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LB의 새끼 고양이-80화 (80/188)

지금 뭐라고? - 1

< 1 >

너무 들떴던 게 사실이다.

메이저리그 2년차. 직관적인 성적만 봐도 14승3패에 노히터가 두 번이고 퍼펙트게임까지 달성했다.

내셔널리그에선 다저스의 원투펀치 그렉 산체스나 카를로스 세일과 어깨를 견줄 위치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올해 다저스 불펜은 어느 때보다 탄탄하고 그래서 산체스와 세일 둘 다 투구에 부담이 없다.

6-7이닝을 앞선 채로 마운드를 내려오면 좀처럼 경기가 뒤집히지 않으니 나와 로키스의 이안 가스너, D백스의 잭 브라이언트. 내셔널리그 투수부분에서 경쟁하는 셋보단 유리한 입장이 맞다.

그에 비해 이닝을 훨씬 많이 먹어주며 비슷한 성적을 낸 내가 전혀 꿀릴 게 없다고 생각했다.

노히터와 퍼펙트게임이란 임팩트도 더 강하고.

아마 그런 오만이 1회 2실점의 결과로 나타났을 거다.

레즈의 루키들을 미리 경계했던 스톤햄이 백투백 홈런을 맞고 팀이 역전을 허용했던 어제 내가 가졌던 생각들이 부끄럽다.

자이언츠의 5연승 질주?

나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했거든.

내 페이스면 어렵지도 않을 거라고 여겼고.

일단 남은 100코인으로 Untouchable 이용권을 구입, 장착했다.

지금 레즈 타선은 절대 편하게 생각해선 안 되니까.

8번 타자가 2회 말 첫 타석에 들어섰다.

오늘은 스톤햄의 영상에서 봤던 네 명 외에 루키 한 명이 추가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그 추가된 선수가 저 8번.

타선엔 어제처럼 투수 포함 4명이 루키다.

퍼엉!

“스트라이크!”

바깥쪽 낮은 코스 포심.

배트는 나오지 않았지만 움찔한 것을 봤다.

1회 리드오프에게 똑같은 코스로 홈런을 맞은 후 저 코스엔 레즈 타자들의 배트가 편하게 나오던 걸 느꼈다.

그래서 하우어가 볼 배합을 바꾸기도 했고.

당연히 초구에 또 그 코스가 올 줄은 몰랐겠지.

Untouchable 이용권을 쓰고 마운드에 오르기 전 하우어와 이야기를 나눴던 게 먹혀들었다.

퍼엉!

“볼!”

낮게. 볼넷을 주더라도 낮게.

딱!

“파울!”

하지만 무릎 높이에서 툭 떨어지는 공에도 가벼운 스윙.

뭐지? 저 스윙과 선구안은 절대 8번에 설 타자가 아니다.

무브먼트가 오르지 않았다면 방금도 정타를 맞을 수 있었다.

딱!

“파울!”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오기로 바깥쪽 낮은 코스만 던진다고 여길 쯤 몸 쪽의 하이 패스트볼. 삼진을 잡아냈지만 경계심은 더욱 커졌다.

덕아웃으로 들어가며 다음 타자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걸까?

대기하던 타자는 9번. 투순데. 오늘 자이언츠 타선을 2이닝 연속 삼자범퇴로 막아낸 선수다.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바깥쪽 낮은 포심을 노렸다.

방금 던진 공이 코스는 같아도 베어-팜이 아니었다면?

갑자기 긴장의 끈이 팽팽해지는 느낌. 아드레날린이 솟는다.

딱!

“파울!”

타석에 그냥 서있다 들어가는 투수가 아니다.

이건 뭐. 아홉 명의 타자 중에 네 명이 루키인데 그 네 명이 모두 페르시와 비교될 스윙을 한다고? 말이 돼?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그래도 저 스윙의 약점은 알아냈다.

무브먼트와 관계없이 몸 쪽 높은 공에 배트가 헛돈다.

다음! 내게 선두타자 초구 홈런을 맞게 한 리드오프.

이름이 자니 버스터.

한 번 부딪혀보자.

퍼엉!

“볼!”

전 타석의 투수가 속았던 공에 배트가 나오지 않았다.

포심과 베어-팜의 구종을 구분해낸단 뜻일까?

퍼엉!

“스윙! 스트라이크!”

오늘 불펜에서 하우어가 말했던 것처럼 팜-체인지업의 변화가 날카로워 다행이다.

퍼엉!

“스트라이크!”

팜-체인지업 두 개째.

이번엔 버스터가 지켜만 봤다.

같은 공을 또 던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나? 하우어가 몸 쪽으로 높은 볼을 요구한다. 느낌이 별로긴 한데.

따악!

미친! 설마 또?

< 2 >

“오늘 저 곰냥이 고전하는군.”

헬-벨의 야구캠프엔 네 노장이 함께 쓰는 모니터링 룸이 있다.

