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LB의 새끼 고양이-132화 (132/188)

진짜 악당 - 5

< 1 >

“음, 경기 전에 자이언츠 팬들이 조 선수의 출전에 당연히 연승을 기대할 거라고 했는데 지금 모습은 조 선수답지 않네요. 딜리버리 변화는 없는데 지금 공 5개가 연속 볼이었거든요. 혹시 컨디션 문제일까요? 105마일 강속구에도 제구가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조 선수였잖습니까?”

“확실히 이상합니다. 지금 바운드 볼만 두 개였어요. 펠러 선수가 헛스윙을 하지 않았다면 스트레이트 볼넷 출루였죠. 베어-팜 같았는데 또 마지막 공은 포심이고 잘 제구가 됐거든요. 다음 타자 상대로 어떻게 던지는지 지켜보면 알겠습니다.”

“네. 어쩌면 1회 초부터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다저스가 아까운 기회를 날렸는지도 모릅니다. 일단 2번 타자 샐린저 선수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조 선수 초구 볼! 확실히 좋지 않아요. 저렇게 제구가 흔들리는 선수가 아닌데요.”

“문제가 있다면 벤치에서 빨리 바꿔줘야 합니다. 자이언츠 불펜은 이제 여력이 있거든요. 시즌을 길게 보고 선수를 보호하는 태도가 필요하죠. 하지만 조 선수 그대로 투구를 준비합니다. 1이닝 정도는 벤치에서 지켜볼 모양이죠? 2구…… 헉!”

“…… 포수 하우어 선수와 오늘 주심 라파베 씨가 모두 그라운드에 쓰러져 있습니다. 남자라면 모두 저 고통을 공감할 거예요.”

“제가 저도 모르게 앞을 가렸다고 시청자 중 누구도 저를 비웃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원래 투수는 타석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든 마운드를 지킨다.

하다못해 타임을 외쳐도 포수가 마운드로 올라오고, 내야수가 마운드에 모이고 코치나 감독도 직접 마운드로 올라온다.

그런데 지금은 나도 모르게 뛰어갈 뻔했다.

타구가 스핀을 먹으면 어디로 튈지 야구의 신도 모르는 거라지만 어떻게 하우어와 라파베 씨를 동시에?

차라리 하우어를 제대로 맞혀버렸으면 라파베 씨까지는……

철썩! 정신 나간 내 뺨을 내가 두드렸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하우어도 2세는 봐야지.

그나저나 어떻게 되는 거지?

하우어는 케인이 대신 마스크를 쓰면 된다지만 파울타구에 소중한 곳을 맞아 주심이 교체되는 경우도 메이저리그에 있었나?

둘 다 일어서질 못하니 무진장 미안하네.

공을 때린 샐린저도 어쩔 줄 몰라 하고.

하지만 이건 누구 탓이 아냐.

천재지변에 준하는 사태라고!

닥터들이 뛰어나오고 한참이 지나서야 라파베 씨가 먼저 창백한 얼굴로 일어났고 하우어도 뒤따라 정신을 차렸다.

다만 하우어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덕아웃 행.

케인이 장비를 챙겨 입고 나왔다. 그런데 출전기회를 잡은 케인의 얼굴이 밝아 보이지 않는 건 내 기분 탓이겠지?

어쨌든 경기는 재개됐다.

퍼엉!

“스트라이크!”

다시 베어-팜 던지긴 그렇고 포심.

라파베 씨는 역시 프로다. 존 경계를 지나갔는데 내게 뿔나서 볼로 콜을 하는 일은 없는 프로.

딱!

“아웃!”

평소 볼 배합대로 포심 이후 스핀-커터.

배트스피드가 따라주지 않으면 변화를 느꼈을 땐 이미 늦지.

일단 투아웃은 잡았고. 잡았는데 투아웃을 무난하게 잡고 나니 어쩐지 다시 베어-팜이 던지고 싶다.

올해도 다저스의 3번은 다름 아닌 클로위거든.

클로위 스윙이면 떨어지는 베어-팜에 히팅 포인트를 맞출 수 있는지 궁금하단 말이지. 좋아. 던져보자.

그런데.

딱!

“악!”

이럴 수도 있는 건가?

저 앞에 이번엔 케인이 위험한 곳을 부둥켜안고 쓰러졌다.

< 2 >

MLB닷컴의 중계 게시판이 뒤집혔다.

▶ 미치겠다. 나 웃다가 눈물이 난다.

▶ 난 지금 뱃가죽이 아파서 더 웃지도 못하겠어.

▶ 저 곰탱이는 어떻게 나가는 경기마다 사고를 치냐? 자기 팀이든 상대팀이든 작살내는 게 패시브야.

▶ 큭큭! 저거야 치고 싶어 친 사고는 아니잖아.

▶ 그래도 웃겨. 기록에 남겠다. 자기 팀 포수를 둘이나 테러.

