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LB의 새끼 고양이-74화 (74/188)

질주 - 2

< 1 >

파이어리츠의 3회 말 공격이 끝났다.

3이닝을 연속해서 삼자범퇴. 삼진만 여섯 개였다.

평균구속 97마일의 포심.

좌타자를 상대해선 대각선으로 떨어지는 팜-체인지업.

우타자를 상대해선 등 뒤에서 날아드는 프런트도어 스핀-커터.

한복판에 몰리는 공이라 생각하면 낙차가 무시무시한 베어-팜.

도대체 공략할 방법이 보이질 않았다.

분명히 예측한 코스에 배트가 나갔어도 타구를 외야까지 보낸 게 하나도 없으니 다음 타석마저 자신이 없다.

“아예 궤적을 예상할 수가 없어.”

“우타자 몸 쪽 공은 무조건 스핀-커터라고 봐야 해.”

“알아. 아는데 무브먼트를 배트가 따라잡질 못해.”

조라는 선수에 대한 대비는 충분히 했다.

로테이션이 바뀌었을 뿐 2차전에 출전할 투수를 분석하지 않는다면 메이저리그를 뛰는 선수로서 직무유기 아닌가.

바로 지난 다저스 전 완봉승을 가장 유심히 봤다.

공격적인 피칭. 쓸데없는 유인구를 거의 던지지 않고 타자를 구위로 누르려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도망가지 않는 피칭은 단점도 있다.

구질이 밋밋할 경우 존을 좁게 쓰면 언제든 통타당한다는 단점.

그래서 올 시즌 두 번의 노히터를 달성한 투수지만, 그 역시 홈런을 맞기도 하고 패배를 기록하기도 했다.

더구나 오늘은 완투 후 겨우 사흘 만에 마운드에 섰다.

그래도 회복력이 좋은 나이니 초반부터 구위가 떨어지진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건 뭐.

영상은 오늘 만난 공의 절반도 표현하지 못했다.

구종을 가리지 않고 무브먼트가 아주 살아서 꿈틀거린다.

“그래도 6회 정도가 한계겠지.”

“혹사 논란 안 나오려면 5회 지나고 내리지 않을까?”

파이어리츠 타자들은 고개를 저으며 그라운드로 올라갔다.

< 2 >

“역시 그리즐리가 지구력은 최강이야.”

“내 이름을 언제쯤 하나로 통일해서 불러줄래요?”

“아, 곰냥이로 통일?”

“콱!”

프린츠가 날 놀려먹다 얼른 옆으로 도망갔다.

쫓아가서 꾹꾹이를 해줄까 하다 그냥 내 자리에 앉았다.

억지로 힘을 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 사실 억지로 내는 게 아니라 진짜 힘은 넘치는데.

[이 시간 후로 모든 구종과 투구 폼의 숙련도가 빠르게 상승합니다.]

매니지먼트 3차 결과 특전.

그 중에 등급 B로 판정받은 커맨더의 내용이다.

특전을 받아도 세부내용을 잘 살피지 않았다가 미네에게 두 번이나 구박을 당했던 터라 다시 꼼꼼히 살펴봤다.

2036시즌 정규로스터에 포함되며 받았던 특전이다.

아마 이 커맨더 영향이 맞을 거다. 베어-팜을 배워서도 바로 써먹을 수 있고, 스트라이드를 넓혀 투구 폼에 변화를 줘도 적응이 빠른 이유를 저 특전 이외엔 설명할 수 없다.

그동안엔 피지컬에 관련된 아이언 맨만 신경 썼는데.

커맨더가 이렇게 무시무시한 내용인 걸 간과했다니 원.

벌써 시즌도 중반을 넘어섰으니 등급도 더 오르고 있을까?

다른 특전은 또 어떨까?

3번이 팀 스피릿이었다. 등급은 커맨더와 마찬가지로 B.

4번은 매니저와 더 친근하게. 등급은 아이언 맨과 같은 A.

미네가 주는 일시적 특전을 제외하면 투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 대충 넘겼는데 이쪽도 이젠 신경을 써야 하나?

[이젠 함께 승리하는 에이스를 향해 나아가세요.]

팀 스피릿 설명의 마지막 문구였다.

스트레칭 공유를 칭찬하더니 모호하게 써놓은 부분.

개인의 승리가 아닌 팀의 승리를 우선하라는 그런 원론적인 이야기는 아닌 것 같고.

‘미네.’

[네.]

