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LB의 새끼 고양이-69화 (69/188)

반환점을 돌아서 - 3

< 1 >

[갑자기 구속 오르면 의혹이 생기는데 마침 스트라이드를 넓히게 됐으니 딱 좋잖아요? 어차피 오르게 될 구속에 묻어가는 거죠.]

미네 말대로 Speed Up을 선택했다.

그러자 잠깐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덧붙인 말이다.

“네가 구속 올리라고 했으면서 놀라긴 왜 놀래?”

[…… 한참 고민해놓고 고민한 게 무색하게 해치우니까.]

“흐흐. 어차피 나도 처음 떠오른 게 구속 올리는 거였어. 또 지금도 투구제한을 받잖아. 가을야구를 하게 돼도 범가너처럼 여러 경기에 투입해줄 것 같지도 않아.”

[올해는 내구성 검증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야지.”

전반기 소화한 이닝이 이미 134이닝이다.

매 경기 평균 8이닝에서 약간 부족한 수치.

사실 지금도 적게 던지는 건 아니다. 자칫 혹사 논란도 생길 여지가 있지. 그래도 더 던지고 싶다고.

시즌 말에는 200이닝은 훌쩍 넘길 텐데 그때까지 통합손실도측정에서 5% 이하로 나온다면 내년엔 투구제한 따위 없을 거다.

올해는 아직 검증단계니 구단이 지켜보게 해야지.

[포심 평균구속이 이제 97마일이네요. 스트라이드 넓히고 투구 폼 교정과 신체강화까지 더하면 내년 시즌이 더 기대돼요.]

“신체강화?”

[…… 매니지먼트 3차 결과 특전 기억 안 나요? 아이언 맨.]

“아이언 맨? 기억나지. 80구까지 체력소진 없는 거 20구는 깎아서 타격으로 돌렸잖아.”

[바보! ‘코어근육의 근밀도, 유연성이 성장한계치에 달해 신체강화를 시작했습니다.’란 설명은요?]

아! 나 왜 자꾸 특전을 꼼꼼하게 기억 못할까?

신체강화를 시작해 키도 더 컸다는 설명까지 봤었는데.

전에 부상위험이 사라졌다는 말도 대충 보고 넘어가 미네에게 혼나놓고 또 이런다.

“내 원래 피지컬이 더 강화된다는 뜻이었지?”

[기존에 가졌던 피지컬을 최대치로 활용하게 했으니 이젠 뛰어넘을 차례였던 거예요. 아직 반영은 안 됐지만 매니지먼트 4차 결과에선 신체강화로 구속이 올라요.]

아하! 전에 구속이 올랐던 건 가진 피지컬 활용.

4차 결과부터 구속이 오르는 건 신체강화의 적용?

그게 그거 같지만 타고나야 갖춰지는 피지컬을 상승시켜 키도 크게 만들고, 체중도 늘리고, 구속까지 올린단 말이지?

어디 가서 피지컬로 밀려본단 생각은 안 했는데 이젠 진짜 NFL로 가도 덩치들과 겨뤄볼 수 있겠다.

“이러다 나 진짜 100마일 던지는 거 아냐?”

[그건 모르죠.]

미네야. 뭐니?

‘에이. 그건 아니죠.’란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 2 >

세상일이란 절대 마음처럼 되지 않는단 말이 있다.

그 말이 우리 팀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따악!

“넘어갑니다. 어제 경기에선 스톤햄 선수에게 꽁꽁 묶였던 클로위 선수가 오늘은 그 복수를 합니다. 연타석 홈런인데요. 아직 4회인데 리키 선수 내려갑니까? 자이언츠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가는데 어떻게 될까요?”

“스톤햄 선수 부상 중에 조 선수와 함께 자이언츠 마운드의 기둥이었던 리키 선수인데요. 사실 리키 선수 이전 경기에서도 투구내용을 보면 조금 흔들리고 있었거든요? 올스타전 휴식 이후 컨디션을 회복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자이언츠에겐 안타까운 일입니다. 스톤햄 선수가 성공적으로 재활을 마치고 돌아온 이때 치고 올라가야 하지 않습니까.”

“아! 결국 리키 선수 결국 마운드를 내려옵니다. 이건 자이언츠가 올바른 판단을 한 거죠. 3.2이닝 5실점인데 주자는 없어도 안타를 더 맞으면 리키 선수에게 좋을 것도 없고요. 부디 잠시 컨디션 난조인 걸로 끝나면 좋겠습니다.”

“네. 부상은 아니니까요. 2년차 선수가 전반기 11승5패로 놀랄 만큼 안정된 투구를 보여줬는데 한두 경기 부진이야 금방 털어내고 일어서야죠.”

3.2이닝 5실점.

