 있다고.
완급조절과 낙폭 조절을 함께 묶어 시험하는 자리인데 설마 무작정 윽박지르는 투구를 계속하겠어?
지금 2번 타자 상대하는 걸 잘 보고 생각해봐.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조 선수, 또 시작이군요.”
“네. 첫 타자를 상대론 전력투구. 다음 타자에겐 아예 베어-팜으로 구종을 바꿔 계속 스트라이크를 잡아냅니다. 브레이브스 타자들은 포심과 스핀-커터에 초점을 맞춰 오늘 경기에 대비했을 텐데요.”
“그렇죠. 사실 베어-팜에 변화를 주면서부터 조 선수에겐 베어-팜이 양날의 검이 됐거든요. 일정한 낙폭을 벗어나 더 때리기 어려운 것도 맞지만 날카롭던 제구가 사라졌어요. 제구에 집중하면 볼 끝이 밋밋해져 큰 한 방을 맞기도 했고요. 물론 포심과 스핀-커터 조합만으로도 무서운 선수죠. 타자가 구종을 예상하고도 무브먼트를 따라가지 못해 헛스윙을 하잖습니까. 반면 베어-팜은 실험적인 변화를 시도 중이라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허를 찌를 때나 던졌는데 오늘은 초반부터……”
“상대하는 팀의 벤치와 타선을 모두 곤혹스럽게 만드는 악당입니다. 체격이나 불같은 성격만 보면 곰이 맞는데 상대팀에게 심리전을 거는 모습은 도저히 곰이 아니에요.”
“원래 곰이 영리한 동물이죠. 힘으로만 먹이사슬 최상위에 군림하긴 힘들잖아요.”
< 4 >
따악!
“와우! 또?”
“오늘은 페르시야? 저 자식 어제 집에서 쫓겨났네.”
“그건 무슨 소리야? 새 신랑이 왜 집에서 쫓겨나?”
“집에서 잤으면 연타석 홈런을 날리게 힘이 남아있겠냐?”
“하하하!”
“큭큭큭!”
암, 맞는 말이지.
이제 결혼하고 반 년 지났는데 한참 뜨거울 때잖아.
집에서 쫓겨났든 침대에서 쫓겨났든 혼자 잤으니 그 분풀이를 브레이브스 투수에게 하는 모양인데 나야 좋지.
타자가 점수를 넉넉히 내줘야 투수 어깨가 가벼워진다고.
스톤햄이 저쪽에서 날 보며 싱긋 웃고 있다.
오늘 4차전에 내가 출전하고 싶다고 그에게 의사를 물었을 때 뭐라고 했더라?
“이제 너랑 나랑 차이를 둘 것도 없어. 메이저리그란 이 무대에서 영원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은 없거든. 해마다 유망주는 올라오고 정체되면 밀려나는 거야.”
“스톤햄이 아직 정체를 말할 나이는 아니잖아요.”
“말이 그렇다는 거야. 이젠 네가 나와 나란히 서서 던져도 된다는 뜻이고. 다만……”
말끝을 잠깐 흐리는 그에게 대답을 재촉했었다.
“다만?”
“솔직히 난 자이언츠 프랜차이즈야. 네가 프랜차이즈인 내 로테이션 자리에 섰다는 걸 팬은 알 테고 그럼 네 운신 폭은 좁아져. 패배에도 더 민감해질 테고, 나중에 팀을 옮기게 되면 그 팬이 백만 안티로 돌아설 수도 있어.”
“하하! 지금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패배에 민감해진다?
간단히 말해 오늘 스톤햄 출전을 기다린 사람들은 당연히 승리를 기대할 거다. 그런데 만약 내가 나가서 져봐.
난 이겨야 본전인 경기에 자원한 셈이 됐다.
혹시 지면? 망하는 거지 뭐. 그래서 방금 스톤햄의 미소는 패배를 생각할 필요는 없겠단 의미다.
또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와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면 나중에 이적을 했을 때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에겐 역적이 된다.
비슷한 조건을 제시받으면 무조건 자이언츠에 남아야 하는 큰 제약을 나 스스로에게 거는 셈이다.
뭐 그래도 옮길 사람은 옮긴다. 페이컷을 해서라도 원하는 팀으로 갔던 프랜차이즈 스타가 없진 않고.
그런데.
따악!
“와아아! 바르가스!”
“그래. 넌 원래 여자도 없으니 쳐야지.”
“무슨 소리. 저 자식은 여자가 한 트럭이야.”
난 딱히 다른 팀이 끌리지 않는다.
우리 팀 푼수들이 꽤 마음에 들거든.
무엇보다 유쾌하고 가장 중요한 야구도 잘 하고.
오늘 질 생각도 없었지만 마음먹고 나왔을 때 백투백까지 날리며 장단을 맞춰주는 동료들이잖아.
한데 잠깐.
“그럼 조는 페르시 과야? 바르가스 과야?”
“당연히 페르시 과지. 조는 여자 쪽에 스탯 분배하면 그냥 망캐로 전락하는 거야. 여자가 생기려 해도 막아야 해.”
가끔은 알아서 매를 버는 동료들이다.
“우아악!”
< 5 >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6회 초. 두 번째 만난 아인버그다.
첫 타석 삼진으로 물러날 때만 해도 눈빛에 적의만 가득 담겨있었는데 지금은 얼굴부터 몸 전체가 굳어진 게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브레이브스가 5회까지 무득점.
무득점뿐이면 괜찮겠지만 아직까지 출루가 하나도 없다.
선발 로테이션까지 바꿔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내가 나섰고, 그렇게 내가 독기를 뿜는 이유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겠나?
언론플레이를 하며 날 긁어댔을 때 각오를 했어야지.
퍼엉!
“스트라이크!”
다시 한 번 패턴을 바꿔 전력투구.
배트를 내밀지도 못한다.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