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의 창! - 4
< 1 >
2연패.
1차전이야 초반부터 계속 차이가 벌어지기만 했다. 완패.
하지만 2차전은 정말 아쉽다. 1회 초 득점도 먼저 했고 스톤햄에게 실투가 나온 것도 아니었다.
또 연장으로 접어들어 허무하게 무너지지도 않았다.
흙투성이로 그라운드를 구르며 한 점이라도 더 얻기 위해, 실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뛰고 또 뛰었다.
10회 초 자이언츠는 다시 먼저 점수를 냈다.
덕아웃에서도 말 한 마디를 아껴 스윙에 썼던 대가였다.
믿어져? 자이언츠 선수들이 스윙에 좀 더 힘을 주겠다며 말을 아꼈다고. 그렇게 뽑아낸 2점.
10회 말 내셔널스는 2점쯤은 가볍다고 따라왔다.
11회 초 또 1점을 먼저 뽑았다.
11회 말 내셔널스가 다시 따라붙었고.
이건 뭐. 은으로 된 총탄이 아니면 잡을 수 없는 라이칸스로프가 이럴까?
12회엔 양 팀 모두 득점이 없었다.
12회 초 내셔널스는 다섯 번째 투수를 투입했고 그는 내셔널스가 오늘 경기에 내보낸 세 번째 10승 투수였으니까.
불펜을 겸하는 투수가 두 자리 승수를 올렸을 구위인데 자이언츠도 쉽게 공략하긴 어려운 게 맞았다.
내가 감독이어도 결단을 내렸을 것 같다.
이미 투수 4명을 마운드에 올렸고 그 중에 10승 투수가 둘이었는데 이 경기를 내주면 타산이 맞지 않을 테니까.
더구나 이런 경기는 내주게 되면 여파가 크니까.
가져가는 팀은 기세가 오르고 내주는 팀은 꺾이기 마련이니까.
12회 말 우리 베이커 감독님도 맞불을 놓았다.
미리 아처에게 어깨를 풀어둘 것을 지시하긴 했는데 항상 설마가 현실이 된다.
어제 투구 수가 많지 않았던 하웰이나 놀라도 있지만 내셔널스를 상대로 몇 이닝을 더 던져야 할지 모르니 선택은 아처였다.
아처 역시 씩씩하게 12회 말을 막아냈다.
그리고 13회 초 페르시의 홈런이 터져 제발 이번 이닝이 끝이길 빌었는데 끝이 되긴 됐다.
13회 말 망할 바르가스 녀석이 투런을 날려버렸으니까.
진짜 오늘은 바르가스를 위한, 바르가스에 의한, 바르가스의 경기였다.
4:1로 뒤지고 있던 6회 추격의 불을 지피는 투런 포.
4:3의 한 점 차이마저 따라붙는 끝까지 8회 동점타.
8:7로 마지막 한 계단이 남았는데 역전 투런.
보고만 있는데 질릴 정도.
작년까지만 해도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작년부터 멈출 줄 모르고 진화하는 생물이 바르가스였다.
역시 내년 FA 자격을 얻기 때문일까?
정규시즌 내내 MVP급 활약을 보이고 포스트시즌 들어와선 팀을 월드시리즈로 끌어올리고 우승까지 거머쥐게 한 선수.
그런 선수가 되면 몸값이 얼마나 될까?
아처는 내 몸값이 기대된다 했는데 난 바르가스 몸값이 궁금해진다.
어쨌든 자이언츠는 적진에서 2연패를 당하고 돌아간다.
질 수도 있어. 열심히 뛰었는데 졌으면 할 수 없는 거고.
상대의 전력이, 그리고 간절함까지 우리보다 우위에 있다면 진 게 아쉽긴 해도 부끄럽진 않은 거야.
그런데 내 뚜껑을 열어버린 일은 따로 있었어.
난 절대 맞고는 살지 말라고 배웠고.
< 2 >
[…… 이렇게 사실관계를 명확히 파악하지 않은 기사?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사라지진 않을 거다. 꼭 자격을 갖춘 이들만 기자라고 불리는 세상이 아니니까. 객관이란 이름으로 악의를 포장하는 그런 자들과 싸울 생각도 없었다. 그저 거리를 두려 했을 뿐이지. 다만 내 동료들과 다저스 선수들까지 집어넣어 왜곡된 시선을 세상에 내보낸 자들에겐 조용히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주겠다.
Fuck You!
너희들은 항상 두 부류다.
너희들을 통해서 형성되는 여론만 인정하는, 꼭 누굴 가르쳐야 만족하는, 선민의식에 찌든 지배적 엘리트주의 족속이 하나.
그냥 머리를 파스타 소스로 채워 클릭 수만 올라가면 즉, 돈만 되면 그만인, 사람은 보지 않는 족속이 하나.
이렇게 말해주지.
