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LB의 새끼 고양이-93화 (93/188)

그래! 제물이 필요하던 참이다. - 4

< 1 >

1회 말 리드오프가 몸 쪽 공에 “Fuck!”을 내뱉었을 때부터 이 상황은 절반쯤 예상돼 있었다.

흔히 말하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안타 셋, 볼넷 하나로 출루시킨 타자 포함하면 방금 전까지 18명의 타자를 상대하며 몸 쪽 공만 던져댔으니 당연한 일이다.

다만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100마일짜리 공에 팔꿈치를 들이밀던 자해(自害).

또 그대로 타석에서 뒹구는 동료들 두고 일어난 벤클.

마지막으로 벤클에서 배트를 휘두르던 막 가자는 행동.

난 원래 브레이브스란 팀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아마 드래프트에서 지명이 됐어도 고민해봤을 걸.

왜냐고?

마이애미 말린스엔 영구결번이 딱 두 명뿐이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전체에서 영구결번인 재키 로빈슨을 제외하면 호세 페르난데스. 그 한 명이라고 봐야 맞고.

호세 페르난데스.

쿠바에서 망명해 2011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14순위로 말린스에 지명됐던 투수.

20살 나이에 싱글A에서 바로 빅 리그 데뷔라는 파격적인 콜업.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데뷔 첫 해에 신인왕 수상부터 사이영상 3위라는 성적을 거두며 말린스의 에이스이자 메이저리그 전체를 대표하는 영건으로 성장했던 선수다.

그가 신인왕을 탔던 2013시즌 마지막 경기가 브레이브스 전이었다.

홈런을 맞았다. 맞을 수 있다.

아무리 잘 던져도 메이저에 괴수가 하나둘인가.

문제는 홈런을 치고 타구를 감상하며 페르난데스를 조롱했고, 같은 이닝 다음 타자는 플라이 아웃을 당하고 1루에서 페르난데스를 향해 트래쉬토킹을 던졌다는 점이다.

이마저 인정할 수 있다.

어린 투수를 흔들면 경기를 풀어나가기 쉬우니까.

양아치 짓을 해서라도 이기겠다면 받아들여야지 뭐.

그런데 페르난데스는 정면으로 부딪혔다. 타석에 들어가 직접 홈런을 때려내고 똑같이 되갚아준 것이다.

타구 감상과 느린 베이스러닝 조합은 스무 살 루키의 패기였다.

그때 홈플레이트를 밟으러 들어오는 페르난데스를 브레이브스 포수가 막아서며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졌었다.

우린 해도 너는 하면 안 된다는 전형적인 양아치 짓이었지.

루키에 히스패닉인 넌 우리가 하면 당해야 한다는 양아치들 마인드. 이걸 한국에선 내로남불이라고 하던가.

그 끝이 불행했기에 더 기억에 남는 호세 페르난데스.

나와 같은 우완 정통파 투수로 멋진 파워커브를 던졌지만 개인적으로 그에게 끌렸던 건 긍정적인 마인드와 인성이었다.

물론 누가 엿을 먹이면 바로 되갚아주는 근성도.

나 역시 왼뺨 맞고 오른뺨도 대줄 바엔 차라리 지옥에 갈 생각이거든.

어쨌든 난 브레이브스란 팀을 원래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젠 대놓고 양아치들이라고 말할 참이다.

“Son of Bitch! Yellow……”

어떤 병신 하나는 이젠 대놓고 인종차별 발언을 하려다 턱이 돌아갔다. 와우! 프린츠! 멋진 펀치였어요.

턱 돌아간 개자식 둘이 우리 전리품이네요.

퇴장을 당하든 징계를 먹든 오늘은 이 질척거리는 자식들 끝장을 보자고요.

얼어붙은 브레이브스 선수들을 보며 한마디 던졌다.

“어떤 병신이 또 들어올래? 생각 있으면 저 배트 들어봐.”

내 폭언에 하나 더 미쳐서 들이대길 바랐다.

한 명 때려눕히고 퇴장이나 두 명 때려눕히고 퇴장이나.

