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LB의 새끼 고양이-42화 (42/188)

Welcome to the…… - 4

< 1 >

“난 자이언츠 선수에게 그런 굴욕을 감수시킬 생각이 없네.”

페릴이 전화를 끊는 요한슨을 향해 엄지를 들어올렸다.

자신이 나서야 할 일이지만 아직 외부상대는 요한슨이 맡아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다른 구단에 말이 먹힌다.

“잘하셨습니다.”

“자네 말대로 하긴 했는데 한동안 브레이브스와 좋은 관계는 틀렸다는 걸 알아둬.”

“같은 지구 소속도 아니고 브레이브스 선수 중에 그리 탐나는 친구도 없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메이저리그가 아닙니다.”

오늘 경기에 대해 브레이브스 단장이 연락을 취해왔다.

매우 격앙된 어조. 항의는 물론 조를 데려와 브레이브스 선수단에게 사과를 시키라는 터무니없는 요구가 덧붙여졌다.

미친 게 아닐까?

과거에도 브레이브스는 전적이 있다.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호세 페르난데스.

그는 2013년 싱글A에서 메이저로 바로 콜업이란, 누가 봐도 파격적인 메이저리그 데뷔를 했다. 20살의 루키라곤 믿을 수 없는 완성도 높은 투구를 하며 말린스의 희망이 됐던 그 선수의 2013년 시즌 마지막 경기가 브레이브스 전이었다.

그날 페르난데스는 타석에서 본인 커리어 첫 홈런을 쳐냈는데 타구 감상과 베이스를 돌며 조깅, 거수경례 세레모니라는 깜짝 놀랄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결과는 브레이브스의 포수 브라이언 맥캔과 설전이 벌어지며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했고.

난리가 났지만 그때도 원인제공은 브레이브스였다.

홈런을 치고 타구감상을 먼저 한 것도 브레이브스.

플라이 아웃을 당하고 페르난데스에게 트래쉬 토킹을 시도한 것도 브레이브스. 그래놓고 브레이브스는 페르난데스의 사과를 받아냈다.

간단히 말해 루키 길들이기였다.

그것도 페르난데스가 만만한 히스패닉이었기에.

어제 경기도 리키가 히스패닉이 아니고, 오늘 경기도 조가 동양계가 아니었다면 이틀 연속 그런 도발을 했을까?

물론 브레이브스 선수단 전체가 쓰레기는 아니다.

일부 쓰레기가 분위기를 이끌어 사단을 만들었을 뿐.

그런 분위기 자체를 단장이 커트하지 못하고 함께 날뛴다면 브레이브스엔 미래도 없다. 장단을 맞춰줄 필요를 못 느낀다.

“세이우드. 메이저리그는 우리에게 사업이야. 사업을 하며 때로는 타협도 필요한 거고. 너무 날을 세우진 말아야 해.”

“요한슨. 저는 태어나기 전 일이지만 1993년 놀란 라이언의 벤클, 요한슨은 알겠죠?”

“…… 알지.”

“당시 라이언이 46세. 라이언에게 빈볼을 맞아 달려든 로빈 벤츄라는 25살이었어요. 은퇴를 앞둔 라이언에게 잡힌 벤츄라가 헤드락을 당해서 유명해졌던 사건이죠.”

20살의 나이 차이.

그래도 경기를 뛰는 동안엔 서로 평등한 1:1 관계다.

비록 벤츄라가 노인공경(?) 차원에서 머뭇거리다 헤드락이 걸리고 꿀밤을 맞긴 했어도 벤클에 나이가 어디 있나?

라이언도 상대팀에 깔려 실신 지경에서 겨우 살아났다.

“자네보단 내가 더 잘 기억하지. 지금도 벤클 명장면 중에 하나로 가끔 ESPN에 나오고. 그런데 40년 전 이야기는 왜 꺼내?”

“나중에 벤츄라가 화이트삭스 감독이 됐었어요. 당시 라이언은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주였고요. 그때 화이트삭스가 텍사스로 원정경기를 나가자 라이언은 직접 벤츄라를 만나 선전을 기원했습니다. 20년 나이차이의 꼬맹이가 자기에게 덤벼들었던 기억마저 쿨하게 넘겼던 거고, 그게 당연한 겁니다.”

40년 전에도 그게 당연했는데 2030년대에?

생각할수록 브레이브스 단장의 뚜껑을 열어보고 싶다.

“그 인간이 꽤 보수적이라 그래. 넘어가.”

“네. 그나저나 반응이 너무 폭발적이라 놀랍습니다.”

“인터넷에서?”

“타자 배트를 부러뜨릴 때마다 퍼포먼스, 상대 도발을 맞받아치는 강심장을 팬이 싫어할 리 없죠. 벤클은 아예 압도적이고 마운드에서 성적도 좋으니까요. 흥행성만 보면 기존 주전들 이상이에요.”