‘함께 승리하는 에이스를 향해 나아가란 게 무슨 뜻이야? 좀 뜬구름 잡는 소리라 모르겠는데.’

[지금 미누가 이 경기에 임하는 자세죠.]

‘가을야구를 꼭 해서 리키를 놀려먹겠단 자세?’

[츤데레 미누가 말만 그렇게 하든, 혹은 진짜 리키를 놀려먹을 생각이든, 미누의 역투를 보고 동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실제로 지금도 타석에 선 선수들을 보세요.]

퍼엉!

“볼!”

딱!

“파울!”

끈질기게 파이어리츠를 괴롭히고 있다.

더 눈을 부릅떠 공을 지켜보고, 볼은 걸러내며, 애매한 공은 커트. 1회 석 점. 2-3회엔 점수를 못 냈지만 상대투수는 4회 초까지 투구 수가 벌써 70개를 넘고 있다.

저게 원래 파이어리츠 작전이었을 텐데.

날 가급적 빨리 마운드에서 끌어내려야 유리하니까.

‘내가 동료들을 각성이라도 시켰단 거야?’

[원래 사람은 말보단 행동에 더 영향을 받죠. 승리를 갈망하게 만드는 것도 에이스의 역할이에요.]

‘…… 저 인간들이? 오글거려.’

[참아요.]

‘헉!’

미네가 변했어.

이젠 막 강짜도 놓고 가끔은 협박도 해.

고개를 흔들며 매니저와 더 친근하게 특전에 대해 물어보려 했을 때였다.

따악!

“고든! 달려. 아웃되면 네 방에 곰냥이 풀어놓을 거야.”

“가혹하다. 차라리 사자를 풀어.”

“내가 고든이면 오늘 은퇴한다.”

빠직! 이마에 힘줄이 팍 돋는다.

미네. 이 인간들 승리를 간절히 원하는 거 맞아?

지금 파이어리츠가 아니라 같은 팀 동료들이 내 멘탈을 허우적거리게 하는데?

“조, 준비해.”

“어? 뭘?”

“타석에 안 나가? 5회엔 안 던질 거야?”

씩씩대다 대기타석에 나가야 하는 것도 잊고 있었다.

< 3 >

퍼엉!

“스트라이크!”

4회 초 벌써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섰다.

감독과 코치들 눈치를 보니 내 타석이 아예 안 돌아오길 내심 바라는 것 같은데 타자들이 의욕과다로 때려내는 걸 어쩌나.

파이어리츠는 끝내 투수가 교체됐다.

“얌전히 서있다 들어와.”

“그러죠.”

대답은 쿨하게 하고 왔는데 초구 스트라이크 콜이 울린 슬라이더를 보니 밋밋하다. 매우 밋밋해.

바뀐 투수가 어깨를 미처 못 풀고 올라왔나?

선발투수가 2-3회를 무실점으로 막아냈으니 조금 더 맡길 생각이었겠지.

퍼엉!

“볼!”

2구는 볼.

방금은 아예 실투였다.

아깝다. 가운데로 조금만 더 들어왔어도.

페르시 같았으면 약간 빠진 공이라도 넘겨 버렸을 텐데.

퍼엉!

“스트라이크!”

얌전히 서있다 들어가기로 했지만. 안 되겠다.

충분히 때릴 수 있겠어.

내가 공 세 개에 전혀 반응이 없었으니까.

네 번째 공으로 뭐를 줄래?

투수가 사인을 주고받는다. 고개를 끄덕이고 와인드업 자세.

키킹. 들어 올렸던 발이 땅에 놓이고 사이드암에 가까운 스리쿼터가 공을 허공에 놓은 순간.

공의 궤적이 느린 화면처럼 눈에 들어왔다.

존 중앙에서 안으로 파고드는 백-도어 슬라이더.

하지만 그 변화가 매우 밋밋한 느낌의 행잉 슬라이더.

내가 스스로 의식하기도 전에 오른 발이 살짝 들렸다 내려오면서 허리와 배트가 함께 돌아갔다.

따악!

“SEE-YA! 큽니다. 파이어리츠 중견수 크랜 윈터 선수 타구를 보고 따라갈 생각도 없는지 제자리에 멈춰 섰습니다. 관중석 상단을 때리는 큰 홈런입니다. 사흘을 쉬고 파이어리츠 1차전에 나선 조 선수인데 3이닝 퍼펙트도 모자라 스스로 상대의 추격의지를 꺾어버리는군요. 스코어 7:0으로 차이가 벌어졌습니다.”

