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구단주가 미쳤어요! - 2
< 1 >
“설마 뭘 알고 저렇게 말한 건 아니겠지?”
“그 쇼핑리스트는 저 혼자 작성했고 요한슨에게만 보여줬어요. 혹시 존슨 말고 다른 사람 보여준 건 아니죠?”
페릴은 갑자기 터진 뉴스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쉽게 말해 기자들이 간을 보는 거니까. 빅 마켓으로 현재 가장 페이롤이 작은 자이언츠가 올해 FA시장의 큰손이 될 거란 추측이야 누구나 가능한 것 아닌가.
또 그 FA시장의 최대어는 물어볼 것도 없이 바르가스고.
간도 볼 겸 진짜 자이언츠가 바르가스를 노린다면 고춧가루도 뿌릴 악의적인 추측성 기사다.
“나도 존슨 이외엔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어.”
“그럼 우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면 그만이에요. 간을 보는 기사에 휘둘릴 필요도 없고 내셔널스가 바르가스에게 QO를 제시할지도 모르잖아요.”
QO란 퀄리파잉 오퍼(Qualifying Offer)의 약어.
내용은 간단하다. 자유계약(FA)으로 풀리는 선수들을 잡기 어려운 팀은 월드시리즈 종료 후 5일 이내 선수에게 1년 계약을 먼저 제안할 수 있다.
사무국 발표 후 1주일 내에 이를 받아들일 경우 원 소속팀과 1년 재계약을 하고 다음 시즌에는 메이저리그 상위 125명의 평균연봉을 받게 된다.
바르가스 급 선수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제안 같지만 FA대박을 터뜨리는 선수들도 첫해부터 거액을 받는 건 아니잖은가.
1년쯤 QO를 받아들일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다.
“2년 연속 대권을 노렸고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한 내셔널스야. 바르가스에게 QO를 할 바엔 차라리 깔끔히 보내주는 게 그림이 낫다고 판단할 걸.”
“하긴. 수년째 페이롤 풀인 내셔널스니까요.”
지난 몇 년 페이롤을 한계까지 채웠던 내셔널스.
이제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했으니 각종 옵션부터 돈다발 풀 일만 남았다. 팬들의 반발이 있어도 바르가스까지 잡기엔 무리다.
팬들도 그런 사정쯤은 알 테고.
“아무튼 뭘 알고 떠든 게 아니라니 다행이군.”
“내일쯤 다저스나 레드삭스가 바르가스 영입을 추진한다고 또 간보는 뉴스 나올 걸요. 그나저나 존슨 반응은 어땠어요?”
중요한 건 구단주의 결정이다.
선수들에게 올해는 로스터 변경이 없을 거라고 전달했었다.
가을야구까지 진출하긴 했어도 실제 노렸던 건 내년이니까.
하지만 이젠 진짜 투자가 이뤄지고 아쉽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선수는 내보낼 때가 왔다.
먼저 구단주가 얼마나 지갑을 열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군자금이 든든해야 스토브리그란 전쟁터에 나갈 것 아닌가.
바르가스 같은 선수를 확실히 장바구니에 담으려면 제대로 된 제안을 건네는 게 맞다. 어설픈 오퍼는 서로 감정만 상하고 만다.
“난 존슨이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줄 알았어.”
“최대 12년 6억 정도로 심장마비가 와선 프랭클린 리소스 회장이란 이름이 아깝죠.”
“…… 젠장! 농담도 못하게 하는군.”
“흐흐! 빨리 말 안하면 이 위스키 혼자 마십니다.”
“내 술을 가지고 나를 협박해? 여기 경찰 불러.”
“경찰? 주 방위군까지 소집하지 그래요?”
느낌이 온다.
요한슨이 저렇게 장난을 친다는 뜻이 뭐겠는가?
이야기가 잘 안 됐다면 얼굴 딱딱하게 굳히고 있겠지.
하긴 구단 지분 50%를 넘기느라 큰 출혈도 감수했던 존슨이었는데 막상 투자에 인색했을까?
요한슨이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먼저 하나 묻지. 페티트도 끝내 내보낼 생각이야?”
“…… 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해야겠네요. 페티트가 아메리칸리그에서 뛰길 원해요.”
