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LB의 새끼 고양이-68화 (68/188)

반환점을 돌아서 - 2

< 1 >

“와아아!”

“스톤햄! 너는 영원히 자이언츠 기둥이다.”

팬들의 환호는 멈출 줄 몰랐다.

경기시작 전 스톤햄이 마운드에 오를 때부터, 9회 초 마지막 카운트를 잡을 때까지 그의 투구 하나하나에 열광하던 관중들.

오늘 타자들이 스톤햄 승리를 못 챙겨줬으면 아마 공개 교수형에 처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AT&T파크에서 노히터를 두 번이나 해봤고 그때마다 넘치도록 많은 환호를 받았지만 내가 받은 환호와는 색이 달랐다.

프랜차이즈 스타.

자이언츠의 빛과 어둠을 함께 한 선수.

작년 최악의 부진에 허덕이던 팀을 이끈 선수.

자기관리를 못해 당한 부상도 아니고 불규칙 바운드 타구에 맞아 전력에서 이탈했던 에이스의 복귀였으니까.

스톤햄은 두 번이나 커튼콜을 해야 했다.

완봉승을 거둔 투수에게 사인요청을 할 수 없는 팬들이 안타까워하자 우리 루키들을 끌어냈고. 특히 나와 페르시는 올스타전에 참가했다는 명분 때문에 도망갈 수도 없었다.

올스타전 참가는 그 팀의 핵심이란 상징적 의미가 있는데, 어떻게 도망가겠나.

“조, 올스타전 투구 멋있었어요.”

“거짓말하지 말아요. 페르시 키스만 기억하면서.”

“부러우면 지는 거예요.”

“윽! 사인볼 안 주는 수가 있어요.”

이젠 제법 팬과 장난도 친다.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 팬도 좀 늘었거든.

내가 SNS에 가입한 후로 동료들도 줄지어 SNS에 가입하며 이젠 SNS를 통해서도 서로 짓궂은 멘션을 남기고 논 결과다.

그게 뭐가 재밌는지 퍼다 나르는 사람도 생겼고 같이 낄낄거리며 즐기다보니 선수들과 팬의 거리감이 많이 줄어들었다.

예전에도 팬서비스가 없던 건 아니지만, 메이저리거의 일상이라고 일반인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며 훨씬 더 친밀감을 느꼈다고 할까?

스톤햄이 없는 동안 클럽하우스 리더 역할을 하던 새비지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절대 SNS에 쓰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그 정도야 우리도 모르지 않았다.

괜히 퍼거슨 경에게 1승 추가를 시켜줄 순 없으니까.

“스톤햄, 무릎은 어떤가?”

라커룸에 들어온 감독의 첫 질문이었다.

부상에서 막 복귀한 선수에게 완투를 시킬 생각은 아니었는데 경기가 완봉으로 가는 바람에 9회까지 맡기고 마음을 졸였겠지.

“재활 트레이너가 프로그램 짜주고 하루 2시간 봐주는 대가로 받아간 돈이 매주 3천 달러였어요. 완투 한 번 했다고 탈이 나면 고소해야죠. 감독님도 그 친구 불러 현역복귀 어때요?”

“큭큭큭!”

“하하! 재활이 보스 배도 넣어주나?”

“혹시 고든 발도 빨라지는지 알아봐.”

“고든 이제 여자 안아서 침대로 갈 수 있는 거야?”

대화가 주제도 없이 막 사방으로 튄다.

원래 이게 자이언츠 라커룸 분위긴데 스톤햄이 없는 동안 아무래도 조금은 가라앉아 있었지. 그걸 만회하려고 의식의 흐름대로 말을 꺼내는데 오늘도 희생양은 고든이다.

고든. 진짜 여자 안고 침대로 가다 날이 새나요?

이젠 나도 궁금해졌어요.

“자! 아가씨들 수다 그만 떨고 주목!”

“Yes, Boss!”

“오늘 경기로 다저스가 60승32패. 우리는 47승44패야. 차이가 제법 나지? 12.5경기 차이. 솔직히 잡기 쉽진 않아. 구단도 무리해서 이 차이를 좁히라곤 하지 않았고. 하지만 올해도 포스트시즌을 집에서 TV로만 보고 싶은 선수 있나?”

굳이 도발할 필요도, 발끈할 필요도 없다.

누가 그러고 싶을까. 마이너에 있을 때는 메이저에서 뛰려는 꿈을 꾸고, 메이저에 올라와선 가을야구에 나가는 꿈을 꾸는 게 야구선수들인데.

“지난 올스타전 중계에서 그랬다더군. 자이언츠의 2036시즌은 이제 시작이라고. 또 와일드카드 경쟁을 서부지구 세 팀이 할 수도 있다고. 난 틀린 말이 아니라고 보는데 모두 어때?”