“네. 이 3점 홈런은 의미가 큽니다. 조 선수가 5회만 던지고 내려가도 파이어리츠 타선이 7점을 뒤집긴 기대하기 어려우니까요. 오늘 1차전은 자이언츠가 가져가기 쉽겠는데요.”

“보면 볼수록 놀라운 선수입니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도 애쉬비 투수코치가 지시사항을 건네는 걸 봤거든요. 저는 배트만 들고 서있으라 했다는데 20달러쯤 걸 수 있습니다.”

“약해요. 저는 지갑에 딱 한 장 있는 프랭클린도 꺼내서 걸 수 있겠어요. 제 와이프가 이 말을 들어도 괜찮습니다.”

“프랭크. 집에서 쫓겨나도 전화하지 마세요.”

“그럴 일 없어요. 보세요. 다저스 전 119개의 투구로 완봉승을 거둔 투수예요. 그런 투수가 사흘 뒤 다시 출전해 경기를 완벽히 자기 페이스로 끌고 가는데 어떤 투수코치가 타격을 원하겠습니까? 안 그런가요?”

“맞습니다. 지금 카메라가 자이언츠 벤치를 비추고 있는데 애쉬비 코치 표정 보세요. 헛웃음을 짓고 있네요.”

“조 선수를 혼내야 할지 등을 두드려줘야 할지 모르는 거죠.”

< 4 >

“얌전히 서있다 들어오라고 했더니.”

이 곰냥이 미쳤다는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내 자리를 찾아가는데 그 앞에 표정관리 안 되는 애쉬비 코치가 있었다.

“하하! 다음 타석부터라는 줄 알았습니다.”

“다음 타석에 설 기회가 있을까?”

“…… 설마 내리실 건 아니죠?”

“투수 없으면 나라도 올라갈 거야.”

플레잉 코치도 아니고 애쉬비 코치가 마운드에?

웃자고 하는 농담이지만 그만큼 걱정스럽단 뜻일 거다.

리키가 부상을 숨겼던 것을 몰랐던 탓에 애쉬비 코치도 마음고생을 하고 있을 테니까. 만약 무리하다 나까지 고장 나면 진짜 자이언츠는 큰일이니까.

“오늘은 투구에만 집중하겠습니다.”

“…… 이미 점수는 넉넉해.”

“네.”

다행히 애쉬비 코치는 더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잘 던지고 홈런도 쳤으니 칭찬을 해도 모자란데 로테이션을 바꿔 올라간 투수기에 걱정한 거라 나도 마음 상할 게 없었고.

“너 질책한 거 아냐. 알지?”

애쉬비 코치가 가자 이번엔 프린츠 차롄가?

슬쩍 옆에 다가와 엉덩이를 붙인다.

”알죠. 고든 방에 날 풀어놓겠단 프린츠도 있는데요 뭐.”

“…… 큭큭! 덕분에 점수도 뽑았잖아.”

“그 점수 없었어도 우리 곰냥이 홈런포로 이겼어.”

툭 끼어든 사람은 스톤햄이다.

“젠장! 브루투스 너마저!”

“하하하! 뭐야? 네가 카이사르야?”

이게 시작이었다.

주변에 있던 선수들이 다 몰려들었다.

“오오! 자이언츠에 오아시스도 있고 곰냥이, 거북이, 이젠 뭐 황제까지 생긴 거야?”

“카이사르는 황제 아니었거든요.”

“황제가 될까봐 공화파에 암살당했지.”

“네리스는 큰일 났어요. 암살도 아니고 공개처형 당할 테니.”

“폐하! 부디 자비를!”

지고 있어도 분위기 꿀꿀한 거 없는 자이언츠 덕아웃이지만 그래도 이기고 있을 때가 확실히 분위기가 더 난장판이다.

뭐 어쩔 수 없나?

4회 초 자이언츠는 내 홈런 뒤에도 두 점을 더 뽑았다.

악착같이 투수를 물고 늘어져 내 휴식시간을 벌어준 거다.

[에이스 역할을 하면 보호도 당연한 거예요.]

‘기분 좋은 말이긴 해도 우리 에이스는 스톤햄이야.’

[세상 어느 카지노가 블랙잭을 카드 한 벌로 하나요?]

‘……’

분명해. 미네가 리키 그 자식의 영향을 받았어.

팩력배 리키가 이렇게 한 마디로 상대 말문을 막거든.

