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의 창! - 2
< 1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0 LA다저스]
[와일드카드의 반란, 또 시작되나?]
[카디널스를 대신해 가을좀비로 태어나는 자이언츠!]
[내셔널스에 맞서게 될 새로운 방패 자이언츠의 원투펀치!]
자이언츠의 챔피언십시리즈 진출은 사실 이변이었다.
뭐래도 상대가 NL 승률 1위를 끝까지 유지한 다저스였으니까.
강력한 원투펀치는 비슷하다 해도 불펜과 타선의 역량을 생각하면 다저스의 손을 들어주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분명히 이변이 맞다. 하지만 길고 긴 메이저리그 역사에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은 팀이 어디 한두 번 출현했나?
축제는 얼마든지 남았고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새로운 창과 방패의 대결에 몰려들었다.
다만 자이언츠의 승리를 예측하는 전문가는 역시 적었다.
디비전시리즈를 5차전까지 이어간 피로도 크고 또 홈경기 어드밴티지가 내셔널스에 있어 장거리비행까지 한 자이언츠.
그에 비해 디비전시리즈를 4차전에서 끝내고 경기감각은 남긴 채 홈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내셔널스.
사실 누가 봐도 내셔널스의 우세가 점 처졌다.
그런 분위기 속에 무거운 몸을 일으킨 동료들은 드디어 챔피언십시리즈를 대비한 첫 훈련에 들어갔다.
나와 짝을 이뤄 몸을 풀던 프린츠가 비명을 질러대며 앞으로 경기가 만만치 않을 걸 걱정했다.
“내셔널스 타선이 제대로 물이 올랐던데.”
“내셔널스랑 컵스 4차전 경기 보고 하는 말이죠?”
“맞아. 컵스 허드슨이 사흘 휴식 후에 출전한 게 무리긴 했다지만 그렇게 두들길 줄은 몰랐거든. 영상을 봤더니 코스나 구종을 가리지 않고 때렸더라고.”
나도 동의한다.
1차전 내셔널스 타선을 꽁꽁 묶었던 브랜든 허드슨.
2036시즌 정규리그 18승8패 ERA 3.10을 달성한 컵스 부동의 에이스를 상대로 2이닝 7실점의 수모를 안긴 내셔널스 타선이다.
결과를 보고 혀를 내두르긴 했는데 당장 급한 게 내가 출전할 디비전시리즈 5차전이라 제대로 분석도 못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어제 밤 프린츠는 영상분석을 끝낸 모양이다.
영상분석은 TV로 중계를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투수가 한 타자를 상대로 5개의 공을 던졌다면 그 구종, 구속, 무브먼트, 코스까지 전체를 살피고, 각 공에 대한 타자의 대처와 스윙 역시 분석대상이다.
진짜 눈 빠지는 작업이라 보통은 팀 전력분석관이 보내준 데이터를 활용하는데 역시 프린츠답다고 해야 하나.
“허드슨 구위는 어땠어요?”
“최대 98마일 구속에 슬라이더랑 포크볼도 나쁘진 않았어.”
“나쁘지 않다는 정도론 어림도 없다는 뜻이네요.”
“바르가스만 날아다닌 게 아냐.”
타격감 좋은 타자 한 명 걸러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우리 타자들이 과연 맞불을 놓을 수 있을까?
“저런. 프린츠 매 경기 나갈 수도 있겠는데요.”
“크흐! 2년 전이 생각난다.”
“맞다. 프린츠는 2년 전에도 챔피언십에 왔었잖아요. 그땐 분위기가 어땠어요?”
“뭘 물어봐. 스톤햄 빼고는 탈탈 털렸지.”
웃으며 말은 하지만 속이 편하진 않았을 텐데.
선발진이 그렇게 취약할 때였으니 농담이 아니라 진짜 계속 불펜에서 대기하며 마음을 졸였을 거야.
그때에 비해서 자이언츠는 얼마나 나아졌을까?
자랑이 아니라 솔직한 말로 내가 합류한 선발진은 무게감이 생겼지만 불펜과 타선은 물음표다.
당시 자이언츠 막강불펜은 프린츠만 남은 셈이고 타선 역시 리빌딩을 추진하며 칼날이 많이 무뎌졌다.
리버캐츠 산 악마들이 대거 정규로스터에 올라와 젊은 패기를 내뿜었지만 아직 물이 올랐다고 말하긴 어려운 게 맞으니까.
“그래도 뭐 모르는 거잖아요. 다저스만 해도 우리가 이길 거라 예상한 사람들이 있긴 했어요? 자이언츠 팬 빼고.”