“당연하죠. 이제 시작입니다.”

“제가 내년에 FA라……”

“집에 굶고 있는 애들이 있어서……”

“고든! 넌 결혼부터 하고 애가 굶는다고 해.”

정상적인 대답은 거의 없다.

그나마 들어줄 게 네리스의 내년 FA 정도?

하지만 어느 때보다 선수들의 눈빛은 진지했다.

에이스가 이탈했을 때도 기어이 5할 승률을 유지했던 팀.

이제 반환점을 돌았고 딱 작년 후반만큼만 성적을 내도 와일드카드 경쟁엔 뛰어들 수 있으니까.

< 2 >

따악!

따악!

“저 친구는 애초에 타자로 뛰었어도 성공했겠어.”

“지금도 늦지 않았지. 제2의 베이브 루스가 되는 거야.”

“헛소리는.”

호프만이 토미와 그리피의 대화를 칼처럼 끊어냈다.

조가 가진 타격의 재능?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좌우대칭이 거의 완벽하고 무게중심의 이동에서 스윙까지 부드럽게 연결되는 저런 타자는 쉽게 무너지지 않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공들여 키운 녀석인데?

내셔널리그는 투수도 타석에 서야하고 그래서 타율이 비참한 경우엔 대타로 교체되는 경우가 있어 타격훈련을 시작한 조다.

뻥뻥 때려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운드를 지키기 위해.

그런데 썩을 놈들이 엉뚱한 생각을 품고 있다.

당연히 칼처럼 끊어야지.

“왜 심술이야?”

“그러게. 그냥 칭찬한 거야.”

“네 녀석들이 이상한 바람 집어넣지 말라는 뜻이다.”

토미와 그리피가 얌전하게 두 손을 들었다.

대학까지만 해도 미완의 대기였던 선수를 사이영 상 후보로, 올스타전에서 뛰게 할 정도로 전력을 다해 키워낸 헬-벨이다.

그 애정의 크기를 아는데 엉뚱한 쪽으로 이끌 생각은 없었다.

“워워! 진정해, 이 친구야.”

“투수 부문 실버 슬러거나 안겨줄 테니 걱정 마.”

전반기 17경기에 나가 6개의 홈런을 때려낸 조.

특히 후반엔 2경기 중 한 번은 타구를 펜스 너머로 날렸다.

과거 자이언츠의 우승 청부사 매디슨 범가너가 한 시즌 그랜드슬램만 두 개를 때려내며 실버 슬러거를 수상한 이래 자이언츠에선 두 번째 나오는 투수 거포다.

토미와 그리피도 딱 그 정도로만 조를 키울 생각이다.

조가 스스로 타자 전향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말이지.

투구도 재밌지만 피칭머신을 상대로 시원하게 땅땅 때려내는 재미도 꽤 괜찮다. 그래서 이젠 마운드를 지킬 정도 타격은 훌쩍 넘었어도 계속 배트를 잡는다.

적당히 두들겨주고 배트박스를 나왔는데 토미랑 그리피 노인네들이 헬-벨을 괴롭히는 분위기? 우리 영감님, 또 저 장난에 홀딱 넘어가셨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심각하게 하세요?”

“넌 투수란 놈이 무슨 타격훈련을 그렇게 해?”

어? 불똥이 나한테 튀면 큰일이다.

“흐흐. 영감님이 투구훈련은 많이 못하게 하시잖아요.”

“애송이 네 어깨를 위해서야. 20시즌 이상을 뛴 선수도 빅 리그엔 하나둘이 아니지만 모두 커리어 후반엔 성적이 저조했다. 너도 그러고 싶어?”

“절대 아니죠. 시간이 남으니 타격이라도 하는 거예요.”

잽싸게 영감님 팔짱을 끼고 토미랑 그리피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 영감님들 그렇게 사이가 좋으면서 어쩔 때 보면 참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다. 아니 우리 동료들 같은.

서로 툭툭 건드리고 놀려먹기 좋아하고.

샌드맨이 있으면 투수, 타자 딱 2:2인데 오늘 샌드맨 영감님이 없으니 영감님이 2인분 하시느라 열을 뿜으셨어.

“이제 제 구종 전부 80% 넘은 거 맞죠?”

타격도 엄연히 몸을 쓴 거니 스트레칭을 해줘야 한다.

영감님 팔짱을 끼고나와 피트니스 룸에서 스트레칭을 도와달라고 하며 화제를 돌렸다.

“너무 수치에 얽매일 필요도 없어.”

“네. 결국 던지는 건 사람인데 기계가 설정한 최적화를 너무 믿지 말라고 전에도 말씀하셨어요. 으윽!”

영감님 너무 누르지 마세요.

타격훈련 좀 했다고 감정이 실리심 안 되죠.

