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the…… - 3
< 1 >
“트라웃 선수 몸을 틀어가며 받아쳤습니다만 조 선수의 스핀-커터에 배트가 부러지며 2루 땅볼로 아웃됩니다. 이제 4회 초인데 벌써 브레이브스 타자들 배트가 4개째 부러졌어요. 원래 커터란 구종이 배트를 잘 부러뜨리긴 하는데…… 잠깐, 트라웃 선수 지금 덕아웃에 돌아가지 않고 조 선수에게 또 뭐라고 하는데요. 어제부터 브레이브스 선수들 신경이 너무 날카롭습니다.”
“…… 조 선수 또 손을 들어 올리네요. 하나, 둘, 셋, 넷. 이젠 상대도 조 선수가 손가락을 하나씩 편 신호를 모르지 않을 텐데요.”
“저런! 트라웃 선수 헬멧을 벗어 던지고 조 선수를 향해 달려갑니다. Here we go~! 양 쪽 벤치에서 모두 뛰쳐나오지요. 왠지 어제 터졌어야 할 일이 미뤄진 것 같은데요. 헉! 트라웃 선수 괜찮을까요? 제가 만약 조 선수와 벤클에서 만나야 한다면 당장 메이저리그 은퇴하고 말겠습니다.”
“…… 제가 빨리 은퇴한 게 다행이군요.”
붕!
주먹이 날아오는데 어떻게 된 사내자식 주먹이 제시보다 느릴 수 있냐? 제시 주먹이 훨씬 빠르고 묵직하겠다.
고개를 숙여 주먹을 피하고 뒤로 돌아 허리 양쪽을 붙잡았다.
살짝 잡아당기니 금방 무게중심이 무너진다.
혹시 WWE 보냐? 하늘 구경할 시간이다.
저먼 스플렉스!
콰앙!
“끄으윽!”
자 팬케이크 한 장은 구워놨고.
브레이브스 덕아웃에서 웨이브가 밀려온다.
뒤엉키면 불리하다. 주먹으로 견제하면 좋은데 그랬다간 정말이지 사고 칠 수 있으니까. 어릴 때처럼 에드가 달려와 내가 친 사고를 수습하게 할 순 없잖아. 어이쿠! 멋진 기사도야. 한 명씩 달려든다면 나야 환영이지.
먼저 제일 앞의 떡대가 달려오는 힘을 이용해 잡아당겼다.
넘어지는 녀석 위로 자연스럽게 체중만 실어주면 된다.
콰앙!
“꺼억!”
아수라장 속에서 차곡차곡 팬케이크를 쌓았다.
한 장, 두 장. 내게 배트 부러진 녀석은 다 달려든다.
조회 수만 천만이 넘는다는 4단 팬케이크 동영상을 봤으면 한 명씩은 무리란 걸 알았을 텐데. 리버캐츠에서 함께 했던 녀석들과는 호흡이 잘 맞는다. 상대가 뭉치지 않게 뜯어내 공간을 만들어주거든. 하우어! 그 녀석 죽이진 마라.
또 한 놈 숄더 차징!
“커헉!”
효과음 좋고.
어? 너는 어제 리키 엿 먹인 놈?
그래. 오늘 스플렉스 시티를 건설해보자!
“이제 겨우 그라운드가 정리됩니다. 브레이브스 선수들 몸을 일으키긴 했는데 오늘 제대로 경기를 진행할 수 있을까요? 아마 뼈마디가 전부 어긋났을 것 같습니다. 조 선수의 다저스 전 벤클 영상을 보면 4단 팬케이크란 타이틀이 붙어있는데, 오늘은 브레이브스 선수들로 패티 7장짜리 빅 맥을 만들었습니다.”
“…… 할 말이 없습니다. 솔직히 루키라고 보이지도 않아요. 내셔널스 전에서 주심에게 끝까지 좁은 존을 유지하도록 강요까지 했을 때 이미 루키가 아니었고요. 그냥 상대방을 날려버릴 수도 있는데 일부러 한 명씩 데려다 트라웃 선수 위로 쌓아놓는 거 보세요. 이게 진짜 도발입니다. 덤빌 테면 덤벼보라는 거죠.”
