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 4
< 1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7:4 애리조나 D백스]
[체이스필드를 탄식에 젖게 만든 그랜드슬램!]
[다저 스타디움으로 가는 팀은 자이언츠!]
[NL디비전시리즈 첫 경기는 리그 다승 1-2위의 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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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도 참 많이 올라왔다.
경기에 대한 분석? 현장에서 마른 침을 삼켜가며 지켜본 난데 매 이닝 점수가 어떻게 났는지 살펴볼 필요가 없다.
눈길을 끄는 기사는 역시 4번째.
다저스와 자이언츠가 디비전시리즈에서 만나게 된 이상 산체스와 내 대결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됐다.
정규시즌에선 한 번도 싸워보지 못했다가 가을야구에서 처음으로 격돌이라니 꼭 누군가 꾸민 장난 같다.
산체스의 올해 성적은 무시무시하다.
30경기 출전에 26승3패. ND가 단 한 번뿐이다.
211이닝을 던졌으니 매 경기 7이닝을 살짝 넘긴 수준.
분업화가 철저한 현대야구에선 250이닝을 넘긴 내가 이상한 거지 산체스의 이닝소화능력이 절대 떨어지는 게 아니다.
투수왕국 다저스면 굳이 산체스에게 완투를 시킬 이유도 없고.
2.31의 평균자책점도 리그 최정상이고 1-2점차 승부에서 매번 승리를 챙겼던 걸 보면 멘탈 또한 튼튼하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투저타고 시대란 말도 의미 없다.
베리 본즈를 비롯해 40홈런 100타점이 넘쳐흐르던 스테로이드 시대에도 마스터가 있었고 페드로 마르티네즈, 랜디 존슨 등 메이저를 폭격했던 투수들은 쭉 계보를 이어갔다.
양대 리그 평균 ERA가 계속 높아지든 말든 나완 관계없는 일이라며 정상에서 군림하는 투수들.
당연히 투수 사이에 빈익빈부익부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올해 성적은 나도 꿀리지 않으니까 겁먹진 말자.
클릭!
당연히 경기에 대한 예측이 나올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 미누 조 선수는 이제 2년차 투수로 연봉조정신청의 대상자가 아니다. 다만 MLB에서 규정하는 서비스타임의 슈퍼2 조항엔 충분히 들어간다. 슈퍼2 조항이 뭔지 잘 모르는 독자를 위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메이저 출전기간이 만 3년에 미치지 못하는 2년차 선수들 중 일수로 계산해서 서비스타임이 전체 선수들 중 상위 22% 연차의 선수들에 한해, 만 3년이 되기 전에 연봉조정 기회를 주는 제도다.
그런데 지금 상황엔 참 아이러니한 부분이 있다. 만약 자이언츠의 데니스 리키 선수가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을 접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2037시즌 후에도 조 선수가 슈퍼2 조항을 통해 혜택을 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작년 리키 선수의 콜업이 조 선수보다 더 빨랐기 때문이다.
이유야 무엇이든 내년 슈퍼2 조항에 해당되는 조 선수가 일단 연봉조정신청을 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올해 다승2위, 또 평균자책점과 탈삼진 1위를 달성한 조 선수가 내년에도 비슷한 성적을 낸다면? 연봉조정위원회는 조 선수의 손을 들어주게 될 것이다.
자이언츠가 그 조정신청을 거부하면 조 선수는 바로 FA자격을 얻어 메이저리그 전 구단이 오퍼를 넣을 수 있다.
어쩌면 양키즈의 패트릭 드레이퍼 선수가 12년에 5억4천5백만 달러를 받는 메이저 최대연봉기록이 깨질 가능성도 매우 높다.]
여기까지 읽다 태블릿을 집어던졌다.
뭐 이런……
기사인지 칼럼인지 제목 따로 내용 따로. 뭐냐?
내셔널리그 다승 1-2위 사이의 혈투에 대한 내용은 절반뿐.
