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LB의 새끼 고양이-62화 (62/188)

Come On! - 6

< 1 >

“지금 밖에 암표를 못 구해 난리라는데.”

“암표? 우리 필리스랑 월드시리즈야?”

“메이저리그 최초 공개 벤클이잖아.”

아처의 말은 사실이었다.

메이저리그엔 멋진 활약을 보여준 선수들이 넘쳐난다.

이미 네임밸류를 쌓고 그에 걸맞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

사이영 상, 리그 MVP,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월드시리즈까지 포스트시즌에서 팬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선수들.

수년에 걸쳐 자기 몸값을 증명해온 선수들은 하나둘이 아니다.

그리고 그 틈에서 내 이름은 아직 크게 알려지지 않았었다.

- 노히트 게임이 나왔다고?

- 누군데? 포드 챈들러? 케네소 에커트?

- 아니. 미누 조.

딱 여기까지 대화가 오가면 이미 관심이 시들해졌다.

-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루키야?

- 이제 2년차. 자이언츠 투수고.

- 타자들이 얕보다 말린 모양이네.

- 투구 폼이랑 구종이 독특했겠지.

굳이 경기를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이언츠가 리그 전체를 폭격하는 팀도 아니고 작년엔 최하위, 올해도 지구 4위에 머무는 팀인데 관심이 있을 수 없었다.

매일 최대 15경기가 펼쳐지는 메이저리그.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보기도 바빴으니까.

그런데 매우 희귀한 일이 발생했다.

필리스의 강타자 베나블이 자이언츠 선수를 공개적으로 디스했다는 기사가 나왔고, 다음 날 베나블은 SNS를 통해 기사를 낸 기자에게 목을 꺾어놓겠단 협박을 한 것이다.

왜곡기사.

기자에 대한 협박.

여기까지만 해도 관심이 증폭될 텐데 내가 기름을 부었다.

이왕 벌어진 판이니 한 번 붙어보자는 베나블의 도발에 얼마든지 덤비라며 베나블의 SNS까지 찾아가 멘션을 남겼으니까.

이제 팬들은 저 똘끼충만한 투수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내 투구 하나하나에 관심이 생겼고, 내 기록을 검색했고 무엇보다 인간장갑차에게 덤빌만한 선수인지 알아봤다.

작년 9승4패. 올 시즌엔 6승2패.

6승 중 노히터가 두 번.

ERA와 WHIP를 봐도 흠을 잡기엔 제법 괜찮은 성적.

게다가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질 때마다 그라운드를 UFC 옥타곤으로 만들어버린 녀석인 게 밝혀졌다. 또한 미스터 호프만에게 직접 전수받은 공을 던진다는 것도.

단 이틀 만에 내 팔로워가 10만을 넘어섰다.

(10만 팔로워 정도는 사실 SNS에서 조촐한 숫자지만)

동부의 메이저리그 팬들까지 내 이름을 알고 찾아왔으니까.

타임라인에 내 소개 같은 것도 없고, 빈스네 가게에서 피자를 썰며 찍은 사진 한 장이 전부인 내 SNS계정인데.

아무튼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졌다.’란 영국 시인 바이런의 명대사가 내게 현실로 일어났다.

오늘은 필리스와 3차전.

내 출전인 게 SNS를 통해 쫙 퍼졌고, 지금 경기장 밖에선 암표라도 구하겠다며 몰려든 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단다.

다들 공개 벤치 클리어링을 보고 싶은 사람들이다.

“조, 필리스 라인업이 나왔는데 재밌는 게 있어.”

“지금 상황에 더 재밌을 게 있나요?”

“타선에 좌타자만 6명인데?”

“……”

필리스 감독 머리를 열어 안을 확인하고 싶다.

내 스핀-커터가 배트를 부러뜨리는 건 대부분 좌타자가 대상인데 아예 싸움을 붙여보겠다고?

흥행을 위해 구단이나 사무국에서 사주라도 한 건가?

그게 아니면 필리스 감독의 정신감정을 의뢰해야 한다.

“자넨 그래도 스핀-커터를 던지겠지?”

“…… 더 많이 던져야죠.”

< 2 >

필리스 라인업은 정말 좌타자 일색이었다.

우완 투수를 빼면 딱 두 명만 우타자란 뜻이다.

주전으로 구성된 통상적인 라인업도 좌타자가 네 명인데 오늘 경기엔 일부러 좌타자 두 명을 더 끼워 넣었다.

그 좌타자 군단의 선봉 프레디 오티즈가 타석으로 들어섰다.

첫 타석에 들어선 리드오프의 역할은 간단하다.

투수에게 최대한 많은 공을 던지게 만들며 다음 타자들이 투수의 공에 익숙해질 시간을 벌어주면 된다.