“맞아. 팀에 곰탱이도 하나 생겼고 붙어 볼만 하지.”
“젠장!”
“칭찬이잖아. 그나저나 제프랑 아이들 기금조성에 대해선 네 에이전트에게 말해뒀어?”
눈에 힘 빡 줬더니 잽싸게 말을 돌리는 프린츠다.
참 영리하다니까.
“제시에게 어제 전화했어요. 일거리 늘려놨다고 한소리 듣기도 했고요. 그런데 기금 출자할 방법을 참가하는 선수들이 각각 정해야 대상선정과 운용에 대해 논의한대요.”
“기금운용은 내가 믿을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어.”
“와우! 아는 사람 있어요? 난 로건네 회사에 말해볼까 했는데.”
“아, 네 작은 형이 애널리스트랬지?”
언젠가 흘리듯 가족들에 대해 이야기한 걸 기억도 잘한다.
확실히 프린츠는 야구를 안 했어도 어떤 분야에서든 두각을 나타냈을 사람이다.
“네. 뉴욕에 있어요.”
“기금운용 감사(監事) 정도는 할 수 있겠네. 기금은 프랭클린 리소스에 위탁하고 감사를 형에게 부탁해.”
“프랭클린 리소스? 우리 구단주 존슨이 회장으로 있는 회사?”
“그래. 안 될 거 없잖아. 운용수수료도 딱 원가로.”
“…… 전부터 구단사정에 대해 잘 아는 프린츠가 많이 궁금했거든요. 혹시……”
“혹시는 무슨. 그냥 존슨과 친척이라고 알아둬.”
“……”
우와! 이제 설명이 다 되네.
젊은 나이에 가진 어마어마한 저택부터 자이언츠 속사정에 대한 정보, 자이언츠를 안 떠나는 이유까지.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에 따르면 일종의 금수저?
설마 직계가족인지 거기까진 물어볼 엄두도 생기지 않는다.
< 2 >
“존슨이 꽤 빨리 움직였네요?”
페릴은 요한슨이 건네준 서류를 보더니 눈이 동그래져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럴 만도 한 게 1년을 생각한 지분인수 작업이었다.
일단 존슨이 회장으로 있는 프랭클린 리소스는 투자회사다.
IT업계의 중심인 캘리포니아 전역은 물론, 미국 각지의 기업에 투자를 하고 당연히 얽힌 관계가 하나둘이 아니다.
간단히 말해 지금 이사회 구성원들이 자이언츠 운영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도 얼굴을 붉히는 사이가 되면 곤란하다.
지루한 협상과 줄다리기가 아주 당연해 보였다.
그런데 벌써 50%를 채웠다고?
상당한 양보를 하지 않았다면 어려운 일이다.
당장 올해 자이언츠는 시즌권 판매부터 유니폼 등 굿즈 판매까지 수입이 대폭 늘었지만 그 수익을 재투자할 셈이었다.
일부 이사들은 그 결정에 격렬하게 반대를 했고. 하지만 이제부턴 그런 반대와 잡음이 없어졌단 뜻인데.
마냥 좋아할 순 없다.
존슨은 막대한 희생을 감수하고 투자를 한 거다.
자이언츠의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 투자는 빛이 바랜다. 이제 50% 이상의 지분을 쥔 존슨이 운영방향을 틀어버릴 수도 있다.
“자네라면 그 숨은 뜻을 알겠지?”
“아무래도 부담은 많이 되죠.”
“하하! 걱정 마. 존슨도 올해 성과는 충분히 거뒀다고 생각하니까. 와일드카드 결정전 진출. 승리. 디비전시리즈에서 다른 팀도 아니고 다저스에 승리. 그래서 어제 경기를 보다가 반대파 이사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딜을 던진 거야.”
“…… 3년 남은 거 아십니까?”
“3년?”
요한슨이 고개를 갸웃하는 그 시간을 페릴은 견디지 못했다.
대답을 기다리기엔 자기 마음이 더 급했으니까.
“중계권 재협상 말입니다.”
“아! 이제 3년 남았지. 그걸 생각하고 있었나?”
“2010년대 자이언츠는 서부의 제왕이었어도 중계권 수익에선 다저스에 밀리는 계약을 맺었죠. 기억나십니까?”
요한슨은 미간을 찌푸렸다.
기억하냐고? 당연히 기억한다.
2013시즌을 끝으로 TV중계권 계약이 끝났던 다저스는 20년 계약을 맺고 최대 75억불에 달하는 수익을 뽑아냈다.
그런데 2014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했던 자이언츠는?
비슷하게 지역스포츠 네트워크와 협약을 맺는 방식으로도 오히려 다저스보다 수익이 적어야 했다.