먼저 첫 부류. 난 앞으로도 야구를 잘해서 내 발로 내려가지 않는 한 내 마운드를 지킬 거고 너희들 입맛대로 끌려 다닐 일도 없어. 무지한 선수를 가르쳐야겠단 계몽의식? 넣어둬. 그냥 솔직하게 내가 마음에 안 들고 X 같다고 하면 그건 인정해줄게.
그리고 둘째 부류. 너희들에겐 할 말이 하나뿐이다.
차라리 와서 구걸을 해. 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아니니까.]
▶ 곰탱이 조가 SNS에 올린 글 본 사람?
▶ 여기 그거 안 본 사람 있겠냐?
▶ 자이언츠 선수들 정신 놨다고 욕했는데 그게 아닌 건가.
▶ 여기 무슨 일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누가 적당히 요약 플리즈.
▶ 오늘 자이언츠 2연패하고 기사 하나 떴어. 디비전시리즈 끝난 후에 다저스 선수들까지 모여 파티나 열었다고.
▶ …… 워싱턴DC까지 날아가야 할 선수들이?
▶ 그래서 욕도 많이 했어.
▶ 파티를 열든 거기서 여자를 후렸든 경기결과만 좋았으면 넘어갔을 텐데 탈탈 털려서 더 욕을 했지. 그런데 참……
▶ 그런데?
▶ 조 SNS에 파티 사진이랑 영상이 올라왔어.
▶ 진짜 정신 나갔네. 그걸 또 영상까지 올려?
▶ 우리처럼 미리 흥분하지 마라. 디비전시리즈 5차전 중계에서도 그런 말 나왔잖아. 자이언츠랑 다저스 선수들이 산호세 병원 장기입원 환자들 초대했다고.
▶ 다 어린아이들이었고 또 군인가족들.
▶ 아! 기억난다. 다저 스타디움에 웬 군복인가 했었어.
▶ 그 아이들 위해서 한 시간 남짓 시간 보냈던 거야. 달랑 사인볼 몇 개에 경기만 보여주고 끝낸 게 아니라.
▶ 술도 여자도 없는 그런 게 파티라니 개가 웃지.
▶ 영상 보면 애들 가운데 놓고 위문공연 수준이던데.
▶ 그 와중에 터너랑 앰브로즈 노래 잘하더라.
▶ 야구 때려치우고 둘이 음악으로 데뷔해도 성공할 듯.
▶ 그래서 결론은 오해 풀렸다 이거야?
▶ 곰탱이가 올린 게 사진이랑 영상만이 아니라 문제지.
▶ 또 뭐가 있는데?
▶ 다 거저먹으려고? 글은 직접 찾아서 읽어.
▶ 충격 받아 쓰러지진 말고.
▶ 그래. 열심히 퍼 나르기만 해.
사진과 영상, 글까지 업로드를 해두고 푹 잤다.
자고 일어났더니 핸드폰엔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메시지가 수백 개. 세상이 발칵 뒤집어진 모양이지?
발칵 뒤집어진 채로 내버려둘 생각이다.
마운드에서 공을 던질 때만 마이웨이로 살던 게 아니었다.
팬의 사랑을 먹고 살아야 하는 프로선수의 자세에 왜 한 가지 해석만 있어야 하냐고.
난 앞으로도 내 해석대로 살아야겠어.
어제 경기까지 지고 열 받은 김에 화풀이할 대상을 찾은 게 아니냐고? 뭐 아니라고는 못하겠지만.
< 3 >
“곰탱이, 사고 화끈하게 쳤던데?”
“메이저리그 최고 악동 겸 독설가로 거듭나는 곰탱이.”
“그런데 너무 막 나가면 이미지 관리에 도움이 안 돼.”
“뭐 그래도 시원하긴 했다.”
훈련에 앞서 동료들이 전부 한 마디씩 던졌다.
대체로 시원하다는 반응이지만 한편 걱정이 담긴 눈빛이 그 안에 담겨 있었고.
“하하! 설마 품위 문제로 사무국 징계가 나오진 않겠죠?”
가볍게 받아넘겼다.
메이저리그에 선수가 지켜야할 품위에 대한 조항이 있긴 해도 선수들 수염마저 간섭하는 양키즈 아니면 지키는 팀도 없다.
한데 스톤햄이 날 옆으로 질질 끌고 갔다.
“조, 팀에 대한 비난을 너 한 명에게 모으려 한 거야?”
“……”
“별로 추천할 방법이 아니었던 거 알지?”
“그럴 의도 아니었어요. 그냥 기사가 기분 나빠서 터너 말대로 분풀이한 거예요.”
내가 뭐라고 비난을 내게 모아?
매듭은 묶은 놈이 풀어야 하는 게 당연하고 내가 벌인 일이 분명하니 해명도 할 겸 마음속에 있던 말을 다 털어버렸을 뿐이다.