영상을 통해 눈이 아프게 분석을 했어도 경기당일의 투수 컨디션이나 구장의 환경요인에 따라 투구는 얼마든지 달라지니까.

오티즈 역시 자기 역할을 잊지 않았다.

같은 딜리버리에서 무려 4개의 구종을 쏟아낸다는 투수를 상대로 최소한 4개 구종을 하나씩은 확인할 생각이었다.

경기분석 결과 저 투수는 1회 첫 타자를 상대로 스트라이크 존의 네 꼭짓점에 공을 던지던 것도 알아낸 후였으니까.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을 파악하기 위함이겠지.

아마도 초구는 포심?

퍼엉!

“스트라이크!”

하마터면 배트가 나갈 뻔했다.

존의 한복판으로 들어오던 공이 홈플레이트 바로 앞에서 몸 쪽으로 급격하게 꺾어졌다.

미친! 이게 그 배트 브레이커라는 스핀-커터?

자신도 모르게 타석에서 반걸음 물러섰다.

바깥쪽에서 출발해 존 중앙을 노리는 게 아니라 중앙에서 몸으로 파고들게 던진다는 건 진짜 각오하고 배트를 노린단 뜻인데.

자칫 몸에 맞히는 공도 감수하겠다는 뜻 아닌가.

만약 높은 공이 컨트롤이 안 되면?

퍼엉!

“볼!”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는데 투수는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다음 공을 던졌다. 다행히 볼로 콜이 나왔다.

그런데 또 스핀-커터?

제3구.

퍼엉!

“스트라이크!”

오티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저 건방진 애송이가 스핀-커터로만 승부를 걸어오고 있다.

아니? 이제 원 볼 투 스트라이크 상황. 투수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카운트인데 유인구 없이 설마 또 스핀-커터?

스핀-커터를 노렸다가 다른 구종이 들어오면?

4개의 구종을 다음 타자에게 전부 보여준다는 리드오프의 역할이 문제가 아니다. 당장 삼진을 걱정하게 됐다.

심리적으로 완전히 투수에게 말려든 상황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투수는 바로 투구동작에 들어갔다.

젠장! 사인도 주고받지 않는 거냐?

퍼엉!

“스트라이크! 아웃!”

리드오프에겐 최악인 루킹 삼진을 당하고 말았다.

< 3 >

[이른바 넛지(Nudge)이론이에요?]

“맞아. 선택을 유도하는 거지.”

[사악하네요.]

“배운 걸 써먹는 거야.”

[심리학을 그렇게 써먹으려고 배웠어요?]

“니트로글리세린도 원래 혈관확장제로 만들어졌고, 비아그라도 심장약 개발하다 뽀록으로 만들었어.”

[궤변 대마왕!]

“특전 고마워. 사랑해.”

[말 돌리기 선수!]

미네가 어떻게 행동경제학 이론까지 알고 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내 의도를 이해했다는 게 나와 코드가 맞는 거지.

넛지의 사전적인 의미는 팔꿈치로 쿡 찌르는 행위다.

곁에 있는 친구에게 어떤 행동을 넌지시 부추기는 행위.

제약을 가하거나 명령할 필요 없이 상대의 행동을 유도하는 넛지는 인간이 절대 합리적이지 않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사실 내 작전이 올바른 넛지는 아니다.

올바른 넛지는 좋은 결과를 목적으로 하니까.

난 필리스 타자들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더 솔직히 말하면 열 받아 하나의 스윙만 하도록 부추길 생각인데 올바를 턱이 없지.

어쩌다 이런 생각을 했냐고?

[Untouchable]

[Bat Breaker]

두 번째 노히터 달성 후 Up Movement란 소모성 아이템을 얻어 내 구종 중 하나의 무브먼트를 향상시킬 수 있었는데 바로 스핀-커터의 무브먼트를 올렸다.

그리고 오늘 선택한 액티브 보너스도 Untouchable.

스핀-커터의 무브먼트를 획기적으로 올린 셈이다.

미네는 딱 맞춰 Bat Breaker를 특전으로 내줬다.

싫든 좋든 스핀-커터를 노리도록 만드는 작업만 남았다.

복잡하게 머리 안 굴리고 스핀-커터만 계속 던지기로 했다.

배트 몇 개 부러지고 열은 받을 만큼 받아 어떻게든 스핀-커터를 때려 안타를 만들려고 하면 이 작전은 성공이니까.

그때부턴 팜-체인지업이 주력이 될 테니까.

다시 말해 미네랑 짠 작전의 관건은 열 받게 만들기였다.

그런데 필리스 감독이 아예 좌타자 위주로 라인업을 짜줬다.