“시간이 남아 타격훈련이면 여자라도 사귀든지.”

“여자 만날 시간은 또 안 나더라고요. 윽!”

“스캔들은 잘만 내놓고?”

“친구예요. 친구.”

맞다. 노인들은 나이 먹으면 다시 애가 된다.

뭐 싫다는 건 아니다. 고집불통에 남의 말은 들을 줄 모르고 나이만 내세우는 게 아닌 날 걱정하는 거니까.

저쪽 영감님들이 뭐라 하든지 제 주 포지션은 투수예요.

마음 놓으세요. 영감님들 툭탁툭탁 하는 게 재밌으니 말로 표현하진 않고 속으로만 알렸다.

그런데.

“내일모레 네 경기지?”

“그렇죠.”

“스트라이드를 조금만 넓혀보자.”

“……?”

이건 또 무슨 소리지?

< 3 >

“미네.”

[네.]

“영감님이 스트라이드 넓히자고 한 게 무슨 뜻일까?”

[간단하죠. 스트라이드 폭을 넓히면 무게중심 이동도 달라지고 적응에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설마?”

[좋은 뜻으로 받아들여요. 어차피 구속은 올려야하고 미누의 스트라이드 폭도 조금 넓힐 필요가 있으니까요. 비시즌 기간에만 매달리기엔 시간도 좀 부족해요.]

후! 타격훈련 못하게 극약처방 하신 건 줄 알았네.

“얼마나 넓히는 게 좋을까?”

[단순히 왼발을 많이 뻗는 게 아니라 무게중심을 더 앞으로 당겨오는 작업이에요. 너무 의식하면 투구 폼 무너져요.]

“발 반 개 정도로 시작해야겠네.”

[내일 헬-벨이 잘 봐주시겠죠.]

“그래. 그건 그렇고 나 아직도 올스타전 보너스 못 고르겠어.”

생애 첫 올스타전 출전이라고 매니지먼트에서 특별보너스가 나왔다. 노히터 달성했을 때처럼.

그런데 이게 참 애매하단 말이지.

[올스타전 선발에 따른 특별보너스]

어느덧 계약자는 메이저리그 별들의 축제인 올스타전에 참가하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매니지먼트는 계약자의 선전을 축하하며 이에 특별보너스를 드립니다. 기대되시죠?

소모성 아이템 : 일회용으로 사용하면 사라집니다.

- Bat Breaker!

- Up Movement!

선택형 아이템 : 역시 소모성으로 셋 중 하나만 고르세요.

- Up Speed!

- Up Durability!

- Up Power Attack!

소모성 아이템이야 이미 경험이 있다.

두 번째 노히터를 달성하던 날 받아서 Restoration은 잘 챙겨뒀고 Up Movement를 스핀-커터에 써먹었으니까.

그런데 저 선택형이 문제다.

세 개 다 주면 안 되나? 아님 두 개라도.

Up Speed는 말 그대로 구속 1마일 증가.

Up Durability는 체력소모 없는 투구 수 10개.

Up Power Attack은 장타력을 늘려주는 아이템이다.

처음엔 고민 없이 Up Speed를 선택하려 했다.

공짜 구속이니까. 그런데 저걸 사용해 당장 100마일짜리 패스트볼을 던질 것도 아니고 몇 번 범가너와 비교되다 보니 엉뚱한 욕심이 생겼다.

홈런 잘 치는 투수 욕심이 아니다.

2014년 범가너의 우승 청부사 역할을 떠올려보자.

가을야구에 나서 자이언츠를 이끌며 총 7경기에 등판해 52.2이닝을 던졌다. 포스트시즌 성적은 4승1패 1세이브 2완봉승, 평균자책점 1.03을 기록했고. 특히 월드시리즈에서만 딱 2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0.43이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이었다.

다만 그 무리한 등판 때문인지 조금씩 성적이 추락했다.

부상을 당해 시즌을 절반 이상 날려먹기도 했고.

오늘 영감님이 내 어깨 걱정을 한 것도 자이언츠에 그런 전례를 가진 투수가 있기에 했던 말이다.

그런데 내가 Up Durability를 사용하면?

범가너 이상으로 포스트시즌을 씹어 먹을 수도 있거든.

앞으로 또 보너스야 얻겠지만 뭐가 나올지는 모르잖아?

장타력은 쉽게 포기하겠는데 스톤햄의 복귀로 자이언츠 와일드카드 가능성이 올라가니 Up Durability는 계속 눈에 밟힌다고.

[미누.]

“응?”

[제가 시키는 대로 하실 거예요?]

“당연히 무조건!”

[무조건?]

“미네 믿거든.”

[…… 구속 올리세요. Up Speed!]

난 진짜 뒤돌아보지 않고 Up Speed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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