“이제 다른 팀들도 웬만해선 자이언츠 상대로 벤클은 어렵겠는데요. 저런 장면을 보고 어떻게 덤빕니까? 예전에 알버트 벨 선수와 조 선수를 비교했었지만 이젠 비교도 불가능합니다.”
“문제는 오늘 경기인데요. 조 선수가 퇴장을 당했거든요. 만약 이 경기를 자이언츠가 놓치면 손해가 큽니다. 스톤햄 선수가 이미 이탈한 자이언츠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선발 원투 펀치가 잡을 수 있는 경기는 잡아줘야 하니까요.”
“리키 선수와 조 선수를 말씀하시는 거죠? 그런데 벌써 자이언츠가 2:0으로 앞선 경기고, 벤클도 경기의 일부라고 보면 기세가 꺾인 쪽은 브레이브스 아닐까요?”
“그렇긴 합니다. 다만 이겨도 조 선수는 승리투수가 아니겠죠. 개인기록이 워낙 훌륭한 선수라 아쉬움은 좀 남습니다.”
< 2 >
MLB닷컴 게시판이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브레이브스 팬들이야 자이언츠를 욕하고, 자이언츠 팬들은 원인제공을 한 브레이브스를 욕하는 상황. 그 사이에 어설프게 동료의식을 들먹이며 양비론을 꺼내들고 참전한 부류도 있었다.
하지만!
프로스포츠 팬이면 모두 무의식에 가지고 있는 원칙 하나.
바로 Winner takes all! 승자독식의 원칙이다.
페어플레이? 물론 좋지.
그래도 승리 후에 페어플레이다. 지고 나서 우린 페어플레이를 했다고 허공에 외쳐봐야 매우 허무한 자기위안이다. 절대 다수가 자이언츠 편을 들고 나서며 브레이브스 팬도, 양비론도 모두 찌그러들었다.
▶ 미친! 스플렉스 시티다.
▶ 스플렉스 시티? 그게 뭔데?
▶ 예전에 WWE에서 브록 레스너가 쌓은 스플렉스 시티.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면 검색해봐.
▶ 중계 들었냐? 패티 7장짜리 빅 맥이란다.
▶ 저 자식은 대체 왜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거야?
▶ WWE나 UFC로 가선 절대 메이저리그만큼 돈을 못 벌거든.
▶ 메이저라고 개나 소나 떼돈을 버냐?
▶ 모르면 입을 다물어라. 오늘 경기 이전 기록만 보면 노히터 한 번에 벌써 3승. ERA가 1.08이고 삼진만 26개를 잡았다. 이 페이스를 유지하면 사이영 상에 리그 MVP까지 노릴 수 있는데 개나 소나란 말이 나와?
▶ …… 벤클만 잘하는 게 아니네.
▶ 물론 시즌 10분의 1도 안 치른 상태니까 아직 섣부른 소린 맞는데, 작년 성적까지 보면 자이언츠가 업어 키우겠더라.
▶ 오늘은 자기 승리를 걷어찬 거네.
▶ 어제 브레이브스 했던 짓에 빡 돈 거지.
▶ 어제만? 오늘도 1회 초부터 지랄했어.
▶ 난 야구도 이렇게 화끈할 수 있다는 걸 보는 것 같아 좋은데?
▶ 동감! 치고 박든 뭘 하든 저절로 함성이 나와야 스포츠지.
인터넷 중계로 경기를 보던 한국인들도 기꺼이 참여했다.
한국인들이야 브레이브스나 자이언츠 팬이 아니면 딱히 한 쪽 편을 들어야할 일도 없으니 벤클 자체에만 정신이 나갔다.
▶ 저먼 스플렉스! 트라웃! 저대로 은퇴하는 거 아니냐?
▶ ㅋㅋㅋㅋ 미쳤네. 하나씩 주워서 아주 차곡차곡 쌓는다.
▶ 와! 시발 저 양키 떡대들을 무슨 피규어 다루듯 한다.