키워줄 맛이 나는 선수다.

구단이 아무리 띄워봐야 팬의 호응이 없으면 그만인데 이 선수는 따로 구단의 띄우기가 없어도 알아서 혼자 클 선수다.

“당장 올해 장기계약이라도 맺을 기세군.”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문제가 있나?”

“조 선수의 에이전트가 만만치 않아요. 올해 계약을 요한슨 제안대로 맺긴 했는데 굳이 장기계약을 원하지 않는 느낌? 아마 자신 있다는 뜻일 겁니다.”

< 2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9:6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상대 배트를 부러뜨릴 때마다 이어진 투수의 퍼포먼스, 타자들의 배트플립에 이어 투수의 세러모니도 등장했다.]

[동료의식이 상실된 올해 최악의 벤치클리어링]

[브레이브스 감독: 상대타자를 조롱하는 투수라니, 그런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남아선 안 된다.]

[자이언츠 감독: 이틀간 경기를 지켜본 팬이라면 누가 메이저리그에서 퇴출돼야할지 분명히 알 것이다.]

“난장판이네.”

‘넌 흥행성이 있는 선수’란 가슴 뿌듯한 격려를 받고 돌아와 자고 일어났는데 모든 신문의 스포츠란이 자이언츠 경기 이야기다.

다른 구장은 야구 안 했나?

[어제 퍼포먼스가 좀 자극적이긴 했어요.]

“타자 머리에 영점을 잡아도 안 되고, 삼진 때마다 탭댄스를 춰도 안 되는데 할 게 없었잖아.”

[그래도 메이저리그 최초 기록은 남았네요.]

“미네. 너 왠지 즐거워 보인다?”

[미누의 기분 탓이에요.]

이젠 미네가 날 놀리는데 제대로 재미가 붙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오늘 경기는 진행된다.

그게 메이저리그다. 경기 전 훈련에 빠진 사람도 없었고 모두 어제 일은 잊은 듯 행동했다. 하지만 브레이브스 전이 끝난 건 아니었다. 경기에 나가자 상대 덕아웃에서 그걸 알려줬다.

“자식들 무섭게 노려보네.”

“오늘 헤드샷 안 맞게 조심해.”

정말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브레이브스는 내가 선수단을 찾아가 사과하길 바랐다고 한다. 퍼포먼스로 도발하고 벤클에서도 일부러 자기 선수들로 패티(?)를 쌓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데 내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거다.

하다못해 전화로라도 사과를 하지 않았고.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브레이브스 단장이 자이언츠에 반드시 엿을 먹이란 사인을 보냈고, 녀석들은 그 사인을 충실히 이행할 생각이었다.

터너가 농담처럼 헤드샷을 조심하라고 했는데 이게 절대 농담으로 들을 상황이 아니었던 걸 우리는 몰랐다.

“플레이 볼!”

주심의 콜과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오늘 우리 선발은 파간. 지난 경기 승리와 QS까지 챙겼던 덕분에 요즘 표정이 밝았다. 내 투구가 먹힐 때 붙는 자신감은 아마 투수가 아니면 잘 이해하지 못할 거다.

1회 초를 무난하게 막아냈다. 브레이브스 타자들이 타석에 가깝게 붙는 모습이었지만 그 정도는 예상범주 안에 있었고.

문제는 1회 말부터였다.

퍼엉!

“볼!”

리드오프 터너에게 초구부터 빈볼이 날아들었다.

터너가 거의 주저앉은 자세로 머리를 향하던 공을 피했고, 주심에게 불만을 표시했지만 일단 투수에게 가벼운 주의만 주어졌다.

그리고 제2구.

퍼억!

“악!”

이번엔 피할 수도 없게 공이 날아왔다.

옆구리에 공을 맞은 터너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우린 뛰어나갈 생각도 못했다. 우선은 터너의 상태를 봐야 했으니까. 터너는 부상을 당했는데 그 옆에서 벤클을 벌이고 있을 순 없으니까.

감독과 코치, 팀 닥터가 허겁지겁 달려갔다.

대부분 빈볼을 던져도 허리 위로 공을 던지진 않는다.

그럼 방금 두 번의 공이 모두 실투였을까?

아직 1회. 투수 몸이 풀리지 않아서라고?

순식간에 덕아웃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터너 괜찮아?”

“아직 만나야할 아가씨들이 한 트럭이야. 괜찮아.”

대주자로 내야 백업자원인 매케인이 나가고 터너가 덕아웃에 들어왔는데 일단 큰 부상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피하진 못했어도 몸을 틀어 뒤로 공을 맞았단다.

어쨌든 우린 경기 시작부터 리드오프와 내셔널리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유격수가 엔트리에서 이탈했다. 매케인이 경기 후반에 종종 투입되긴 했었는데 잘해주려나.

