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LB의 새끼 고양이-122화 (122/188)

우리 구단주가 미쳤어요! - 3

< 1 >

2036시즌까지 메이저리그 최고연봉 기록은 양키즈의 패트릭 드레이퍼가 갖고 있었다.

12년 5억4천5백만 달러. 연 평균 4500만 불이 넘는 금액.

하지만 오늘은 그 기록이 깨지는 자리였다.

7년 계약에 3억4천만 달러.

혹자는 드레이퍼의 계약에 훨씬 못 미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평균연봉 4800만 불은 분명히 드레이퍼의 윗줄이었다.

그것도 7년의 단기 FA가 바르가스의 요구였다면 더더욱.

자이언츠와 바르가스는 인터뷰에서 자세한 내용을 밝혔다.

2037년 4월에 28번째 생일을 맞는 젊은 거포에게 자이언츠는 최대 12년 장기계약을 제안했지만 바르가스가 거절했다고.

40살에 새로 FA자격을 얻어도 나이가 걸림돌이 되는 상황을 피해 7년 후에도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겠다고.

IPAT와 CLM이 신뢰를 받는 스포츠의학 덕분일까?

과거와 달리 구단이 장기계약을 원하고 선수는 거부하는 현 메이저리그 상황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경우였다.

어쨌든 FA최대어의 계약 장면이었다.

당연히 ESPN을 비롯해 스포츠전문 케이블은 물론 많은 언론사에서 취재를 나왔다.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는 바르가스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입단식이 진행되고 유니폼 입고 기념촬영.

그 후 바르가스는 이젠 동료가 된 자이언츠 선수들이 모인 자리로 먼저 이동했다. 시즌이 끝나고 개인시간이지만 새 동료의 입단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카메라들도 그 뒤를 따라 움직였고.

그런데 자이언츠 선수들 앞에 미리 와있던 카메라가 있었다.

“그럼 올해와 달리 2037시즌엔 자이언츠가 챔피언십에 나가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고 보십니까?”

다분히 2036시즌 챔피언십을 비웃는 질문.

그때 선수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걸 본 바르가스의 행동이 오늘 입단식의 최대 특종이 됐다.

불문율이라면 불문율이다.

기자가 아무리 막무가내여도 카메라를 쳐내지 않는다는 것은.

하지만 바르가스는 서슴없이 자이언츠 선수들 앞을 가린 카메라를 쳐내며 불문율 따위는 가뿐이 무시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저런 쓰레기 같은 질문도 대답해주는 거야?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착하네.”

입단 기념촬영보다 더 많은 플래시가 터지며 입단식이 단박에 난장판이 된 건 그저 덤이었다.

< 2 >

“입단식과 동시에 스타가 된 기분이 어때?”

정규시즌 MVP에 월드시리즈 MVP, 골드글러브, 실러슬러거 등 다 해먹고 FA로 초대박까지 터뜨린 자의 패기였을까?

입단식에서 그런 대형 사고를 치고도 바르가스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대신 황당함은 자이언츠 선수들 몫이었지.

거의 돌부처 급인 스톤햄마저 어이가 없는지 고개를 젓고 프린츠는 미친 듯이 꺽꺽대며 웃다가 사래가 들리고.

하우어와 아처라고 별반 다를 게 없는 반응이었다.

게다가 바르가스가 분명히 내게 던진 질문인 걸 알면서도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플래시는 왜 그렇게 많이 터져?

식장에 배치된 프런트 직원들이 달려와 기자들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때도 바르가스는 여유가 넘쳤다.

녀석이 쏟아지는 질문세례에 뭐라고 대답했더라?

“기자라고 무례한 질문을 해도 돼요? 아니, 그냥 악의적인 질문이던데 뇌의 어느 부분을 다치면 그런 질문이 일상이 돼요?”

시선은 밀려난 그 쓰레기에게 고정된 채였다.

메이저리그에 기자와 사이 나쁜 선수들이야 하나둘도 아니었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런 폭언을 들은 기자는 처음일 걸.

쓰레기의 영혼이 가출한 표정이 얼마나 재밌던지.

이젠 바르가스가 더 사고를 못 치게 우리가 달라붙었다.

녀석을 질질 끌어내 빈스네 짐으로 달려왔고 빈스에게 부탁해 오늘은 문앞에 팻말을 걸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우선 냉수부터 한 컵 들이켰다. 그렇게 겨우 한숨 돌리고 스타가 된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던 건데.

“무슨 소리야? 나야 원래 스타였지.”

“……”

“큭큭큭!”

“큭큭! 왠지 곰탱이 원조 버전을 보는 것 같다.”

뭐? 프린츠 지금 뭐랬어요?

내가 어딜 봐서 저렇게 사차원입니까?

막 발끈해서 한마디 하려던 찰라 바르가스가 한 발 빨랐다.

“조? 아까 보니 순둥이던데.”