나머지 절반은 뜬금없이 산체스와 내 연봉비교로 시작해 내년 내가 연봉조정신청을 하게 될 상황 서술이다.
이러니 쓰레기 기자들이 욕을 먹지.
그냥 흥밋거리 기사를 쓰려고 했다면 연봉 3천만 달러 투수와 옵션을 넣어도 2백만도 안 되는 투수 비교였으면 됐다.
그런데 느닷없이 슈퍼2 조항은 뭐고 리키 언급은 뭐야?
확 고소를 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들쑤시지 않아도 마음이 불편할 리키다.
첫 콜업은 아예 나보다 1년이 빨랐고 작년에도 나보다 먼저 올라와 망가진 자이언츠 선발진을 일으켜 세운 리키.
스톤햄이 자리를 비운 사이 부상까지 감추고 팀을 위해 헌신했던 녀석이다. 그런 리키의 헌신이 없었다면 자이언츠가 승률 5할이나 유지할 수 있었을까?
또 오늘의 환희와 가을야구를 만끽할 수 있었을까?
리키에게 상처를 입혀가며 아직 1년이나 남은 일을 들먹이는 의도가 뭔지 궁금하다.
< 2 >
“왜 표정이 뚱해? 혹시 컨디션 안 좋아?”
프린츠였다.
답답한 마음에 호텔 마사지나 받을 수 있을까 해서 나왔는데 선객으로 프린츠가 먼저 와 있었다.
하긴 프린츠도 오늘 2이닝 역투를 했다.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선 쉬게 해줘야할 건데.
“거지같은 칼럼을 하나 읽고 눈 버렸거든요.”
“하하! 내용이 어땠는데 그래? 사람 하나 잡을 표정이다.”
방금 읽고 온 쓰레기 칼럼에 대해 말해줬다.
“리키 이야기만 안 꺼냈어도 괜찮았을 거예요.”
“그런 자식들이 재활하는 선수 신경이나 쓸까. 어설픈 선민의식으로 무장하거나 아예 클릭 수만 생각하는 자식들인데. 논란이 많이 만들어질수록 유리해서 더해.”
“그냥 1차전 전망을 어떻게 하는지 보려다가 에잇!”
“전망 같은 건 왜 봐? 보면 달라져? 그냥 던지던 대로 던져.”
언제였지?
작년 데뷔전을 앞두고 스톤햄에게 들었던 말과 같다.
제구나 무브먼트, 상대할 타자의 장단점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너 던지던 방식을 고수해라.
“알아요. 그건 그렇고 구단이 저랑 연봉조정신청까지 가서 조정을 거부할 확률도 있어요?”
“음, 모든 어른이 착하진 않다는 거 알지?”
“착하지만 않으면 다행이게요.”
“너 메이저리그 기록에 빠삭하지? 2017년 월드시리즈 MVP는?”
“휴스턴 애스트로스 조지 스프링어! 날아다녔죠.”
정규시즌에선 솔직히 MVP급 활약은 아니었다.
최종성적이 140경기에 출전해 타율이 0.283 출루율 0.367, 장타율이 0.522, 34홈런, 85타점을 기록했으니까. 그래도 리드오프란 포지션을 감안해야 한다.
자기 타격만 생각할 수 없는 게 리드오프 아닌가.
수비 포지션도 우익수에서 후반엔 중견수를 맡았다.
넓은 수비범위의 부담에 리드오프 역할까지 했으면 지금 터너 수준에 해당하는 활약이었다.
또 이 선수가 월드시리즈에선?
시리즈 타율 0.379에 5홈런 7타점으로 애스트로스가 1962년 창단 후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는데 1등 공신이 됐다.
“스프링어의 메이저리그 4년차 때 일이지. 그런데 그런 선수를 애스트로스는 2014년 콜업을 할 때 고작 7년 2천3백만 달러로 계약을 했어. 그 과정에서 계약에 동의하면 바로 콜업해주고 아니면 못 해준다고 애스트로스가 협박을 했던 거야.”