알버트 벨이나 카일 판스워스 전성기엔 피투성이로 실려 나간 상대선수들이 한둘이 아니었다지?

그런데 이미 분위기가 싸늘해진 후였다.

아무리 팬이 인정하는 벤클이라도 배트를 들고 휘둘렀다.

게다가 심판진 전체와 양쪽 코칭스태프, 확장 로스터로 평소보다 훨씬 많은 선수들 전원이 ‘Yellow’란 단어를 들었고.

2030년대다.

속에 품은 마음이야 어쨌든 미국 사회에서 대놓고 인종차별 발언을 했다는 건 심각한 구설수에 오를 수 있는 일이다.

배트를 휘두른 것 이상의 파문이 브레이브스란 팀을 덮칠지도 모른다.

< 2 >

뉴욕. 체이스 맥카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의 사무실.

맥카시는 애틀랜타 선트러스트 파크에서 날아온 소식에 관자놀이를 엄지손가락으로 눌러가며 두통을 달래야 했다.

“도대체 브레이브스 그 미친 자식들은…… 어우!”

“미누 조 선수가 브레이브스를 계속 자극하긴 했지만 실제 힛 바이 피치 볼이 나온 건 없었습니다. 방금은 분명히 브레이브스 롭슨이 팔꿈치를 들이민 거고요.”

“조 그 친구는 왜 브레이브스에 엿을 먹인 거야?”

“뭐 어제 스톤햄이 머리에 공을 맞은 것 때문이죠.”

맥카시도 들었던 일이다.

큰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투수 머리로 날아간 빈볼. 고의성이 있었는지 분명치 않아 넘어갔는데 자이언츠에서 보복을 했을 때 오히려 배트를 집어던지며 벤클을 일으킨 건 브레이브스였다.

그런데 자이언츠엔 미누 조가 있었다.

2036시즌 메이저리그 최고 쌈닭으로 등극한 2년차 신예.

맥카시 개인적인 입장에선 올해 누구와도 바꾸지 못할 최고의 선수가 조다. 퍼펙트와 21K를 비롯한 기록도 기록이지만 흥행성 측면에서 최근엔 비교할 선수가 없었다.

투수 퍼포먼스를 메이저에 퍼뜨리고 예고 벤클을 통해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게 억지로 기획할 수 있는 일일까?

절대 아니다. 맥카시는 한 일도 없이 돈만 주웠다.

많은 메이저리그 팬이 돌아왔으니까. 특히 젊은 층이!

약쟁이 시대로 폄하되는 1990년대의 메이저리그 열풍.

비록 폄하된다 해도 메이저리그 흥행은 최고였던 시대.

그 영광의 시대 말미는 Yankees The Core Four라 불리는 호르헤 포사다, 마리아노 리베라, 앤디 페티트, 데릭 지터를 데리고 있던 양키즈가 장식했다.

맥카시의 판단엔 영광의 시대 부흥? 자이언츠가 앞장선다.

미누 조를 비롯해 자이언츠 팜 리버캐츠 출신의 루키들이 양키즈를 넘어선 자이언츠 왕조를 건설할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다시 MLB의 성세가 NFL을 누를 수도 있고.

한창 장밋빛 꿈을 꾸고 있는데 브레이브스가 찬물을 끼얹었다.

“배트를 휘둘렀다고?”

“네. 그러다 펀치 한 방에 실려 나갔고요.”

“그런 병신에겐 관심 없고. 조가 다치진 않았나?”

“사람이 배트 들면 곰을 잡던가요?”

비서의 말에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한참 심각한 분위기에 웃음이라니.

“또 인종차별 발언은 무슨 뜻이야?”

“그거야 팀 동료가 맞았으니 홧김에 나온 말이겠죠.”

“홧김에 나온 말이니, 그런 의도가 아니었느니 하는 걸 받아줘선 안 되지.”

“그럼 어떻게 대응하실 겁니까?”

“선트러스트 파크 주심에게 바로 연락해. 조와 다른 자이언츠 선수들 누구도 퇴장이 있어선 안 된다고. 만약 주심 판단으로 퇴장시키면 사무국에서 정식 제소가 있을 거라고.”