올해 리키의 투구로는 최악의 기록이다.

물론 투수야 잘 던지고 맞는 경우도 많고, 항상 컨디션을 최고 상태로 유지할 수도 없는 법이다.

실투도 아닌, 릴리스 순간까지 잘 긁혔단 느낌이 드는 공을 툭 맞춰 안타로 만들고 무지막지한 힘으로 퍼 올리는 타자들. 괴수라는 말이 진짜 농담이 아닌 타자들이 있으니까.

나만 해도 5이닝 3실점. QS도 못 챙기고 패전의 멍에를 짊어졌던 경기를 치르곤 허탈한 마음이 들곤 했다.

그런데 리키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다.

두 경기 연속 컨디션이 엉망이었던 걸까?

아이싱을 하는 녀석 곁에 다가가 장난이라도 쳐볼까 하다 지금은 놔두기로 했다. 져도 씩 웃고 스스로 털어버리던 때와는 분위기가 영 다르거든.

따악!

따악!

경기를 뒤집어 ND라도 만들어주면 좋을 텐데 일단 불이 붙은 다저스 타선은 쉽게 꺼지지도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8 LA 다저스]

< 3 >

어제 라커룸에서 잘해보자며 으쌰으쌰 해놓고 바로 다음 경기 말아먹었으니 풀이 죽는다? 자이언츠엔 그딴 거 없다.

모두 씩씩하게 마무리 훈련 끝내고 저녁메뉴를 고민하며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내일 다저스와 3차전이 끝나면 멀리 세인트루이스까지 이동해 원정경기가 시작되거든.

오늘은 집에 가서 충성해야할 사람들이 많지.

나야 충성할 대상도 없고 딱히 챙길 것도 가방 하나라 그냥 야구캠프에 들러 평소처럼 훈련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아, 평소처럼은 아니었다.

기존 스트라이드를 찍어놓고 그 위로 한 뼘쯤 넓게 스트라이드를 뻗는 훈련이 마냥 쉽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난 미네가 있잖아.

대충 감을 잡는 정도는 충분했다.

감을 잡는 것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작업은 또 다른 문제지만 남보단 훨씬 빠르게 적응할 자신이 있다.

“아무튼 특이한 녀석이야.”

영감님도 감탄했다.

내일 경기부터 스트라이드를 넓히자고 하셨지만 오늘 투구를 봐서 결정할 생각이었단다.

그런데 생각보다 내가 금방 감을 잡은 거지.

미묘하게 무게중심을 더 끌고 나오는 게 생각보단 어렵거든.

“원정 가서도 계속 다듬을게요.”

“무리하게 투구할 생각은 말고.”

“저 정규훈련 외에 불펜 기웃거리면 애쉬비 코치 심장에 무리 간다고 잡혀가요. 흐흐.”

장난 같은 사실을 말하고 야구캠프를 나왔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배트를 만져보지도 못했네.

지이잉!

숙소에 들어와 핸드폰을 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울어댄다.

어이쿠! 포식자 3께서 또 왜?

- 넌 전화는 SNS 할 때만 쓰냐?

우리 사남매의 통화에 안부인사 같은 건 당연히 패스다.

“훈련 중에도 켜놔야 할 중요한 일이 없거든.”

- 또 헬-벨 영감님 야구캠프?

“응. 오늘은 무슨 일로?”

- 네 화보 다시 찍어야 해.

“왜?”

당장 입에서 큰 소리가 나왔다.

올스타전에 앞선 휴식일에 나이키 화보를 찍는다고 하루를 통째로 날려먹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행동하면 된다는데 그게 어디 쉽나?

조명이 비추고 플래시는 번쩍거리고. 난 자연히 얼굴이 굳어질 수밖에 없는데 표정을 이리저리 바꿔보라는 주문까지.

게다가 스포츠선수 사진을 찍으면서 웬 분장을 한다고 머리 다듬고 화장까지 해야 하는데 제대로 곤욕을 치렀다.

나 혼자면 모르겠는데 다른 모델까지 한 명이 더 붙었었다.

잘 생겼지. 쭉쭉 뻗었지. 표정까지 다채로운, 누가 봐도 모델인 그 친구와 난 당연히 비교가 됐을 터라 포토그래퍼의 한숨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그 짓을 또 하라고?

- 내가 봐도 어쩔 수 없겠더라.

“…… 그렇게 망했어?”

- 모델이랑 1:1로 구도가 안 나와.

“마주보고 서서 잘 찍었는데. 포즈도 잘 잡고.”

- 네 분위기가 딱 사냥에 나선 곰탱이었는데 잘 잡아?

제시의 잔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자세를 못 잡고 전에 벤클에서 팬케이크 만들던 기세를 뿜어내니 1:1 구도가 나올 수 없었더라나.