“미친…… 그런 계약을 받아들였어요?”
7년에 2천3백만?
완전히 호구 잡힌 노예계약이다.
매년 천만, 2천만을 받아도 부족했을 선수였는데.
“네 말대로 서비스타임 때문이었지. 2014시즌이 시작하고 곧바로 콜업하면 2017년부터 연봉협상 대상이 되니까. 마이너리그에서도 성적 좋았고 예상대로 성장하면 2017년 첫 연봉협상부터 천만 달러 가까운 돈을 줘야 하는데 애스트로스는 그게 싫었지. 스프링어는 유망주치고는 나이가 많아서 콜업이 늦어지면 손해라 그 협박에 굴복했고.”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건 몰랐다.
혹시 자이언츠의 장기계약 논의에도 그런 면이 있나?
“설마 자이언츠도……”
“존슨은 아냐. 이번에 감독이랑 충돌했던 일부 이사들이 장기계약을 싼값에 맺으려고 수작을 부린 거지.”
“헨리 소로의 말이 맞았네요.”
“헨리 소로? 누구야?”
“헨리 데이비드 소로. 1800년대 문학가예요.”
“…… 그 사람이 뭐라고 했는데?”
“어른들은 자신들이 가치 있는 삶을 사는데 실패했음에도, 자신이 경험이 많으니 다시 말해 실패를 통해 쌓아 올린 연륜이 있으니 더 현명하다고 착각한다.”
연륜과 지혜가 존중받아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나이 먹은 이들이 전부 존중받을 가치가 있을까?
“하하! 내가 너무 세상에 불신을 심어주나?”
“아뇨. 과거 애스트로스나 지금 자이언츠 일부 이사들이나 내세운 논리가 뭔지는 알아요. 구단 입장에선 장기계약한 선수가 어떤 이유든 활약이 저조할 경우에 보험을 들어야 하니까요. 무작정 큰돈을 주고 망하는 경우도 많았고요. 하지만 그 위험부담을 선수에게만 지우려하면 괘씸하죠.”
내가 씩씩대자 프린츠가 킥킥거리며 웃어댔다.
“그래도 넌 스프링어랑 사정이 다르지. 스프링어는 메이저 데뷔도 못한 상황에 장기계약이었고 넌 작년 올해 성적이 어때? 네가 본 칼럼에서도 산체스와 비교를 해댔다며? 또 진짜 구단이 애매하게 굴면 내년 후엔 연봉조정을 신청해. 5천만 달러쯤 부르고 만약 구단이 거부하면 다저스로 가. 그리고 자이언츠 전마다 출전하는 거야. 그렇게 20년 정도 자이언츠에 전승을 해버려. 베이브 루스 팔아치운 레드삭스는 비교도 안 될 걸.”
우와! 가슴이 뻥 뚫리는 말이다.
진짜 밤비노의 저주 시즌2를 찍어줘 버릴까?
그나저나 갑자기 프린츠의 가문이 궁금해졌다.
저택만 봐도 일반인은 아니고 구단주인 이사회 사정에 대해서도 잘 알고 도대체 정체가 뭐지?
< 3 >
괜히 엉뚱한 칼럼 읽었다가 어수선했던 마음은 다음날 아침 정상으로 돌아왔다. 프린츠가 시원한 말을 해주기도 했지만 내가 원래 좀 무디고 단순하다.
외부상황에 예민해져서 공을 못 던지는 일은 없다.
그래서 멘탈 좋고 심장 튼튼하단 말을 듣는지도 모르고.
“공 좀 볼까?”
전술훈련이 끝나고 하우어가 알아서 장비를 챙겨왔다.
어제 그랜드슬램을 날리고 자기 타구를 자기가 믿지 못해 멍하던 녀석은 어디 가고 헤벌쭉 웃음을 달고 다닌다.
이 자식 맛 좀 봐라.
“미트 안에 보호 장갑 몇 장이냐?”
“걱정 마. 두 장이나 꼈어.”
“그래?”