한 쪽 벽을 가득 채울 만한 대형TV가 중계방송을 보면서도 각 화면을 되돌려도 보고 느리게도 볼 수 있게 해준다.

캠프 내에서처럼 여섯 대의 카메라가 투수나 타자의 동작을 분할해 보여주진 못해도 영상 자체의 분석엔 충분하다.

방금 곰냥이 조는 연타석 홈런을 맞을 뻔했다.

타구가 1미터만 깃대 안으로 휘었어도 또 홈런이었다.

“투구에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공은 괜찮아. 때리는 녀석이 특별한 거지.”

리베라의 말을 받은 사람은 그리피였다.

한때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윙을 했다고 알려졌던 그리피의 눈에 레즈 루키들의 타격은 특별해 보였다.

토미도 타격장면을 연신 되돌려 확인하더니 그리피를 거들었다.

“힙-턴이 확실히 부드러워.”

“그렇지?”

“신장 5.8피트(176.8cm)에 200파운드(90.7kg). 큰 체격은 아니지만 파워가 제대로 실리는 타격을 해. 그런데 부드러워.”

“배트에 반발력도 느껴지지 않게 부드러워야 저런 큰 타구가 나오는 법이야. 자네처럼 힘으로 때리는 게 홈런이 아냐.”

“얼씨구? 한 번 붙어?”

“빈스네 특제 피자를 걸자.”

“머리수대로 버드도 레이스.”

“당연하지.”

갑자기 왕년의 거포 둘이 저녁을 놓고 내기를 시작하자 지금까지 말없이 지켜보던 호프만이 소리를 빽 질렀다.

“좀 조용히 안 해?”

“어이쿠. 이 늙은이 제자 맞는다고 화났군.”

“맞아보며 느끼는 거야. 지금 저 타자들 약점을 스스로 캐치할 줄 알아야 더 성장하지.”

“…… 약점?”

그리피의 말에 호프만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평생 투수. 게다가 내셔널리그에서 뛰었어도 거의 클로저 역할만 수행했던 호프만이다.

당연히 타석에 들어선 기억도 얼마 없다.

타자의 눈으로 보는 타자의 약점을 알기엔 무리였다.

“1회 안타를 맞은 공들. 지금 파울 홈런. 다 구종이 뭐였냐?”

“포심?”

“그래.”

“어제 스톤햄이 백투백을 맞은 공은 모두 체인지업이었는데?”

“이래서 투수들이란. 이봐, 트레버. 타자들 입장에서 생각해. 체인지업은 브레이킹 볼과는 조금 달라. 그냥 오프-스피드 피치라고.”

토미가 그리피의 말을 이어받았다.

“배트타이밍을 맞출 때 브레이킹 볼은 반 박자 정도 스윙을 늦게 가져가. 뭐랄까? 세워놓고? 아니, 붙여놓고 때린다는 느낌이야. 보통 변화는 홈플레이트 앞에서 시작되니까 그 변화가 끝나는 시점으로 배트를 낸다고. 그런데 체인지업은 때릴 때 포심과 같은 스윙을 해. 포심 구속을 줄여 타이밍을 뺏는 게 체인지업이니까. 그래서 타자에게 볼 배합을 읽히면 체인지업은 그냥 배팅 볼이 되는 거지.”

“팜-체인지업을 그냥 흘린 건……”

호프만은 질문을 하다 말았다.

이미 답을 알았기 때문인데 토미는 친절하게 못을 박아줬다.

“곰냥이 팜-체인지업이야 거의 브레이킹 볼 궤적을 그리니까 참은 거야. 뚝 떨어지는 구속에 타이밍 잡기도 어려운데 변화까지 따라가기엔 무리라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결론은 레즈 타자들이 포심에 특화된 스윙을 한다?

선발투수라면 가장 많이 던지는 공이 포심이다. 포심을 골라낼 수 있고 포심 전용의 스윙을 하는 타자들이라니.

98마일짜리 포심을 시원시원하게 때려낼 수 있는 타자.

그런 타자가 브레이킹 볼은 철저히 커트하며 포심만 강요하면 투수에겐 그만한 공포가 없을 텐데.

< 3 >

투지가 불끈 솟기는 했는데 도로 쏙 들어갔다.

무브먼트를 최대치로 올린 공이라 맞는 순간 밀리지 않았다면 또 넘어갔다는 소리잖아. 진짜 저 녀석 뭐야?

“제기랄!”

“빌어먹을! 이건 바람 탓이야!”

관중들이 탄식을 질러대는데 꼭 시카고에 온 기분이다.

시카고 사람들이 항상 그러거든. 모든 게 Lake Effect다.

날씨가 나쁠 때마다 엄한 호수한테 책임을 전가한다.

더워도 Lake Effect, 추워도 Lake Effect.

때론 컵스가 경기에 지는 것도 Lake Effect.