브레이브스의 반발?

얼마든지 억누를 수 있다.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30개 구단주 투표에서 75%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임명되는 자리다. 맡는 역할이야 다양하지만 하나만 생각하면 된다.

바로 메이저리그의 흥행이다.

흥행만 이뤄내면 5년짜리 임기에 두 번의 연장이 가능하다.

지금의 흥행에 나머지 29개 구단이 환호를 보낼 텐데 브레이브스가 반발하면 뭐? 어쩌라고?

< 3 >

경기가 바로 재개되진 않았다.

힛 바이 피치 볼 판정에 대해 우리 감독님이 외쳤거든.

“챌린지. 당장 사무국에 알아봐. 자살하긴 싫어서 머리 대신 팔꿈치를 집어넣었는데 이게 고의가 아니라고?”

내 기억엔 힛 바이 피치 볼로 챌린지를 외친 건 우리 감독님뿐인 것 같은데 전례가 있는지 여부는 모르겠다.

사실 요즘은 뉴욕까지 연결할 필요도 없다.

방송용 카메라의 발전이 투수의 릴리스 순간부터 공의 궤적을 수십 프레임으로 나눠 추적할 수 있게 만드니까.

공을 보지도 않고 팔꿈치부터 내민 장면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혔다.

결국 브레이브스 감독의 반발에도 경기는 속행됐다.

메이저리그는 폭우가 퍼부어도 중단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라운드에 방수포를 덮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 경기를 재개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벤클이 아무리 심각했어도 경기중단?

생각할 수 없는 일이고 이 경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나와 프린츠가 퇴장을 당하지 않았단 사실이다.

오히려 내게 맞은 녀석은 병원으로 실려 갔고 프린츠가 때려눕힌 녀석은 아예 브레이브스 측에서 교체해버렸다.

“조, 어깨 괜찮나?”

“네. 이 정도론 식지 않아요.”

퇴장을 당하지 않은 덕분에 승리투수 요건은 채웠다.

그래도 난 더 던질 수 있는데.

“자네에게 맞은 자식, 턱이 깨졌다는 소식이야.”

“그런 유리 턱으로 어떻게 야구를 했대요?”

“…… 야구를 턱으로 하는 건 아니니까.”

“제 타석이 걱정되시는 거죠?”

“당연히.”

딱 한 방에 실신한 동료가 턱이 깨졌다.

주먹을 날린 상대투수는 퇴장도 당하지 않고 계속 던지며 타석에도 들어온다.

애쉬비 코치의 걱정은 당연히 날아올 빈볼이었다.

브레이브스 하는 짓을 보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

“다른 투수를 올려서 맞으라고 할 순 없잖아요.”

“자네가 아니면 빈볼이 안 날아올 수도 있지.”

“맞아도 도망치지 않는다. 마운드에서만 세운 원칙은 아니에요.”

애쉬비 코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내가 올라가야 옳은 일이다. 머리가 돌아버린 양아치들이 빈볼을 다른 동료에게 던지게 할 순 없잖아.

눈 똑바로 뜨고 내게 빈볼 던질 수 있는지 볼 거야.

6회 말. 난 다시 마운드에 올라갔다.

날 마운드에서 끌어내리려면 내 공을 두들기는 방법 하나뿐이다.

퍼엉!

“스트라이크!”

따악!

“와아아!”

팍 가라앉았던 선트러스트 파크에 함성이 몰아쳤다.

젠장! 넘어갔다.

타자 눈에 깃든 독기가 장난이 아니더라니.

좋아 그래. 원래 이렇게 싸워야 옳은 거잖아.

우리가 콜로세움에 선 검투사들은 맞아도 검과 방패를 들고 싸우는 건 아니니까. 배트도 공에 휘둘러야 하고.

두 눈에 독기를 철철 흘리면서 싸우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콜로세움 안에서만, 그것도 정당하게 이뤄지는 전투여야 인정을 받아.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딱!

“아웃!”

딱!