어깨는 충분히 풀어뒀고 70%부터 시작했다.
퍼엉!
“아가씨! 이런 공은 샌프 하이스쿨 애들도 던져.”
저 자식이 지금 나보고 아가씨?
죽여주마.
80%!
퍼엉!
“조금 낫다. 그래도 아직 곰탱이 피칭은 아냐.”
흐흐. 80% 정도는 여유 있겠지.
조금 더 올려주마.
퍼엉!
“오! 좋아. 설마 이런 공 2-3이닝 던지다 퍼지진 않을 거지?”
원래 경기에서 네가 받던 공도 아니거든.
그냥 바로 100%!
퍼엉!
“…… 자, 잠깐만.”
퍼엉!
“너 지금 뭐야? 왜 폭주하는데?”
퍼엉!
“이 미친놈아! 그만 던져!”
< 4 >
다저 스타디움.
5만6천 명을 수용하는 이 구장이 오늘따라 더 커 보인다.
“와아아!”
“산체스! 샌프란시스코 촌놈들을 밟아버려!”
5만6천 명의 환호.
5만6천 명의 야유, 저주.
일반인은 이런 걸 한 몸에 받을 기회도 거의 없겠지?
“플레이 볼!”
일단 환호를 받은 그렉 산체스의 투구가 시작됐다.
퍼엉!
“스트라이크!”
역시. 도망가는 피칭을 하는 투수는 절대 메이저리그를 지배하지 못한다. 선두타자에게 바깥쪽도 아닌 몸 쪽 포심.
터너가 멍하게 초구를 바라만 봤다.
퍼엉!
“스트라이크!”
2구가 오히려 바깥쪽 낮은 코스.
볼 배합이 완전히 타자의 허를 찌르는 형태다.
다음 공은 뭐가 될까?
딱!
“파울!”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지만 홈플레이트 앞에서 우타자 바깥쪽으로 휘어지는 횡 슬라이더.
터너가 손목을 비틀어 가까스로 커트에 성공했다.
놔뒀으면 바깥쪽에 꽉 차는 스트라이크 콜이었을 거다.
산체스 정도의 투수에겐 스트라이크 존의 배려도 있으니까.
최대한 공을 많이 보여줘. 터너.
그런데.
퍼엉!
“스트라이크 아웃!”
세상에. 터너가 스윙도 못해보고 삼진이라니.
무슨 저런 커브가…… 한때 공공의 적이었다는 커쇼가 생각난다.
리키도 커브로 절반은 먹고 사는데 리키 미안!
네 커브는 조금 더 다듬어야겠다.
앰브로즈가 타석에 들어갔다.
이틀 전 브라이언트를 상대로 2안타를 뽑아냈던 앰브로즈.
산체스를 상대로도 날아다녀봐.
딱!
“아웃!”
헐! 초구부터 패스트볼이 아닌 커브?
차라리 헛스윙이 나왔어야 했는데 앰브로즈가 타격감이 좋다보니 오히려 평범한 땅볼이 돼버렸다.
이젠 페르시.
퍼엉!
“스트라이크!”
다시 포심이었다.
저 볼 배합 판단은 지금 누가 내리고 있을까?
공도 좋지만 진짜 허를 찌르는 볼 배합이다.
퍼엉!
“스트라이크!”
2구가 슬라이더.
딱!
“아웃!”
3구 역시 슬라이더. 내야로 높이 뜬 타구였다.
페르시의 스윙이 밀릴 정도의 구위란 말이지?
1회 초 자이언츠 공격이 너무 간단히 끝난 느낌이다.
그래선지 관중석의 환호는 더 커지고.
“조가 설마 떨지는 않겠죠?”
“어제 하우어 앉혀놓고 무력시위도 했다면서.”
무력시위?
맞다. 예비 무력시위였다.
그리고.
퍼엉!
“…… 스트라이크!”
진짜 무력시위는 방금 시작됐다.
함성으로 가득 찼던 다저 스타디움이 침묵에 휩싸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