▶ 이런 공감능력 없는 자식들. 저게 웃을 일이냐? 하우어고 케인이고 아직 결혼도 못했다는데.

▶ 충분히 공감해. 자전거 타다 잘못해서 안장에만 부딪혀도 죽을 것 같았는데 곰탱이 공의 파울타구면……

▶ 어우! 막 내 몸이 움찔거린다.

▶ 깨지진 않았겠지?

▶ 모르지.

▶ 그런데 자이언츠 이제 포수는 있어?

▶ 케인이 백업이잖아. 마스크 써본 선수가 새지비뿐일 건데.

▶ 어이쿠! 새비지는 유부남인데. 2세 계획이 끝났기를 빌어야 하네.

▶ 자이언츠 포수들은 연봉에 위험수당도 줘야겠다.

.

.

“새비지. 살아서 돌아왔구나.”

“살아 와야지. 깨지면 새비지는 조앤에게 쫓겨나.”

“무슨 소리. 그나마 새비지는 2세는 만들어뒀잖아.”

“그럼 하우어랑 케인은?”

“안타깝게도.”

“Rest in Peace!”

전부 나 들으라는 말이다.

인간들이 날 놀려먹는 걸 알면서도 오늘은 누구 하나 붙잡아 응징할 생각도 안 생긴다. 사실 야구를 하다 보면 흔한 일이라 포수들도 꼭 보호대를 차는 부분인데 어떻게 파울타구가 그 쪽으로만 튀었을까?

새비지가 장비를 마지막 찼던 게 벌써 1년이 넘었지?

그래도 10년 넘게 포수로 생활했던 관록은 어디 안 가고 살아있어 천만다행이었다.

오늘은 베어-팜을 더 던지면 안 될 것 같아.

만약 새비지마저 이상이 생기면 자이언츠엔 더 포수가 없거든.

새비지 부인 조앤이 집에서 배트를 챙겨들고 뛰어나올지도 모르는 일이고.

“도대체 공에 스핀을 얼마나 먹인 거야?”

애쉬비 코치였다.

미친 듯 웃긴데 웃음을 참는 얼굴 알아?

혹시 모르면 지금 애쉬비 코치 얼굴을 보면 돼.

“그냥 전부 웃어요. 나 괜찮으니까.”

“푸하하하하하!”

“크크큭!”

“킥킥!”

인간들 웃으라고 했더니 아주 신났다.

페드로. 다저스 선수들 다 나왔는데 타석에 안 가요?

“자이언츠로 옮기길 정말 잘한 것 같아. 항상 느끼는데 너무 재밌는 팀이야.”

나가긴 나가는데 한마디 남기고 나가네.

남은 인간들이야 여전히 키득거리고 난리지만 화를 낼 일도 아니고 덕아웃을 휙 둘러봤는데. 하우어와 케인이 안 보인다.

“하우어랑 케인은 어디 있어?”

“라커룸에서 쉬는 중. 던지던 공 이야기나 다시 하자고. 베어-팜이었지?”

바르가스에게 물었는데 대답은 애쉬비 코치에게 나왔다.

“네. 낙폭 조절 때문에 스핀을 좀 많이 먹이긴 했어요.”

“낙폭 조절? 오늘 실험해본다던 게 베어-팜 낙폭이었어?”

“맞아요. 커브처럼 낙폭이 조절되면 좋을 것 같아서……”

“…… 일단 오늘은 그 실험 중지하자고.”

“그래야죠.”

고개를 끄덕이며 새비지를 힐끗 봤는데.

뭔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건 또 내 기분 탓일까?

< 3 >

오늘 다저스의 선발은 세일.

요즘 메이저리그의 일상이 난타전이라지만 20승 투수의 전력투구를 절대 쉽게 생각해선 안 된다. 1회 초에 있었던 해프닝(?)을 뒤로 하고 내가 5이닝 무실점을 달리는 동안 세일 역시 자이언츠의 타선을 딱 1실점으로 막고 있었다.

타격감 절정. 요즘 미쳤다는 말을 듣는 자이언츠 타선인데 바르가스의 한 방 이외엔 잠잠하다.

바르가스야 잘 던진다고 막을 수 있는 놈이 아니고.

오늘 시즌 27번째 경기에 벌써 홈런이 12개다. 이 페이스가 계속 이어진다면 언론의 설레발처럼 배리 본즈의 73홈런을 넘어설지도 모를 일이지.

162경기에 홈런 73개면 경기당 0.45개를 넘겨야 가능한 숫자인데 오늘로 바르가스가 0.44개를 넘겼으니까.

6회 초.

다저스의 첫 타자는 세일이었다.

여러 가지 상황이 겹쳐 자이언츠와 다저스 선수들 관계가 좋아졌다 해도 두 팀의 투쟁심이 줄었단 이야기는 아니다.