“…… 시즌이 끝나면 금방 잊힐 일이긴 한데 기자들이 전부 쓰레기들만 있는 건 아냐. 또 내일 넌 경기 후에 수훈선수 인터뷰를 하게 될지 모르잖아? 불편하지 않겠어? 어쩌면 새비지나 페르시가 멋진 홈런을 날려 함께 인터뷰를 할 수도 있는데 네가 기자들과 험악한 말을 주고받으면 그 둘은?”
“피아 구별은 확실히 할게요. 동료들까지 불편하지 않게.”
“그래. 다만 무슨 일이 있든 우리는 네 편이야.”
“고마워요.”
그렇게 스톤햄과 이야기를 끝냈다.
하지만 팀 전술훈련, 개인훈련을 다 마치도록 감독님이나 애쉬비 코치가 나를 부르는 일은 없었다.
당장 내일 내가 선발출전이라 주의를 주지 않는 걸까?
훈련이 끝나고 야구캠프에 들렀다.
포스트시즌을 준비하며 훈련도 잠시 멈춘 상태라 특별한 목적이 있어 들르는 건 아니고 그냥 리키나 보고 싶었다.
뭔가 마음이 좀 답답했다.
“바르가스 기세가 장난 아니던데?”
역시 녀석은 오늘도 훈련에 땀을 흘리는 중이었다.
“직접 보면 더해. 어제 스톤햄부터 네리스랑 아처도 실투를 했던 게 아니었어. 존에서 공 하나는 빠지는 것마저 두들긴 거야.”
“단기전에 폭발하는 선수가 많았긴 한데 하필 바르가스가 챔피언십에서 터져서…… 내일 대비는?”
“딱히 대비할 게 있냐?”
“여차하면 걸러.”
“…… 그게 답일까?”
“물론 나라면 벤치지시 아니면 안 걸러.”
“……”
뭐냐. 이 상호모순은?
“언젠가 네가 그랬지? 이젠 도망치지 않는다고. 뭐 챔피언십이 중요한 경기는 맞지만 이번만 나가고 말 거야? 승부는 일단 피하기 시작하면 계속 피하게 되잖아. 그게 제일 편하니까. 난 어제 네가 친 사고도 잘했다고 생각해. 더러워서 피한다고 계속 피하기만 하면 지들이 옳고 이긴 건 줄 알거든.”
“스톤햄은 불편해하는 동료가 생길 수 있다던데.”
“사람이 어떻게 다 같아? 게다가 네가 사람이냐?”
“이 자식이 잘 나가다가……”
리키의 목에 헤드락을 딱 걸었을 때였다.
“조 왔네요. 지금 둘이 뭐해요?”
“하, 하하! 정의구현……”
“자넷! 이 자식이 날 죽이려고 했어!”
자넷이 들어왔고 순간 손에서 힘이 풀려 리키를 놔줬더니 녀석은 자넷의 눈이 상큼하게 떠질 말을 내뱉었다.
< 4 >
“AT&T파크에서 열리는 NL 챔피언십시리즈 3차전입니다. 오늘 자이언츠의 선발은 미누 조 선수. 지난 디비전시리즈에선 다저스 상대 홀로 2승을 거두며 자이언츠를 챔피언십으로 견인했는데 오늘 경기에선 어떨까요? 앞서 1-2차전에선 내셔널스 타선이 마우나로아 화산처럼 폭발했거든요.”
“내셔널스 타선이야 지난 두 경기만이 아니죠. 정규시즌이나 디비전시리즈에서도 익히 봤던 타격이에요. 조 선수가 어떤 대비를 하고 나왔을지 그게 궁금할 뿐입니다. 이 챔피언십시리즈 시작 전부터 창과 방패의 대결이란 말이 나왔는데 아마 3차전에서 어느 쪽이 더 단단한지 확실히 알 수 있겠죠.”
“1-2차전은 창의 승리. 3차전은 방패의 승리가 될 수 있을지 저도 궁금합니다. 조 선수가 기세로는 내셔널스의 창에 절대 밀리지 않을 선수니까요. 무엇보다 어제 생긴 논란을 조 선수 스스로 잠재울 수 있을지 모두 주목하는 중이고요. 주심 경기시작 콜을 불렀습니다.”
관중석에서도 숨을 죽이고 지켜본다.
내가 지른 불이 너무 커졌거든. 동료들이야 오늘 경기를 생각해서 침묵을 지켰는데 다저스, 로키스, D백스 선수들이 SNS와 개인 인터뷰를 통해 입장발표를 해댔다.
내용들은 모두 같았다.
<선수들의 행동을 너희 따위가 검열하려 들지 마라.>
<조는 자신의 투구로 스스로를 입증할 거다.>
부담이 100배가 됐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켜 봤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세뇌를 걸었다.
마운드에서든 어디서든 난 그냥 나.
내 투구만 잊지 말자.
초구! 하우어의 미트가 고정됐다.
퍼엉!
“스트라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