미쳤다고 해야 할지 고맙다고 해야 할지 모를 상황인데 호의였다고 생각하지 뭐. 필리스 리드오프 오티즈를 루킹 삼진으로 잡으며 작전은 일단 첫 단추를 잘 꿰었다.

자! 좌타자 군단들 계속 나오렴.

“지금 상황이 뭔가요? 1번 타자 오티즈 선수를 상대로 스핀-커터만 4개를 연속으로 던져 삼진을 얻어낸 후 2번 타자 맥스 선수에게도 다시 4구째 스핀-커터만 던지고 있습니다. 투 볼 투 스트라이크에서 제5구 던집니다. 또 스핀-커터입니다. 맥스 선수의 배트가 부러지면서 타구는 2루수 앞으로 굴러갑니다. 스핀-커터만으로 투 아웃을 잡아내는 조 선수. 연상되는 장면이 있죠?”

“네. 작년 조 선수는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한 데뷔전에서 32개의 포심만 던졌던 기록이 있습니다. 그때는 경기 중반 컵스 선수들이 타석에 바짝 붙어 힛 바이 피치 볼을 냈을 때 시위용이었다고 봐야겠죠. 조 선수가 인터뷰에서 컵스 타자들은 몸에 맞고라도 나가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었냐고 반문을 했을 정도니까요. 투수코치에게 2점까지 허락을 받았다고 타자 5명을 맞춰버릴 생각을 했던 게 조 선수였어요.”

“그럼 오늘은 아예 경기시작부터 스핀-커터만 던지는 겁니까? 베나블 선수의 도발에 SNS까지 가입해 맞받아친 조 선수. 필리스의 좌타자 군단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하하! 자이언츠 관중석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리네요. 천천히 검지를 펴고 이제 한 개라고 신호를 보내는군요.”

“SNS에선 예고된 벤치 클리어링이란 말까지 나왔는데, 진짜 배트가 하나씩 부러질 때마다 저 퍼포먼스면 터져도 터지겠습니다. 오늘 경기 여러모로 기억에 남겠는데요.”

< 4 >

퍼엉!

“스트라이크!”

특정 구종이 온다는 걸 알면서도 못 칠 때 기분?

더럽다. 더럽다는 말 한 마디면 더 설명이 필요 없다.

게다가 타석에 선 타자들이 모두 메이저리거라면? 모두 정글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 메이저리그에서 몇 년씩 제 몫을 다해왔던 선수들이라면 자존심까지 상할 상황이었다.

오늘 3번 타자로 들어온 베나블은 1회 첫 타석에서 6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삼진을 당하고 내려왔다.

배트가 부러지진 않았으니 두 번째 손가락을 펴는 모습은 없었지만, 앞 타자까지 녀석이 편 손가락이 벌써 4개.

이젠 혼쭐을 내줄 때가 됐다.

어떻게든 저 빌어먹을 스핀-커터를 때려내 안타를 만들던지 배트가 부러지는 대신 녀석의 턱을 부셔놔야 속이 풀리겠다.

놈! Come On!이라고 했으렷다?

딱!

“파울!”

미친! 애송이가 이런 미친 무브먼트의 공이라니.

변화를 눈이 빠지게 지켜봤어도 아직 배트가 따라가질 못한다.

벌써 타선이 두 바퀴째인데 이렇게 농락을 당하다 녀석이 승리투수로 마운드를 내려가 버리면? 그리고 SNS에 Thank You! 정도의 짧은 멘션이 남는다면? 울화통이 터져 죽을 거다.

배트를 고쳐 잡았다.

퍼엉!

“볼!”

좌타자 상대로 끈질기게 몸 쪽 승부.

어떻게 보면 고작 2년차 투수에겐 정말 놀라운 배짱이다.

같은 팀이라면 저 배짱 하나만 보고도 업고 다닐 정도다.

하지만 반드시 꺾어야할 상대투수라 문제지.

녀석이 다시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조금 가운데로 몰린 공이다.

그래도 변화를 대비해 몸의 무게중심을 살짝 뒤로 빼면서 스윙을 시작했는데 그 순간 느꼈다. 이 공의 변화는 더 예리하다고.

1초를 수십으로 나눠 느낄 정도의 집중력이 아니었으면 허무하게 당했을 공이다.

그 찰나에 몸을 조금 더 뺐다.

그리고 손목을 비틀어 배트를 눕혔는데.

빠각!

1루까지 달리면서도 녀석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웃!”

1루에 절반도 가지 못한 채 아웃 콜이 울렸고.

녀석이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다섯 손가락이 모두 활짝 펴졌다.

그리고 입술 모양으로만 불렀다.

“Come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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