딱!

“파울!”

현재 점수는 1점 차이.

그 1점 때문에 패배를 수긍할 정도로 물러 터져선 이 메이저리그란 전장에서 살아남지도 못했을 거다.

딱!

“파울!”

첫 타자로 공격의 물꼬를 트려는 세일이 배트를 짧게 쥐고 계속 커트를 해내고 있었다. 같은 투수끼리 커트라니 조금 매너가 없는 행동 아니냐고?

난 오히려 칭찬을 해주고 싶다.

자랑 같지만 커트조차 만만한 내 공이 아니니까.

정말 가진 집중력을 모두 뿜어내는 저 자세 본받아야지.

하지만 본받는 건 받는 거고.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아쉬운 표정의 세일을 덕아웃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다음 타자로 1번 펠러 대신 대타가 나왔다.

웬만해선 팀의 리드오프를 교체하진 않는데 펠러 대신?

[저 선수 레즈 타자였는데요.]

‘그래. 패이튼 래닝. 기억 나.’

기억만 날까?

작년 레즈 돌풍의 주인공인데.

나와 첫 만남에서 홈런을 뺏어냈던 자니 버스터도 대단했지만 자이언츠 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때려낸 저 래닝도 존재감이 뚜렷했었다.

각 구단의 트레이드 상황까진 몰랐다.

오늘 다저스의 25인 로스터가 바뀐 것도 몰랐고.

지금 래닝을 대타로 세운 게 설마 자이언츠에 강한 면모를 보였던 타자라서?

[충분히 대비했잖아요.]

‘아, 긴장한 건 아냐. 사실 버스터나 래닝이 바르가스나 클로위 이상으로 위협적인 것도 아니고.’

신경 쓸 일이 조금 많아지긴 했어도 내 일상엔 변화가 없다.

경기와 훈련이 아니면 데이터나 분석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 분석 대상에 레즈가 없었을라고?

지구는 달라도 같은 NL인데?

또한 레즈 분석이 곧 월터의 타격이론 분석이다.

메이저리그 각 구단의 팀 타율을 높여놨다는 이론.

마이너와 메이저를 가리지 않고 많은 타격코치들이 그 이론의 개선점을 찾는 열풍이 부는 중이다.

그런데도 대비를 안 했다면 투수로서 직무유기잖아.

[80점짜리 포심을 보여줘요.]

‘…… 악당답게?’

[네. 악당답게.]

‘그래. 미네가 좋아하는 나쁜 남자 스타일로.’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 4 >

“래닝도 아직은 더 다듬어야겠군.”

어제 전격적으로 이뤄진 트레이드 소식을 단장이 알려왔을 때 다저스 감독은 꽤 기대를 했다.

레즈가 제 정신이면 절대 내주지 않았을 선수였으니까.

단장의 수완에 박수까지 보냈었는데 역시 지금 마운드에 선 괴수를 상대하기엔 조금 무리였던 모양이다.

오늘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105마일 포심.

그 뒤에 팜-체인지업 두 개로 무너져버렸으니 뭐.

“그래도 올해는 브레이킹 볼에도 꽤 괜찮은 타격을 보여주고 있으니 출전기회를 자주 주는 게 좋겠죠.”

“그래야지. 시즌은 이제 시작이니까.”

시즌도 아직은 초반이지만 한 투수가 모든 경기에 출전하는 것도 아니다.

현재 자이언츠에 맞대결에서 밀리곤 있지만 시즌은 길고 이 시즌이 끝날 때 성적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작년과는 반대로 다저스가 와일드카드로 올라가 지구 1위 자이언츠를 상대해서 승리를 거둘 수도 있으니까. 지금 마운드의 세일이 보여주는 투구면 그런 기대도 충분히 가능하니까.

세일은 8회 말까지 마운드에 올랐다.

단 한 번의 실투를 놓치지 않고 홈런을 때려낸 바르가스마저 다음 타석에선 범타로 돌려세우며 역투를 했다.

“오늘 세일한테 제대로 털리네.”

“조가 실점이 없어서 다행이었지. 솔직히 산체스나 세일이 긁히는 날이면 무서운 게 사실이야.”

“하우어, 넌 오늘 개인 성적이랑 그 소중이를 바꾼 거야.”

“큭큭! 1회 초부터 교체된 덕분에 타율 보전한 거야?”

“미친! 네 알은 내가 깨주마.”

겨우 라커룸에서 기어 나온 하우어가 앰브로즈의 목을 조르며 둘이 뒤엉킬 때였다.

바르가스가 날 돌아보더니 놀라운 질문을 던졌다.

경기 초반 다들 키득거리고 있을 때부터 혼자서 뭔가 한참 생각하는 것 같더라니.

“1회에 던졌던 공, 혹시 베어-팜에 커브를 섞은 거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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