주심도 문제다.

두 번씩 빈볼이 날아왔으면, 게다가 실제 몸에 맞는 볼이 나왔으면 투수에게 퇴장을 줘야 하는데 경고로 끝냈다.

역시 1회. 아직 투수가 몸이 덜 풀렸다는 핑계가 먹힌 거다.

그런데 내 느낌은 절대 이걸로 끝이 아니라고 한다.

다음 이닝 파간이 분명 보복구를 던질 거고 브레이브스 자식들이 얌전히 맞아주고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

< 3 >

[자이언츠, 브레이브스 이틀 연속 벤치클리어링!]

[한 경기에 두 번의 벤치클리어링. 자이언츠와 브레이브스가 최악의 라이벌 관계 형성?]

[자이언츠 미누 조, 리벨 하우어 선수 두 경기 연속 퇴장!]

[MLB 사무국 징계위원회 소집!]

왜 안 좋은 예상은 빗나가는 법이 없을까?

터너에게 빈볼을 던졌을 때부터 브레이브스 자식들은 오늘 정상적인 경기를 할 생각이 없었다. 미친놈들!

내 예상처럼 2회 초 파간은 보복구를 던졌다.

물론 체인지업이었고 맞춘 부위도 허벅지. 당연히 감수해야할 보복구였는데 2회 말 다시 빈볼이 날아왔다. 1회엔 터너의 부상 여부가 걱정되어 뛰쳐나가지도 못했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그나마 어제 경기에선 부상은 입지 않도록 배려(?)를 했는데 오늘은 잡히는 놈들마다 마음먹고 그라운드에 집어던졌다.

누군가 멱살을 잡고 끌어당기기에 그 힘에 따라가며 이마에 박치기를 날리기도 했고.

그마저 봐준 거다. 코에 들이받아 코뼈를 부러뜨려 버리려다 참았으니까. 그렇게 폭주를 하고 나니 내 근처론 브레이브스 개놈들이 다가오지도 않았다. 브레이브스 감독이라도 걸렸으면 덕아웃까지 던져버리려 했는데.

이번에도 코치들은 날 포기했다.

대신 리키의 허리춤을 붙들고 놔주질 않았다.

그래서 다행인가? 퇴장을 당한 건 나와 하우어뿐이다.

다만 동영상을 보니 다른 동료들은 퇴장을 당할 일도 없었다.

내가 휘젓고 지나가면 하나씩 붙들고 공간만 내주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우어 멍청이만 빈볼 던진 투수를 붙잡아 주먹질을 해댄 탓에 나랑 같이 퇴장이었다.

“앞으로 분위기 수상하면 자넬 묶어놔야겠어.”

“그럼 인권침해로 고소할 거예요.”

“아니지. 그건 선수보호야.”

“제가 보호가 필요해요?”

“자네 말고 상대팀 선수!”

젠장! 애쉬비 코치가 상대팀에 매수된 게 아닐까?

“징계 많이 받을까요?”

“징계가 걱정되긴 하나?”

“좋은 쪽으로 생각해야죠. 다음부터 자이언츠에 빈볼 던지는 팀은 없을 거라고 해석하면 됩니다.”

“…… 긍정적이라 좋겠군.”

긍정적인 게 아니라 사실이다.

아무리 이래도 벤클은 또 일어날 수 있다.

리버캐츠 시절에도 13경기 벤클 3번 신기록이 왜 생겼는데?

그래도 오늘처럼 악질적인 빈볼을 리버캐츠에 던지지 못하게 된 건 나와 리키, 하우어 세 악마견 덕분이었다.

“전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지. 너무 과해서 탈이지만. 감독이 인터뷰에서 브레이브스를 신랄하게 몰아붙였고, 구단에서 알아서 나설 테니 큰 걱정은 하지 마. 대신 다음부턴 좀 살살 해.”

그래도 벤클참여 금지령은 안 내리네.

< 4 >

나는 7경기 출장금지를 받았다.

하우어는 5경기. 앰브로즈와 페티트는 2경기.

구단에서 항소를 생각했다는데 로테이션을 어떻게 변경해도 최소 1경기엔 뛰지 못하니 받아들이기로 했단다.

젠장! 원인제공을 누가 했는데?

그래도 과도한 폭력이 문제였다지만 많이 억울하다. 미안하고.

“난 괜찮아. 연봉이 깎이는 것도 아닌데 쉬고 좋지 뭐.”

하우어와 앰브로즈는 몰라도 페티트에게 미안해 출장금지에 대해서 말을 건넸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나도 마음 편히 쉴까요?”

“그럼! 아무도 널 탓하지 않아. 동료를 위해 한 일이니까.”

위로를 하려다 거꾸로 위로를 받았다.

그렇게 훈련은 참가해도 경기엔 나가지 못하는 내게 전혀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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