“아웃!”

브레이브스 타자들은 이를 악물고 배트를 휘둘렀다.

어릴 적 해봤던 고전게임의 스팀팩 맞은 마린처럼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계속된 몸 쪽 공에 배트도 못 내민다면 메이저리거가 아니지.

< 4 >

7회 초. 나는 타석에도 들어갔다.

오늘은 안타가 없는데 기어이 한 방 때려내고 싶다.

진짜 머리에 빈볼이 날아올지도 모르지만 날아오면 기꺼이 마운드로 올라가 투수와 몸의 대화를 가질 생각이다.

퍼엉!

“스트라이크!”

역시 몸 쪽으로 꽉 차는 공.

투수와 눈이 마주쳤는데 미안한 기색 같은 건 없다.

오히려 사납게 쏘아보는 투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몸에 맞힌 게 아니잖아. 나도 몸에 맞히지만 않았을 뿐 바짝 몸에 붙는 공을 던졌어.

그렇게 투쟁심을 안고 싸우는 거야.

관중석의 너희 팬들도 꽤나 좋아하네.

퍼엉!

“볼!”

다시 몸 쪽 공.

까딱했으면 뒤로 물러설 뻔했다.

폼 안 나게 엉덩방아라도 찧으면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릴까.

나도 이를 악물었다.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젠장. 몸 쪽이긴 했는데 체인지업이었어?

꽤 좋은 체인지업을 가진 투수다. 타이밍을 완전히 뺏겼어.

자, 이제 어떤 공이 올까? 적어도 내겐 계속 몸 쪽 공을 던질 생각이면 선택지가 많지는 않아.

포심, 체인지업 이외에 슬라이더를 던지는 투수.

슬라이더가 좌타자인 날 상대론 백도어로 들어올 테니 위험한 선택이다. 그렇다면 역시 포심 아니면 체인지업?

투수가 와인드업을 시작하는 순간 판단했다.

내게 움찔하는 모습이라도 보려면 선택은 포심이다.

오른발을 살짝 들었다 내려놓으며 옆으로 돌렸다.

어깨가 먼저 열리지 않도록 팔꿈치를 단단히 붙이고.

마치 느린 화면으로 보듯 공의 궤적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시작한 스윙인데 만약 체인지업이면 망하는 거지만 이건 포심이란 확신을 갖고 풀스윙을 밀어냈다.

따악!

소리는 컸지만 손에 느껴지는 반발력이 거의 없다.

반발력이 없는 이 느낌이 정타를 때려냈단 메시지다.

살짝 타구를 확인하고 빠르게 베이스를 돌기 시작했다.

당당하게 승부한 투수를 조롱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미친 곰냥이! 아직도 힘이 남아서 이젠 홈런까지 때려?”

“관중석 다시 조용해진 거 봐라.”

그런데 이 인간들 왜 이래?

3:1로 쫓기던 상황에서 4:1을 만들고 들어왔으면 모두 열렬한 환호를 보내줘야 맞는 거잖아? 왜 다 어이없단 표정인데?

“뭐야? 다 뛰어나와서 날 헹가래 쳐야지.”

“여긴 AT&T파크가 아냐. 더 떠들썩하면 우린 애틀랜타에 무덤자리를 알아봐야 해.”

“슬프다. 내 동료들이 이런 치킨들이었다니.”

“…… 이 자식 죽여!”

“밟아!”

하마터면 홈런 치고 밟혀죽을 뻔했다.

애쉬비 코치마저 날 외면한 걸 분명히 봤다. 젠장!

어쨌든 홈런을 친 건 좋았는데 그게 양 팀 막판 난타전의 도화선이 될 줄은 나도 몰랐다.

8회까지 난 4실점을 더 했다.

8이닝 5실점. 2036시즌 최다실점.

기어이 몸 쪽 공만 고집하다 브레이브스 타자들을 각성시킨 결과를 낳은 것 같다. 뭐 괜찮아. 또 독기 풍기며 싸워보자고.

네리스까지 1실점을 했지만 그래도 팀은 승리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8:6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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