“하하하!”

“크크크! 미치겠네.”

“바르가스, 진짜 조가 순둥이로 보여?”

“응. 난 턱을 날려버리거나 SNS에서 했던 것처럼 가운데 손가락 쫙 펼쳐서 보여줄 걸 기대했거든.”

하우어 질문에 대답한 걸 보면 날 미친놈으로 알았단 뜻이네.

이거 내 이미지 어떡하나?

“너야말로 몸서리치게 깬다. 내셔널스 있을 때는 전혀 악동이미지 없었잖아?”

“아니, 그렇게 사근사근하지도 않았어. 그래도 됐고.”

“……”

그래도 됐다는 말이 막 가슴에 사무친다.

쉽게 말해 이름값과 몸값이다. 녀석이 메이저에 쌓아온 기록이 있고 팬의 절대적 지지가 있는데 기자들이라고 함부로 긁어대지 못한 거다.

그에 반해 나는?

아무리 좋은 성적을 냈어도 이제 2년차 신예.

바르가스가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6년 동안 이뤄놓은 성과에 비하면 아직 한참 멀었다고 봐야 한다.

어쩌면 그래서 만만했던 거다. 미리 길들이려 했던 거다.

아마 개인인터뷰를 잘 안 받아줬던 게 문제의 출발이었겠지.

건방지다고 생각했을 테고 리버티 미디어와 마찰까지 겹쳐 일부 기자들의 공적 1호쯤 됐다고 생각하면 맞다.

“조, 너는 올해 실력으로 널 증명했잖아. 고개 숙이지 마. 혹시 내년에 올해만큼 성적이 안 나와도 네가 고개 숙여야할 대상은 널 응원하는 팬이지 기자 나부랭이가 아냐.”

“내가 고개 숙일 놈으로 보여?”

“…… 하긴.”

녀석이 씩 웃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질질 끌려온 곳이 뜬금없이 피자집이었으니 이상했나?

사방 벽엔 컵스와 자이언츠 선수들 유니폼이 걸려있고 벽엔 따로 케이스에 담은 사인볼이 한가득인 피자집.

간혹 요즘엔 절대 구할 수 없는 레전드의 이름이 박힌 유니폼도 있다.

“여기가 자이언츠 선수들 아지트?”

물어보는 눈이 아주 반짝거린다.

“주로 우리 1-2년차들이 자주 와.”

“왜? 자이언츠가 연차 많은 선수들은 버리는 분위기야?”

“하하하! 결혼한 사람들이야 홈경기를 할 때라도 집에서 저녁식사를 해야 쫓겨나지 않아.”

아, 스톤햄 대신 대답해줘 고마워요.

나 오늘 입단한 바르가스 머리를 열어볼까 고민했어요.

사차원도 사차원 나름이지. 어떻게 1-2년차들이 자이언츠 주전들을 따돌린단 생각을 하는 거냐고.

넌 머리 어느 쪽을 다쳤냐? 전두엽? 후두엽? 간뇌?

아무튼 음모만 꾸몄지 계획에 없던 환영식이 시작됐다.

빈스가 바르가스 얼굴을 보자마자 눈이 동그래져서 오븐으로 달려가더니 곧 특제피자를 내왔고 오늘은 특별히 맥주도 한 잔.

녀석은 입가에 거품을 잔뜩 묻힌 채 즐거워했다.

첫날부터 동료들과 어울리니 좋다나?

“여기 야구 좋아하는 여자면 작업하기 좋겠는데.”

“작업?”

“응. 여자들 취향에 따라 장소도 바꿔줘야 매너지.”

“주변에 여자가 얼마나 많아서 그런 고민을 해?”

“많아? 아냐. 양다리는 안 걸쳐.”

“……”

“……”

하하! 이거 양파 같은 녀석일세.

양다리는 안 걸치는데 자유로운 영혼이라 이거냐?

“왜들 표정이 그래? 프랑스 속담에도 있잖아.”

“…… 설마 친구와 포도주는 오래 묵을수록 좋고……”

“와! 프린츠는 아네. 여자와 침대시트는 새것일수록 좋다.”

난 바르가스에 대한 판단을 정정했다.

이빨 터는 모습을 리키의 상위호환 정도로 생각했는데 아예 차원이 다른 정신세계를 가진 녀석이다.

< 3 >

[진짜 바람둥이는 따로 있었네요.]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미네의 뾰로통한 목소리가 들렸다.

“…… 그럼 가짜 바람둥이는 누군데?”

[당연히 틈만 나면 사랑한다는 미누죠.]

“큭큭!”

바르가스의 독특함을 넘어선 사차원 정신세계가 나한테까지 불똥이 튀는데 나오는 건 웃음뿐이다.

미네야. 너 예전 모습은 다 어디로 간 거야?

[바르가스랑 놀지 말아요.]