내보낼 선수들은 이미 정해졌다.
먼저 수비엔 문제가 없지만 타격이 살아나지 않는 중견수 알버트와 좌익수 페티트. 불펜에서도 놀라와 파머스가 팀을 떠나야 하고 확장로스터로 올라온 유망주 중에도 내년엔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지 못할 선수가 있다.
그 중에 요한슨은 페티트가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성적이 빼어났던 건 아니지만 팀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로 자이언츠를 위해 헌신했던 선수니까.
“따로 면담이라도 했었나?”
“네. 3년 전 햄스트링 부상을 입었던 페티트잖아요. 그 뒤로 수비부담이 컸던 것 같아요. 될 수 있으면 지명타자 제도가 있는 아메리칸리그가 좋겠죠.”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군. 존슨 결정은 이거야. 페이롤을 상한선까지 채우든 사치세를 물어야 하든 상관없는데 조와 리키를 반드시 자이언츠에 남길 것.”
“내년 말엔 조가 슈퍼2 조항에 포함되는 건 아시죠?”
올해 연봉협상은 별 게 없다.
자이언츠가 주고 싶은 만큼만 줘도 된다.
다만 내년엔 슈퍼2로 연봉조정신청 자격을 쥐는 조다.
올해 관계가 틀어지면 내년 말엔 조가 5천만 달러쯤 불러 자이언츠의 멘탈을 터뜨릴 수도 있다. 떠나면 그만이니까.
상황이 그렇게 흐르면 욕을 누가 먹을까?
최선은 조와 조기 장기계약을 맺는 건데 조의 에이전시에서 반대해 매년 거액 계약밖엔 답이 없다.
페릴 자신도 조를 절대 놓쳐선 안 될 선수로 생각하니 돈이 아까울 일은 없지만 구단주도 똑같이 생각할까?
“방금 사치세를 얼마나 물든 상관없다고 말한 거 잊었나?”
“…… 자이언츠에서만 3000이닝쯤 던지게 만들겠습니다.”
< 2 >
깜짝 놀라 프린츠에게 아는 거 없냐고 물었다가 비웃음만 샀다.
“공만 잘 던지지 아직 애송이 맞네. 뭐 진짜 자이언츠가 바르가스를 영입할 생각이라면 뜨끔할 뉴스긴 한데 아직 몰라. 내셔널스가 QO를 할 수도 있고. 내일이 5일짼가? 아무튼 기자들이 간 보려고 막 내던지는 말에 속지 마.”
“하긴, 바르가스 몸값이면 말린스 정규로스터를 몽땅 사고도 남을 텐데 자이언츠엔 무리죠?”
난 당연히 Yes란 대답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속단도 하지 말고.”
“…… 설마?”
“넌 존슨의 배포를 몰라. 내가 포커를 절대 함께 치지 않을 한 명을 고르라면 존슨이거든?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면 자이언츠를 바르가스로만 채우래도 채울 사람이야.”
“……”
자이언츠 정규로스터를 바르가스로만?
페이롤 따위 무시하고 선수들 연봉이 10억불은 되지 않을까?
에잇! 모르겠다.
바르가스 정도 타자가 팀에 오면 좋은 거고 아님 말고.
사실 지난 챔피언십 3차전에서 바르가스를 상대로 내가 이겼다고 말할 순 없다. 실점만 하지 않았을 뿐 3타수 1안타.
그것도 2루타를 얻어맞지 않았나.
온갖 특전에 Untouchable까지 적용하고도 맞았다.
무시무시한 녀석이다. 3차전 결승홈런도 나중에 영상을 확인했더니 아처는 거를 생각으로 던진 볼을 걷어 올린 타구였다.
확실히 볼을 빼지 못한 아처 실수 아니었냐고?
No. 존에서 공이 두 개는 빠져 있었어.
나보다 훨씬 빨리 메이저리그에 진출했고 이미 완성된 타자란 걸 알지만 콜로세움이 연차 따져가며 칼질하는 곳은 아니잖아.
그냥 아군이면 든든한 동료, 적이면 반드시 목을 따야 할 상대 정도로 생각하는 게 속 편해.
“그 한국계 아이는 만나봤어?”