▶ 스핀-커터로 배트 뽀개면서 손가락 하나씩 펼 때 저 새끼 정상은 아닌 것 같더라. ㅋㅋㅋㅋ
▶ 그거 간지 좔좔 흐르지 않냐?
▶ 브레이브스 타자들은 빡 돌겠던데?
▶ 시작을 새끼고양이가 먼저 한 것도 아닌데 뭐.
▶ 그리고 빡 돌아서 뛰쳐나온 결과가 돌방무덤이지.
▶ 돌방무덤 드립 지리고요.
다행이다.
날 뜯어말리는 걸 포기한 코치들이 투우장의 황소처럼 날뛰는 리키를 끌어내는 데는 성공했으니까. 리키까지 징계를 먹으면 이 경기와는 별개로 팀이 곤란해지거든.
나와 하우어, 앰브로즈, 페티트까지 자이언츠에서만 4명.
맞히지도 못하고 주먹 한 번 휘두른 뒤 밑에만 깔려있던 어떤 멍청이랑 다른 둘까지 브레이브스에서 3명.
총 7명이 퇴장당한 벤클이었다.
그런데 싸움은 일단 이기고 봐야 한다.
덕아웃에 들어갈 수 없어 전해들은 이야기지만 우리 쪽은 제대로 축제분위기였단다. 고작 4회 초였지만 경기에도 깨지고 있는 데다 흠씬 두들겨 맞은 브레이브스 벤치는 아예 패잔병 모드고.
그러게 왜 건드려?
“뭔가 뚱한 표정이다? 승리 못 챙겨서?”
하우어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아쉬운 건 1승 따위가 아니다.
브레이브스 녀석들 배트를 좀 더 부러뜨릴 수 있었는데 4개로 끝난 게 제일 아쉽다. 글러브도 벗고 열 손가락 다 펼치려고 했는데 겨우 4개라니!
“아니. 손가락 열 개 펼 준비를 했었거든.”
“……”
“……”
“……”
매우 익숙한 시선 세 개.
이 인간들이. 같이 미친놈처럼 날뛴 주제에.
그래서 나란히 퇴장당해 핫 초코나 홀짝이는 주제에.
“불펜에 미안해서 그래. 어제도 하웰이 3이닝을 던졌는데 파머스랑 놀라, 프린츠가 오늘, 내일까지 던져야할지 모르잖아.”
“네가 그런 양심적인 생각을 할 리가……”
“…… 지금 싸우잔 거냐?”
“인간은 맨손으로 그리즐리랑 안 싸운다.”
“조는 아직도 기운이 넘치네. 경기나 보자.”
페티트가 으르렁거리는 우리를 갈라놓았다.
좌익수라 가장 멀리 있었는데도 벤클이 시작되자 득달같이 달려와 브레이브스 녀석들을 패대기쳤던 페티트다. 우린 저런 진한 동료애를 표현하는 베테랑을 존중하지.
모두 핫 초코를 쪽쪽 빨며 중계에 집중했다.
2:0 스코어가 3:1이 됐는데 자이언츠 공격이다.
2사에 주자는 1루와 3루! 새비지가 타석에 들어간다.
“새비지! 넘겨버려요!”
하우어랑 무의식중에 같은 말을 내뱉었는데.
따악!
우린 서로 얼굴 한 번 보고, TV화면 한 번 보고 팔뚝을 쓸었다.
이렇게 동시에 말하면 누가 들어주는 건가?
< 3 >
벤클에서 무참히 패배하고 경기까지 내줄 순 없었는지 브레이브스는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새비지의 3점 홈런으로 6:1이 됐지만 야금야금 따라붙어 8회 초엔 7:6이 됐다.
타선에서 페티트, 하우어, 앰브로즈가 동시에 빠져버린 탓이다.
혹시 경기를 내주는 게 아닌지 걱정을 했는데, 8회 말에 터진 페르시의 2점 홈런이 브레이브스의 마지막 숨통을 끊었다. 9회 초엔 네리스가 등판해 안타 하나를 내주긴 했어도 무실점으로 세이브에 성공했다.
“이거지!”
라커룸이 또 한 번 난장판이 됐다.