광역권 인구부터 샌프란시스코가 LA보단 떨어지니 이해는 하겠지만 구단의 투자가 미온적이었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투자가 적으면 성적도 떨어진다.
막장 말린스를 대표로 하는 스몰마켓이 때론 선전을 하면서도 절대 비싼 값에 중계권을 팔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자네 말은 자이언츠가 다저스를 넘어설 수 있다?”
“넘지는 못해도 동급은 가능합니다. 올해 영건들의 활약이 앞으로 3년만 지속되면 존슨의 투자는 몇 배로 돌아와요. 투자를 반대했던 이사들은 확실치 않은 미래에 거액을 쓰는 결정이 싫었겠지만 존슨은 디비전시리즈를 보며 믿은 거죠.”
그렇게만 된다면 페이롤? 문제도 아니다.
그깟 사치세도 적당히 물어줄 수 있다. 다저스는 사치세를 수년씩 물면서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탓에 자이언츠 이후 NL 서부지구 최강자로 군림했다.
“자네 표정을 보니 올해 존슨은 기록적인 지출을 하겠군.”
“진짜 기록은 장기계약을 맺어야 나올 텐데 아직 몰라요.”
< 3 >
자이언츠의 선전에 따른 여파는 한국에도 미쳤다.
한국계 미국인. 어쨌든 미국인이지만 조민우라는 한국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는 투수에게 한국 MLB 팬은 관심이 많았다.
우선 실력이 걸출했고 화제 거리가 많은 선수였으니까.
2년차 20승 투수.
한 시즌 노히터 두 번에 퍼펙트까지 기록한 투수.
메이저리그의 50년이나 묵은 20K 신기록을 갈아치운 투수.
그저 말뿐인 스캔들로 끝났지만 할리우드 여배우와 염문설을 뿌리기도 했고 일부 기자들과는 아주 상극인 투수.
인터뷰 대신 SNS를 활용해 팬에게 직접 질문을 받고 답하며 기자들의 디스엔 서슴없이 맞상대해 탈탈 털어버리는 투수.
단독인터뷰라도 따게 되면 진짜 특종이 될 텐데 아직까지 도무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실력 이전에 인성이라든가 모국의 기자에게 거만하다든가 그를 자극할 만한 기사를 올려도 아예 반응도 없었다.
불쾌하단 반응이라도 있어야 어르고 달래볼 텐데.
“무조건 샌프란시스코로 가라고요?”
차라리 무시가 되면 좋겠지만 이젠 디비전시리즈에서만 2승을 달성하며 팀을 챔피언십시리즈로 이끌었다.
“그래.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어.”
“아니, 전에는 무조건 안 가봤답니까? 그 선수 에이전트를 통해서도 인터뷰는 거절, 직접 찾아가도 구단에서 차단. 숙소랑 구장, 야구캠프만 오가니 따로 취재할 것도 없어요.”
“그동안은 시즌 중이었잖아.”
“그럼……”
“어디까지 올라가든 완전히 올 시즌 끝나고 접촉해봐.”
스포츠 전문방송을 내세워 새로 개국한 한 방송국 내에서 오가던 대화였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핫한 한국계 선수를 꼭 붙잡아 인터뷰를 따내란 특명이었고.
< 4 >
드디어 챔피언십시리즈 1차전.
내셔널스 파크가 관중으로 가득 찼다.
호쾌한 타격으로 2년 연속 챔피언십시리즈에 오른 만큼 내셔널스의 창이 자이언츠의 방패를 부숴주길 기대하는 관중들.
그들은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고.
내셔널스 타선은 그 기대에 기꺼이 부응했다.
따악!
“와아아! 바르가스!”
“투수들 오늘 10점쯤 줘도 되겠다.”
1회 초 자이언츠 공격은 1안타 무득점.
하지만 1회 말부터 내셔널스 타선은 자기들이 왜 NL을 대표하는 타선인지 실력으로 입증했다.
“카라스코 공이 나쁜 게 아닌데.”
“타격감이 너무 좋아. 지금 내셔널스 상대로는 정직하게 승부해서 QS를 보장할 투수가 한둘이나 있을까 의문이야.”
질린 표정의 하웰이 1회부터 불펜에 나가며 했던 말이다.
1회 2실점.
이 정도야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겠지만, 2회 초부턴 자이언츠 타선도 맞받아치기 시작했지만 내셔널스는 1회 득점으로만 멈춘 게 아니었다.
2회 말이 끝나고 1:3
3회 2:5
4회 2:6
5회 3:8
6회 5:11
6회 말이 끝났을 때 자이언츠는 벌써 4번째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간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