서로 노려보는 포즈면 얼굴 굳히는 게 당연하지 않나?

“그래서 언제 찍는다고?”

- 이번 원정 끝나고 휴식일에. 그런데 이번엔 여자야.

“상대 모델이?”

- 그래. 또 잡아먹을 것처럼 표정 지어라?

“내가 잡아먹을 것 같았어?”

- 배 많이 고파 보였다.

젠장! 다음엔 거울보고 연습 좀 하고 나가야할 모양이다.

< 4 >

시리즈란 게 참 어려운 줄타기다.

1차전에 먼저 승기를 잡으면 수월하게 풀어가는 건 맞는데 2차전에 대승으로 균형이 맞춰지면 반대상황이 벌어지거든.

당연한 말인 것 같은데 어차피 스코어는 1:1이잖아.

아무튼 어제 리키를 초반에 두들겨 마운드에서 끌어내리고 꽤 큰 승리를 거둔 탓인지 오늘 다저스 타자들 기세가 등등해 보인다.

타석에 들어오기 전 스윙도 사납고.

그런데 오늘 나와 배터리는 하우어가 아니다.

어제 경기에 7회였나? 2루에 주자를 두고 안타를 맞아 홈에서 승부가 펼쳐졌는데 그 과정에서 하우어가 부상을 입었다.

중계된 공을 받다 주자와 충돌하며 일어난 부상이다.

고작 한 점을 막아내느라 주전포수가 부상을 당하느니 점수를 줘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하겠지만 절대 그럴 수가 없다.

자기 포지션에 대한 자존심이니까.

어쨌든 백업포수인 케인이 오늘 포수장비를 찼다.

이 친구 나와 파드리스에서 함께 트레이드된 선수다.

수비능력은 출중한데 타격이 발목을 잡아서 기회를 많이 못 얻는 안타까운 케이스.

그래도 올 시즌 나와 두 번은 호흡을 맞춰봤다.

마운드에 올라오기 전 사인을 맞추며 농담을 건넸다.

긴장 풀고 잘해주면 팀에도 좋고 기회도 더 얻을 테니까.

“혹시 주자가 몸으로 부딪혀오면 날려버려. 하우어처럼 얻어맞고 주저앉으면 평생 놀려먹을 거야.”

“…… 어제 다저스 녀석들이 일부러 그랬다고?”

“자이언츠랑 다저스 사이에 더한 짓도 가능하지.”

“…… 그래도 오늘은 네가 선발인데 차마 못 그럴 걸.”

농담을 건넨 건지 디스를 당한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사인도 정하고 마운드에 올라 첫 타자를 맞이했다.

이 초구를 얌전히 지켜봐주면 좋겠다.

임팩트를 좀 주고 싶으니까.

퍼엉!

“스트라이크!”

땡큐! 지켜봐줘서.

눈이 좀 커진 것 같은데 놀란 건가?

“자, 다저스의 1회 초 공격이 시작됩니다. 리드오프 조니 에버스 선수가 타석에 자리를 잡고 주심 경기시작 콜을 외칩니다. 자이언츠 미누 조 선수 사인이 이미 정해졌나요? 바로 와인드업! 스트라이크! 초구 스트라이크 콜인데 지금 구속이…… 98마일?”

“네. 전광판에 초구 98마일이 찍혔습니다.”

“올 시즌 조 선수의 평균구속이 95-96마일 사이, 최고구속이 지난 로키스 전에 97마일이었거든요. 잠깐 이곳이 AT&T파크가 아니라 쿠어스필드인 걸로 착각을 했습니다. 올스타전에도 세 타자를 상대로 연속삼진을 잡긴 했지만 구속은 그대로였는데요.”

“참 많은 게 미스터리인 선수답습니다. 미스터 호프만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죠? 구종 하나를 가르치면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데 딱 며칠이면 된다고 말이죠. 물론 완성도가 높다곤 못하지만 새로운 구종을 실전에서 바로 써먹는 게 절대 쉽지 않거든요.”

“절대 쉽지 않죠. 리플레이 영상이 나오는데 보실까요? 잠깐. 투구 폼이 묘하게 달라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눈썰미 좋으시네요. 스트라이드 폭이 조금 넓어졌습니다. 미묘한 차이지만 무게중심 이동이 바뀌니 투구 폼에 변화가 온 겁니다.”

“…… 충분한 성적을 내고 있는 선수가 투구 폼까지 바꿔가며 스트라이드를 넓힌 건 상당히 모험 아닙니까? 95-96마일의 구속만 가지고도 놀라운 활약을 하고 있는 조 선수인데요.”

“오늘 경기를 끝까지 지켜보면 결과를 알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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