그래. 대접받으면 좋지 뭐. 자이언츠에 스페이드 에이스가 둘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 아냐.

4회 말 선두타자에게 초구를 힘껏 뿌렸다.

짝퉁 에이스의 혼을 담아서.

퍼엉!

“스트라이크!”

< 5 >

“허! 4회에 98.2마일?”

인터넷 중계를 보던 요한슨의 눈이 커졌다.

베이커 감독의 제안을 받아들여 조를 파이어리츠 1차전에 투입하기로 정하고 온 페릴에게 눈총을 줬었다.

리키와 조를 자이언츠의 미래라 아꼈던 페릴 아니었던가.

솔직히 말하자. 미래는 무슨. 현재 자이언츠 전력의 핵심이다.

이미 2036시즌의 전반은 리키와 조 둘이 거의 자이언츠 선발진을 이끌었다. 그 둘이 만들어낸 승리가 자이언츠가 쌓은 승수의 절반이니까.

이젠 요한슨 자신도 인정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둘은 꼭 자이언츠에 남겨야 한다는 걸.

비록 리키가 팔꿈치부상으로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토미 존 서저리는 재활만 충실히 하면 문제될 게 없다.

구단 차원에서 재활과정을 체크할 준비까지 해뒀고.

하지만 부상이란 당하지 않아야 더 좋은 게 사실이다.

리키가 왜 부상을 당했는데 투구제한까지 걸었던 조에게 사흘 휴식 후 등판을 시킨단 말인가.

충분히 눈총을 줄만했다.

“믿기 어렵죠? 저도 실수가 아닐까 잠시 고민은 했어요. 완투능력은 충분하지만 회복력은 또 다른 문제니까요. 그런데 조가 노히터를 처음 하고 통합손실도 측정을 받았던 게 기억나더라고요. 손실도 결과가 10%도 안 됐던 거 기억나세요?”

“…… 기억하지.”

“그래서 조금 무리를 시켜본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구속이 오히려 늘다니 원……”

“요한슨. 우리는 지금 새삼 조에게 놀랄 때가 아니에요. 장기계약을 위해 어떤 딜을 제시할지 고민할 때죠.”

아! 깜빡 잊고 있었다.

페릴이 자기 사무실로 뛰어 들어온 이유가 따로 있는데.

“몇 군데라고?”

“확인된 것만 양키즈와 레드삭스, 다저스까지 세 곳입니다. 또 어디서 접촉을 시도하는지 모르죠.”

이젠 조의 에이전트에게 직접 접촉하는 구단이 생겼다.

아직 2년은 최저연봉만 줘도 그만인 선수인데 에이전트에게 접촉했다는 건 미리 약을 치겠다는 의미다.

FA자격을 얻으려면 아직 6년이 남은 선수 아니냐고?

매년 10-20% 연봉인상과 옵션이면 충분하지 않느냐고?

아니다. 2년 후엔 연봉조정신청(salary arbitration)이 가능하다.

매년 1월 초 재계약 만료시한을 넘긴 선수 또는 에이전트에선 선수노조에 연봉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신청이 접수되면 곧바로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통고되며, 해당 구단에서는 3일 내로 선수에게 조정신청의 진행 여부를 전달해야 한다.

만약 구단과 선수가 끝내 합의를 못하면 조정위원회가 청문회 등 조정심판을 통해 해당 선수의 연봉을 결정하게 된다.

만약 구단이 연봉조정신청을 거부할 경우는 어떻게 하냐고?

선수는 계약종료와 함께 자유계약선수(FA)가 된다. 남은 FA기간은 의미가 없다.

미리 작업을 해서 2년 뒤 자이언츠와 관계를 비튼다면?

연봉조정신청을 몇 번씩 한 선수와 구단의 관계가 온전하길 바라는 건 무리다.

FA와 동시에 팀을 떠날 가능성이 높다.

보통은 그 전에 트레이드 카드로 쓰게 되고.

다른 구단 입장에선 전혀 손해 볼 게 없는 작업이다.

그래서 전망이 밝은 신예는 2-3년차에 장기계약으로 묶는다.

어차피 고액연봉을 주는 시기는 후반기. 초기 몇 년은 몇 백만 달러 수준이라 옵션만 걸어놓으면 부담이 크지 않으니까.

“그래. 존슨의 금고를 얼마나 털어먹으려고?”

“현재 메이저리그 최고연봉이 얼마죠?”

“…… 자네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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