요즘 좀 자제하던 터너의 랩과 비트박스가 다시 시작됐고, 앰브로즈의 쿠바 산 봉고가 박자를 맞췄다.
워낙 대형 벤클이어서 당장 사무국이 징계위원회를 열지 모를 판인데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는 인간들이다. 나? 당연히 같이 뛰어들어서 몸을 흔들어댔다.
곰탱이가 설치면 자리 비좁다는 리키랑 또 한바탕 하긴 했지만.
의외였던 건 감독이다.
어제는 분명히 리키를 마운드에서 내리면서까지 충돌을 피하려던 모습이었다. 당연히 표정이 안 좋을 줄 알았는데 경기에 이겨서인지 선수들 기분을 맞추려는 건지 가벼운 농담을 건네는 게 전부였다.
“다친 사람이 없으면 됐어. 대신 다음부터 사고 치려면 내게 미리 심장약 먹어두라고 누가 말 좀 해줘. 아니면 차라리 벤클 선두에 나랑 코치들을 내보내.”
그러고 보면 메이저리그 감독도 참 극한직업이다.
성적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스트레스 만땅에 선수들 기분까지 맞춰야하니 말이다.
우린 즐거운 마음으로 마무리 훈련을 끝내고 숙소로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앰브로즈 녀석이 슬쩍 붙잡았다.
“오늘도 빈스네?”
“그 칼로리 덩어리를 또?”
반항을 해봤지만 오늘 나 때문에 일어난 벤클에서 같이 퇴장까지 당한 녀석이 먹고 싶다는데 뭐. 계약금 받아 3천 달러를 초코우유 사먹는 데만 쓴 선수도 있었는데 가끔 시카고 피자 정도는 괜찮잖아?
오늘도 빈스는 육중한 배 앞에 앞치마를 두르고 우리를 맞았다.
“어서 와. 오늘 경기 멋졌어.”
“전 이 칼로리 범벅은 1주일에 한 번만 먹으면 좋겠는데 여기 이 자식이 또 꼬드겼어요.”
“야구선수들이 이 정도 칼로리도 소화 못해? 난 자네들 나이에는 빅 맥에 패티를 다섯 장씩은 넣어 먹었어.”
미치겠다.
그래서 8개월짜리 쌍둥이를 배 안에 담고 있군요.
“그렇게 먹고 빈스 혈관은 안녕한가요?”
“당연히 안녕하지. 그리고 오늘 패티 7장짜리 빅 맥을 만든 조가 패티 5장을 걱정해?”
“패티 7장?”
“아! 아직 영상 안 봤나?”
음, 벌써 인터넷에 영상이 쫙 퍼졌다.
빈스가 틀어준 영상을 보니 진짜 패티 7장이고.
아예 영상타이틀이 ‘심장에 매우 유해한 빅 맥’이다.
“뭐 제 이미지야 포기했어요.”
“무슨 말이야? 대형선수가 될 기반을 만들어놓고.”
“아직 서비스타임 1년도 못 채웠는데 무슨……”
겸양을 떤 게 아니었다.
내 성적이 좋은 건 알지만 1-2년 반짝하고 사라지는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하나둘도 아니고 대형선수라니.
“조가 뭘 잘 모르는군. 잘 들어. 메이저리그에 제 몫을 다하는 좋은 선수는 정말 많아. 한 해 1400에서 1500명의 선수가 메이저에서 뛰지만 붙박이는 절반 정도거든? 다만 그 절반을 700명 잡고 팬들이 이름을 기억하고 환호하는 선수는 700명에서 몇이나 될까? 특히 연고지와 관계없이 인기를 얻는 선수는?”
“…… 많진 않죠.”
“그래. 자네 말대로 많지 않아. 그런데 그 인기를 누리는 선수들이 성적만 좋아서 팬들이 환호할까? 아니야. 순수한 경기 이외의 것을 보여주기에 유니폼을 사고 사인을 받는 거라고. 우리는 그런 걸 흥행성이라고 하지. 자넨 그 흥행성이 탁월해.”
새로운 이론이다.
벤클에서 날뛰면 흥행성이 탁월한 거였어?
그런데 난 빈스의 이론을 바로 내일 경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