“크흐! 그래도 오늘 내 편 들어줬잖아.”

[…… 그건 그렇지만요.]

“진짜 우리 구단주가 미쳤어. 어쨌거나 이제 바르가스를 데려왔으니 중견수 위치는 채워졌고 페티트 자리가 문젠가?”

[자이언츠에 대한 경계심 때문에 내셔널리그에서 알맞은 카드 구하긴 어려울 걸요.]

맞는 말이다.

선발진에 큰 구멍 하나 안은 부족한 전력으로도 챔피언십까지 올라갔던 자이언츠가 FA시장의 큰손이 됐다.

지난 10여년 투자에 소극적이었던 자이언츠가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면 내셔널리그 다른 구단들은 바짝 긴장하겠지.

기자들이 애써 자이언츠 전력을 폄하해도 소용없다.

각 구단의 전력분석팀이 멍청이들만 모아놓진 않았을 테고 바르가스 한 명이 가져올 시너지를 계산하느라 동분서주할 거다.

가급적 자이언츠가 원하는 카드는 외면할 게 뻔하고.

인터리그 20경기를 제외하면 정규시즌에선 만날 일이 없는 아메리칸리그 구단에서 트레이드 카드를 맞출 텐데.

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닌가?

내게 당장 급한 일은 따로 있다.

시즌 후로 미뤄뒀던 투구 최적화과정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챔피언십이 끝난 후 푹 쉬기도 했고 한국의 SEN24라는 방송국과 인터뷰부터 야구캠프 훈련과정을 담는 프로그램 촬영한다고 제대로 훈련도 못했었다.

아, 또 프리앙카랑 나이키 화보도 찍고 진짜 한국 기업 몇 군데서 CF 제안이 들어와 그 촬영도 했다.

돈을 번 건 좋았는데 아무래도 시간을 많이 뺏겼다.

작년에 시즌 후 바로 훈련에 들어갔던 것에 비하면 꽤 심하게 게으름을 피웠지.

“내년에 우릴 비웃던 녀석들 물 먹이려면 나도 다시 훈련 시작해야겠다.”

[날마다 기본훈련은 안 쉬었잖아요.]

“그래도. 내년엔 구종별로 최적화 90% 넘겨야겠어.”

[또 미스터 헬-벨께서 바빠지겠네요.]

< 4 >

퍼엉!

퍼엉!

“그만. 잠시 쉬어.”

“네.”

휴식도 훈련의 일환이라며 야구캠프 출입카드마저 정지시켰던 영감님이지만 내 훈련 스케쥴은 이미 준비해두신 후였다.

덕분에 바로 훈련을 시작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고.

단 며칠 만에 빠르게 감각이 올라왔다.

모두 영감님 덕분이지.

“확실히 적당한 휴식이 필요했어.”

“괜찮았어요?”

“괜찮았냐고? 조, 네 스핀-커터는 우타자에겐 악몽일 거야.”

“스핀-커터만 그런 게 아니지. 투구 폼이 스리쿼터로 안정되면서 모든 구종이 뒤통수에서 날아오는 느낌일 텐데.”

헬-벨께 물어본 건데 대답은 다른 영감님들에게 나온다.

야구캠프엔 이제 한적함이 사라졌다.

토미와 그리피 영감님은 타격 프로그램을 완성했다며 앰브로즈를 비롯한 리버캐츠 루키들의 조련에 나섰고, 리베라 영감님도 어떻게 된 건지 아처와 카니시 투구를 봐주고 있다.

이 자식들 비싼 인스트럭터 쓰네.

뭐 돈으로 영감님들을 홀린 건 아니겠지만.

“저 자식이 팀 옮기면 전 리그를 바꿀 생각이에요.”

“나도.”

“나도.”

차례로 하우어, 앰브로즈, 바레이타였다.

바레이타는 내가 선택에 실패할 권리를 말해주자 대뜸 다음 경기에서 홈스틸을 감행하고 내가 시켰다고 한 녀석이다.

그 죽일 놈까지 야구캠프에 합류했다.

“너희들이 먼저 옮겨라. 내가 따라가게.”

“절대 안 돼. 내 커리어와 연봉은 소중해.”

“내 손바닥에 불나는 것만 생각하면 옮기고 싶긴 한데 네 녀석이랑 벤클에서 붙을 걸 생각하면 손을 희생한다.”

“큭큭! 미친!”

한창 떠드는 중에 리베라 영감님까지 이쪽 룸으로 들어오셨다.

아처랑 카니시 투구 폼 교정 중이던 걸 봤는데.

“여긴 누가 미쳤는지 몰라도 자이언츠 구단주 존슨은 진짜 미친 모양이다.”

“왜요? 또 누굴 업어왔는데요?”

“애스트로스의 페드로, 인디언스의 도저, 타이거즈의 오도시아.”

“……”

“……”

“진짜 미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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