프린츠는 벌써 관심 끈 모양이다.
나처럼 바르가스가 오면 좋은 거고 아님 말고?
“하필 오늘이 투석하는 날이었대요.”
“서너 시간은 걸리겠네. 받고 나서도 쉬어야 할 거야.”
“맞아요. 조금 있다 병실에서 잠깐 보든지 다음을 기약하든지 해야죠. 뭐 이제 시간 되면 자주 여기 들르려고요. 오늘 못 만나 아쉬우면 다음에 풀고.”
“자주? 그럼 진짜 차를 사야겠는데.”
“프린츠 차를 빌려주면 안 돼요?”
“차라리 마누라를 빌려달라고 해.”
“쳇! 마누라도 없으면서.”
< 3 >
아이들과 서너 시간 놀아줬나?
치료나 재활 일정이 잡힌 아이들이 자리를 떠나면서도 계속 뒤를 돌아보는 등 더 놀고 싶은 표정이 역력했지만 이젠 가야할 시간.
일단은 환자인 아이들이 무리하는 것도 좋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선 다시 제시에게 전화를 걸어 기금조성은 잘 추진되고 있는지 알아보고 태블릿을 켰다.
바르가스가 자이언츠로 올 가능성이 있다?
당연히 떠나는 이도 생기기 마련이다.
메이저리그는 그런 곳이다.
중남미는 물론 아시아와 유럽 선수들도 야구에 재능만 있다면 도전할 수 있는 인종의 용광로고 만남과 헤어짐 또한 일상인 곳.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선수경력을 한 팀에서 시작하고 끝내는 선수는 1%도 되지 않는다.
혹시 자이언츠에서 떠나는 선수가 벌써 생겼을까?
구단 방침이 2036시즌은 가급적 로스터 변동이 없을 거라고 했었는데 이제 시즌이 끝났다. 살생부라고 말하면 비참하지만 팀과 함께 할 수 없는 선수를 골라냈을 시간이다.
다만 잠깐 인터넷 기사 제목들만 살펴봤는데 아직 자이언츠 선수 중에 트레이드 소식은 없다.
“미네.”
[네.]
“누가 나갈지 짐작돼?”
[음, 자이언츠가 제국 건설을 노린다면 답은 나와 있어요. 다만 적당한 투자와 적당한 성적을 생각하면 모르는 거고요.]
적당한 성적이란 뻔하다.
5할 이상 승률에 와일드카드 쟁탈전 참여 정도?
그러다 팜에서 유망주의 포텐이 터지면 대권까지 생각하며 7월의 트레이드 마감 전에 대어를 업어온다.
이런 방법을 쓰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개막로스터가 아무리 빛이 나도 무려 162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는 주전의 부상부터 변수가 너무 많다.
단지 돈만 많이 쓴다고, 로스터에 WAR가 높은 선수들만 채워 넣는다고, 월드시리즈 반지를 보장받진 못한다.
돈이 전부였으면 월시 우승은 지난 20년 동안 양키즈와 다저스만 했어야 하게? 두 팀은 사치세도 몇 년씩 감수했잖아.
결국 아직은 구단의 결정을 모른단 대답이다.
돈은 돈대로 쓰고 성적은 죽을 쓰는 걸 피하기 위해 적당히 타협을 할 것인지 제국 건설에 나설 건지 결정은 구단주 몫이니까.
갑자기 프린츠가 말한 존슨의 배포가 생각나네.
“제국 건설을 노린다면?”
[자이언츠 타선의 쉬어가는 부분 알죠? 당연히 그 부분을 FA대어로 바꿀 거예요. 알버트 자리에 바르가스, 또 페티트 자리도 교체가 필요하고 고든은 지금 외야 백업자원인 홀과 플래툰 시스템을 운영해야 맞아요. 테이블세터 역할로 2루 앰브로즈도 타격이 약한데 월터의 타격이론을 수용한다니 보류.]
우와! 미네가 팀 전력을 이렇게 분석하고 있던 걸 전혀 몰랐다.
“쭉 생각하던 부분이야?”
[당연하죠. 미누가 월드시리즈 반지를 차려면 절대적으로 팀의 전력이 중요한데요.]
“왜 그동안은 말이 없었어?”