어제까지 멀쩡하던 연인이 헤어져도 Lake Effect.

2014년 체감온도가 영하 41도까지 떨어져 겨울왕국을 찍었던 한파에도 시카고 시민들은 호수 탓을 했다.

신시내티도 오하이오 강 옆에 자리한 도시라 바람이 많다.

레즈 팬들도 그래서 바람 탓에 홈런을 도둑맞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주심에게 타임을 요청한 하우어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괜찮아?”

하우어가 경기 도중 마운드에 올라온 게 얼마만이지?

처음 있는 일인가?

“당연히 괜찮지.”

“네 공엔 문제없어. 투아웃이고 여차하면 걸러도 돼.”

“아니, 잠깐만. 1회에 홈런 맞은 공이 뭐였지?”

“4번 꼭짓점에 포심.”

하우어와 난 스트라이크 존을 사각형으로 놓고 몸 쪽에서 번호를 붙여 부른다. 4번이면 바깥쪽 낮은 코스.

그 코스에 강한 줄 알았는데 방금은 1번 꼭짓점 공이었다.

몸 쪽 높은 코스. 무게중심의 이동이 자유로운 타자라면 코스변경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설마 포심만 노리는 건가?

어제 스톤햄이 맞은 건 둘 다 체인지업이었잖아?

방금 버스터에게 팜-체인지업을 연이어 던져 하나는 볼이었고 다른 하나는 헛스윙을 유도했다.

체인지업에 배트가 나오긴 나오는 건데.

뭔가 머리가 막 복잡해지지만 지금 고민할 게 아니지.

“일단 내려가. 주심이 눈치 주겠다.”

“볼 배합은? 이대도 가도 되겠어?”

“아니. 벤치에서 따로 사인 없으면 포심은 좀 줄여봐.”

“…… 포심을? 오케이.”

하우어가 내려가고 경기가 재개되었다.

일단 원볼 투 스트라이크.

내게 유리한 볼 카운트다.

바깥쪽 베어-팜 사인이 들어왔다.

퍼엉!

“볼!”

이쯤이면 확실하다고 봐야 하나?

존의 경계를 살짝 빠진 유인구. 충분히 배트가 나올 만한데 베어-팜, 스핀-커터는 걸러낸다. 도대체 어떻게 알아보는 걸까?

나도 모든 구종에 완벽하게 같은 딜리버리를 쓰진 않지만 그래도 그렇지. 눈썰미만으로 구종을 파악한다고?

아! 머리 아프다. 일단 이닝을 마치고 생각하자.

그런데 하우어 역시 같은 판단을 한 모양이다.

스핀-커터 주문이 들어왔다.

딱!

“아웃!”

2회마저 어렵게 끝냈다.

레즈 전에 이렇게 고전할 줄은 몰랐는데.

< 4 >

5회 말까지 투구를 마치고 확실히 깨달았다.

레즈 타자들은 베어-팜과 스핀-커터는 가급적 걸러낸다.

팜-체인지업엔 배트는 나오는데 정타를 때려내긴 힘들어하고.

내가 가진 구종 중 포심의 무브먼트 수치가 가장 높은데 별 어려움 없이 포심에 배트가 나온다.

스윙 자체가 포심에 초점을 맞췄단 뜻이다.

물론 레즈 타자 전체가 그런 건 아니고 루키들.

그 루키 중에도 자니 버스터가 특별하다.

나머지는 다운그레이드 버전?

선구안, 컨택 능력, 배트스피드, 파괴력까지 가장 뛰어난 녀석께서 리드오프로 나와 내게 3타수 2안타를 뽑아냈다.

내셔널스의 바르가스, 다저스의 클로위, 로키스의 세필드.

내가 괴수들로 취급하는 타자들에 비추어 절대 부족한 선수가 아니다.

7회까지 투구를 허락받았으니 남은 건 2이닝.

계속 스핀-커터와 베어-팜만 던지면 더 실점은 없을 텐데 문제는 2:0의 스코어다. 3회부턴 자이언츠도 볼넷과 안타로 주자가 1루에 나갔지만 후속타가 연결되지 못했다.

내 패배도 패배지만 팀도 2연패를 당하는 건데.

스윕을 하고 와서 지구 최하위 팀에게 루징 시리즈라니.

[미누.]

‘응?’

[이건 제 생각인데요. 아니, 짐작이요]

‘뭔데?’

[버스터 선수는 다른 매니지먼트 소속일지도 몰라요.]

미네야. 지금 뭐라고 했니?

골이 띵하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매니지먼트라는 게 하나가 아니었던 거야?

다른 매니지먼트가 있어 그쪽 계약자가 버스터고?

‘매니지먼트란 게 몇 개나 있어? 계약한 선수는?’

[매니지먼트는 딱 둘이에요. 계약할 수 있는 선수는 딱 한 명이고요. 제 짐작이 맞으면 미누와 버스터 둘이 전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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