[미누 이제 2년차였어요. 우선 팀에서 대체불가자원이 되는 게 더 중요했거든요. 구단이 다음 시즌 구상을 어떻게 하든 절대 시장에 내놓을 수 없는 선수. 이제 미누가 그런 선수가 됐으니 첫 단추는 끼웠고 팀 구성도 생각할 때가 왔어요.]
방금 나 미네에게 칭찬받은 거 맞지?
누구에게 받은 칭찬보다 뿌듯해지는 기분이다.
첫 만남에선 무뚝뚝하게 훈련지시만 내리던 미네였다.
그 뒤로도 2년 넘게 마찬가지였지. 오죽하면 트리플A로 진출하며 매니지먼트 1차 결과를 받을 때만 해도 특전에서 ‘매니저와 친근하게’ 항목은 평가가 D였던 게 기억난다.
“좋아. 사랑하는 미네 아가씨. 다음 예상은?”
[…… 불펜도 약점을 치워야 해요. 놀라와 파머스는 함께 갈 수 없을 테고 파간과 하웰은 불펜에 정착, 카니시는 선발과 롱릴리프를 병행하게 될 걸요.]
어쨌든 장기적 구단운영에 대한 강좌시간이었다.
자이언츠가 한두 번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부활하는 것에 그칠 생각이 아니라면, 진짜 제국을 건설하려면 가야 할 방향이라나.
3년 뒤, 5년 뒤, 길게는 10년 뒤까지 포함된 이야기였다.
스포츠 구단가치 1위 팀이 되기 위한 조건이라고.
미네가 조목조목 설명을 해주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실제 팀에 폭풍이 몰아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페르시의 결혼식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였나?
미국 모든 언론의 스포츠 란에 같은 내용의 기사가 올라왔다.
<디제이 바르가스, 자이언츠의 품에 안기다!>
< 4 >
입단식엔 정말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렸다.
구단의 요청으로 나와 자이언츠 선수들도 몇 명 참가했는데 지난 챔피언십에서 실질적으로 자이언츠를 침몰시킨 선수가 팀 동료가 된다니 다들 표정이 묘했다.
“저 친구가 이젠 우리한테 가장 듬직한 타자가 되는 건가?”
“메이저리그 이 바닥은 참 재밌는 동네야.”
“그나저나 알버트만 나가는 게 아니라고?”
“페티트가 트레이드 신청을 했대.”
“아메리칸리그로 가길 바란다고.”
모두 표정이 조금 굳었다.
페티트는 좋은 선수고 좋은 동료였으니까.
물론 나는 투수와 타자라는 벽 때문에 스톤햄이나 프린츠만큼 친하게 지내진 못했지만 아쉬운 건 마찬가지다.
그래도 이렇게 헤어지지만 또 만나지 말란 법 없다.
메이저리거들 사이에 동료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건 아마 이런 만남과 헤어짐 때문이 맞을 거다.
드디어 바르가스가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었다.
플래시가 눈이 부시게 터지고 박수소리도 요란하다.
“우리끼리 환영식도 해야 할까?”
“음, 저 친구 성향을 몰라서. 싫어하지만 않으면 괜찮지.”
역시 놀기 좋아하는 우리들이 음모를 꾸밀 때였다.
“조 선수. 바르가스 선수의 자이언츠에 합류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뜸 양해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미는 자식이 있었다.
이런 자리가 아니었다면 엿이나 먹으라고 해줬을 텐데 나 때문에 동료들까지 불편해질 거란 점이 걸린다.
“좋죠. 자이언츠에 큰 힘이 될 선수니까요.”
“그럼 올해와 달리 2037시즌엔 자이언츠가 챔피언십에 나가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고 보십니까?”
하!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고 싶은 거냐?
챔피언십을 4연패로 끝낸 게 디비전 끝나고 파티나 여는 선수들의 해이한 정신무장 때문이라고?
비릿하게 웃는 얼굴에 물을 끼얹어 버리려 할 때였다.
나보다 먼저 카메라를 툭 쳐버리는 손길이 있었다.
“저런 쓰레기 같은 질문도 대답해주는 거야?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착하네.”
바르가스였다.
뭐냐? 또 이런 컨셉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